한국의 역사 - 초·중등 국사 교과 과정에 맞춘 한국사 백과
김용만 지음, 오지은 외 그림 / 청솔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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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 것 같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책을 읽은 것도 오랜만인 것 같다.

오늘은 주인장이 한국사 책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 책은 말 그대로 전체 한국사를 다루고 있는 백과사전식 서적이며, 부제처럼 초 · 중학생이 학교에서 배우는 국사 수업에 충분히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그럼 주인장이 왜 초 · 중등 국사 교과 과정에 맞는 한국사책을 봤을까? 일단은 저자의 이름을 보고 읽어본 것도 있지만 한번 훓어본 결과, 결코 내용이 쉽거나 간단하여 애들 책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는 부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자세하게 읽어보고 이렇게 서평을 남기게 되었다. 그럼 이 책에 대한 주인장의 생각을 하나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먼저 '목차'와 '저자의 서문'을 읽어보면 저자는 기존과 다른 관점으로 이 책을 집필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흔하디 흔한 한국사 책과 달리 왕조사 중심으로 서술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이전에 썼던『지도로 보는 한국사』를 보면 그 역시 왕조사 중심으로 서술되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그런 시각을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들쑥날쑥 역사가 서술되어 있지는 않지만 같은 주제별로 묶어서 역사를 서술했기 때문에 그 점이 눈에 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같은 주제로 묶은 챕터 안에서는 왕조사 순대로 서술해서 혼동을 피했다. 또 하나는 무역과 해양 시대, 소외된 자들의 역사라든가, 양인과 천민 등등 기존에 잘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독립된 장으로 끄집어내서 다루고 있어 독특하다. 마지막으로 책 표지에도 써 있지만 1,200여 컷의 다양한 도판 자료를 수록하고 있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으로 충분히 한국사를 이해하게 하는데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 동아시아의 신석기 시대(p.15) - Good

토기를 사용한 집단의 문화적 특징과 지역적 생활습관의 차이로 인해 토기의 형태가 달라진다는 표현은 고고학에서는 기본적인 사실일지는 모르지만 국사책이나 역사학 쪽에서는 잘 다루지 않는 내용이다. 아주 단순한 내용이지만 이런 내용이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만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단군조선이 세워지기 이전 신석기시대때 한반도를 포함한 중국 동북방 지역에 다양한 문화가 있었음을 소개하고 있는데(이는 저자가『지도로 보는 한국사』때부터 꾸준히 언급하고 있는 내용이다) '우리 겨레는 처음부터 한반도에서만 살지는 않았습니다. 우리 겨레는 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 서서히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우리 문화 원류의 하나인 이 지역 문화도 우리가 앞으로 눈여겨보아야 할 것입니다.'라는 내용은 참신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사를 한반도의 역사와 동일시 여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런 시각은 고쳐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 전쟁의 시대(p.22~23) - Good

이 부분은 개인적으로 정말 잘 쓴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전쟁이 무엇인지, 전쟁이 당시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개념적인 설명을 잘 해놓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요즘 아이들이 전쟁이 무엇인지 몸소 느낄 일은 별로 없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 중에도 총 한번 안 쏘고 전역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보다 어린 애들이야 말할 것도 없다. FPS 총게임을 아무리 해봐도 전쟁에 대한 분명한 이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독립적으로 전쟁에 대해 다룬 장이 있다는 것은 환영할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전쟁이 자주 일어나면서 병법(군사학)이 생겨나고, 전문 군인이 생겨나고 무기의 발달도 있었다는 설명은 적절했다고 본다. 전쟁을 단순히 몇몇 영웅들의 독무대로 여기는 현상(그리스 영웅들의 전쟁이나 삼국지 무장들의 전투)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식의 설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3. 전사의 시대에서 군대의 시대로(p.28~29) - Good & Bad

먼저 전사와 군인의 차이를 분명히 언급한 것이 눈에 띄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전사와 군사의 차이점을 크게 두지 않는다. 왜 선사시대에는 전사나 몇몇 영웅들의 활약상이 눈에 띄며, 시대가 후대로 오면서 대규모 군대가 전쟁에 동원되는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부분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이 없어 아쉬었다. 하지만 삼국시대 이후 전쟁이 줄어들면서 군인으로 성공하기가 어려워졌고, 그로 인해 귀족들은 오히려 제도를 바꿔 자식들을 군대에 보내지 않았다는 설명은 전사와 군대의 차이에 대해 어느 정도는 해명이 됐다고 생각한다. 한편 '전쟁은 살인과 방화 등 평상시에는 범죄였던 모든 행동들을 가능하게 한다'는 삽화의 설명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전쟁의 본질을 잘 설명한 대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구려 무사의 모습 도판은 의문이다. 그냥 평범한 남성이 평상복을 입고 서 있는 모습인데 이것이 어째서 고구려 무사의 모습이라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시 고구려 무사는 귀족의 자제가 아니라 이렇게 평범한 사람들이 훈련을 받았다고 설명하기 위함인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무사라고 한다면 갑주를 걸치고 무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연상해야 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이 부분은 좀 의문이다.

4. 광개토태왕과 장수왕(p.32~33) - Good

고구려의 성공은 '철저한 자기반성을 통한 변화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대목이야말로 광개토태왕~장수태왕 시절을 설명하기 딱 좋은 표현일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그 부분을 콕 집어서 설명하고 있었다. 또한 태학을 설립해서 문서 행정에 능한 관리를 키웠다는 설명도 적절했다. 또한 이 시기 고구려가 지역 강국에서 대제국으로 변신했다는 표현도 적절했다. 고구려가 처음부터 강대국이 아니었던만큼 이런 성장 과정은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국사책이나 한국사 책에서는 이런 언급을 잘 안 하는 편이다. 물론 관련 전문 연구성과에서는 표현하지만 말이다.

