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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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숟가락 세상에서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엘리, 2016.


  천국과 지옥에 관한 기억에 남는 묘사는 두 곳에 긴 숟가락이 있다는 이야기다. 입에 닿지 않는 숟가락 때문에 굶주리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떠먹여 준 곳은 천국이, 여전히 제 입에만 떠 넣으려고 아우성치는 곳은 지옥이 되었다는. 손가락으로 먹으면 안되나, 생각했지만. 이게 중요점은 아니었을 테니.

  「지옥은 신의 부재」역시 신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이 있다는 것부터 증명해, 라고 하면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다. 신이 존재한다면 세트급인 천사, 천국, 지옥 역시 존재한다. 소설에서 지옥은 지상과 큰 차이가 나지 않고 단지 살아 있었을 때 충분히 신을 사랑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한 회오가 큰 벌이 될 뿐인 곳이다. 영원하며 건강한 육체로 회복되기까지 한다. 그러니 선천적 장애를 갖고 태어난 닐은 천국이든 지옥이든 아무 상관없으며 신을 믿지 않는다. 그런 닐이 어떻게 신을 믿게 되었는가.

  지상에 천사가 강림할 때면 행운과 악운을 가져다준다, 고 사람들은 믿는다. 누군가에게는 행운이 누군가에게는 악운이 닥치지만 그에 관한 건 오로지 신의 뜻일 뿐. 닐의 아내, 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라는 천사의 강림 시 사망한다. 어릴 적부터 선천적인 장애를 가진 닐은 신의 뜻―보다 구체적으로는 신의 벌―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고 그런 이유로 다른 이들로부터 따돌림을 받았다. 그런 닐을 사랑해주는 아내가 사라진 고통의 닐에게 장모는 사라의 죽음을 신을 믿지 않는 닐의 탓으로 돌린다. 닐은 “납치범이 아내를 돌려준다는 대가로 사랑을 요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 생각하며 분노를 느끼지만 영원히 사라와 함께 하고픈 닐은 사라를 만날 수 있는 방법은 신을 믿는 것뿐임을 깨닫는다. 사라는 천국에 있으므로. 이제 신을 믿기 위한 닐의 다각도의 노력이 펼쳐진다.


사람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신을 사랑할 수는 없고, 단지 신을 신으로서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만약 당신의 궁극적인 목표가 신을 사랑함으로써 당신의 배우자와 재결합하는 것이라면, 당신은 진정한 신앙심을 보여준 것이 아닙니다.


  ‘신을 신으로서 사랑하라’는 말의 의미를 곱씹어본다. 여기서 ‘맹목성’이 ‘폭력성‘이 느껴진다면 난 천국에 가긴 글러먹은 걸까. ’신으로서’라는 절대성, 모든 것은 신의 뜻이요 신의 의지라는 말은 신을 믿기 위해 닐이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도 주된 화두다. 어떤 이는 “신은 모든 사람이 같은 종류의 시련을 겪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각자가 스스로의 시련을 겪는 것이야말로 신의 의지”라고 얘기한다. 신의 ‘의지’란 도대체 무언가, 보여주려는 것이 무엇인지 무얼 얻고자 함인지 알듯 애매하다. 어떤 시련을 누구에게 줄지 모를 신의 ‘의지’에 휘둘리는 가련한 신의 어린 양들은 신이 준 시련이 벌인지 소명인지 헷갈려한다. 신의 뜻으로부터 메시지를 읽는 사람들의 행태는 각기 다르다.


타락 천사들의 강림은 드물었고 행운도 악운도 가져다주지 않았다. 그들은 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상상 불가능한 자신들만의 일을 수행하면서 인간계를 잠깐 지나갈 뿐이었다. 그들이 나타날 때면 사람들은 질문을 하곤 했다. 당신들은 신의 의지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당신들은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 타락 천사들의 답은 한결같았다. “너희의 일은 너희가 결정하라. 그게 바로 우리가 한 일이다. 너희도 우리처럼 하면 될 것이다.”


  어떤 상황에 대해 명백한 원인과 결과가 성립하는지 알 수 없이 모든 것은 신이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생각 하나만으로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 그렇게 사는 것이 천국이겠구나 싶기도 하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 신의 뜻이니 슬퍼하거나 서러워할 것 없이 그저 행복하고 감사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소설이 아닌 현실에서도 말이다. 어떡하든 천국으로 가기를 행운을 얻기를 바라며 그들의 ‘신의 뜻’을 내세우며 하는 행동들은 이해하기 버겁다. 들여다볼수록 이해할 수 없는 세계. 난 역시 전세계적 전염병 확산 상황에서 벌어지는 종교인들의 결정과 그런 결정으로 이끈 ‘신의 의지’를 이해하지 못하는(이해하기 싫은) 사람일테고 신의 뜻에 영원한 의구심을 품을지언정 그 속에서 행복할 수는 없을 테니.


닐은 자신이 지옥으로 보내진 것이 그가 한 어떤 행위의 결과가 아님을 알고 있다. 그것에는 아무런 이유도 없었고, 고차원의 목적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 있다. 그러나 이런 것들 때문에 신에 대한 닐의 사랑이 줄어드는 일은 없다.


  천사의 강림을 목격한 닐은 차량전복으로 사망한다. 그 순간 천상의 빛을 보며 진정 신을 믿지만……사라와는 영원히 함께 할 수 없다. 진정 신의 구원을 얻을 자격을 얻었건만 신은 닐을 지옥으로 보냈으므로. 천사 강림 시 사형집행중이던 연쇄강간살인범은 천국으로 간 것이 목격된다. 피해자들은 격분하지만 성직자들은 피해자들을 위로하며 말한다. 그건 신의 뜻, 그리고 살인범이 제 인생의 몇 배는 속죄를 했을 거라고….

 「지옥은 신의 부재」는 요즘의 시기에 영화 미드 소마와 같이 생각나는 작품이다. 긴 숟가락이 지배하는 천국과 지옥 세상에서 중요한 건 천국과 지옥 자체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지금, 긴 숟가락이 난무한 이러한 상황에서 여긴 지옥일까 천국일까.

  닐의 지옥에서 신은 없겠지만 닐은 신을 계속 사랑할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닐의 이야기를 들먹이며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무조건적인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라 역설할 지도 모르겠다. 신이 부재하는 곳이 지옥이 아니라 신이 존재하기에 지옥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명백하다는 깨달음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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