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대국의 비밀 - 로마 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
배은숙 지음 / 글항아리 / 2008년 11월
평점 :
품절


오늘 주인장은 상당히 재밌는 책 1권을 소개하고자 한다.

『강대국의 비밀』이라는 책인데 거기에 '로마 제국은 병사들이 만들었다'라는 소제목이 붙어 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흔치 않은 로마사 전공자가 내놓은 로마 전쟁사 관련 서적이다. 처음에는 얼핏 보고 번역서인가 싶었는데 저자가 배은숙이라는 말에 '어디서 많이 봤는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곰곰히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아! 맞다! 로마사 전공자!" 주인장이 저자를 왜 기억하냐면 저자의 논문을 이미 이 책이 나오기 전에 읽어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고구려 전쟁사를 전공하는 주인장에게 있어 로마 군제사를 정리한 각종 자료들은 좋은 비교자료로 활용되곤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로마 군제사를 전공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저자의 논문이 적지 않게 도움이 되었는데 이 책 앞장에도 소개되어 있는「로마 군단병의 봉급 변화(2003, 대구사학75)」,「로마 군단병들의 서열(2006, 대구사학82)」,「치세 초기 아우구스투스의 행정 정책(2006,계명사학17)」,「로마 군대에서 군사령관의 역할(2007,역사와경계62)」등이 바로 주인장이 참고했던 논문들이었다. 책의 목차를 주욱 보니 그간 저자가 썼던 논문들을 개설서의 형식을 빌린 연구서적으로 정리한 듯 했는데 상당히 정리가 잘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 바로 구입하였다(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 우수출판기획안 당선작품이라는 것이 이해가 갔다). 

사족은 집어치우고 이 책에 대해서 본격적으로 말해보기로 하자. 먼저 이 책의 목차를 주욱 보자.

제1부 로마 병사들의 일상생활

제1장 로마 군인이 되는 길
1. 로마 군단, 남성 시민권자의 의무
2. 신병 입소에서 자대 배치까지

제2장 살인병기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1. 악명 높은 훈련의 시작
2. 군인들을 잠깐도 가만 두지 말라
3. 상은 푸짐하게, 벌은 가혹하게

제3장 엄격한 지휘 체계
1. 지휘관과 병사들의 관계
2. 계급을 둘러싼 경쟁

제4장 상상을 뛰어넘는 복무 기간
1. 양성되는 노련한 군인들
2. 로마에서 군인으로 산다는 것

제2부 돈의 유혹

제1장 쥐꼬리만 한 수입
1. 일 년에 세 번 지급되는 최저 생계비
2. 100년에 고작 한 번씩 인상
3. 병사들은 어디에 돈을 썼을까?

제2장 특별 수당의 법칙
1. 전리품, 승자의 몫
2. 예기치 않은 보너스

제3장 제대 군인들의 생존법
1. 군인에서 농부로
2. 보잘것없는 제대상여금

제3부 변하라, 단 강점은 지켜라

제1장 약하면 적에게 배워라
1. 선진 전술 도입
2. 기동성 보완과 중대 편제로의 개편

제2장 세계 제국을 향하여
1. 신병 확보와 마리우스의 개혁
2. 강력하게 재정비된 로마군

제3장 강점을 버린 로마군
1. 마지막 개선의 몸부림
2. 로마군의 말로

부록
로마군이 수행한 전투의 승패 요인 분석

용어설명
미주
참고문헌
찾아보기

로마 군대에 대한 거의 모든 내용을 총망라하고 있다. 책 뒷편의 참고문헌 목록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국내에 로마 전쟁사 혹은 로마사 전공자가 거의 없다보니 저자가 참고한 문헌은 거의 영미권 연구성과들이 대부분이다. 즉, 그만큼 우리에게 생소한 자료들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거기다가 국내에서 연구하기도 힘든 전쟁사라는 분야를 다양한 고고자료 및 각종 금석문과 문헌사료를 통해서 상당히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었다. 로마 군인의 일상적인 생활(훈련과 교육, 전투, 잡역 등등)은 물론이요, 군대 징집에서부터 전투 수행, 전후 포상, 퇴역 이후의 삶까지 로마 군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내용들을 자세하게 정리하고 있었다. 특히나 로마 전쟁사 혹은 로마 군대에 대해 서술할때 지휘관이나 귀족계급이 아닌 일반 사병들의 삶을 통해 당시 시대상을 복원하려 했다는 점이 특히 주목되는 부분이 아닐까 싶다. 주인장이 가장 부러워하고 가장 대단하다고 여기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고구려 전쟁사를 복원할때 이 부분을 복원할만한 자료가 극히 적기 때문이다.

