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박상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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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글쓰기


2019 제10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왜 누군가의 일기는 소설이 되고 누군가의 섹스 고백은 사랑이 되는 걸까. 이 수상집을 읽은 첫 느낌이다. 소설에 마음이 머무는 건 여러 가지다. 내용, 구성, 문체, 문장…. 이상하게도, 아니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는 평론가들의 평론이 친절히 덧붙여 있으니 그 안내서와 같은 글을 읽으며 난 왜 그런 심오함을 캐내지 못했을까 탓하기도 하며 때론 평론 때문에 머리가 더 아파오기도 하게 된다. 어쨌든 마음이 끌리는 소설이거나 아니거나 찝찝하긴 매한가지다. 이런 뜻이었어, 이런 걸 봐야 하는 거였나. 내가 느낀 바가 그에 멀게 있을 때마다, 조금씩 위축되고 마는. 지금 인기있는 풍토가 대세가 이렇다는데 뭘 어쩌겠나 그런 생각들. 유행처럼 번지는 어느 순간이 지나고 나면, 그러면, 그러면 어떻게 되나?


모든 일이 끝난 뒤에 그것을 복기하는 일은 과거를 기억하거나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재해석하고 재창조하는 일이니까. 그것은 과거를 다시 경험하는 것이 아닌 과거를 새로 살아내는 것과 같은 일이니까. 그러나 읽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글을 쓰는 것은 생각보다 고독한 일이다. 그래서 어느날 나는 글을 쓰다가 어쩌면 내가 영원히 혼자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고, 그게 문득 참을 수 없이 두려워졌다. - 정영수, 「우리들」


  기억에 머무는 건 「우리들」이다. 수상작 전체에서 글쓰기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무엇인가라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의 한 코드가 글쓰기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고 정은과 현수의 글쓰기가 왜 되지 않는지, 나의 연경에 대한 글쓰기가 실패하는지 잘 와 닿았기에 그렇다. 관념적인 내용인데 그것을 세밀하게 포착하여 현실적인 느낌으로 인식하게끔 만드는 느낌이었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글쓰기와 맞물려 할 때 얼마나 다른가. 결국 소설이란 나의 고백적 서사이기도 할 테지만 그것을 이야기하는 방식이 얼마나 다른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될 때 누군가의 말은 귀기울여 듣게 되고 누군가의 이야기는 참을 수 없이 듣고파 지지 않게 될 때와 같은가라는 생각을 한다. 이야기를 이야기하는 방식, 2019년의 젊은 작가상 수상집은 그것에 대한 소설집이었다고 나는 생각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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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나날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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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가만.


가만한 나날, 김세희, 민음사, 2019.


  가만한 당신, 가만한 생각, 가만한 나날…. ‘가만한’이 붙은 책이 많지 않은데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가만한’이란 단어가 주는 느낌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이 단어는 슬픈 감정을 더욱 솟구치게 만든다. 쓸쓸하고 씁쓸하기까지 한. 격앙되지 않고 냉정할 정도로 차분하게 슬픈, 그런 기분이 오래 감돈다. 8편의 단편이 수록된 이 단편집에서 감도는 전체적인 느낌 또한 다르지 않다. 그러고 보니 첫 단편 제목부터가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거야」다.

   

네가 세상에 원한을 품지 않을 수 있을까. 진아는 문득 생각했다. 눈길을 하는 연승의 얼굴, 냉소적인 말을 내뱉을 때면 입꼬리를 어색하게 씰룩이는 표정이 눈앞에 떠올랐다. 네가 일그러져 가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거라고, 진아는 생각했다.  -「그건 정말 슬픈 일일 거야」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나 처음의 순간이 있고 변화하는 지점이 있다. 소설을 흐르는 또다른 공통분모는 이것일 것이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사회에 첫 발을 들인 이들의 직장생활의 분투기와 지속되어 오던 연인관계에서 감정이든 상황이든 변화의 순간을 맞이하는 때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참 안쓰럽고 애처로운 청춘들의 모습이 가득하다. 직장에선 마치 주위는 버려둔 채, 시야를 막은 채 눈앞에 보이는 것에 매몰된 채 생존하고자 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면 연인관계에서의 주인공들은 자꾸만 발을 뒤로 뺀 채, 저 멀리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일그러져가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이 지금이든 먼 훗날에 깨달은 바이든 분명 정말 슬픈 일이다. 그리고 그 느낌은 쉬이 지워지지 않는다.

