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기획자들 - 불가능한 시장을 만들어낸 사람들
서영교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신년을 좋은 책을 많이 읽으면서 시작해서 좋은 것 같다.

오랜만에 서영교 선생님의 전쟁사 관련 책이 나와서 주인장은 선뜻 샀다.

먼저 책에 대해 얘기하자면 책 표지에 적힌 'BRAIN OF WARS'라는 문구가 눈에 확 들어왔다.

'브레인의 I'가 총을 든 병사가 서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었으며 가장 마지막의 '워스의 S'는 $표시되어 있었다.

이 책의 부제도 그렇지만, 저자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제목에서부터 확실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저자는 머리말에서 과감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 전쟁이 시장이란 자궁에서 배태되었을 때 그것은 영원히 죽지 않는 괴물이 된다. 또한 그 전쟁을 이끄는 '전쟁두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민활하고 창조적이다. 그들은 불가능한 시장을 만들어 시장의 주인이 된 자들이다. -

그렇다. 이 책은 철저하게 시장이라고 하는 경제적 활동이 행해지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전쟁이라는 행위를 분석하고자 했다.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전쟁이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해석되지는 않는다. 전쟁이 정치의 연속성을 지닌 극단적인 행위라는 것은 이미 고전적인 해석이며, 사회나 문화, 종교와 사상도 전쟁에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다. 그렇지만 뭐니뭐니해도 전쟁은 재화의 소비와 획득이 교차하는 파괴적인 경제행위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저자는 그것을 강조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틀림없다. 왜냐하면 저자는 지난 냉전 이후의 전쟁상황이 마치 진실한 전쟁의 참모습인 줄 사람들이 착각하고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전쟁은 그야말로 돈 놓고 돈 먹기이기 때문에(주인장이 대학교 1학년때 들었던 경제학과 교양수업에서 교수님이 이렇게 물어봤다. 경제라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간단하게 말해보라고...답은 이거였다 ^^) 돈벌이가 안 되면 전쟁을 수행하기 힘들다고 말이다. 늘 그렇지만 저자는 기존의 무책임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하기 위해 이런 자극적인 주제를 정한 듯 싶다. 그리고 그 연구성과는 상당히 볼 만 하다는 것이 주인장의 개인적인 견해이다. 그럼 이 책에 대한 주인장의 생각을 몇가지 정리하도록 하겠다.  

책은 전체적으로 1. 치열한 격전지, 2. 달러의 그늘, 3. 먹거리 시장 쟁탈전, 4. 시장 속의 군주, 5. 자유 시장의 본질, 선량한 용기라고 하는 다섯개의 장으로 나눠져 있으며 그 안에 세부적으로 34개의 테마를 집어넣어 전쟁의 본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고대와 현재의 전쟁을 비교하여 전쟁의 본질이 수백~수천년이 지나도록 크게 변하지 않았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전쟁의 본질을 비교 분석한 책이 없었기에 더욱더 이 책의 가치는 빛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그 중에서 먼저 주인장이 크게 공감한 부분을 언급해보자.

