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 : 사라져버린 세계의 흔적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0
이베트 게라르 발리 지음 / 시공사 / 1995년 4월
평점 :
품절


오랜만에 시공 디스커버리를 꺼내 들었다. (필자의 게으름이 갈수록 커가는 듯. T.T) 이 책은 지난번에 읽었던 9권『공룡, 그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내용상 겹치는 부분이 꽤 있었다. 그럼에도 별 5개를 준 이유(지난번에는 별 4개)는 그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그만큼 더 풍부하기 때문이다. 미리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지난번 책에서는 공룡이라는 주제에 대해서만 다루고, 그 수준 또한 개략적인 내용들이 많았던 것에 비해 이번 책에서는 '고생물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관련 내용들을 하나하나 다루고 있었으며, 내용 또한 상세했기 때문에 지난번보다 나았다는 생각이 들었다(실제로 책의 분량도 지난번 책에 비해 30여쪽이 더 많기도 했다).

책 표지를 펼치면 아주 흥미로운 내용부터 시작한다. 우리는 동토에서 통째로 얼어붙은 매머드에 대한 이야기를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마치 살아서 튀어나올 것만 같은 그런 매머드를 말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그 매머드가 발견되어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알려주고 있었다(사실 이 내용은 필자도 처음 본 것이었다). 당시 매머드가 발견된 곳은 시베리아, 베레조프카 강변이었으며 그것을 발견한 라무트족 사냥꾼은 이르쿠츠크 총독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때는 1900년 8월. 이듬해 5월 과학 아카데미가 파견한 과학자들은 1만 6,000루블의 조사비를 들고 해당 조사지역까지 장장 6,000㎞를 이동했고, 9월 2일 비로소 매머드와 조우할 수 있었다(우와...정말 넓은 땅!). 9월 14일, 낙엽송 사이로 매머드 사체가 보였으며, 꽁꽁 얼어붙은 땅에서 매머드를 떠(?) 가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래서 결국 과학자들은 주변의 얼음을 녹이기로 결정했고, 매머드 위로 통나무집을 지었다(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 참 대단했다). 얼음은 잘 녹았겠지만, 문제는 꽁꽁 얼어있던 매머드마저도 녹아버려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문제가 생겼다(당연한 결과겠지만...당시 어쩔 수 없었으니). 이후 6주에 걸쳐 과학자들은 매머드 사체를 해체했고, 10월 10일 드디어 그 각각의 덩어리들을 가죽 포대에 집어넣고 이동할 준비를 끝마쳤다. 단 하루만에 가죽 포대는 꽁꽁 얼었고, 10월 15일 빙원 위에는 1톤이 넘는 매머드의 조각난 사체를 운반하는 행렬이 장관을 이루었다.

순간 외찌가 떠올랐다. 외찌 역시 발견 직후 매우 거칠게 다뤄져 애초의 양호한 상태에 손상이 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클릭). 그런데 지금 매머드에 대한 일화를 보니 이건 뭐 더 심한 훼손이 이뤄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튼, 책장을 열어 한 4~5페이지를 읽었을 뿐인데, 상당히 흡입력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필자가 잘 몰랐던 내용이기도 했고, 필자가 전공하는 고고학과 맞물려 당시 학문 수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여운을 남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본격적으로 책의 본문을 살펴봤다.

제1장은 <신화와 전설>이다. 암모나이트부터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 없어 거인의 것이라 추정되온 거대한 뼈(대부분 공룡과 매머드와 같은 이미 멸종된 대형동물들의 뼈), 용과 악령, 유니콘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왔다. 저자는 이 부분에서 이런 말을 남긴다.

   
  사람들은 지금까지 발견된 여러 종류의 화석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내려왔다. 이러한 해석들이 현대인의 눈에는 황당무계한 것으로 비칠지도 모르며, 어처구니없어 보인다 할지라도, 이해할 수 없는 자연현상을 설명하려 노력한 것이라는 사실만은 인정해야 한다. 지식이 부족해서 화석의 비밀을 밝히지는 못했지만, 마침내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와 그 역사 속에서 화석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선학의 연구성과를 중요시 여기는 것이다. 한때 필자가 이미 출간된지 오래된 학회지(20년 된 것도 있고, 더러 10년 이상 된 것도 있었다)를 모으고, 읽는 것에 대해 한 선배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이미 지나간 과거의 연구성과는 의미가 없다. 새로운 학문적 성과가 계속 나오는데 요즘 것도 아닌 그것들을 왜 보냐?' 아니, 이게 무슨 말이란 말인가? 그럼 연구史는 왜 필요하며, 우리가 지금 연구하는 분야의 토대는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후학들이 無에서 有를 창출하고 있는 것인가? 저자는 예로부터 인류가 끊임없이 자신들을 둘러싼 알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것이 오늘날 고생물학의 탄생과 발전을 가져왔다고 보고 있었다. 필자 역시 그에 동의했음은 물론이고.