5. 백제와 신라의 동맹과 반격(p.34~35) - Good

삼국 가운데 가자 약했던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에서 어떻게 벗어나 성장해 삼국통일을 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었다. 저자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신라의 삼국 통일은 우연이 아니라 신라의 저력에서 비롯됐다'고 말이다. 학자들 중에는 진흥왕을 두고 대단히 결단력있는 배짱있는 인물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한다. 고구려와 같은 강대국의 간섭을 뿌리치고, 백제마저도 적으로 만든 사내이기 때문이다. 가끔 학계에서는 신라의 통일을 두고 극에서 극으로 치닫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아무리 외세를 빌렸다고 하더라도 신라가 그만한 역량이 없었다면 결코 삼국통일을 이루지는 못 했을 것이다.

6. 고구려와 수, 당나라의 대전(p.37) - Good

고구려의 승리 원인을 두고 저자는 '전쟁에 임하는 태도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전쟁터에 억지로 끌려온 적군에 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한 열정이 강했기 때문에 고구려가 고-수, 고-당 전쟁에서 계속 이겼던 것이라고 말이다. 일반적으로 성이나 무기, 외교전으로 전쟁에서 승리했다는 말은 많이 하지만 이런 정신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미『새로 쓰는 연개소문傳』에서 문헌에 기록된 당나라 측의 전쟁명분과 달리 고구려 측의 전쟁명분이 무엇이었는지 추정한 적이 있었다. 전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지 않았다면 쓸 수 없는 부분인만큼 이 책에 적힌 내용도 그러한 면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7. 삼국통일전쟁(p.39) - Good

앞의 내용과 연결되는 부분이지만 저자는 '승리에 대한 절박함이 앞섰던 신라 사람들의 강한 의지가 마침내 나태해진 백제, 내분에 빠진 고구려, 전쟁 의지가 약해졌던 당나라를 물리칠 수 있었다.'고 삼국통일에 대해 평하고 있다. 상당히 균형잡힌 시각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국사책에 나온 내용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8. 철, 인삼, 도자기 교역(p.47) - Good

저자는 인삼 교역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구려와 백제를 언급하고 있다. 광개토태왕이 백제 인삼의 수출권을 빼앗았다는 대목이나 은과 담비가죽이 고구려의 대표 수출 상품이었다는 내용은 아마 국사책뿐만 아니라 왠만한 역사서적에는 없는 내용이다. 또한 고구려와 백제때부터 인삼이 중요한 약재로서 널리 교역됐다는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 또한 별로 없을 것이다. 이 부분은 이 책을 읽을 학생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이 책을 읽고 학교 선생님께 찾아가 여쭤보는 학생들도 많을 것 같다. 그럼 선생님들이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9. 제주도에 천년왕국이 있었다(p.66~67) - Good

제주도의 독자적인 역사가 사라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독자적인 건국신화가 살아있는만큼 제주도의 역사는 한반도의 역사와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실제 고고학적인 증거를 살펴봐도 양자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부분에 대해 저자는 분명히 언급하고 있다. 이를 '소외된 자들의 역사'라는 카테고리 안에 집어넣은 것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이런 사실을 아는 사람이 많이 있지도 않을 뿐더러 이런 지역사는 국사책에서 다루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 부분에 대해 짚어준 것은 굉장히 주목할만 하다고 생각한다.

10. 이 땅에 온 이방인들(p.70~71) - Good

저자는 우리가 단일민족국가라는 사실에 대해 일침을 가한다. 문화 · 사회적으로는 단일민족일지 몰라도 혈통까지 순수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275개 성씨 중 절반에 가까운 136개의 성씨가 외국에서 귀화한 성씨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는 주인장도 잘 몰랐던 부분인데 재밌었다. 특히 아라비아 덕수 장씨라는 성씨는 처음 보는 것이라서 더욱 그러했다. 중국과 우리나라의 안씨는 대부분 胡人들의 성씨라는 연구결과가 있는데(안록산 등) 그렇게 봤을때 서역 출신 성씨가 있다는 점은 당시 우리나라의 국제성을 알려주는 좋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11. 천신과 조상신, 신선(p.82~83) - Good

불교 전래 이전의 우리 종교에 대해 저자는 여러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우리 조상들이 믿은 최고의 대상은 하늘신인 천신이라는 점, 해와 달은 천신의 대행자이자, 각 나라의 시조 또한 시조신으로 받들어졌다는 점, 사람이 죽은 후에는 신선이 되고 싶어했다는 점 등을 말이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선약(신선이 되는 약)을 만드는 연금술이 발달했었다는 얘기들은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충분히 흥미있어 할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12. 불교와 삼국 시대 예술(p.86~87) - Bad & Good

저자는 일본의 국보 1호인 미륵반가사유상을 두고 삼국 사람이 만들어 준 것이라고 적고 있다. 하지만 삼국 사람이라는 것은 굉장히 애매모호한 표현이다. 현재 미륵반가사유상의 제작자를 두고 백제인, 신라인, 고구려인으로 의견이 분분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막연히 삼국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그냥 제작자에 대한 국적 논란이 있다~라는 사실을 명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석굴암의 가치가 크기가 아닌 재질에 있다는 점을 언급한 것은 좋은 시도였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크고 멋있는 규모에 도취되기 쉬운 아이들에게 석굴암이 어째서 세계사적으로 가치가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대목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13. 화랑도와 국학 교육(p.94) - Good

삼국 시대가 전쟁이 치열했던 시대이므로, 당시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이 武였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글은 부대의 표시나 명령문 정도만 알아도 큰 문제가 없었다고 말이다. 즉, 경당에서도 그 정도의 기초적인 글자만 알려줬을 가능성이 높다. 경당을 지금의 학교와 동일하게 생각하기 쉬운 아이들에게 이런 지적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14. 북방 민족과의 전쟁(p.107) - Good

저자는 고려의 사대를 조선의 사대와 다른 것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실제 고려는 송나라의 연호를 쓰다가 거란의 연호를 쓰기도 하고, 양자의 연호를 같이 쓰기도 하고 아예 연호를 안 쓰기도 하며 독자적인 연호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외교적으로 타국의 연호를 쓰는 것은 그 상대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상대방 역시 자국의 연호를 써주길 원한다. 이런 부분을 분명히 명시해야만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사대주의, 사대외교에 대해서 그 실체를 자세히 알 것이라고 생각한다. 저자는 '강감찬의 귀주대첩'(p.110~111)이라는 부분에서도 고려, 송, 거란이 대등하게 정립했으며 고려는 태조 이후 북진정책을 포기하고 평화를 얻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15. 몽골의 침략(p.115) - Good

