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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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성장일까

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arte(아르테), 2017.


  『크루얼티』에서 보여주듯 국가를 위한 직업군의 삶은 위험이 가득하다. 액션과 스릴이 가득한 첩보 스타일의 이야기는 무수히 반복되어 왔고 이야기의 구조도 줄거리도 결국은 유사하기 그지없는데 지속적으로 양상된다. 이번에는 열일곱 고등학생, 그웬돌린이 외교관 아버지의 납치범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화되기로 했다는데 ‘영화관’이 좋아할 이야기구나 싶었다. 어떤 형태로든 CIA 비밀요원이란 흥미진진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웬돌린은 CIA요원이 아닌 열일곱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당하는 여학생일 뿐이다. 그 어떤 비밀훈련을 받은 적 없는 그웬돌린이 파리, 베를린, 프라하를 넘나들며 사라진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수많은 범죄자들과 맞닥뜨리는 일과 같다. 그 일을 겪으며, 아니 아버지를 찾기 위해 범죄조직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그웬돌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새삼 다른 의문이 들었다.

  우와, 그웬돌린, 정말 멋져!

  이런 반응은 들지 않았다. 액션 스릴러 소설에서 여성 캐릭터의 정점을 밀레니엄의 마라가 가지고 있기에 그웬돌린의 매력이 비교되었을 수도 있고 작가의 그웬돌린의 창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바비’와 ‘공주’로 국한되는 여성성에 반발해서 그웬돌린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여성성의 제거가 곧 남성성의 극대화인가, 바비 공주 캐릭터도 여전사 캐릭터도 지나치게 안이하고 소비주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찌감치 사라진 부모를 찾아가는 여정은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가 보여주었다. 그 시절의 어린 소년이 엄마를 찾아가던 여정과 최근의 소녀가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섭게 변화되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상황에서 그웬돌린은 더욱 더 무장해야 한다. 짧은 순간에 그웬돌린은 범죄와 폭력을 주요업무로 삼는 이들을 제압한다. 짧은 순간의 수련으로 오래도록 폭력을 쉬이 사용하던 남자들에게 신체적인 열세 없이 맞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판타지가 아니라 오버다. 그웬돌린의 강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악랄하다고 해야 할 범죄조직들, 인신매매단의 보스부터 말단 조직원의 숙련된 전문성은 사라져버린다. 

  그웬돌린의 목표는 당연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아버지를 찾는데 다른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웬돌린은 아버지가 표면적으로는 외교관이었지만 CIA 비밀요원이라는 점을 알고서 아버지를 절대 선의 위치에 놓는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납치한 일당들은 모두 가 ‘나쁜’ 사람이 된다. 이 전제는 나쁜 사람들은 모두 ‘죽여도 된다’라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물론, 그웬돌린이 만나게 되는 일당들은 마약거래, 인신매매, 무기 밀매를 일삼는 확실히 악한 이들이긴 하다. 범죄조직의 잔혹성에 맞추어 그웬돌린 또한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잔혹해진다. 더 악한 일들을 처단하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하고 더 큰 잔혹성으로 그들을 제압하는 열여덟이 된 그웬돌린의 활약상은, 통쾌하다기보다 씁쓸해진다. 이건 성장일까.

   

“생각해보면, 이 애들이 너무 어리다는 생각도 들거든. 어쩌면 저 빨간 머리는 페테르부르크에 계속 살면서 학교 선생님이나 뭐 그러게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저 애를 창녀로만든 거잖아.“ 에밀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 앞으로 펼쳐진 길을 쳐다보았다. 생각에 잠긴 철학자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거야.“


  5개 국어를 하는 그웬돌린 역시도 통역가가 되었을 지도 모르고 왕따로 기억되는 학교에서 만난 테렌스와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다. 세상이 그웬돌린을 잔혹한 여전사로 만들어 버리다니. 그럼에도 그 모습을 보고 열광하고 있다니. 나도, 생각을 아예 안해야 마음이 편해지려나.

  

“그럴 리가 없어요. 클라디보는 괴물이잖아요, 아빠. 클라디보는 인신매매범이에요, 여자들, 어린 소녀들을…….”

하지만 아빠도 이미 알고 있겠지, 직접 겪어보았을 테니까.