얼마전 주인장이 소개한 책이 하나 있다. 기억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김성남의『전쟁 세계사-지금의 세계지도와 역사를 결정한 59가지 전쟁 이야기』(2008, 뜨인돌출판사)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서도 주인장은 일반 병사들의 삶을 통하여 당시 군대와 전쟁을 생생하게 복원했던 점을 높이 평가한 바 있다. 지금까지의 전쟁사 혹은 군사사 연구에서 정작 당사자인 병사들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이 없었기에 이런 점들을 주인장은 높이 평가하는 바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렇게 로마 군대에 대해 파격적인(감히 그렇다고 말할 수 있겠다) 연구성과가 나왔으니 어찌 기쁘지 않으랴. 이 연구성과는 추후 로마 전쟁사 혹은 군사사 연구에 始原적인 존재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주인장이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주의깊게 본 부분은 로마 군대의 형성 과정이었다. 어떤 형태로 징집되어 어떤 식으로 자대를 배치받고, 무슨 훈련을 얼마동안의 기간에 걸쳐 수행하며, 하루 일과가 어떠하고 전투를 실제 어떻게 수행했는지 등등의 내용이 바로 그러했다. 특히 하루 일과 및 평시 군인들의 삶에 대해 서술한 부분이 재밌었는데(pp.45-102) 이러한 세세한 내용까지 복원 가능하다는 것이 정말 한없이 부럽기까지 하였다.  고구려의 경우, 현재 한반도 북부에서부터 임진강 일원까지 보루(堡壘)라고 불리는 소형 군사요새가 수십여 곳 확인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보루에서 출토되는 각종 무기류 및 토기류, 유구를 통하여 당시 주둔병력에 대한 해석이 어느 정도 가능해졌다. 하지만 이에 대한 문헌자료가 전무하며 금석문 또한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생활했던 병사들의 세세한 생활상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로마군의 이런 세세한 생활사적인 면의 복원은 주인장에게 정말 많은 도움이 되는 것들이었다. 

파일:Etruscan civilization map.png저자는 로마 병사들의 세세한 삶(돈과 관련된 부분을 집중적으로 다룬 점이 특히 독특했다. 안 그래도 서영교의『전쟁 기획자들』(2008, 글항아리)이라는 책을 보면서 경제와 전쟁의 상호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 책 역시 경제와 전쟁의 상호관계에 대해 비중있게 다루고 있었던 것이다)을 언급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로마 군대 전체에 대한 고찰도 시도하고 있다. 로마군이 어떻게 이탈리아를 통일하고 이어 지중해를 장악하고 전 유럽과 아프리카, 중앙아시아까지 진출할 수 있었는지 말이다. 그리고 과감히 단정짓는다. 로마는 항상 타인의 강점을 배워 로마化하는데 능통했다고 말이다. 마치 북방 유목민들이 중국의 문물과 이기를 받아들여 오호십육국 시대동안 화북 지역을 점거했던 것처럼 로마는 그들의 강한 적들로부터 강점을 받아들여 거꾸로 그들을 정복하는데 성공했던 것이다. 저자는 가장 대표적인 강적으로 에트루리아를 꼽았다. 저자는 자신있게 말한다. 로마가 에트루리아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으며, 만약 로마가 건국할 당시 주변에 강대국이 없었고, 주변에 다른 나라가 세워질 때 로마가 최강국이었다면 적으로부터 배우려는 포용적인 자세를 갖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이다(p.272). 주인장 역시 이에 적극 동조하는 바이다.