  「가만한 나날」의 나는 첫 직장에 대해 광고대행사에만 다녔다고 말한다. 사실은 블로그 마케팅을 했던 나는 뛰어난 업무 능력을 보였고 일을 잘 못하는 예린 씨를 보며 우월감을 가지기도 한다. 그때의 예린 씨는 그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어했고 자신감까지 잃어 갔지만 나는 아주 적성에 맞는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사실상 가짜, 거짓 마케팅 일을 했던 내가 작성한 후기 중에 유해한 가습기 살균제가 있었고 그로 인해 많은 이들이 심각한 질병을 얻고 생명이 위험함을 알게 된다. 그제야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보게 되는데 이 소설은 실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연상된다. 이제 예린이 그러했던 것처럼 나는 다른 직장에 가서도 예린처럼 되고 있지 않을까.

  예린에게 우월감을 느낀 나처럼 「감정 연습」의 상미는 정규직이 되기 위해 당연한 듯 입사동기를 적대시한다. 직장의 상사들은 그들의 경쟁을 부추기고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는 그 사람의 본질과는 상관없이 그 누가라도 늘 상미에겐 적이 될 것이다. 또한 그 시스템에, 제도에 들어가 있지 못하면 「현기증」에서 보여주듯이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 속에서 가지게 되는 감정이란 어떤 것이 될까.


현기증이 일어나는 순간이 있다.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 아직 받아들이지 못한, 채 인식하지도 못했던 광경이 갑자기 빛을 비춘 듯 적나라하게 모습을 드러낼 때.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리고 싶지만, 그조차 허락되지 않을 때.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현기증」


  현실이란 낭만은 허상임을 모르지 않지만 이 속에서 보여주는 직장 속에서의 버둥거림, 사회가 주는, 관계가 주는 상처 속에서 실망하고 힘겨워하며 다시, 나를 찾아가야만 하는 순간들. 그것은 또한번의 아찔함을 거쳐야 한다. 이런 슬픈 자각 뒤에 삶은 과연 평온해 질 수 있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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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 오늘의 젊은 작가 21
김세희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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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항구의 사랑, 김세희, 민음사, 2019.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책을 읽으면서 이 노래가 생각났다. 바닷가 마을이 배경이라 항구의 사랑인 줄 알았다. 항구마을을 배경으로 한 또는 항구와 연관된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인가 했는데… 예상을 빗나간, 항구. 조금 당혹스러웠다.  이 소설을 읽게 된 건 젊은작가상 수상작이자 단편집인 『가만한 나날』을 먼저 보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내용도 스타일도 내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간단히 말해서 소설은 10대, 여고생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교는 오래전부터 남녀공학보다는 남녀를 분리했고 여학교에선 이른바 보이시한 선배와 동기들에게 호감을 갖는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바 없이 그저 이곳저곳 썰로 전해 들었기에 그렇다, 그랬다, 라고는 못하겠다. 무딘 것이었는지 모르겠다만.

  10대들의 세상은 쉬이 변하니 시간이 흘러 문화적인 변화가 많이도 달라졌겠지만 소설에 나오는 소녀들의 감성은 아직 여물지 않은 느낌이 드러난다. 그래서인지 소설조차도 여물지 않은 느낌이 든다.

  어쩌면 동질의 감정을 지나왔을 지도 모르겠지만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건 무엇에 기인하는 걸까. 어느 10대들에게나 세계에 추앙받는 존재들은 있었고 그들에 대한 모방은 있었다. 그 대상이 다름에 대한 것은 아니다. 본질은 같은 거니까. 그런데, 그런데 소설의 서사와 감정이 생각보다 깊게 와 닿지 않았다. 내가 머물지 않았던 시대라서일까.