저자는 고려 최강의 부대인 삼별초가 몽골과 싸우지 않고, 무신정권이나 지켰다고 평가한다. 즉, 삼별초는 고려 정부가 몽골에게 항복하면 당장 몽골군에게 죽거나 해체될 위기에 있었기 때문에 몽골과 싸운 것이라고 얘기하고 있다. 즉, 그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몽골과 싸웠지만 점차 고려 지배에 대항하는 자주정신의 상징으로 인해 백성들의 지지를 받게 된 것이라고 얘기하는 것이다. 삼별초에 대한 실제적인 해석이라고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균형잡힌 시각을 안겨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16. 도자기와 조선 통신사(p.146) - Bad

저자는 9세기 신라에서도 청자를 만들었고, 고려 시대에는 상감청자 같은 명품을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상감청자는 순청자보다 급이 떨어진다. 서긍『고려도경』을 보면 순청자, 상형청자 등의 우수성은 언급하고 있지만 상감청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즉, 상감청자는 12세기 중엽에 생겨난 것으로 순수하게 아름다운 청색의 자기를 만들어낼 기술력이 점차 떨어졌기 때문에 그 대신 상감과 금입사라는 멋을 부려 그 점을 보완했던 것이다. 하지만 멋을 부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상감청자는 더 화려하게 변화했으며 단기간에 발전하였고, 그와 더불어 만들기 어려운 상형청자와 멋이 없는 순청자는 사라지게 된다. 그래서 순청자는 문신귀족적인 멋이 있다고 하고, 화려하게 치장된 상감청자는 무신귀족적인 멋이 있다고도 할 수 있다. 고려의 순청자는 자기 제작의 원조격인 중국보다도 뛰어나 당시 천하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평가받기도 했으며, 상감청자는 고려만의 독특한 제품이기도 하지만 원의 침입을 받으면서 그 기술마저 쇠퇴하게 되기 때문에 상감청자보다는 순청자를 명품이라고 지칭해야 옳을 것이다.

17. 성리학의 시대(p.154~155) - Good

저자는 성리학에 대해 독립적인 장을 나누어 언급하고 있다. 주인장 또한 이 부분은 국사책에서 공부할때 굉장히 어려워하고 난해해한 부분이었는데 저자는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성리학의 장점과 단점을 분명하게 기술한 것이 좋았던 부분이다.

18. 분단과 민주국가의 진통(p.242~243) - Good

국사책에는 현대사에 대한 부분이 분명히 있지만 교과 과정상 배우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한국사를 전공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대사 아니면 중세사 위주에 치중하고 근 · 현대사 연구자는 많이 없다. 이는 시중에 나온 각 시대별 연구서적의 숫자만 비교해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책에서는 현대사에 대해서도 빼놓지 않고 다루고 있다. 특히 저자는 최근까지 군부독재정권이 유지됐던 것을 두고 수천년간 왕권국가에서 살았던 경험에 의거한 것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인장 역시 현대사가 취약한데 그 부분에 대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어서 좋았다.

뭐 간단하게 18가지 정도를 꼽아봤다. 어느 정도 주인장이 아쉬웠던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굉장히 짜임새있게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밖에 각 챕터마다 시계와 시계추 형태로 디자인한 연표(연표는 어차피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는 거니깐)가 보이는데 그 점도 참신했으며, 뒤에 붙은 연대표를 단순히 시기별로 나누지 않고 왕과 정치, 전쟁, 문화, 종교와 사상, 경제와 생활 등 챕터별로 나눠서 정리한 점이 돋보였다. 특히 B.C 10,000년 이전 전쟁을 두고 '인간과 짐승 간의 먹고 먹히는 투쟁이 있었음'이라고 쓴 부분은 좀 쇼킹했다. 이런 내용은 국사시간에 전혀 배우지 않는데다가 아이들이 미처 생각치 못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맞다. 구석기시대 인류는 여러 영장류 중의 하나였고, 보다 강한 맹수에게 잡아먹히기도 했었을테니 말이다. 전쟁은 곧 살기 위한 투쟁이었을 것이다. 또한 특별 부록으로 만든 한국사 지도도 보기 좋았는데, 역시 선으로 국경선을 그리지 않는 저자 특유의 지도가 눈에 띄었다.

마지막으로 단점을 굳이 꼬집어 보자면, 책에 실린 삽화들 중 눈에 거슬리는 것들이 몇개 있다. 고인돌을 만드는 사람들이 고조선 사람과 시기적으로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전자는 '우가우가' 원시인들처럼 표현하고(흙도 거적떼기에 나르고 있다. 산간 오지에 사는 원주민도 이렇게 살지는 않을 것이다.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도구를 사용한 인류인데 이건 뭐) 집 짓는 고조선 사람들은 옷을 제대로 갖춰입은 것처럼 표현하고 있다. 삽화야 책을 쓴 저자가 그린 것이 아니니깐 이렇게 잘못 그려진 것을 보니 아마 출판사측에서 따로 작업한 것을 집어넣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그 점이 전체적으로 책의 가치를 떨어뜨릴까 안타깝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암튼 전체적으로 국사책의 단점을 충분히 보완하면서도 내용면에서 결코 초 · 중학생이 만만히 볼 수 있지 않은, 전문적인 내용도 싣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런 책은 단순히 아이들만 읽지 말고 부모님도 같이 읽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면서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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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이 바꾼 세계사 세계의 전쟁사 시리즈 4
김후 지음 / 가람기획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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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고 나중에 알았지만 이 책이 제43회 한국백상추란문화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아마도 '활'이라고 하는 무기를 통해 세계사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좋았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이 책은 출간된지 상당히 오래 된 책인데 그간 주인장이 내내 봐야지~봐야지 했다가 이제야 구해보게 되었다. 전체적으로 연구서적이라기보다는 개설서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정보 전달이라는 측면에 있어 상당히 잘 쓰여진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제부터 이 책에 대해 몇마디 적어보려고 한다.