“맞아, 하지만 CIA는 상관하지 않지.”

“하지만 클라디보가 CIA 요원이라면 어째서 아빠를 인질로 잡고 있었던 거예요?”

“돈 때문이야, 그웬. 언제나 돈 때문이지. 온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야. 클라디보의 보스였던 조릭은 거액의 계좌를 남기고 죽었어. 클라디보와 다른 CIA요원이 그 돈을 가로채려고 했는데 내가 그 사실을 알아낸 거야.”


정의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야. 오늘 밤에 네가 한 일이 바로 정의야. 정의의 얼굴은 추하고 비열하거든.


   세상은 가치와 신념보다 ‘돈’이 우선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가장 잘 경험하고 느끼게 된다. ‘온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라는 이 씁쓸한 말, 모든 범죄의 이유는 돈이고  CIA 요원이라면 악인이 아닐 거라는 이 믿음이 깨지는 일 또한 잔인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으며 달려왔던 그웬돌린의 아버지는, 믿을 수 있는 CIA 요원인 걸까. 미심쩍어하면서도 그웬돌린에게 처음부터 믿고 의지하는 이들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결단을 해야 했던 그웬돌린의 활약의 정점은 인신매매로 잡혀 있던 소녀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려는 생각일 것이다. 그웬돌린의 목표는 오로지 아버지를 찾는 것이었으니, 아버지를 찾고 난 후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달려간 그웬돌린은 이제 이전의 그웬돌린으로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다. 범죄의 잔혹성을 몸소 체험하게 되면 그 세계를 잊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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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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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참 불쌍타의 시절을 지나


완전한 번역에서 완전한 언어로, 정영목, 문학동네, 2018.


  그러고 보니 영미소설의 대다수, 수많은 작가의 책을 정영목 작가의 번역으로 읽었다.   저자는 27년간 200여 권을 번역했다고 하니 놀랍고도 가늠되지 않는다. 이 책은 어떤 작가보다도 기억에 남는 번역가 정영목의 번역의 방법과 번역에 대한 생각이 녹아 있다. 독자들이 말하는 ‘번역투’ 문장에 대한 생각, 번역의 역할과 번역가로서의 자세, 번역과 글쓰기 등에 관한 저자의 고민과 생각 등은 번역 작가들 덕분에 여러 나라의 저작을 편하게 읽어왔으면서도 쉽게 ‘아, 번역투’라고 하던, 책이 흥미롭지 않거나 이해되지 않으면 쉬이 ‘번역탓’으로 돌리던 것을 쑥스럽게 한다.

  레미제라블이 처음 번역되었을 때, “너 참 불쌍타”라고 번역되었다고 김영하 작가의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이윤기 작가의 신화관련 책에서 도대체 사전에도 등재되지 않고 영어 원문을 기재하지도 않은 ‘육준강대의’의 정확한 뜻을 찾아 원서찾기 전쟁을 벌였던 일이 생각난다.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은 가장 머리를 아프게 했던 번역서였고 배수아 작가가 독일에서 유학하고 로베르트 발저, 페르난두 페소아와 같은 작가들이 국내에 소개·번역되었다는 글을 본 기억이 난다.

  작가의 맛, 느낌을 알고 싶어 원문을 애타게 읽어보고자 했던 적도 있고 영미권이 아니라 동구권, 아랍권, 제3세계 작가들의 작품에 끌리는데 번역되어 있지 않아 읽지 못하고 있을 때의 기분은 답답함을 넘어선다. 그나마 영어로 번역된 것을 재번역하여 나온다면 환호하게 되는데 여러 면에서 우리나라 번역의 세계는 가야할 길이 멀고 고달프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이 제대로 번역되지 않아 세계에 알릴 기회가 적다는 것, 또한 노벨상 후보로서의 위상을 얻는 일이 힘들다는 것,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의 오역 논란 등이 지속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마냥 안타깝기 그지없다.


서류 양식의 번역이라면 모르지만 소설의 번역은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배우처럼 불가분의 육체성이 번역에 붙어다니는 것은 아니지만 언어를 교환하고 이해하는 영역에서는 인간만의 고유한 영역이 개입하거든요. 아닌 척하고 싶지만, 투명한 체하고 싶지만, 번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 번역가의 무엇인가가 책 속에 남을 겁니다. 


