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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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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는 광기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마음산책, 2005.


  눈이 온다. 오지 않는다. 그러나 뉴스는 이미 전국적으로 눈이 온다며 들썩인다고 도배된다. 전국 날씨를 검색해보니 지도의 절반 이상에서 쨍쨍한 태양이 빛난다. 실시간 반영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국의 절반이 눈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눈이 오는 세상이다. 세상의 중심에 비켜선 마을에선 눈을 상상한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의미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스밀라 눈에 대한 감각』은 눈에 대한 상상에서 떠올린 소설이다. 이런 책을 읽었지. 두꺼운 북유럽 소설. 북유럽 소설은 러시아 소설만큼이나 두껍다. 러시아는 너무 추운 곳이라 두꺼운 장편 소설이 발달했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북유럽도 뒤지지 않는 추위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읽는 북유럽소설마다 길다. 최근 경장편이라고 해서 짧게 나오는 한국소설과 비교해보면 대하 드라마급이다. 그러고보니 책에 유럽인에 관한 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유럽인에게는 쉬운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언제나 모순적인 진실보다는 간단한 거짓말을 선호한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건 스밀라라는 캐릭터와 함께 펼쳐지는 풍경이다. 가보지 못한 땅의 얼음과 눈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정화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수학에 대한 이야기 역시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들이 담긴 듯하지만 쉬이 책장이 넘겨지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느꼈던 생각이 고정되어 갔는데 역시, 수학은 차가운 얼음물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마음속 깊이, 사물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맹목성으로 이어지고,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은 타고난 잔인성을 가지고 있어서 진심으로 인식하려는 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을 안다. 오로지 경험만이 민감하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약하면서도 잔인한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노력하고자 하는 시도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스밀라는 이누이트 출신으로 눈과 수학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가진다. 난 스밀라의 고향 이누이트의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설화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흥미로웠다. 이 책은 스밀라가 이사야라는 소년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는 스릴러 소설인데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사건을 형사처럼 풀이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모든 것은 소년이 죽은 장소의 눈에 담긴 흔적, 소년이 추락한 곳에 남겨진 눈 위의 발자국에서 느낀 감각, 스밀라의 직관에 의존한다. 어머니의 고향인 그린란드, 아버지의 고향인 덴마크를 오가며 펼치는 스밀라의 삶과 기억들, 추리과정 내내 펼쳐지는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사유할 만한 글귀들이 눈과 얼음이란 배경과 맞물려 정서적으로 차분하게 만든다.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은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떠밀리는 사람은 단순하게 산다.


  그래서인지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더딘 속도로 읽게 되지만 다른 추리소설이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순간순간의 긴장과 흥분만을 즐기는 것에서 끝나고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 대해선 감각이 남아 있다. 스밀라가 새겨놓은 얼음과 눈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문명에 대한.


무리수는 광기의 형태에요. 무리수는 무한하기 때문이죠. 무리수를 다 적을 수는 없어요.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인간 의식을 밀어붙이죠. 유리수와 무리수를 더하면 실수가 되는 거예요.


  무리수는 ‘보편적인 이치에 맞지 않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생각 또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다시 한번 이 단어가 수학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리수. 무리수가 횡행하는 어느 곳에선가는 눈이 오는 날이다. 눈이 내리고 나면 세상은 그 눈에 의해 깨끗해질까, 정화가 될까. 감춰지고 덮어져 순간은 깨끗해질지 모르나 어쩌면 더욱더 더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손과 발이 거쳐가면 말이다. 공기는 깨끗하려나. 뭔가 참 불순물이 끊기듯 끓어오르는데 차가운 공기가 식혀줄지는 모르겠다. 무리수는 광기…광기는 지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야 하는 거다. 멈추지 않는 광기가 휘몰아친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심지어 증오조차도 자연적 목표물위로 풀려났을 때는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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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새 -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쓰고 엮음, 김원영, 남다은, 정희진, 최은영, 앨리슨 벡델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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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지난 일이 아니잖아요.