저자는 먼저 활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서술하고 세계 각지에서 쓰였던 활의 종류에 대해서 정리하였다. 그 다음으로 1부 말미에서 스키타이, 훈, 투르크, 몽골 등 기마궁수를 동원해 일대 제국을 형성했던 유목민족에 대해 간략하게 언급하고 2부에서 본격적으로 그들에 대해 자세하게 서술하였다. 2부 말미의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만 아니라면 이 부분은 전체적으로 활을 이용해 크게 세력을 떨친 세력에 대해 언급한 개략적인 역사서술이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3부에서는 한국의 활에 대해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국궁의 구조와 제작법, 종류, 여러가지 화살과 궁도에 대해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으며, 한민족의 군사 전술 변천사 또한 나름 의미있는 테마로 정리된 부분이라 생각되었다. 최종적으로 복합각궁의 약사를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저자는 글을 마무리하고 있다.

저자는 책 표지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복합각궁(우리가 흔히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보는 만곡도가 심한 활로 예맥각궁이라고 불렸다고 함)이 부여에서 만들어져 그와 우호관계였던 흉노(훈으로 일괄 지칭하는 듯 하지만)에서도 사용되었으며, 이후 중국에서 널리 쓰이던 노궁과 함께 투르크 세력에게 전해져 유럽에까지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었다. 구미인들이 터키의 활을 최고로 꼽는 것은 국궁을 접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으로 보고 있었으며, 우리 민족이 발명한 예맥각궁을 갖고 훈족과 몽골의 칸들이 세계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된 주장인 것 같았다. 주인장이 처음에 이 책을 읽기 시작한 이유는 '백년전쟁 동안 영국의 장궁병이 프랑스군에게 있어 어떠한 군사적인 우위에 있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는데, 그러던 차에 접한 저자의 이러한 주장은 조금 의외였고 참신하기까지 하였다. 주인장은 지금까지 복합각궁의 기원이 우리 민족이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원거리 무기인 활은 선사시대부터 각 지역별로 만들어져 사용되었겠지만, 보다 강력한 관통력과 사거리를 지닌 복합각궁은 특정 지역에서 만들어져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저자의 이런 주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전체적으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우리 민족에서 만들어진 활이 유목민족의 흥망성쇠와 함께 했다~라는 것에 촛점이 맞춰진 것 같아서 조금 아쉽기는 했다. 물론 유목민족의 역사를 비주류 혹은 야만의 역사로 보는 것은 지양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목민족이 오직 활이라는 무기의 강력함때문에 거대한 제국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또한 복합각궁만이 전장에서 확고한 전략적 우위를 보여줬던 무기도 아니었으며, 여러 종류의 활(노 포함)이 선택적으로 수용되어 전장에서 활용되었던만큼 그 다양한 활의 용례 혹은 발전상 등을 보여줬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물론 동양에서 오래전부터 위력적인 무기로 활용되던 기간에 서양에서는 비겁한 무기라 하여 전문적으로 활이 쓰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도 분명히 활을 전장에서 활용했으며, 백년전쟁 기간에는 영국의 장궁병이 그 위세를 떨치기도 하였다. 한편 인도와 동남아시아 각지, 아프리카에서도 활은 무기로서 오랫동안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합각궁에만 주목하여 서술한 것은 조금 성급한 면이 없지 않았나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 활을 통해 본 세계사적인 서술이 없기 때문에 연구사적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한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것, 동서양의 전쟁을 서로 비교하여 서술한 부분이나 조선 각궁과 영국의 잉글리시 롱 보우를 비교한 내용 등은 적절한 비교여서 재밌게 봤고 또 유용한 내용이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여사를 언급하는데 있어 고두막한이 나온다던가, 400년 경자대원정때 광개토태왕이 동원한 5만의 군대가 모두 기병이라고 서술한 것, 광개토태왕 시절 유연 원정이 있었다고 서술한 것, 광개토태왕비에 아신왕이 백제가 아닌 십제의 왕이었다고 한 것 등등 중간중간 원사료에 근거하지 않고 저자가 추정한 내용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이 조금 거슬렸다. 이것 역시 활 혹은 활에 의존한 전략전술에 주력하다보니 이런 실수를 범한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점수를 주자면 80점 정도를 주고 싶은 책이다. 그간 온라인상에서 활과 화살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보면 늘 참고문헌으로 들어가 있어서 이번 기회에 읽어봤는데 충실하게 정리된 부분이 있었던만큼 다소 편향된 내용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이 많이 아쉬웠다. 그런 부분들을 조금 더 보충해서 증보판이 나온다면 좋을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이와 관련된 연구서적 혹은 개설서가 없기 때문에 연구사적 가치가 높은 책이라는 생각은 든다. 그렇기에 한번쯤 꼭 읽어봐야할 책이라는 생각을 끝으로 이만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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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기획자들 - 불가능한 시장을 만들어낸 사람들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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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을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서 시작해서 좋은 것 같다.

오랜만에 서영교 선생님의 전쟁사 관련 책이 나와서 주인장은 선뜻 샀다.

먼저 책에 대해 얘기하자면 책 표지에 적힌 'BRAIN OF WARS'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브레인의 I'가 총을 든 병사가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장 마지막의 '워스의 S'는 $표시되어 있었다.