  AI가 바둑 세계 제패에 이어 번역과 창작에까지 진출한다는 건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저자는 기계의 번역에 대해, 특히 소설 번역은 ‘사람의 일’이라고 말한다. AI가 멋진 번역가가 되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말에 안심했던 사람으로서 번역이 사람의 일이라는 저자의 말이 와 닿는다. 계속 사람의 일이었으면 한다.


기계에게는 인간처럼 읽는다는 것, 즉 해석을 통하여 창의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오히려 읽지 않는 쪽이 효율이 좋다는 것이 증명된 셈이고, 따라서 기계는 텍스트를 읽는 길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그 나름의 우회로를 거쳐 인간번역과 같은 수준, 혹은 더 나은 수준에 이를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그 우회로는 인간의 길과는 다를 것이다.


   저자는 번역가의 과제는 완전한 ‘번역’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완전한 ‘언어’에 이르는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문체를 우리말로 잘 옮기는 것을 중시하는 저자의 생각이 책 한권 한권을 번역하는 동안 번역의 원칙과 방법이 되었다. 이 책은 번역가가 되려는 이들에게 유용한 책이겠다. 번역이란 무엇인지 번역하면서 부딪치게 되는 고민들, 나만의 원칙과 방법을 찾아가기까지의 저자의 노하우와 깊은 생각들이 같은 직업을 선택하려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어 줄 것이다.

   “사람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생각할 때는 자기 학대적인 면과 과대망상적인 면이 공존하는 듯하다”는 저자의 말이 확, 와닿는다. 그래서 일이란 언제나 힘들다. 내가 하는 일에서 원칙과 방법을 세워 나가는 일이 비록 자기학대를 부추기는 일일지라도 흔들리지 않는 확고함으로 일을 대한다면 때론 과대망상쯤은 허용될 수 있을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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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지음 / 교양인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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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본 지 오래됐다  


혼자서 본 영화, 정희진, 교양인, 2018-02-14.


  내 인생의 영화라고 꼽을 만한 것이 없다. 딱히 영화를 즐기지 않으니. 이 폭염 속 극장에서 음료를 마시며 시원함을 즐기는 영화에 대한 환상도 없다. 가기까지가 귀찮아진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러 가는 일은 연례행사가 되기 일쑤다. 아니, 영화관에 가는 일이라고 해야 하나. 갑자기 ‘혼자서 보는’ 이라는 말이 낯설어진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일이 과연 혼자서 하는 일인가.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보는 아는 누군가가 없이 영화를 본다는 말이다. 영화관은 사람으로 넘쳐나니까. 그럼 이건 혼자서 하는 게 맞나?! 그렇게 보면 철저하게 혼자서 하는 건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단 책을 읽는 시간은 철저히 ‘혼자’라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기에 영화보다는 책이 혼자서 하기에 알맞은 취미생활이라고 생각해본다. 당연, 작가는 이런 질문을 예상했듯이 이렇게 말한다.


‘혼자서 본 영화’가 ‘나 홀로 극장에’라는 뜻은 당연히 아니다. 영화와 나만의 대면, 나만의 느낌, 나만의 해석이다. 나만의 해석. 여기에 방점이 찍힌다. 나의 세계에 영화가 들어온 것이다. 지구상 수많은 사람들 중에 같은 몸은 없다. 그러므로 자기 몸(뇌)에 자극을 준 영화에 대한 해석은 모두 다를 것이다. 한 작품을 천만 명이 본다면 그 영화는 천만 개의 영화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혼자서 하는 것에 대한 매력이 어떤 것인지 궁금하여 이야기를 들어본다. 하지만 이 책은 혼자서 보는 행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렇게 혼자서 본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인생 문제를 해결해주고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도구이기에 타인이 필요치 않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더욱 더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외로움을 원한다고 말한다. 인생문제가 대부분이라도 해결된다는 이 뻔뻔스러운 고백에 28편의 영화를 보는 저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영화에 대한 감상보다 ‘혼자서’에 더 꽂혀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픈 마음이 더 크지만, 영화마다 시선을 녹여내는 작가를 따라가다 나도, 여러 생각에 잠기게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저자는 가족과 사회에서의 사랑과 상처, 젠더와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관한 평소의 시선을 그대로 녹아 낸다. 다양한 영화들 그 에피소드들에서 저자가 생각하고 주장하는 바에 관해 더욱 세밀한 시선을 채집하며 사회에서 수동적으로 머무를 수밖에 없는 여성에 대해, 그렇게 만드는 사회의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정희진 작가의 책을 읽었다면 젠더에 대한 저자의 시선을 알기에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그래도 <강철비> <의형제> <용의자> <공조> 영화를 관통하는 시선은 재밌게 봐진다.