저자가 로마의 몰락을 로마군의 약화에서 찾는 것은 당연하며, 그에 따라 로마의 요새 공격술이 쇠퇴되었다고 평가하는 것 또한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1~2세기에 절정에 달했던 로마의 요새 공격술은 3세기에 이르게 되면 점차 쇠퇴하는데, 이 시기가 되면 로마군은 적의 요새를 공격하기보다는 아군의 요새를 방어하기 급급해진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과거에는 수천 명의 군인이 출입하기에 용이하도록 개방된 지역에, 여러 개의 출입문을 가진 영구 주둔지를 건설하고 그 안에 군단 본부를 포함한 행정시설, 무기와 식량 저장소, 무기공장, 광장, 병원 등 많은 부대시설이 위치했었다. 하지만 3세기 말 이후 적은 수의 군인이 지키는 요새는 과거에 비해 훨씬 작아졌다고 한다. 사방이 잘 보이는 높은 지대에 지었고, 그만큼 성벽도 더 두꺼워졌고 요새 전체를 둘러가며 망루를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도랑을 파서 적이 쉽게 건널 수 없도록 했으며, 출입문은 하나만 개방하여 이제 로마군은 적을 공격하기보다는 요새 안에서 적을 막는 일에만 매진했다고 한다. 특히 로마 동부는 페르시아 덕분에 요새 공격술이 꾸준히 사용되어 크게 쇠퇴하지 않았지만 서부의 경우, 게르만족과 오랜 기간 대치하다보니 요새 공격술은 점차 쇠퇴했다고도 말한다. 이 부분은 그간 생각치 못 했던 부분이라 일견 수긍이 갔다. 그러면서 계속 저자는 동부와 서부의 차이를 언급한다. 강한 적을 맞아 싸우는 동부에 비해 그렇지 못한 서부는 점차 안일한 태도를 보였고, 결국 약자였던 게르만족에게 제국이 멸망당한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오도아케르가 서로마의 마지막 황제 로물루스를 폐위시킨 것은 그저 상징적인 사건일뿐, 이미 서로마의 멸망은 예견된 것이라고 저자는 서슴없이 말한다. 영원한 약자도, 영원한 강자도 없다는 저자의 마무리 멘트 역시 주인장에게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해 줬다.

또한 이 책에서 정말 白眉로 꼽고자 하는 부분이 바로 부록으로 실린 '로마군이 수행한 전투의 승패 요인 분석'이라는 부분이다. 리비우스의『로마시 건국에서부터』라는 글을 비롯해 폴리비우스, 카이사르, 플루타르코스, 요세푸스, 타키투스, 조시무스, 프로코피우스의 자료들을 인용하여 로마와 관련된 전쟁사 기록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점이 돋보였다. 그러면서 단순히 시기순으로 각 전투기사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이를 'Ⅰ. 국가 존립을 위한 노력  Ⅱ. 이탈리아를 장악하다  Ⅲ. 지중해를 호수 삼아  Ⅳ. 세계 제국에 깃든 평화  Ⅴ. 팽창을 위한 힘겨운 노력  Ⅵ. 내우외환, 로마제국의 말로'의 6개 큰 장으로 나눠 역사적인 의의를 두어 서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점 또한 눈여겨볼만 하다. 아마 이 부분은 기존의 로마 전쟁사 관련된 책에서 쉽게 찾아보기 힘들었던 부분일텐데 굉장히 신선한 자료가 아닐까 싶었다. 주인장 역시 예전에 필리피 전투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었으나 자료를 찾지 못 하다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그나마 관련 자료를 좀 더 얻었던만큼 로마 전쟁사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이 책이 주는 정보 획득의 이로움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 같다.

새해에는 좋은 책을 많이 읽자는 다짐을 하고 또 하였는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기분좋게 한 해를 출발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변에 전쟁사 혹은 로마사에 관심이 많은 분들이 적지 않게 있는 것으로 아는데, 한번쯤 이 책을 꼭 읽어보기를 권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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