이 책의 부제도 그렇지만, 저자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제목에서부터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머리말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 전쟁이 시장이란 자궁에서 배태되었을 때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괴물이 된다. 또한 그 전쟁을 이끄는 '전쟁두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민활하고 창조적이다. 그들은 불가능한 시장을 만들어 시장의 주인이 된 자들이다. -

그렇다. 이 책은 철저하게 시장이라고 하는 경제적 활동이 행해지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행위를 분석하고자 했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전쟁이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전쟁이 정치의 연속성을 지닌 극단적인 행위라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해석이며, 사회나 문화, 종교와 사상도 전쟁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전쟁은 재화의 소비와 획득이 교차하는 파괴적인 경제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강조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저자는 지난 냉전 이후의 전쟁상황이 마치 진실한 전쟁의 참모습인 줄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이기 때문에(주인장이 대학교 1학년때 들었던 경제학과 교양수업에서 교수님이 이렇게 물어봤다. 경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해보라고...답은 이거였다 ^^) 돈벌이가 안 되면 전쟁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말이다. 늘 그렇지만 저자는 기존의 무책임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 이런 자극적인 주제를 정한 듯 싶다. 그리고 그 연구성과는 상당히 볼 만 하다는 것이 주인장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럼 이 책에 대한 주인장의 생각을 몇가지 정리하도록 하겠다.  

책은 전체적으로 1. 치열한 격전지, 2. 달러의 그늘, 3. 먹거리 시장 쟁탈전, 4. 시장 속의 군주, 5. 자유 시장의 본질, 선량한 용기라고 하는 다섯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으며 그 안에 세부적으로 34개의 테마를 집어넣어 전쟁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고대와 현재의 전쟁을 비교하여 전쟁의 본질이 수백~수천년이 지나도록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전쟁의 본질을 비교 분석한 책이 없었기에 더욱더 이 책의 가치는 빛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 중에서 먼저 주인장이 크게 공감한 부분을 언급해보자.

첫번째 테마인 '대의를 위한 전쟁은 없다.'가 일단 눈에 확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광개토태왕이 400년에 보기 5만을 이끌고 한반도 남부를 정벌하여 신라를 정치적 속국에 삼고 가야와 왜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끼쳤다고 해석들을 한다. 즉, 정치적으로 해석을 주로 하는데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을 경자대원정과 비교하고 있었다. 석유를 얻기 위해 미국이 과감하게 전쟁을 벌였듯이, 광개토태왕은 한반도 남부의 가야산 철 유통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전쟁을 벌였다고 말이다. 당시 철이 국가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을 보면 광개토태왕이 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감행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철 시장의 확보만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철시장의 규모는 가야보다 고구려가 더 거대했다는 것이 주인장의 사견이다. 고구려의 철은 광활한 북방 유목민들에게 퍼져나갔고, 고구려의 철제무기는 중국과 큰 차이없다고 할 정도였지만 가야의 철은 왜와 낙랑군에서 주로 구입해가는 정도였다. 철 시장의 규모는 철의 공급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철의 소비규모가 어떠한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봤을때 이미 3세기때 철기 5천을 보유했던 고구려와 3세기 가야의 수준을 비교할 수 있을까? 어쨌든, 그 전쟁에서 경제적인 요인을 유추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네번째 테마 '시장, 전쟁을 도발하거나 억지하거나'도 괜찮았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은 점을 수 양제의 사례에 비교한 것은 정말 탁견이었다. 미국의 딜레마와 수 제국의 딜레마는 정말 똑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 제국은 멸망했고 미 제국은 점점 수렁에 빠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다음 테마인 '빈 라덴이 원한 것, 미 경제를 수렁으로 끌어들일 전쟁'과도 연결되는 내용이다. 전쟁이 경제적인 이유로 수행되는 것이라면, 적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경제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자는 그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전쟁의 경제적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 부분이 바로 이 1부가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강한 흡입력으로 주인장을 몰입하게 하는 책이었기 때문에 책을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 열두번째 '공포가 만들어낸 기이한 공생'이라는 부분도 눈여겨볼만 했다. 미 재무부 채권과 남송의 세폐를 비교한 부분인데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내용이었다. 금에게 세폐로 건네준 막대한 재화가 결국에는 송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켰고, 금은 재정적으로 송에 예속되는 상황이 된다. 실제 송에서 세폐로 건너간 막대한 재화가 촉매제가 되어 그보다 훨씬 많은 송의 상품을 지불하는 대금으로 빠져나간다는 연구성과가 있다. 즉, 송에서 나간 돈의 대부분이 무역으로 인해 회수되고 그 막대한 자금이 돌고 돌면서 송의 경제를 호황으로 몰고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처럼 송은 세폐를 감당하느라 나라가 가난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지금의 미국 상황과 비교한 것이 정말 대단했다. 지금 미국의 채무가 천문학적인 수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미국 주도의 달러체제가 완성되고 세계 각국은 그 안에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경제 및 전쟁의 상황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열네번째 '사실은 거란에 농락당한 서희의 담판'과 열여섯번째 '고구려 장수왕의 몽골 개척이 식량무기 시대의 해법이다.' 역시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머리를 탁 치면서 읽었던 부분이다. 우리는 흔히 서희의 외교담판을 성공적인 외교사례로 꼽지만 저자는 당시 요나라가 그보다 더 큰 이득을 취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고려에게는 단순히 강동6주라는 영토의 확보로 끝났겠지만, 요나라는 말썽을 피우던 여진을 몰아내고 고려와의 안전한 교통로를 확보했으며, 고려와 송의 거래를 끊고 약화된 송을 압박해 송 위주의 무역체제를 요나라 중심의 무역체제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말 획기적인 해석이었는데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견해였다. 저자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장수왕의 지두우 분할계획을 단순히 영토 확보와 국제 역학관계상 우위에 서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이었다고 해석했다. 넓은 영토뿐만 아니라 다량의 인구 및 가축을 확보하고 이들을 통해서 초원의 영역을 확장 · 유지했던 것이다. 읽는 내내 재밌다는 생각과 놀랍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밖에도 재밌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다. 미천왕을 CEO라 부르며 이익에 밝은 고구려 귀족을 설득하여 낙랑지역을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했다고 해석했고, 철저하게 장삿속으로 일왕을 속인 신라 왕자 김태렴에 대한 얘기는 통쾌하기까지 했다. 정말 장삿꾼들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럼 이제는 조금 아쉬웠던 부분을 좀 살펴보자.