당대 남한 여성들의 낭만적 사랑의 욕구가 반영된 ‘남북’ 영화는 역설적으로 북한 여성이나 남한 여성이 주인공이 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성애 제도에서 보는 사람(관객)이 여성일 때, 대상(화된 인물)은 남성일 수밖에 없다. 한반도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는 사라졌다. 그래서 이런 영화들을 남북 화해와 흥행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영화라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위험하다.


  한때 북한은 ‘나쁘고 악하고 아름답지 않은‘이 총체적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러던 것이 공공경비구역 JSA 즈음부터 변화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하더니 최근 잇따른 북한이 소재로 등장하는 영화에서 북한에 대한 묘사는 확연히 달라진다. 북한 남성들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은 기본으로 멋진 외모까지 갖춘 남성으로 등장한다. 저자는 그런 변화에 영화의 주소비층인 젊은 여성들의 욕망, 북한 남성 판타지가 숨어 있다고 말한다. 젠더의식이든 이데올로기든 그것을 뛰어넘는 것은 늘 자본이라는 생각이 들게끔 한다. 자본주의가 강자다. 이데올로기를 전환시키는 그 탁월함.

  

우리가 본 영화는 우리의 인생과 붙어 있다. 몸으로 영화를 본다. 영화의 내용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아니라 관객의 세계관에 달려 있다. 누구나 자기의 삶만큼 보는 것이다.


  영화에서 저자가 집어내는 상처와 문제들은 대부분 젠더 문제로 귀결된다. 저자의 말처럼 영화를 보는 내내 저자가 살아온 삶이 어디에 머무는가를 보여준다. 타이타닉 영화에서 가장 기억에 장면이 화로에 끊임없이 석탄을 넣고 있는 노동자라고 말했던 운동권 선배의 시선을 떠올린다. 나는 책이든 영화든 이 사회에서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때그때 달라요… 그래도 책을 읽고 생각을 주절거리는 것이 인식 확장을 위한 노력의 한방편이라 생각하며 위안을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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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지음, 이원열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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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불완


세상이 잠든 동안, 커트 보니것, 문학동네, 2018.


  “한 가지밖에 모르는 사람들이오, 올라갈 줄만 아는 사람들.”

  <유행병> 속 인물은 당대 유행하고 있는 병의 근원적인 원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세상이 잠든 동안』이라는 표제 아래 16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인물들의 퍼레이드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한가지 밖에 몰라 다른 것에 대한 면역성이 없는 이들의 삶은 복잡하지 않지만 결코 단순하진 않다. 단순성, 하나에 대한 집착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복잡해질 수 있는지를 느끼게 한다.

  단편집인줄 몰랐다가 단편 하나가 끝날 때마다 아참, 작가가 누구였지 확인하게 되었다. 뭐라고, 커트…보니것이라고? 정말? 이런 생각한지 얼마되지 않아 또다시 작가가 누구더라,를 반복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진짜 보니것 작품이 맞아?라는 의문과 설마 내가 보니것의 문체를 모를 리가라는 당혹이 섞여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보니것 작품은 그의 사후에 출간된 경우가 많은데 이 작품집도 마찬가지다. 따져보자면 뭘 그렇게 보니것 작품을 많이 읽었기에 읽으면 ‘나는 보니것의 작품이오’를 알아챌 거라고 그러냐 싶었지만 보니것의 작품에서 느꼈던 매혹이 덜해서, 아주 덤덤하게 책장을 넘긴듯하다. 나 또한 보니것 문체의 한가지밖에 모르는 사람이겠다 싶다. 

