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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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수는 광기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마음산책, 2005.


  눈이 온다. 오지 않는다. 그러나 뉴스는 이미 전국적으로 눈이 온다며 들썩인다고 도배된다. 전국 날씨를 검색해보니 지도의 절반 이상에서 쨍쨍한 태양이 빛난다. 실시간 반영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전국의 절반이 눈이 오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눈이 오는 세상이다. 세상의 중심에 비켜선 마을에선 눈을 상상한다.


삶의 의미에 대해서 고민했지만 의미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그런 날이었다. 


  『스밀라 눈에 대한 감각』은 눈에 대한 상상에서 떠올린 소설이다. 이런 책을 읽었지. 두꺼운 북유럽 소설. 북유럽 소설은 러시아 소설만큼이나 두껍다. 러시아는 너무 추운 곳이라 두꺼운 장편 소설이 발달했다고 들은 기억이 있는데 북유럽도 뒤지지 않는 추위를 가지고 있어서인지 읽는 북유럽소설마다 길다. 최근 경장편이라고 해서 짧게 나오는 한국소설과 비교해보면 대하 드라마급이다. 그러고보니 책에 유럽인에 관한 인상적인 문장이 있다.


유럽인에게는 쉬운 설명이 필요하다. 그들은 언제나 모순적인 진실보다는 간단한 거짓말을 선호한다.


  소설에서 인상적인 건 스밀라라는 캐릭터와 함께 펼쳐지는 풍경이다. 가보지 못한 땅의 얼음과 눈을 상상하고 있노라면 마음이 정화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수학에 대한 이야기 역시 소설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인데 심오한 철학적 메시지들이 담긴 듯하지만 쉬이 책장이 넘겨지지는 않았다. 예전부터 느꼈던 생각이 고정되어 갔는데 역시, 수학은 차가운 얼음물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마음속 깊이, 사물을 파악하려는 노력은 맹목성으로 이어지고, 이해하고자 하는 욕망은 타고난 잔인성을 가지고 있어서 진심으로 인식하려는 것을 지워버린다는 것을 안다. 오로지 경험만이 민감하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약하면서도 잔인한지도 모른다. 나는 결코 노력하고자 하는 시도에 저항할 수는 없었다.


  스밀라는 이누이트 출신으로 눈과 수학에 대한 타고난 감각을 가진다. 난 스밀라의 고향 이누이트의 문화에 관한 이야기가 설화같은 느낌으로 다가와 흥미로웠다. 이 책은 스밀라가 이사야라는 소년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파헤치는 스릴러 소설인데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다르다. 사건을 형사처럼 풀이해나가는 방식이 아니다. 모든 것은 소년이 죽은 장소의 눈에 담긴 흔적, 소년이 추락한 곳에 남겨진 눈 위의 발자국에서 느낀 감각, 스밀라의 직관에 의존한다. 어머니의 고향인 그린란드, 아버지의 고향인 덴마크를 오가며 펼치는 스밀라의 삶과 기억들, 추리과정 내내 펼쳐지는 삶과 죽음에 관한 철학적인 사유할 만한 글귀들이 눈과 얼음이란 배경과 맞물려 정서적으로 차분하게 만든다.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은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떠밀리는 사람은 단순하게 산다.


  그래서인지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더딘 속도로 읽게 되지만 다른 추리소설이 사건이 해결되는 과정에서 순간순간의 긴장과 흥분만을 즐기는 것에서 끝나고 무슨 내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 것과는 달리 이 책에 대해선 감각이 남아 있다. 스밀라가 새겨놓은 얼음과 눈에 대한, 삶과 죽음에 대한, 문명에 대한.


무리수는 광기의 형태에요. 무리수는 무한하기 때문이죠. 무리수를 다 적을 수는 없어요. 한계를 넘어선 지점까지 인간 의식을 밀어붙이죠. 유리수와 무리수를 더하면 실수가 되는 거예요.


  무리수는 ‘보편적인 이치에 맞지 않거나 감당하기 어려운 생각 또는 행동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다시 한번 이 단어가 수학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무리수. 무리수가 횡행하는 어느 곳에선가는 눈이 오는 날이다. 눈이 내리고 나면 세상은 그 눈에 의해 깨끗해질까, 정화가 될까. 감춰지고 덮어져 순간은 깨끗해질지 모르나 어쩌면 더욱더 더러워질 것이다. 그렇게 인간의 손과 발이 거쳐가면 말이다. 공기는 깨끗하려나. 뭔가 참 불순물이 끊기듯 끓어오르는데 차가운 공기가 식혀줄지는 모르겠다. 무리수는 광기…광기는 지나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멈춰야 하는 거다. 멈추지 않는 광기가 휘몰아친다.


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냉담해질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긴장할 수는 있겠지만 냉담해질 수는 없다. 삶의 본질은 온기다. 심지어 증오조차도 자연적 목표물위로 풀려났을 때는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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