  팬픽이란 은연중 오래된 문화였을 거라 보지만 우리나라의 아이돌 산업이 중점적으로 육성되고 활성화되는 것과 맞물려 팬픽이 확산된 것이 2000년대 초반의 집중적인 문화현상이었던 모양이다. 영화 트와일라잇 또한 팬픽이 원작이라고 들었다. 팬픽에 대해 관심이 있던 것도 아니기도 했지만 소설속에 나오는 ‘이반’이란 처음 들어보는 말이다. 내가 아는 이반이란 그저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뿐인 것을. 내겐 레즈가 훨씬 익숙하다. 이것이 이 소설에 대한 생각의 차이를 만드는 걸까. 이래저래 찾아보니 이반이란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표현이라 한다. 이반의 어원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했는데 동성애자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의미에서 부르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은 타인에 의해서 불린 것인지 스스로를 부르는 말인지가 더 궁금해졌다.


저런 애들 때문에 진짜 동성애자인 아이들이 피해를 입는다고 규인은 말했다. 동성애자들에 대해 편견을 만들고 이미지를 흐려 놓는다고. 중학교 때 친한 친구가 ‘진짜 동성애자’였다고 했다. 규인은 인희 같은 애들이 진짜 동성애자가 아니라 유행에 따라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뭔가 남과 다른 걸 하고 싶고, 관심을 끌고 싶고, 우쭐해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말이다. 칼머리, 힙합 바지, 그런 게 그 표시였다.


  이성적인 사귐이 제한된 한국 사회에서 같은 공간에 오래 머무르는 대상에게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토록 이성애에 대해 격렬한 반대를 하던 어른들은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이성애만을 받아들인다. 그 경계에서 사람의 감정이란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인지 만들어지는 것인지 모르겠다. 소설속 문장처럼 유행일지도, 우정의 강도에 대한 인식의 차이일지도, 그리고 사랑을 정의하는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겠다.

  내가 너무나 심각하게 생각하고 바라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여기, 그녀들의 사랑을 다루는 방식은 너무 가볍다. 그렇게 느껴진다. 정말로 ‘인희 같은 아이들’이 가득했던 것일까. 그리하여 ‘진짜 동성애자’들의 모습은 볼 수 없는 것이었나. 그 시간이 지나면 이성애로 가득찬 이야기를 하는 그들. 십대의 사랑은 그런 형태였나. ‘나’의 주위엔 그런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오간다. 이 이야기가 그 시절 ‘나’의 사랑 이야기라 한대도 ‘나’의 주위엔 동성애적 사랑에 몰입한 대상들이 많다는 건, 정말로 ‘진짜 동성애자’들이었을까. 유행이었을까.

  심리적인 안정감이 확고하지 않은 십대의 시기에 동성애는 정체성을 뒤흔들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을 텐데 그런 고민이란 보이지 않는 가짜의 동성애 놀음처럼 보인다. 누군가에겐 엄청난 충격이고 상처였을지 모르는데 많은 이들에게 일상적으로 행해지는 감정이었다면 그토록 심각한 고민의 근원은 무엇이었을까. 소설에서 나오는 것처럼 그 시기를 벗어나면 잊어버리고 감추고 해야만 하는 그때의 감정과 행동들. 그런 시절을 그런 상황을 통과하여 비로소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게 되는 걸까. 소설 속에서 ‘나’는 민선 선배에게 사랑을 느꼈고 먼훗날에도 다시금 그 시절을 생각하며 이렇게 말한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누군가를 그렇게 원했던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를 원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다. 그런데 내가 그것을 선택했을까? 오랫동안 나는 내가 그녀를 사랑한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젠 더 이상 그 감정을 내가 선택한 거라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 내가 감정을 소유했던 게 아니라 감정이 나를 소유했던 것만 같다. 강물의 표면에 붙들려 이리저리 떠다니는 나무토막처럼 눈에 보이지 않고 파악할 수도 없는 심오한 물살에 고통스럽게 휩쓸려 다녔던 것만 같다. 그 물살의 방향이 바뀌기 전까지는 계속 그렇게 붙들려 실려 가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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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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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난 일이 아니잖아요.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2019.