벌새 -1994년, 닫히지 않은 기억의 기록, 김보라, 2019.


  영화 시나리오는 영상을 위해 쓰인 글이라 머릿속에서 채워야 하는 이미지들이 소설을 읽을 때와는 다르다. 대본 속에서는 많은 걸 차지하는 것은 대화지만 《벌새》의 대사는 적다. 영화의 런닝타임이 길다는 걸 생각할 때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그렇기에 보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대본을 읽으면서 영화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았다면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영화적으로 어떤 매력이 있는지 궁금해진다. 국내외 수많은 상을 휩쓸었다기에 궁금증이 생긴 것도 있지만 그런 작품이라고 하기엔 영화 상영은 너무나도 제한적이다. 자본이란 참 재밌다. 

  글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매우 익숙한 서사라는 느낌이었다. 1994년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보면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그날의, 그해의 풍경들. 벌새라는 제목으로 펼쳐진 예상치 못한 그러나 익숙한 내용에 대본으로는 알아채지 못한 영화장르에 대한 나의 미흡함을 알게 된다. 내가 본 것은 글이기에 글로 벌새를 알아간다. 벌새 속, 그 모든 풍경과 상황이 현실적이면서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는 경험을. 그러나 익숙함으로 인상적인 언어를 제외하고 참 낯설고 이질적으로 느껴진 말이 하나 있다.


  언니, 그건 지난 학기잖아요.


  은희를 쫓아다니던 후배 유리의 말이다. 은희에게 마음을 얻고파서 내내 선물을 주고 졸졸거리던 유리는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다른 남자애에게 빠져 있다.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게 유리는 속칭 양다리 기질은 없는 모양이다. 유리의 끈질김에 마음을 열어가던 은희를 굳게 만든 유리의 말. 1994년에 그렇게 돌아서버릴 감정을 품고 사는 이들도 있었다. 그런데 은희는 왜, 우리는 왜, 1994년의 일들을 기억에서 몰아내지 못할까. 그건 지난 일이라고 쉽게 말하지도 잊지도 못한 채 살고 있는 걸까. 쉬이 감정을 돌릴 수 있었다면 은희의 마음도 평안했을까.


  그냥…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그러고 기다려요. 대들면 더 때려요.


  중학생 은희가 살고 있는 공간은 위태롭지만 견고하다. 결코 무너질 것 같지 않은 거대한 시스템은 은희에게 외로움과 고통을 차곡차곡 쌓아준다. 그 속에서 온전히 인간적인 온기를 기대하며 따스한 말 한마디를 기다리며 종종거리는 은희의 몸짓은 새 장속에 갇힌 새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변화가 아니라 그저 반복되는 상황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은희에게 놀라운 점은 그 상황 속에서 미움과 원망과 반항을 체득화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애정에 더 기댄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에 대한 매우 낮은 자존감을 가지면서도 외롭고 힘든 사람들이 힘을 내기를 바란다. 그렇기에 은희에게 와닿는 영지의 존재는 매우 상징적이다.  


   사람들이 외로울 때 제 만화를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 제 삶도 언젠가 빛이 날까요?


  우리는 따스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을 어렵게 여기며 혐오의 언어가 쉽고 빠르게 일상화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더더구나 그것은 가족이라는 단위에서도, 단위에서부터 발현되기도 한다. 여기, 은희의 일상을 가부장제 시스템에서 파닥거리는 여성의 서사로 이야기한다. 아버지로 오라버니로 남자친구만이 아니라 이미 기존 가부장제에 눌려 피폐해진 감정을 안고 살아가는 여성들이 등장한다. 가족이란 우울과 폭력의 정서가 가득하고 학교 역시 입시라는 목적을 위해 많은 걸 억압하고 폭력을 당연시한다. 그리고 사회는 무너질 울타리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더 멀리 떨어져서 이 사회를 들여다보면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자의 서사를 가지기 마련이고, 그들 모두는 피해자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 피해자들은 시스템이 아니라 사람 자체에 혐오를 두고 사람 자체에서 위안과 위로를 받는다. 그래서 은희의 이야기는 지난 학기의 일로 끝나지 않을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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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지음, 송섬별 옮김 / arte(아르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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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성장일까

크루얼티, 스콧 버그스트롬, arte(아르테), 2017.