르네상스 시절, 사람들은 그 알 수 없는 자연현상에 대해 이런저런 얼토당토않는 말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든가, 베르나르 팔리시와 같은 몇몇 선구자적인 인물들은 합리적인 접근법을 통해 화석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밖에 파비오 콜로나라든가, 닐스 스텐센과 같은 학자가 조개껍질 및 물고기 화석을 현재 생물과 비교해 그 정체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특히 스텐센은 '지층은 아래쪽에 있는 것일수록 역사가 오래된 것이다'라는 지질학의 기본원리를 기술하여, 화석을 발견장소에 따라 연대순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침내 화석의 역사를 아는 데에 있어 지질학이 빠질 수 없는 필수학문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의 활동은 학자들 사이에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과학적 발견과 신학적 신조를 양립시킬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런 식으로 몇몇 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화석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자 사람들은 점점 새로운 궁금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현재 유럽에서 자취를 감춘 동물들은 그럼 과연 어디로 갔을까? 사람들은 바다 밑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홍수로 인해 모든 동물이 싹 다 멸종해버렸다는 이야기들도 나왔다. 19세기의 천변지이설(天變地異說)이라든가, 지구의 기후변화설, 인위적인 종의 절멸설 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당시 사람들은『성경』에 기반한 역사를 연구했기 때문에 천지창조는 B.C 4004년에 일어났다는 얘기가 나오거나, 천치창조가 발생하고 대홍수가 나기까지 1600년이 경과했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을 믿었었다. 이는 지금이야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나게 혁신적인 생각이었다(현대인 중에서도 1600년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런 와중에 지구의 나이가 7만 5천살이며, 아담과 이브가 태어난 것은 6,000~8,000년 전이라는 정말 대담한(?) 이야기를 하는 뷔퐁 같은 사람도 있긴 있었다. 그리고 카를 폰 린네가 屬과 種의 개념을 확립해서 수만 개에 달하는 동식물의 이름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 점차 지질학, 생물학이라는 학문이 체계적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이다. 화석에 대한 연구 역시 점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제3장 <과학자의 시대>가 되면 주인공으로 퀴비에가 등장한다. 그는 '대이변설'과 '종의 불변설'로 지구와 생물의 역사를 설명했다. 그는 '미지의 동물 사체가 많이 발견되고 있는데 어째서 현존하는 동물 사체는 전혀 발견되지 않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지구에 어떠한 혁명(Revolution)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며, 그로 인하여 과거의 동물이 멸종되어 현존하는 동물에게 자리를 내주었기 때문이다.'라고 보았다. 이는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기도 했는데,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 구체제를 완전히 뒤엎었던 것처럼 대이변이 일어나 오랫동안 존속되어 온 동물세계를 파괴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물론 그러한 대이변이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퀴비에도 답변을 못 했다. 그리고 당시에 생물이 진화한다는 식의 생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고). 퀴비에는 나폴레옹이 프랑스 원정때 약탈해온 따오기 미라를 보고 5,000년 전의 유해와 현존하는 동종의 동물 사이에 다른 점이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5,000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종은 변하지 않는다고 봐야 옳았다. 하지만 그런 퀴비에에 반대하는 생각이 나타났다. 바로 라마르크가 '생물변천설'을 주장했던 것이다. 그리고 라마르크의 생각은 이후 지질학자 찰스 라이엘에게 이어졌다. 물론 도르비니처럼 퀴비에의 '종의 불변설'에 경도된 학자도 있었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학계는 크게 두가지 주장이 대립되고 있었다. 하지만 다윈이 등장하면서 학계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했다. 진화론이 학계에 혜성처럼 등장했던 것이다.