  영화 시나리오는 영상을 위해 쓰인 글이라 머릿속에서 채워야 하는 이미지들이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르다. 대본 속에서는 많은 걸 차지하는 것은 대화지만 《벌새》의 대사는 적다. 영화의 런닝타임이 길다는 걸 생각할 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렇기에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영화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영화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국내외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기에 궁금증이 생긴 것도 있지만 그런 작품이라고 하기엔 영화 상영은 너무나도 제한적이다. 자본이란 참 재밌다. 

  글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매우 익숙한 서사라는 느낌이었다. 1994년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보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그날의, 그해의 풍경들. 벌새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예상치 못한 그러나 익숙한 내용에 대본으로는 알아채지 못한 영화장르에 대한 나의 미흡함을 알게 된다. 내가 본 것은 글이기에 글로 벌새를 알아간다. 벌새 속, 그 모든 풍경과 상황이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그러나 익숙함으로 인상적인 언어를 제외하고 참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진 말이 하나 있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은희를 쫓아다니던 후배 유리의 말이다. 은희에게 마음을 얻고파서 내내 선물을 주고 졸졸거리던 유리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른 남자애에게 빠져 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게 유리는 속칭 양다리 기질은 없는 모양이다. 유리의 끈질김에 마음을 열어가던 은희를 굳게 만든 유리의 말. 1994년에 그렇게 돌아서버릴 감정을 품고 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은희는 왜, 우리는 왜, 1994년의 일들을 기억에서 몰아내지 못할까. 그건 지난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도 잊지도 못한 채 살고 있는 걸까. 쉬이 감정을 돌릴 수 있었다면 은희의 마음도 평안했을까.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고 기다려요. 대들면 더 때려요.


  중학생 은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위태롭지만 견고하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시스템은 은희에게 외로움과 고통을 차곡차곡 쌓아준다. 그 속에서 온전히 인간적인 온기를 기대하며 따스한 말 한마디를 기다리며 종종거리는 은희의 몸짓은 새 장속에 갇힌 새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변화가 아니라 그저 반복되는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은희에게 놀라운 점은 그 상황 속에서 미움과 원망과 반항을 체득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애정에 더 기댄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한 매우 낮은 자존감을 가지면서도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힘을 내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은희에게 와닿는 영지의 존재는 매우 상징적이다.  


   사람들이 외로울 때 제 만화를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우리는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을 어렵게 여기며 혐오의 언어가 쉽고 빠르게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더더구나 그것은 가족이라는 단위에서도, 단위에서부터 발현되기도 한다. 여기, 은희의 일상을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파닥거리는 여성의 서사로 이야기한다. 아버지로 오라버니로 남자친구만이 아니라 이미 기존 가부장제에 눌려 피폐해진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가족이란 우울과 폭력의 정서가 가득하고 학교 역시 입시라는 목적을 위해 많은 걸 억압하고 폭력을 당연시한다. 그리고 사회는 무너질 울타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더 멀리 떨어져서 이 사회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자의 서사를 가지기 마련이고, 그들 모두는 피해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피해자들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혐오를 두고 사람 자체에서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은희의 이야기는 지난 학기의 일로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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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지음, 안진희 옮김 / 위고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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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하지 않은 사계절처럼


나는 심리치료사입니다, 메리 파이퍼, 위고, 2019.


  1972년 첫 내담자를 만나 30여 년 동안 심리치료사로 일한 메리 파이퍼가 젊은 심리치료사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에세이다. 좀더 이론서에 가까울까 했지만 이제 심리치료사의 길에 들어선 이들에게 심리치료사로서의 기본 자세에 관한 경험과 생각을 적은 글이다. 편지형식으로 보내는 이 글은 무척 따뜻하고 정감있는 어조다. 또한 정갈하게 느껴진다.