  『크루얼티』에서 보여주듯 국가를 위한 직업군의 삶은 위험이 가득하다. 액션과 스릴이 가득한 첩보 스타일의 이야기는 무수히 반복되어 왔고 이야기의 구조도 줄거리도 결국은 유사하기 그지없는데 지속적으로 양상된다. 이번에는 열일곱 고등학생, 그웬돌린이 외교관 아버지의 납치범을 추적하는 주인공이 되어 이야기를 이끈다. 영화화되기로 했다는데 ‘영화관’이 좋아할 이야기구나 싶었다. 어떤 형태로든 CIA 비밀요원이란 흥미진진한 요소를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웬돌린은 CIA요원이 아닌 열일곱 다른 아이들에게 왕따당하는 여학생일 뿐이다. 그 어떤 비밀훈련을 받은 적 없는 그웬돌린이 파리, 베를린, 프라하를 넘나들며 사라진 자신의 아버지를 찾아가는 여정은 수많은 범죄자들과 맞닥뜨리는 일과 같다. 그 일을 겪으며, 아니 아버지를 찾기 위해 범죄조직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그웬돌린의 여정을 따라가면서 새삼 다른 의문이 들었다.

  우와, 그웬돌린, 정말 멋져!

  이런 반응은 들지 않았다. 액션 스릴러 소설에서 여성 캐릭터의 정점을 밀레니엄의 마라가 가지고 있기에 그웬돌린의 매력이 비교되었을 수도 있고 작가의 그웬돌린의 창조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 작가는 ‘바비’와 ‘공주’로 국한되는 여성성에 반발해서 그웬돌린 캐릭터를 창조했다고 하는데 여성성의 제거가 곧 남성성의 극대화인가, 바비 공주 캐릭터도 여전사 캐릭터도 지나치게 안이하고 소비주의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일찌감치 사라진 부모를 찾아가는 여정은 ‘엄마 찾아 삼만리’의 마르코가 보여주었다. 그 시절의 어린 소년이 엄마를 찾아가던 여정과 최근의 소녀가 아빠를 찾아가는 여정을 보면 이 사회가 얼마나 무섭게 변화되었는가를 느낄 수 있다. 온갖 위험이 도사리는 상황에서 그웬돌린은 더욱 더 무장해야 한다. 짧은 순간에 그웬돌린은 범죄와 폭력을 주요업무로 삼는 이들을 제압한다. 짧은 순간의 수련으로 오래도록 폭력을 쉬이 사용하던 남자들에게 신체적인 열세 없이 맞선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판타지가 아니라 오버다. 그웬돌린의 강함을 부각시키기 위해 악랄하다고 해야 할 범죄조직들, 인신매매단의 보스부터 말단 조직원의 숙련된 전문성은 사라져버린다. 

  그웬돌린의 목표는 당연 ‘아버지를 찾는 것’이다. 아버지를 찾는데 다른 이유를 붙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웬돌린은 아버지가 표면적으로는 외교관이었지만 CIA 비밀요원이라는 점을 알고서 아버지를 절대 선의 위치에 놓는다. 그렇기에 아버지를 납치한 일당들은 모두 가 ‘나쁜’ 사람이 된다. 이 전제는 나쁜 사람들은 모두 ‘죽여도 된다’라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물론, 그웬돌린이 만나게 되는 일당들은 마약거래, 인신매매, 무기 밀매를 일삼는 확실히 악한 이들이긴 하다. 범죄조직의 잔혹성에 맞추어 그웬돌린 또한 점점 더 폭력적이고 잔혹해진다. 더 악한 일들을 처단하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하고 더 큰 잔혹성으로 그들을 제압하는 열여덟이 된 그웬돌린의 활약상은, 통쾌하다기보다 씁쓸해진다. 이건 성장일까.