일곱번째, '자본은 정치를 움직이고 이권은 반란을 획책한다.'에서 안시성의 은광산을 끌어낸 것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군의 목표가 은광산이라고 본 것은 조금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경제적 이권을 놓지 않기 위한) 말갈 상인의 공작으로 설연타를 전쟁에 끌어냈다는 것 또한 조금 오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전쟁에 아무리 경제적인 면모가 강하지만 개개 전투가 모두 경제적 이권에 좌지우지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전쟁의 목표가 경제적 목표를 갖고 있다 하여 모든 전투과정과 전략전술이 경제적인 면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분석한 것은 오류라고 생각한다. 이는 주필산전투와 안시성전투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하지 않았기에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한 열여덞번째 '시장의 붕괴는 분열 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도 조금 의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북제의 사신 최유가 고구려의 양원왕을 때려 눕혔다는 기록을 그대로 싣고 있는데, 얼핏 봐도 무리가 있는 해석이었다. 또한 이 당시 고구려가 안으로 내분을 겪으며 한강 등지의 영토를 상실하여 시장을 상실했기 때문에 몰락해갔다고 해석했는데,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너무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힘이 약해진 고구려의 왕권이라 하여도 여러 고구려의 권신이 보는 앞에서 최유가 그 왕을 때려 눕힌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리고 무사히 돌아갔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사료 검증없이 인용한 내용을 통해 현대그룹의 몰락을 비교한 부분은 조금 해석상 오버가 심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전쟁기획자들』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경제적 행위에 대한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논지를 전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34개의 테마 중에서 직접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본 것은 이십여개 정도. 나머지는 오늘날의 경제적 사건 및 상황을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들어 해석한 것들이었다. 물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이렇게 소개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료라고 할 수 있지만 책 제목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자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전쟁이라는 행위는 한명 이상의 상대방끼리 다투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규모가 큰 것을 대개 전쟁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대개 국가 대 국가의 대립행위로 이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일개 상인이 전쟁의 향방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거나 국가에 소속되지 않는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집단이 전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국가적 행위라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존속하는 집단에 의해 주로 전쟁이 수행되며 그 안에서 경제적인 목표도 달성되는만큼 전쟁에서 정치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기존에 간과되어왔던 전쟁의 경제적 요소를 전면에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가치는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상 과대포장된 부분은 과감히 쳐낼 필요가 있겠다. 그럼에도 주인장이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전쟁의 본질에 대해 이처럼 재밌게 풀어쓴 책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감히 추천하겠다.

재밌으니까 꼭 한번 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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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의 비밀 - 로마 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
배은숙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오늘 주인장은 상당히 재밌는 책 1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강대국의 비밀』이라는 책인데 거기에 '로마 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로마사 전공자가 내놓은 로마 전쟁사 관련 서적이다. 처음에는 얼핏 보고 번역서인가 싶었는데 저자가 배은숙이라는 말에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곰곰히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아! 맞다! 로마사 전공자!" 주인장이 저자를 왜 기억하냐면 저자의 논문을 이미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읽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전쟁사를 전공하는 주인장에게 있어 로마 군제사를 정리한 각종 자료들은 좋은 비교자료로 활용되곤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로마 군제사를 전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저자의 논문이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는데 이 책 앞장에도 소개되어 있는「로마 군단병의 봉급 변화(2003, 대구사학75)」,「로마 군단병들의 서열(2006, 대구사학82)」,「치세 초기 아우구스투스의 행정 정책(2006,계명사학17)」,「로마 군대에서 군사령관의 역할(2007,역사와경계62)」등이 바로 주인장이 참고했던 논문들이었다. 책의 목차를 주욱 보니 그간 저자가 썼던 논문들을 개설서의 형식을 빌린 연구서적으로 정리한 듯 했는데 상당히 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구입하였다(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출판기획안 당선작품이라는 것이 이해가 갔다). 

사족은 집어치우고 이 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말해보기로 하자. 먼저 이 책의 목차를 주욱 보자.

제1부 로마 병사들의 일상생활

제1장 로마 군인이 되는 길
1. 로마 군단, 남성 시민권자의 의무
2. 신병 입소에서 자대 배치까지

제2장 살인병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1. 악명 높은 훈련의 시작
2. 군인들을 잠깐도 가만 두지 말라
3. 상은 푸짐하게, 벌은 가혹하게

제3장 엄격한 지휘 체계
1. 지휘관과 병사들의 관계
2. 계급을 둘러싼 경쟁

제4장 상상을 뛰어넘는 복무 기간
1. 양성되는 노련한 군인들
2. 로마에서 군인으로 산다는 것

제2부 돈의 유혹

제1장 쥐꼬리만 한 수입
1. 일 년에 세 번 지급되는 최저 생계비
2. 100년에 고작 한 번씩 인상
3. 병사들은 어디에 돈을 썼을까?