첫번째 테마인 '대의를 위한 전쟁은 없다.'가 일단 눈에 확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광개토태왕이 400년에 보기 5만을 이끌고 한반도 남부를 정벌하여 신라를 정치적 속국에 삼고 가야와 왜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끼쳤다고 해석들을 한다. 즉, 정치적으로 해석을 주로 하는데 저자는 그렇지 않았다. 저자는 이라크 전쟁을 경자대원정과 비교하고 있었다. 석유를 얻기 위해 미국이 과감하게 전쟁을 벌였듯이, 광개토태왕은 한반도 남부의 가야산 철 유통시장을 장악하기 위해서 과감하게 전쟁을 벌였다고 말이다. 당시 철이 국가 성장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던 것을 보면 광개토태왕이 철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대규모 원정을 감행한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단순히 철 시장의 확보만으로 이를 설명할 수 있을까 싶다. 사실 따지고 보면 철시장의 규모는 가야보다 고구려가 더 거대했다는 것이 주인장의 사견이다. 고구려의 철은 광활한 북방 유목민들에게 퍼져나갔고, 고구려의 철제무기는 중국과 큰 차이없다고 할 정도였지만 가야의 철은 왜와 낙랑군에서 주로 구입해가는 정도였다. 철 시장의 규모는 철의 공급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철의 소비규모가 어떠한지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봤을때 이미 3세기때 철기 5천을 보유했던 고구려와 3세기 가야의 수준을 비교할 수 있을까? 어쨌든, 그 전쟁에서 경제적인 요인을 유추했다는 점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네번째 테마 '시장, 전쟁을 도발하거나 억지하거나'도 괜찮았다. 이라크 전쟁이 미국의 뜻대로 되지 않은 점을 수 양제의 사례에 비교한 것은 정말 탁견이었다. 미국의 딜레마와 수 제국의 딜레마는 정말 똑같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수 제국은 멸망했고 미 제국은 점점 수렁에 빠지고 있으니 말이다. 이건 다음 테마인 '빈 라덴이 원한 것, 미 경제를 수렁으로 끌어들일 전쟁'과도 연결되는 내용이다. 전쟁이 경제적인 이유로 수행되는 것이라면, 적에게 이기기 위해서는 경제적 혼란을 가중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저자는 그것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었다. 어찌보면 전쟁의 경제적 본질을 가장 잘 설명한 부분이 바로 이 1부가 아닐까 싶다. 처음부터 강한 흡입력으로 주인장을 몰입하게 하는 책이었기 때문에 책을 중간에 놓을 수가 없었다.

그 다음으로 열두번째 '공포가 만들어낸 기이한 공생'이라는 부분도 눈여겨볼만 했다. 미 재무부 채권과 남송의 세폐를 비교한 부분인데 충분히 납득이 갈만한 내용이었다. 금에게 세폐로 건네준 막대한 재화가 결국에는 송의 경제를 지속적으로 성장시켰고, 금은 재정적으로 송에 예속되는 상황이 된다. 실제 송에서 세폐로 건너간 막대한 재화가 촉매제가 되어 그보다 훨씬 많은 송의 상품을 지불하는 대금으로 빠져나간다는 연구성과가 있다. 즉, 송에서 나간 돈의 대부분이 무역으로 인해 회수되고 그 막대한 자금이 돌고 돌면서 송의 경제를 호황으로 몰고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것처럼 송은 세폐를 감당하느라 나라가 가난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것을 지금의 미국 상황과 비교한 것이 정말 대단했다. 지금 미국의 채무가 천문학적인 수치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미국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 해당한다. 이를 통해 미국 주도의 달러체제가 완성되고 세계 각국은 그 안에서 경제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오늘날의 경제 및 전쟁의 상황을 아주 잘 설명해주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그밖에 열네번째 '사실은 거란에 농락당한 서희의 담판'과 열여섯번째 '고구려 장수왕의 몽골 개척이 식량무기 시대의 해법이다.' 역시 주인장이 개인적으로 머리를 탁 치면서 읽었던 부분이다. 우리는 흔히 서희의 외교담판을 성공적인 외교사례로 꼽지만 저자는 당시 요나라가 그보다 더 큰 이득을 취했다고 해석하고 있다. 고려에게는 단순히 강동6주라는 영토의 확보로 끝났겠지만, 요나라는 말썽을 피우던 여진을 몰아내고 고려와의 안전한 교통로를 확보했으며, 고려와 송의 거래를 끊고 약화된 송을 압박해 송 위주의 무역체제를 요나라 중심의 무역체제로 전환했다는 것이다. 이는 정말 획기적인 해석이었는데 충분히 고려해볼만한 견해였다. 저자의 번득이는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또한 장수왕의 지두우 분할계획을 단순히 영토 확보와 국제 역학관계상 우위에 서려는 움직임이 아니라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계획이었다고 해석했다. 넓은 영토뿐만 아니라 다량의 인구 및 가축을 확보하고 이들을 통해서 초원의 영역을 확장 · 유지했던 것이다. 읽는 내내 재밌다는 생각과 놀랍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이밖에도 재밌는 내용들이 상당히 많았다. 미천왕을 CEO라 부르며 이익에 밝은 고구려 귀족을 설득하여 낙랑지역을 통해 경제적 부를 축적했다고 해석했고, 철저하게 장삿속으로 일왕을 속인 신라 왕자 김태렴에 대한 얘기는 통쾌하기까지 했다. 정말 장삿꾼들은 대단하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그럼 이제는 조금 아쉬웠던 부분을 좀 살펴보자.