   

“생각해보면, 이 애들이 너무 어리다는 생각도 들거든. 어쩌면 저 빨간 머리는 페테르부르크에 계속 살면서 학교 선생님이나 뭐 그러게 되고 싶었을지도 모르는데 우리가 저 애를 창녀로만든 거잖아.“ 에밀은 눈살을 찌푸리며 차 앞으로 펼쳐진 길을 쳐다보았다. 생각에 잠긴 철학자 같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을 아예 안 하는 거야.“


  5개 국어를 하는 그웬돌린 역시도 통역가가 되었을 지도 모르고 왕따로 기억되는 학교에서 만난 테렌스와 즐거운 학교생활을 할 수도 있었겠다. 세상이 그웬돌린을 잔혹한 여전사로 만들어 버리다니. 그럼에도 그 모습을 보고 열광하고 있다니. 나도, 생각을 아예 안해야 마음이 편해지려나.

  

“그럴 리가 없어요. 클라디보는 괴물이잖아요, 아빠. 클라디보는 인신매매범이에요, 여자들, 어린 소녀들을…….”

하지만 아빠도 이미 알고 있겠지, 직접 겪어보았을 테니까.

“맞아, 하지만 CIA는 상관하지 않지.”

“하지만 클라디보가 CIA 요원이라면 어째서 아빠를 인질로 잡고 있었던 거예요?”

“돈 때문이야, 그웬. 언제나 돈 때문이지. 온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야. 클라디보의 보스였던 조릭은 거액의 계좌를 남기고 죽었어. 클라디보와 다른 CIA요원이 그 돈을 가로채려고 했는데 내가 그 사실을 알아낸 거야.”


정의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야. 오늘 밤에 네가 한 일이 바로 정의야. 정의의 얼굴은 추하고 비열하거든.


   세상은 가치와 신념보다 ‘돈’이 우선한다는 것을 살아가면서 가장 잘 경험하고 느끼게 된다. ‘온 세상을 움직이는 건 결국 돈’이라는 이 씁쓸한 말, 모든 범죄의 이유는 돈이고  CIA 요원이라면 악인이 아닐 거라는 이 믿음이 깨지는 일 또한 잔인한 일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믿으며 달려왔던 그웬돌린의 아버지는, 믿을 수 있는 CIA 요원인 걸까. 미심쩍어하면서도 그웬돌린에게 처음부터 믿고 의지하는 이들은 정해져 있는 듯하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해야 했고 결단을 해야 했던 그웬돌린의 활약의 정점은 인신매매로 잡혀 있던 소녀들을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려는 생각일 것이다. 그웬돌린의 목표는 오로지 아버지를 찾는 것이었으니, 아버지를 찾고 난 후의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여 달려간 그웬돌린은 이제 이전의 그웬돌린으로 결코 되돌아 갈 수 없다. 범죄의 잔혹성을 몸소 체험하게 되면 그 세계를 잊고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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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소파
조영주 지음 / 해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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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에 대한 반응

붉은 소파, 조영주 저, 해냄, 2016.05.24.


  가끔 생각한다. 싸이코, 연쇄살인, 실종, 미제 사건…이런 단어에 반응하는 것은 두려움 때문일까. 그 광기에 자극되기 때문일까. 정보가 신속하고 빠르게 전달되면서 전세계의 잔인한 살인사건을 자주 접한다. 뉴스를 통해 현실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면 참혹하고 끔찍스러워 하면서 굳이 이런 장르의 ‘이야기’를 찾아 읽으며 즐겁지 않은 그 상황에 빠지는 것. 현실에서는 비극으로 끝난 사건을 애도하면서 범인이 잡히고 살인의 이유가 드러나고 악인은 처벌받는 결말을 기대하는 마음도 있을 것이고 온전히 범인을 쫓는 추리에 스릴을 느끼는 면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연쇄살인범의 살해 이유와 범인을 추적하는 과정은 변함없는 클리셰를 보인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탁월한 문체와 구성으로 휘어잡는 이야기가 있고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고 그 범인을 쫓고 있음에도 긴장감이 없거나 무덤덤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자극’의 극대화에만 반응하며 내 몸속에서 잔혹하고 끔찍할수록 반응을 보이는 인자가 있나 섬뜩해지기도 한다. 이 책에서 맞닥뜨린 연쇄살인에 나는 어떤 반응을 보였던가. 