그렇게 책은 제4장 <선사시대의 제왕>으로 넘어가는데, 이 부분의 내용이 앞의 9권과 비슷한 면이 많았다. 이구아나돈에 대한 잘못된 사람들의 생각, 공룡 화석을 발굴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활동하는 발굴단 등등. 그렇게 책은 마무리된다. 그런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모든 시공 디스커버리 책은 맨 뒷부분에 '기록과 증언'이라고 하여 앞의 올칼라 본문과 달리 부록식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모아놓은 장을 따로 마련해 두는데, 이 책에서는 그 부분이 白眉라고 불러도 좋을만큼 내용이 괜찮고 유익하다.

먼저 성군 루이와 레바논 화석이라는 것은 이 책에서 처음 봤는데, 십자군원정때 이미 유럽에 알려진 물고기 화석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미 상당히 오래전부터 이런 화석들이 유럽에서 유통(?)되고, 음성적으로나마 소문이 들렸다는 생각을 하니 흥미로웠다. 그밖에 당대 천재라고 불렸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지층 및 화석에 대한 생각을 소개한 것도 재밌었다. 그 중 한 대목을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 내용은「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고(手稿)」의 일부분이다.

   
  조개껍질이 토양의 성질이나 하늘의 섭리로 만들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의 머릿속에 조금이라도 이성이 존재한다면 그런 생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 조개껍질에는 성장의 흔적을 나타내는 선이 새겨져 있지 않은가. 또한 크든 작든 간에 조개들은 먹이를 먹어야만 성장이 가능하다. 그리고 먹이를 찾기 위해서는 이동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땅 속에서 이동을 한단 말인가.

조개껍질이 옛날부터 그곳에 있었다고, 그리고 바다로부터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토양과 계절의 장난 때문에 생겨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여! 나는 당신들한테 이렇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그런 힘이 작용한 것이라면 발견된 생물의 종류와 나이가 같아야 할 것이다. 종류와 나이가 각기 다른 다양한 생물들이 같은 장소에서 발견될 수 있는가. … 그리고 그것이 토양의 힘 때문이라면 '화살' 또는 '뱀의 혀'라고 불리는 물고기들의 이빨과 뼈가 그 곳에 섞여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바다생물이 해변으로 밀려온 게 아니라면, 그만큼 다양한 동물의 유해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산에서 발견된 조개껍질이 별의 작용으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여! 당신들은 별의 어떠한 작용이 이토록 다양한 종류의 조개껍질을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인가.
 
   


재밌다. ^^ 뭔가 요즘에도 다 빈치의 이러한 일갈(!)은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다(아마 필자랑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듯 싶다).

그리고 이 책에서 재밌는 점은 이 책의 저자인 이베트 게라르 발리가 자신이 썼던 다른 책이나 논문들(지질학 혹은 고생물학, 고고학 관련 서적들)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해 실었다는 점이다. 대개 이 부분에는 옛날 학자들의 고전이라든가, 옛날 이야기, 소설 등이 주로 실리는데(본문의 객관적인 사실을 방증해 줄 수 있는 보충자료의 성격이랄까?), 저자 본인의 저술을 그대로 원용하는 것이 독특했다(물론 앞의 그러한 내용들도 같이 포함되어 있긴 하다). 그리고 그것은 그만큼 이 책의 학문적 수준을 높여주는 효과를 나타냈고, 지식 습득이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유용하게 작용했다고 본다.

특히 책 후반부에 수록된 <화석화의 과정>, <고생물학의 역할>, <돌에 남겨진 발자국>, <석탄숲>, <오모 계곡, 300만 년의 전시장>, <현대적인 화석발굴단>, <산업발전에 공헌하고 있는 화석들>, <미고생물학의 놀라운 세계>, <고생물학자의 임무와 기술> 등의 소챕터들은 상당히 유용했다(35쪽 가량의 분량인데 이는 전체 책의 무려 17%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고고학과 어떻게 보면 밀접한 연관이 있겠지만, 분명 자연과학적인 방법론이 더 많이 동원되는 학문이 바로 고생물학일 것이다. 특히 현장에서야 비슷한 면이 많겠지만, 연구실에서의 작업은 많이 다른 것이 사실이고. 고생물학에 대한 어려운 개설서보다는 이 책 한권으로 간단한 흥미를 유발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공 디스커버리 편집부에서 일부러 9권과 10권을 이렇게 나란히 출간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잘 짜여진 조합이라는 생각도 든다. 암튼,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이 있듯이 작은 책자라고 무시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을 절로 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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