제2장 특별 수당의 법칙
1. 전리품, 승자의 몫
2. 예기치 않은 보너스

제3장 제대 군인들의 생존법
1. 군인에서 농부로
2. 보잘것없는 제대상여금

제3부 변하라, 단 강점은 지켜라

제1장 약하면 적에게 배워라
1. 선진 전술 도입
2. 기동성 보완과 중대 편제로의 개편

제2장 세계 제국을 향하여
1. 신병 확보와 마리우스의 개혁
2. 강력하게 재정비된 로마군

제3장 강점을 버린 로마군
1. 마지막 개선의 몸부림
2. 로마군의 말로

부록
로마군이 수행한 전투의 승패 요인 분석

용어설명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로마 군대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을 총망라하고 있다. 책 뒷편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국내에 로마 전쟁사 혹은 로마사 전공자가 거의 없다보니 저자가 참고한 문헌은 거의 영미권 연구성과들이 대부분이다. 즉, 그만큼 우리에게 생소한 자료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거기다가 국내에서 연구하기도 힘든 전쟁사라는 분야를 다양한 고고자료 및 각종 금석문과 문헌사료를 통해서 상당히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로마 군인의 일상적인 생활(훈련과 교육, 전투, 잡역 등등)은 물론이요, 군대 징집에서부터 전투 수행, 전후 포상, 퇴역 이후의 삶까지 로마 군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내용들을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특히나 로마 전쟁사 혹은 로마 군대에 대해 서술할때 지휘관이나 귀족계급이 아닌 일반 사병들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복원하려 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주인장이 가장 부러워하고 가장 대단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고구려 전쟁사를 복원할때 이 부분을 복원할만한 자료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얼마전 주인장이 소개한 책이 하나 있다.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김성남의『전쟁 세계사-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2008, 뜨인돌출판사)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도 주인장은 일반 병사들의 삶을 통하여 당시 군대와 전쟁을 생생하게 복원했던 점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전쟁사 혹은 군사사 연구에서 정작 당사자인 병사들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없었기에 이런 점들을 주인장은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로마 군대에 대해 파격적인(감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연구성과가 나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이 연구성과는 추후 로마 전쟁사 혹은 군사사 연구에 始原적인 존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의깊게 본 부분은 로마 군대의 형성 과정이었다. 어떤 형태로 징집되어 어떤 식으로 자대를 배치받고, 무슨 훈련을 얼마동안의 기간에 걸쳐 수행하며, 하루 일과가 어떠하고 전투를 실제 어떻게 수행했는지 등등의 내용이 바로 그러했다. 특히 하루 일과 및 평시 군인들의 삶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재밌었는데(pp.45-102) 이러한 세세한 내용까지 복원 가능하다는 것이 정말 한없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고구려의 경우, 현재 한반도 북부에서부터 임진강 일원까지 보루(堡壘)라고 불리는 소형 군사요새가 수십여 곳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보루에서 출토되는 각종 무기류 및 토기류, 유구를 통하여 당시 주둔병력에 대한 해석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헌자료가 전무하며 금석문 또한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생활했던 병사들의 세세한 생활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로마군의 이런 세세한 생활사적인 면의 복원은 주인장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파일:Etruscan civilization map.png저자는 로마 병사들의 세세한 삶(돈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룬 점이 특히 독특했다. 안 그래도 서영교의『전쟁 기획자들』(2008, 글항아리)이라는 책을 보면서 경제와 전쟁의 상호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경제와 전쟁의 상호관계에 대해 비중있게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을 언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로마 군대 전체에 대한 고찰도 시도하고 있다. 로마군이 어떻게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이어 지중해를 장악하고 전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과감히 단정짓는다. 로마는 항상 타인의 강점을 배워 로마化하는데 능통했다고 말이다. 마치 북방 유목민들이 중국의 문물과 이기를 받아들여 오호십육국 시대동안 화북 지역을 점거했던 것처럼 로마는 그들의 강한 적들로부터 강점을 받아들여 거꾸로 그들을 정복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저자는 가장 대표적인 강적으로 에트루리아를 꼽았다. 저자는 자신있게 말한다. 로마가 에트루리아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으며, 만약 로마가 건국할 당시 주변에 강대국이 없었고, 주변에 다른 나라가 세워질 때 로마가 최강국이었다면 적으로부터 배우려는 포용적인 자세를 갖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이다(p.272). 주인장 역시 이에 적극 동조하는 바이다.

저자가 로마의 몰락을 로마군의 약화에서 찾는 것은 당연하며, 그에 따라 로마의 요새 공격술이 쇠퇴되었다고 평가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1~2세기에 절정에 달했던 로마의 요새 공격술은 3세기에 이르게 되면 점차 쇠퇴하는데, 이 시기가 되면 로마군은 적의 요새를 공격하기보다는 아군의 요새를 방어하기 급급해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수천 명의 군인이 출입하기에 용이하도록 개방된 지역에, 여러 개의 출입문을 가진 영구 주둔지를 건설하고 그 안에 군단 본부를 포함한 행정시설, 무기와 식량 저장소, 무기공장, 광장, 병원 등 많은 부대시설이 위치했었다. 하지만 3세기 말 이후 적은 수의 군인이 지키는 요새는 과거에 비해 훨씬 작아졌다고 한다. 사방이 잘 보이는 높은 지대에 지었고, 그만큼 성벽도 더 두꺼워졌고 요새 전체를 둘러가며 망루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도랑을 파서 적이 쉽게 건널 수 없도록 했으며, 출입문은 하나만 개방하여 이제 로마군은 적을 공격하기보다는 요새 안에서 적을 막는 일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특히 로마 동부는 페르시아 덕분에 요새 공격술이 꾸준히 사용되어 크게 쇠퇴하지 않았지만 서부의 경우, 게르만족과 오랜 기간 대치하다보니 요새 공격술은 점차 쇠퇴했다고도 말한다. 이 부분은 그간 생각치 못 했던 부분이라 일견 수긍이 갔다. 그러면서 계속 저자는 동부와 서부의 차이를 언급한다. 강한 적을 맞아 싸우는 동부에 비해 그렇지 못한 서부는 점차 안일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약자였던 게르만족에게 제국이 멸망당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를 폐위시킨 것은 그저 상징적인 사건일뿐, 이미 서로마의 멸망은 예견된 것이라고 저자는 서슴없이 말한다. 영원한 약자도, 영원한 강자도 없다는 저자의 마무리 멘트 역시 주인장에게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해 줬다.

또한 이 책에서 정말 白眉로 꼽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부록으로 실린 '로마군이 수행한 전투의 승패 요인 분석'이라는 부분이다. 리비우스의『로마시 건국에서부터』라는 글을 비롯해 폴리비우스, 카이사르, 플루타르코스, 요세푸스, 타키투스, 조시무스, 프로코피우스의 자료들을 인용하여 로마와 관련된 전쟁사 기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점이 돋보였다. 그러면서 단순히 시기순으로 각 전투기사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이를 'Ⅰ. 국가 존립을 위한 노력  Ⅱ. 이탈리아를 장악하다  Ⅲ. 지중해를 호수 삼아  Ⅳ. 세계 제국에 깃든 평화  Ⅴ. 팽창을 위한 힘겨운 노력  Ⅵ. 내우외환, 로마제국의 말로'의 6개 큰 장으로 나눠 역사적인 의의를 두어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아마 이 부분은 기존의 로마 전쟁사 관련된 책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분일텐데 굉장히 신선한 자료가 아닐까 싶었다. 주인장 역시 예전에 필리피 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으나 자료를 찾지 못 하다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관련 자료를 좀 더 얻었던만큼 로마 전쟁사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주는 정보 획득의 이로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새해에는 좋은 책을 많이 읽자는 다짐을 하고 또 하였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기분좋게 한 해를 출발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변에 전쟁사 혹은 로마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한번쯤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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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흥미로운 만화책이 1권 나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미국이라는 帝國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다. 