  명망있는 스타 사진작가 정석주의 딸이 연쇄살인의 피해자가 된다. 사건은 모두 붉은 소파 위에서 일어났기에 정석주는 붉은 소파를 알아볼 범인을 찾기 위해 붉은 소파를 놓고 기다린다. 붉은 쇼파 위에 앉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촬영하며 15년 동안 살인범을 쫓는 삶에 올인하던 중 사건현장 사체 촬영을 제안받게 된다. 현장 사진을 찍는 과정에 참여하면서 사진과 카메라를 매개로 사건을 추리·해결해 나가며 15년 전 연쇄살인사건의 진실을 알아내간다.

  사진작가 정석주가 사건을 추리해가는 결정적인 단서는 붉은 소파가 아니라 사진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 사진을 찍는 과정, 촬영 사진 등 사진에 관계된 활동을 통해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과 기억하고 싶은 추억과 마주하고 사건의 진실을 조합한다. 사진은 찰나의 한 순간을 포착한 것이고 찰나의 순간이 지나간 순간에는 그 상황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기도 왜곡되기도 하고, 또한 선명해지기도 한다. 찰나의 순간들.

  정석주에게는 사진이란 인생이다. 사진에 희노애락이 펼쳐진다. 정석주에게 사진은 외면이자 집착, 거짓이자 진실이 된다. 추억과 그리움, 아픔과 상처의 표상이지만 또한 치유의 표상이기도 하다. 사진이라는 매개를 통해 범인을 추리하는 과정에서 새삼스럽게 ‘전문가’라는 말이 가지는 위엄을 느끼기도 한다. 특정한 분야의 전문가로서 그것으로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능력이란.

  등장인물은 몇 되지 않는데 모두 의뭉스러워 보였다. 그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드러나고 범인이 드러나는 순간의 느낌은 사실 놀랍지는 않았다. 처음부터 연쇄살인사건이었으니 범인은 역시 사이코일 것이라 짐작했고 사이코가 행한 살인의 이유는 놀랍지 않았다. 카메라는 어떤 물체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기도 하지만 잘 가리기도 한다. 렌즈를 통해 보게 되는 사물, 인물은 맨눈으로 볼 때에 비해 ‘다르게’ 보인다.

  어떻든 소설 속 연쇄살인범에 대해 덜 놀란 것이 그의 행위가 잔혹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이 정도에 무뎌지고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해서가 아니라 조금 식상해서다. 소설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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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도리 2018-03-24 2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지고 있는데 아직 못 읽고 있어요...

모시빛 2018-03-26 20:30   좋아요 0 | URL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읽고 나서 읽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추리,스릴러 장르를 좋아한다면 더욱...저는 그렇더라구요..
 
[세트] 비밀의 숲 세트 - 전2권 - 이수연 대본집
이수연 원작 / 북로그컴퍼니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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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없음을 소망하며


비밀의 숲 1・2- 대본집, 이수연, 북로그컴퍼니, 2017-08-11.


  ‘감정적’이다라고 말할 때엔 거기엔 부정적인 뉘앙스를 전제하고 있다. 하지만 감정이 없다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본다. 특히 그것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싸이코패스의 전형이라고 본다. 그렇기에 감정적인 것은 부정적이긴 하나 감정이 없는 것에 비해서는 인간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감정적인 이유로 그것을 컨트롤하지 못해 범죄를 일으킨 이들보다 감정을 갖지 않는 이에게 더 큰 불안과 공포를 느낀다. 누군가의 감정적인 화보다 감정없음으로 인한 해가 ‘나’에게 미칠 가능성을 더 크게 보기 때문일까.    비슷한 맥락일지 법조인에게도 감정을 요구한다. 감정없음보다는 감정을 가지고 사건을 들여다보는 것을 기대하고 그것을 ‘공정’의 한 요소로도 여긴다.

