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진의 만화 미국사 다른만화 시리즈 1
마이크 코노패키 외 지음, 송민경 옮김 / 다른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흥미로운 만화책이 1권 나왔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미국이라는 帝國의 이면을 파헤치고 있다. 

아! 잠깐. 만화책이라고 해서 어린이들이 보는 아동도서를 생각해서는 안 된다.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를 만화의 형식을 빌어서 표현할 뿐이지,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은 왠만한 역사책에서 보지 못 했던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화책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이 책을 오해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다. 

그럼 먼저 표지부터 살펴보자. 

미국인이 철도, 교육, 종교, 다리, 철강을 비롯한 기타 각종 물자들을 한가득 짊어지고 두 팔 벌리며 환호하는 중국인을 향해가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중국에는 다리와 영어, 자동차, 도로 등이 필요하다는 표지판이 잔뜩 붙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미국인의 왼쪽 발이 필리핀이라고 적힌 땅을 밟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표지 하나만으로도 이 책에서 앞으로 다룰 내용들이 어떤 것인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필리핀을 미국이 식민지로 만든 이유가 바로 미국의 중국 진출을 위한 발판이 마련되기 위해서라는 것을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저자는 얘기한다. 미국의 필리핀 지배는 이후 미국의 식민지 지배에 있어 하나의 모델이 되었다고 말이다. 공화국이 아닌 제국의 탄생에 있어 필리핀이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인지하며 주인장은 책장을 하나하나 넘겼다. 

목차를 한번 살펴보자. 

서문
들어가는 말

01. 국내의 제국
02. 스페인·미국 전쟁
03. 필리핀 침공
04. 전쟁은 국가의 건강한 상태이다
05. 계급의식의 성장
06. 제2차 세계대전은 국민의 전쟁?
07. 냉전
08. 제국의 아이들
09. 아이들이 분신하는 나라
10. 부패한 제국
11. 제국의 부활
12. 은밀한 행동과 그 저항

마무리 말_ 희망의 가능성

목차를 보면 알겠지만 이 책에는 미국이 제국으로 성장해가는 과정을 낱낱히 그려내고 있다. 스페인과의 전쟁부터 시작해서 필리핀을 침공하고 그 과정에서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고, 냉전까지 치뤄낸 미국이 얼마나 부패했는지 말이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경제적 위기, 사회적인 문제점들이 이때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주인장은 그동안 미국의 제국주의적인 모습하면 인디언을 몰아낸 일, 흑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주의가 심했다는 일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이 안에는 악덕자본가(록펠러같이 성공한 기업가들조차)들과 기업가들, 여러 정치인들의 추악한 행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인장이 놀랐던 것은, 이런 내용들을 예전에도 보고 배워왔다는 사실이다. 단, 주인장은 이런 내용의 주인공으로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등을 떠올렸지, 미국을 떠올린 적은 한번도 없었다. 괜히 美國이겠는가. 

대영제국,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영국. 전세계에 식민지를 두고 제국으로서의 위상을 한껏 뽐냈던 나라 영국. 그런 영국의 역사를 배울때 제국주의가 어떻고, 그 나라 백성들이 어떻고, 식민지배를 어떻게 했고...등등을 배워왔었다. 아마 지금도 학교에서는 그렇게 가르치고 학생들은 그렇게 배우고 있을 것이다. 중세 유럽의 최강대국이자 나폴레옹 시절 전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 대항해시대를 열고 전세계의 바다를 지배했던 스페인,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며 제국주의의 극단을 보여줬던 독일, 대한제국을 강제 합병하고 동아시아에서 자신들만의 파쇼체제를 강화했던 일본 등 우리는 세계사를 공부할때 그들에 대해 배우면서 그들을 비판하기도 하고, 때론 그들에게서 장점을 배우고자 노력하기도 한다. 얼마전 대국굴기라는 방송이 나가고 그와 관련된 책이 발간되어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방송 분량 중 영국과 미국만이 2회분씩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있게 다뤘는데, 거기에서도 미국은 위선의 탈을 쓰고 제국주의를 표방했다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묘사되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우리는 왜 미국은 세계경찰로서 국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로 알고 있고, 지나간 세기의 제국들에 대해서만 기억하는 것일까?