  어쩌면 단편집이 가지는 같은 소재와 패턴의 반복 때문에 받은 느낌일 수도 있겠다. 특정한 한가지에 집착하는 인물들 외에 이 책속에는 ‘돈’이라는 소재 또한 반복적이다. 마치 자본에 대한 신랄한 풍자를 가한 찰리 채플린의 작품이 연상된다. 유행병의 대사와 잇는다면 결국 이 이야기 속엔 돈에 집착하는 인간의 삶이 주된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돈에 집착한다는 것은 곧 돈을 욕망한다는 것인데 대체로 돈에 대한 욕망의 과정도 결과도 거의 모든 작품은 긍정적으로 그리지 않는다. 하지만 보니것은 그것을 좀더 유하고 발랄하게 그리고 있다.

  자신이 만든 기계 여인에 집착하는 천재 공학자, 남성 잡지 속 여인에 빠진 남자, 모형 기차 만들기에 빠진 남자, 전통과 관습에 충실한 모범생 소년이 몰두한 그것으로 인해 외면하며 잃게 되는 것은 사랑하는 여인이다. 반면 돈에 몰두하는 이들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되거나 유행처럼 자살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돈이 없다면 굶어야 하고 예술을 하는 일은 멀고 험난하지만.


 “어떤 어머니들은 자기 아들을, 자신을 제외한 모든 여자들에게 타인으로 만들려고 하죠.”

  <루스>는 아들에 집착하는 어머니와 며느리의 한판 승부가 펼쳐진다. 안타깝게도 며느리는 패배를 절감하는 순간 저 통렬한 말을 남긴다. 그렇다. 아들을 둔 어머니들과 며느리의 싸움, 왜 어머니들은 아들에 집착하며 모든 여자들을 타인으로 만들려 하는지 세월이 흘러도 알 수 없는, 궁극의 의문점이긴 하다. 하지만 아직 며느리를 두지 않은 탓인지 며느리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하지 못하고 돌아서다가도, 깨달음에 힘입어 어머니에게로 간다.


자기에 비해 포크너 부인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나 생각하니 기분이 더욱 들떴다. 포크너 부인이었다면 자신의 좁은 삶 속 비극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한 채 대합실에 그냥 앉아 있었을 것이다.


  물론 통쾌하지만 그것으로 머물렀어도 좋겠다고, 돌아서서 가지마라고 그냥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을 즐기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루스는 ‘자신의 좁은 삶 속 비극’을 살게 될 어머니를 ‘구원’하기 위해 발을 돌린다. 이런.


한때 신이 당신에게 사랑하라고 주셨던 불완전한 사람을 봐줘요. 내가 정말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신이 허락하신다면,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고 조금이라도 좋아해보도록 해요. 그리고 여보, 제발, 다시 불완전한 사람들 속에서 살아가는 불완전한 사람이 되어줘요.


  한가지 생각을 가치관, 신념, 중독 등의 이름으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쪽으로 기운다면, 물론 이미 지나치게 치우쳐 있지만, 그것은 모든 이들을 타인으로 나아가 적으로 돌리는 이유가 될 것이다. 그들이 이기적이라는 말로 내버려두고 싶은데 굳이 또, 루스처럼 그들을 어여삐 여기며 그 삶으로 들어가는 이들이 있어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 것인가 싶다. 그들은 올곧이 불완전한 사람이기에 <제니>속 천재 공학자의 아내가 남기는 편지는 그들에게 남기는 글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그들을 포용하라며 남기는 메지지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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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책 읽는 여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 지음, 최정수 옮김 / 현대문학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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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북크로싱


지하철에서 책읽는 여자, 크리스틴 페레플뢰리, 현대문학, 2018.


  책과 함께 모험을 떠나고 싶은 마음은 폭염에는 쓱, 사라지는 모양이다. 지하철이나 기차를 타고서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책 한권을 읽고 돌아오는 여정을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폭염이란 움직이지 않는 게 낫다는 생각으로 가득차게 하면서 책을 읽어도 머릿속에 남겨두지 않도록 한다. 집과 직장을 오가는 생활을 하다가 출근 시간 두 정거장이나 먼저 내려 다른 곳으로 가면서 새로운 일과 맞닥뜨리게 되는 주인공 쥘리에르처럼 평소와는 다른 패턴으로 움직이면, 겪어보지 않은 새로운 일을 만날 수 있을까.