  『비밀의 숲』은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관념인가를 알게 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오히려 감정이란 것이 판단을 좌지우지 하는 데 얼마나 깊게 관여하는가를 보여준다. 감정을 관여하는 뇌의 일부가 제거되어 그 기능을 상실한 자가 범인을 잡는 검사일까, 범인 그것도 연쇄살인범일 거라는 생각을 하게끔 하는 지점에서 『비밀의 숲』은 전개되는데 드라마로 방영되어 많은 인기와 호평을 얻고 각종 상을 휩쓴 『비밀의 숲』에서 가장 흥미있는 부분이 주인공 황시목의 이 감정기능의 제거였다. 그리고 이것이 공정한 생각을 하는데 전혀 장애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감정없음은 곧 싸이코패스라던 익숙한 공식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물론, 정확한 의료계의 입장은 모르겠다만.

  감정적으로 휘둘리는 사람들 속에서 사건을 명확히 인지하고 그에 따른 판단을 내리는데 부족함이 없는 캐릭터로 인해 감정과 사고의 적절한 균형이 필요하다라는 뻔한 말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 세상의 온갖 인간관계와 무수한 사연의 연결망에서 침착하고 사리분별을 가지고서 판단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에 황시목처럼 “범인은 잡는 겁니다. 잡아서 뭘 하는 게 아니라.”와 같은 사고로 문제를 처리하는 방식이 타당하게 보인다. 특히나 그토록 힘들게 힘들게 이룬 촛불의 힘이 몇몇 특정한 판사들의 손에서 휘둘리는 한해를 경험하고 나서 이들에게 감정없음을 요구하고 싶어졌다. 이들의 뇌기능을 상실시켜 버릴까보다….

  

우리는 팩트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완전히 묻혀버렸을 때 팩트를 경위님이 직전에 건져냈어요. 그걸 살리느냐 마느냐가 결정하는 건, 지금 당장의 상황이 아니에요. 한여진이란 사람이 지금까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왔는가, 거기 달렸죠.


  특정 판사들의 이름이 연일 실검에 등장하고 또 등장하고 또 등장하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그들이 마치 싸이코패스처럼 굳어진 채로 일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처음이야 힘들었겠지만 그 이후로는 너무나도 당당하고도 뻔한 패턴을 보여주는 것을 보면서 황시목의 저 대사가 어쩜 그리도 맞아 떨어지는가 싶다. 그렇게 스스로도 기존의 상식을 깨고 논리가 모순에 빠지는 채로 판결을 내리는 것이 당장의 상황이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거였다.

  한해를 마감하는 이즈음 문득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인터넷을 오갔는데 이들 법조인들의 이름이 무더기로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씁쓸하다. 그동안 검사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 검사들의 소명의식과 역할에 관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고 각성하는 분위기가 이어졌는데 넘어야 할 산은 무더기였다. 아주 제대로 그동안 다소 간과했던 판사들의 매우 저열한, 권력지향의 ‘인간적인’ 모습을 만나고 있다.


우리 검찰은 그릇된 것을 바로잡는 사정기관으로서, 실패했습니다. 검찰의 가장 본질적 임무에 실패했습니다. 이 실패의 누적물이 이창준 전 검사장이며 우리 모두는 공범입니다.


  검찰도 법원도 언론도 관공서도 모두 저 말에 해당된다. 그들이 해야 할 역할을 하는데 실패했다. 적어도 그 이유가 그들이 가진 감정때문이었음을 부인할 순 없을 것이다. 권력과 재력에 친화적인 감정, 학연과 지연과 혈연에 매달리는 감정, 그들끼리의 세상에서 나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잘 살고자 하는 욕망 가득한 그 감정들. 겨울의 찬기운처럼 세상 사람들에게 감정없음이 보고픈 2018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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