아! 잠깐. 만화책이라고 해서 어린이들이 보는 아동도서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를 만화의 형식을 빌어서 표현할 뿐이지,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왠만한 역사책에서 보지 못 했던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 책을 오해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럼 먼저 표지부터 살펴보자. 

미국인이 철도, 교육, 종교, 다리, 철강을 비롯한 기타 각종 물자들을 한가득 짊어지고 두 팔 벌리며 환호하는 중국인을 향해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에는 다리와 영어, 자동차, 도로 등이 필요하다는 표지판이 잔뜩 붙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미국인의 왼쪽 발이 필리핀이라고 적힌 땅을 밟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표지 하나만으로도 이 책에서 앞으로 다룰 내용들이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필리핀을 미국이 식민지로 만든 이유가 바로 미국의 중국 진출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기 위해서라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저자는 얘기한다. 미국의 필리핀 지배는 이후 미국의 식민지 지배에 있어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고 말이다. 공화국이 아닌 제국의 탄생에 있어 필리핀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지하며 주인장은 책장을 하나하나 넘겼다. 

목차를 한번 살펴보자. 

서문
들어가는 말

01. 국내의 제국
02. 스페인·미국 전쟁
03. 필리핀 침공
04. 전쟁은 국가의 건강한 상태이다
05. 계급의식의 성장
06. 제2차 세계대전은 국민의 전쟁?
07. 냉전
08. 제국의 아이들
09. 아이들이 분신하는 나라
10. 부패한 제국
11. 제국의 부활
12. 은밀한 행동과 그 저항

마무리 말_ 희망의 가능성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는 미국이 제국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낱낱히 그려내고 있다. 스페인과의 전쟁부터 시작해서 필리핀을 침공하고 그 과정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냉전까지 치뤄낸 미국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말이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 사회적인 문제점들이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인장은 그동안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모습하면 인디언을 몰아낸 일,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가 심했다는 일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안에는 악덕자본가(록펠러같이 성공한 기업가들조차)들과 기업가들, 여러 정치인들의 추악한 행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놀랐던 것은, 이런 내용들을 예전에도 보고 배워왔다는 사실이다. 단, 주인장은 이런 내용의 주인공으로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등을 떠올렸지, 미국을 떠올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괜히 美國이겠는가. 

대영제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전세계에 식민지를 두고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한껏 뽐냈던 나라 영국. 그런 영국의 역사를 배울때 제국주의가 어떻고, 그 나라 백성들이 어떻고, 식민지배를 어떻게 했고...등등을 배워왔었다. 아마 지금도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렇게 배우고 있을 것이다. 중세 유럽의 최강대국이자 나폴레옹 시절 전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 대항해시대를 열고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스페인,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며 제국주의의 극단을 보여줬던 독일,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동아시아에서 자신들만의 파쇼체제를 강화했던 일본 등 우리는 세계사를 공부할때 그들에 대해 배우면서 그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때론 그들에게서 장점을 배우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얼마전 대국굴기라는 방송이 나가고 그와 관련된 책이 발간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방송 분량 중 영국과 미국만이 2회분씩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있게 다뤘는데, 거기에서도 미국은 위선의 탈을 쓰고 제국주의를 표방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묘사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는 왜 미국은 세계경찰로서 국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로 알고 있고, 지나간 세기의 제국들에 대해서만 기억하는 것일까?

미국도 똑같았다.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다른 제국들처럼 똑같이 행동했고, 똑같은 수순을 밟았다. 가장 최근의 이라크 전쟁과 9.11 테러 및 탈레반 소탕작전 등등 전세계 국방비와 맞먹는 국방예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아직까지도 제국의 영광을 위해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내 국민들은 미국이라는 제국의 희생양으로 팔려나갔으며, 인디언과 흑인, 식민지 내 국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장은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 알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단순한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하나의 발판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미국 내 기업들이 정치와 어떻게 유착하여 성장해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아마~그럴 것이다.' 정도로만 알고 있던 사실들을 확실하게 인지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기도 하였다. 주인장은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며 극우파까지는 아니지만 우파 성향이 강하다. 그렇기에 제국주의에 대해 종종 긍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제국주의를 지향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이다. 하지만 미국과 같은 추악한 역사를 지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갖게 된다. '아름다운 나라' 美國이 아닌 '아름답지 않은 나라' 未國의 역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만화는 시종일관 하워드 진의 강의 내용을 만화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중간중간 실제 강의에서나 나올 수 있는 위트가 더욱 흥미롭다. 책의 말미에서 하워드 진은 한 기자와의 인터뷰(만화상의 내용)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 중이고,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우리 정부는 비록 수십 만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이 제국을 계속 확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좌절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습니다. 50년 전 남부의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만큼이나 굳건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또한 베트남전 당시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거나 몸이 마비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또 우리 정부가 베트남의 마을을 폭격하고 있을 때 전쟁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남부에서 일어났던 인권운동처럼 사람들이 전쟁에 항의하기 시작하자 곧 커다란 저항의 불이 붙었습니다. 전국적인 운동이 되었단 말입니다. 군인들이 돌아와 전쟁을 규탄했고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나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제도의 갑작스런 붕괴에 놀랐던 기억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자에 대해 예상치 못 했던 큰 저항이 일어나고 무적의 권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알고 배우는 것은 중요하며, 우리가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의 역사를 보고 배우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인임에도 스스로 미국의 추악한 이면을 당당히 그려낸 하워드 진의 용기와 의지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http://howardzinn.org/default/

위 주소는 하워드 진의 개인 홈페이지라고 한다. 그가 남긴 저술활동과 언론활동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어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제국'이라는 것에 대해 단순히 생각해오던 주인장에게 깊은 영감을 준 저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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