  쥘리에르가 일상적인 패턴에서 한발짝 더 나아가는, 아니 두 정거장이나 먼저 내려 평소와는 다른 출근길을 선택함으로써 맞닥뜨린 세계는 지각, 질책이라는 현실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이 아니라 ‘책 전달자’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하는 곳이다. 지하철에서 졸음 끝에 꾸는 꿈이라도 마냥 희한한 꿈이겠거니 싶은 이 몽상과도 같은 세계는 ‘무한 도서협회’다. 한가득 쌓인 책을 정리하고 있는 남자 솔리망은 사람들에게 알맞은 책을 전달시켜주는 책 전달자의 역할과 활동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달자는 책을 자연이나 기차 안에 되는대로 놓아둬서는 안 됩니다. 책들이 독자를 찾으려면 우연에 맡겨서는 안돼요. 그 사람이 책에 독자를 골라줘야 해요. 관찰하고, 더 나아가 어떤 책이 필요한지 감이 올 때까지 독자를 쫓아가야 하죠. 착각하지 마세요, 이건 진짜 일입니다. 우리는 도발하려고, 일시적 변덕 때문에, 혹은 세상을 혼란에 빠뜨리거나 선동하려는 의도로 책을 나눠 주는 게 아닙니다. 정당한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아요. 나와 함께 일하는 훌륭한 전달자들은 큰 공감 능력을 가졌습니다. 상대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 어떤 낙담과 원한들이 쌓여 있는지를 느낍니다.

  

  이 공간에서 편안함과 행복을 느낀 쥘리에르는 부동산 사무소로 출근하는 일을 그만둔다. 이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처한 상황과 내면을 관찰하며 그들에게 필요한 위로와 조언을 해줄 책들을 전달하는 책 전달자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책 전달자라는 역할은 쥘리에르 자신에게는 모험이지만 점점 이 역할을 통해 타인을 도우며, 책 전달자의 의미를 찾아 성장하는 쥘리에르의 여정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에게 공감되는 책들이 등장한다. 이 소설의 묘미는 그런 책들에 대한 소개일지도 모르겠다.

  아주 단순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자만 이 책은 내 인생에서 잊지 못할 책, 내 인생을 바꾼 책을 좀더 스토리를 가미해서 추천하는 서점의 도서목록이다. 조금 더 즐겁게 표현하자면 타인에게 책을 추천할 때 느끼는 쾌감, 희열이 느껴진다고 해야 할까. 무한도서협회는 독서클럽 같았고 책 전달자의 역할은 각각의 회원들 같다. 살아가면서 고민을 겪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하며 건네는 책, 그것이 그들 삶에 지금 고민에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야기할 때의 누군가도 결국 책 전달자인 것이다.


마침내 나는 두꺼운 책들 속에 모든 질병과 모든 치료제들이 감춰져 있다고 믿게 되었다고, 아니, 그렇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고. 책에서 배신을, 고독을, 살인을, 광기를, 격분을, 다른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말하지 않고도 나에게 뭔가를 강요할 수 있고 내 존재를 망가뜨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만난다고. 때로는 책을 읽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 누군가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다고. 아프리카 소설이나 한국 동화를 읽다가 영혼의 단짝을 만나는 것이 우리 인류가 똑같은 악덕들로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서로 닮았는지 그리고 우리가 조금이라도 덜 악해지기 위해 이럭저럭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그러기 위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에게 미소 짓고, 서로를 어루만지고, 무엇이 되었든 감사의 표시를 나눌 수 있다고.


  쥘리에르가 느끼는 모든 것을 체험하였기에 사람들은 책을 읽고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타인에게 책을 추천하고 또한 함께 모여 독서클럽을 만들어가는 것일 게다. 북크로싱book-crossing 운동을 벌이기도 하고 말이다. 북크로싱 안내서라고 할 만한 이 책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쥘리에르에 쉬이 공감하며 읽게 될 것이다. 직장을 그만두는 쥘리에르의 과감함을 부러워하면서 말이다. 다만 생각보다 책 전달자의 여정은 폭염 중에 읽기에는 아주 단조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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