일곱번째, '자본은 정치를 움직이고 이권은 반란을 획책한다.'에서 안시성의 은광산을 끌어낸 것은 좋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군의 목표가 은광산이라고 본 것은 조금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경제적 이권을 놓지 않기 위한) 말갈 상인의 공작으로 설연타를 전쟁에 끌어냈다는 것 또한 조금 오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전쟁에 아무리 경제적인 면모가 강하지만 개개 전투가 모두 경제적 이권에 좌지우지하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전쟁의 목표가 경제적 목표를 갖고 있다 하여 모든 전투과정과 전략전술이 경제적인 면에만 집중하는 것처럼 분석한 것은 오류라고 생각한다. 이는 주필산전투와 안시성전투의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규명하지 않았기에 나타난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한 열여덞번째 '시장의 붕괴는 분열 왕조의 몰락을 재촉했다.'도 조금 의아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북제의 사신 최유가 고구려의 양원왕을 때려 눕혔다는 기록을 그대로 싣고 있는데, 얼핏 봐도 무리가 있는 해석이었다. 또한 이 당시 고구려가 안으로 내분을 겪으며 한강 등지의 영토를 상실하여 시장을 상실했기 때문에 몰락해갔다고 해석했는데,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너무 경제적인 관점에서만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리 힘이 약해진 고구려의 왕권이라 하여도 여러 고구려의 권신이 보는 앞에서 최유가 그 왕을 때려 눕힌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가? 그리고 무사히 돌아갔다는 것은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사료 검증없이 인용한 내용을 통해 현대그룹의 몰락을 비교한 부분은 조금 해석상 오버가 심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전쟁기획자들』이라는 제목에 걸맞지 않게 지나치게 경제적 행위에 대한 사례들을 들어가면서 논지를 전개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34개의 테마 중에서 직접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전쟁을 바라본 것은 이십여개 정도. 나머지는 오늘날의 경제적 사건 및 상황을 과거의 (비슷한) 사례를 들어 해석한 것들이었다. 물론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이렇게 소개한 것만으로도 훌륭한 자료라고 할 수 있지만 책 제목과는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자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전쟁이라는 행위는 한명 이상의 상대방끼리 다투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그 규모가 큰 것을 대개 전쟁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대개 국가 대 국가의 대립행위로 이해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일개 상인이 전쟁의 향방을 크게 바꾸어 놓는다거나 국가에 소속되지 않는 돈을 받고 일하는 용병집단이 전쟁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드시 국가적 행위라고 볼 수만은 없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갖고 존속하는 집단에 의해 주로 전쟁이 수행되며 그 안에서 경제적인 목표도 달성되는만큼 전쟁에서 정치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기존에 간과되어왔던 전쟁의 경제적 요소를 전면에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이 책이 갖는 가치는 지대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이상 과대포장된 부분은 과감히 쳐낼 필요가 있겠다. 그럼에도 주인장이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전쟁의 본질에 대해 이처럼 재밌게 풀어쓴 책이 그동안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과감히 추천하겠다.

재밌으니까 꼭 한번 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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