  심리치료사는 상담과정에서 수많은 유형의 사람을 만난다. 약물과 알콜 중독자, 학대당하는 여성, 분노 가득한 십대, 많은 사람을 돌보는 사람, 이러저러한 상황에 놓인 가족, ‘무관심한 배우자, 성질 못된 십대 자녀, 만사를 자기 뜻대로 하려는 상사에 대해 하소연’ 하는 사람들… 저자에 의하면 ‘우리들 모두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 자신의 인간성으로부터 도망치려 하기’ 때문이다. 다만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이들에게 심리치료사는 어떠한 태도를 보일 것인가.

  각각이 처한 상황에 맞는 방법을 행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말을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 방법은 오랜 경험을 통해 심리치료를 체현한 심리치료사가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맞게 구현해 내는 것이다. 저자가 말한 좋은 심리치료사의 자세로서 인상적인 것은 ‘애매모호함’에 대한 것이다.


좋은 심리치료사들은 애매모호함을 잘 참습니다. 한 인간이 처한 상황은 다채롭고, 다면적이고, 특별합니다. 하나의 방식이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결국, 대부분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건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방법이 아니면 절대 안 돼’라고 생각하는 완고한 심리치료사들은 결국 실패하게 됩니다. 흑백논리에 이런 자부심은 회색빛 세계에 살고 있는 내담자들을 미칠 지경으로 만듭니다.


  심리치료사들은 지치고 아프고 우울한, 최대한 많은 부정적인 언어를 끌어모은 상태의 내담자들을 만난다.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어떡하든 그 심연을 이끌어 내고 싶어 안달복달하게 될 터, 문제해결을 위한 노력의 결과를 빨리 보고파 하는 마음일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타인의 심연에 이르기가 쉬울까. 애매모호함을 잘 참는다는 말이 정말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싶다. 바삐 흘러가는 세상에서 점점 뚜렷해지지 않는 사계절처럼 모호한 경계를 지나고 나면 좀더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그 지점을 지나고 나서야 계절은 있었다는 것을.

  이처럼 수많은 이들의 애매모호함을 견뎌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끌어내고 생각의 방향을 전환시키려 애쓴 좋은 심리치료사를 보면 나도 그 상담실 문을 열고 싶어진다.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일방적으로 그들의 생각을 전환시키고 문제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신뢰를 형성하며 상호작용하는 관계라고 말한다. 일방적으로 지식과 기술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내담자에게서 심리치료사 또한 배우게 된다는 것을 저자는 말한다.


좋은 심리치료사들은 예전의 상식을 유지하는 일과 새로운 생각을 고취하는 일 사이에 놓인 평균대 위를 균형을 잘 잡고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의 이해가 심오한지 혹은 우리의 조언이 적절한지 우리는 절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의 대부분은 자연과학이 아닙니다. 그보다, 심리치료에는 체계적인 지식과 직관, 친절이 필요합니다. 심리치료에서 정말로 힘을 발휘하는 것은 진짜 사람과 진짜 사람이 서로 연결되는 일입니다. 


  내가 이제 막 심리치료사의 길을 들어섰다면 이 책을 읽으며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심리치료사가 되고픈 열망에 들뜰 것 같다. 가슴 두근거리며 설렘과 신념을 다지는 그런 마음이 들 것이다. 그렇지 않다 해도, 아니 심리치료사가 아니더라도 어떤 물음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생각하고 헤쳐 나갈 자세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다만, 보헤미안 속담 하나가 눈에 띄었는데, 긍정적인 해석이 되지 않는다. 아, 저절로 행해지는 삐딱해지는 마음. ‘신’이시여, 어찌 그런…. 나는 저런 기쁨은 사양한다, 절대로. 아, 긍정적인 메시지를 주기엔 나는 심리치료사로서의 자질은 안되갔구나!


테드 쿠서의 『로컬 원더』는 오래된 보헤미안 속담을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신은 가난한 사람을 기쁘게 하고 싶을 때, 먼저 그에게 당나귀를 잃게 한 다음 다시 찾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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