미국도 똑같았다. 제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다른 제국들처럼 똑같이 행동했고, 똑같은 수순을 밟았다. 가장 최근의 이라크 전쟁과 9.11 테러 및 탈레반 소탕작전 등등 전세계 국방비와 맞먹는 국방예산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아직까지도 제국의 영광을 위해 한발한발 다가서고 있는 셈이다. 그 과정에서 미국내 국민들은 미국이라는 제국의 희생양으로 팔려나갔으며, 인디언과 흑인, 식민지 내 국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책을 읽는 내내 주인장은 몰랐던 부분들에 대해 알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단순한 하나의 사건으로 생각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미국의 제국주의를 지향하는 하나의 발판이었음을 알게 되었고, 미국 내 기업들이 정치와 어떻게 유착하여 성장해왔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아마~그럴 것이다.' 정도로만 알고 있던 사실들을 확실하게 인지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생각이 크게 바뀌기도 하였다. 주인장은 상당히 보수적인 사람이며 극우파까지는 아니지만 우파 성향이 강하다. 그렇기에 제국주의에 대해 종종 긍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제국주의를 지향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말이다. 하지만 미국과 같은 추악한 역사를 지녀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도 한편으로는 갖게 된다. '아름다운 나라' 美國이 아닌 '아름답지 않은 나라' 未國의 역사를 보면서 그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만화는 시종일관 하워드 진의 강의 내용을 만화로 옮겨놓은 듯한 분위기를 연상케 한다. 중간중간 실제 강의에서나 나올 수 있는 위트가 더욱 흥미롭다. 책의 말미에서 하워드 진은 한 기자와의 인터뷰(만화상의 내용)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의 희망은 지금 보이는 세계의 모습 때문에 우리가 너무 좌절하지 않는 데에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쟁 중이고, 전쟁이 끝나면 또 다른 전쟁을 하고 우리 정부는 비록 수십 만 명의 사람이 죽더라도 이 제국을 계속 확장하려고 하기 때문에 우리는 좌절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이 좌절해서는 안 될 이유가 있습니다. 50년 전 남부의 인종차별은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만큼이나 굳건하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또한 베트남전 당시 우리의 젊은이들이 죽거나 몸이 마비된 채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또 우리 정부가 베트남의 마을을 폭격하고 있을 때 전쟁은 도저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는 것을 기억하세요. 남부에서 일어났던 인권운동처럼 사람들이 전쟁에 항의하기 시작하자 곧 커다란 저항의 불이 붙었습니다. 전국적인 운동이 되었단 말입니다. 군인들이 돌아와 전쟁을 규탄했고 젊은이들은 군대에 가는 것을 거부했습니다. 전쟁은 끝이 나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보통 지금 이 순간의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 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 제도의 갑작스런 붕괴에 놀랐던 기억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고 독재자에 대해 예상치 못 했던 큰 저항이 일어나고 무적의 권력이 순식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았으면서도 이 사실을 쉽게 잊어버립니다. 어려울 때에 희망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낭만주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역사가 잔인함의 역사만이 아니라 열정과 희생, 용기와 관용의 역사라는 사실을 믿는 태도입니다. 만약 우리가 언제 어디에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잊지 않는다면 그리고 사람들이 훌륭하게 처신해온 경우가 아주 많았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행동할 힘을 얻을 것입니다. 희망은 변화를 위한 에너지입니다. 미래는 현재의 무한한 연속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최악의 상황과 싸우면서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 자체로서 놀라운 승리인 것입니다."

맞는 말이다. 그렇기에 역사를 알고 배우는 것은 중요하며, 우리가 스스로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길로 나아가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또 하나의 제국주의 국가의 역사를 보고 배우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그런 면에서 미국인임에도 스스로 미국의 추악한 이면을 당당히 그려낸 하워드 진의 용기와 의지에 존경의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http://howardzinn.org/default/

위 주소는 하워드 진의 개인 홈페이지라고 한다. 그가 남긴 저술활동과 언론활동 등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이 담겨 있어 유익하다고 생각된다. '제국'이라는 것에 대해 단순히 생각해오던 주인장에게 깊은 영감을 준 저자에게 다시 한번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만 글을 마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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