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수염과 어금니 아빠


푸른 수염, 아멜리 노통브,  열린책들, 2014-09-15.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그 통통튀는 이야기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 작가는 다작하는 작가였고 책을 내는 시기 또한 빨랐다. 그렇게 아멜리 노통브의 책을 제법 읽고 난 후 어느날, 신작에도 무신경해졌다. 대체로 많은 작가들이 자신을 나타내는 문체와 이야기 구조, 소재 등등을 가지고 있기 마련이지만 그래서 어떤 작가는 모든 이야기의 차별성을 찾기 어려운 경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읽고 싶어지는 작가가 있고 그렇지 않은 작가가 있게 된다. 온전히 취향의 문제이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아멜리 노통브는 내  향의 틈바구니에 있는 걸까.

  푸른 수염의 이야기는 여러 버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샤를 페로가 처음 이 작품을 쓴 이후로 수많은 변주가 있었다. 아니, 푸른 수염 자체가 변주다. 이야기의 근원이 전설과 실존 인물에 기초하여 지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샤를 페로가 이야기를 발간한 것이 1697년이니 그 이전에 푸른 수염과 같은 인물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었다. 15세기 프랑스의 질 드레 남작이 유력한 용의자다. 질 드레 남작이 푸른 수염이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역사상 기록된 최초의 연쇄살인범이란 타이틀을 달고 있다. 군인으로 전쟁 후 온갖 엽기적인 행위를 서슴은 푸른 수염의 남자 이야기는 그가 실존인물이라는 데서, 그러니 그가 한 행위가 실제 발생한 것이라는 데서 경악하게 된다.

  푸른 수염으로 창작된 이야기의 변주에서 주목되는 것은 아마 금기에 더 방점을 두고 있는 모양이다.  절대로 “저 방은 열어봐서는 안돼”라고 푸른 수염은, 남편은 말하고 아내들은 어떤 이유로든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문을 열어보고는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성경의 이브처럼 유혹에 못이기는 여성들이 그것 때문인 양 작은 방안에 시체로 걸려 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아내는 도대체 무슨 이유로 죽어야만 했는지, 그때의 빈방은 무슨 이유로 금기가 되었는지가 궁금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고 첫 번째 아내의 행동에 주목한 작품도 있었던 듯하다. 대체로 푸른 수염이 변주가 된다 해도 그 기본틀이 바뀌지 않는데 많은 이들이 푸른 수염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는 요소는 뭘까. 그리고 푸른 수염이 아니라 아내들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아멜리 노통브의 푸른 수염은 한 여자가 월세 광고를 보고 세입자가 되기 위해 면접을 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돈 엘레미리오 니발 이 밀카르라는 주인은 20년째 집밖으로 나오지 않는 계란과 황금에 집착하는 남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 방에 살던 여자 8명이 행방불명되었지만 그 방에 들어가기 위한 여자들의 줄은 길다. <욕실 딸린 40㎡ 크기의 방. 주방 기구 완비된 넓은 주방 자유롭게 사용 가> . 매우 싼 가격이라는 장점 외에 이 방의 주인에 대해 알고 있다면 이 방에서 살고 싶은 이유는 무얼까.

  그리고, 이 소설속 모집 공고는 어금니 아빠의 가출 소녀를 모집하는 공고와 오버랩되었다. 한참 뉴스를 장식하는 어금니 아빠를 보다가 푸른 수염이 떠오른 것은 저 공고 때문이었다. “함께할 동생 구함. 나이 14세부터 20세 아래까지. 개인룸 샤워실 제공. 타투 공부하고 꿈을 찾아라. 개인문제, 가정문제, 학교 문제 상담환영. 기본급 3~개월 기본 60~80. 이후 작업 시 수당 지급.” 이 공고를 보면서 어떤 ‘문제’를 염려하지 않았을까. 사트뤼닌처럼 ‘가출’한 소녀들에게는 그런 문제쯤은 전혀 신경쓸 이유가 되지 않았던 걸까. 푸른 수염의 아내들이 연달아 사라진 것을 알면서도 그 집으로 들어가는 아내들처럼 왜, 푸른 수염의 집으로 발을 들여놓는 것이며 그 방문을 열고 마는 것인지. 이 공고를 보고 찾아간 이들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소설은 짧고 발랄한 20대와 칙칙한 40대의 질의응답이 주를 이룬다. 어쩌면 살인자일지 모르는 남자에게 사랑을 느끼는 여성의 제 궁금증을 알아내기 위한 행동과 물음은 필사적으로 보인다. 절대 그 사람이 그럴 리가 없어를 보장하기 위해 용감무쌍함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에 비해 어쩌면 살인자인, 결국 살인자인 남자는 단지 한마디 ‘방에 들어가지 말라’는 한마디 말만 던져놓은 채 생각보다 무시무시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은 채 귀족임을 내세워 상당히 자상하고 젠틀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금니 아빠가 그러지 않았던가. 온 세상에 대해 자신이 희귀병을 가진 아이를 매우 사랑하고 아끼는 존재로 자신을 포장하는. 그러나 그것은 결국 그들 자신의 ‘취미’ ‘취향’을 위한 포장된 행동일 뿐이었다.

  색채 스펙트럼에 집착이라 말하고 변태행위를 취미로 삼는 돈 엘레미리오처럼 어금니 아빠의 10대 소녀에 대한 집착은 그들 스스로 내세우는 ‘금기’보다 더 ‘금기’되어야 할 사항이다. 어금니 아빠에 대해 사이코 패스라고 프로파일러들이 분석하고 있다. 푸른 수염도 사이코 패스다. 그들이 막무가내로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취향’의 영역에서 마치 정당하다는 듯 사람들을 죽이는 행위들이 오래 시간 동안 푸른 수염으로 대비되어 매력적인 캐릭터로 이미지화되는 것, 현실의 푸른 수렴들이 끊임없이 속출되고 있기에 더욱 끔찍하다. 현재로선 어금니 아빠의 아내와 어린 소녀 이외 다른 아내들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사트뤼닌처럼 동화되어 버린 어금니 아빠의 딸이 ‘금’으로 변하기 전에 얼른 푸른 수염 어금니 아빠가 행한 현실적인 공포가 딸에게 명확히 인식되었으면 좋겠다. 그 자신이 한 일까지도 말이다.

  푸른 수염의 결말이 소설적으로 입혀진 것은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아멜리 노통브의 소설 『푸른 수염』은 어금니 아빠라는 이미지로 대체되어 버렸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게, 월세 공고를 통해 욕망의 대상물을 구하는 푸른 수염의 행동이 똑같았던지.....사트뤼닌처럼 그 자신 명백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기를 바랐건만 사트뤼닌은 잠시 통통튀는 목소리만으로만 남았다. 결국 제 욕망을 따르는 일에 집착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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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6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금니 아빠‘ 기사를 보면 인간에 대한 환멸이 느껴집니다. 님의 말씀대로 ‘푸른 수염~‘ 버전은 다양한 것 같아요. 그 만큼 소설가 들에게는 좋은 소재이기도 하고.. 저는 하성란의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라는 소설집을 인상깊게 읽었습니다.

모시빛 2017-10-17 19:35   좋아요 0 | URL
푸른 수염을 쓰면서 저도 푸른 수염의 첫번째 아내가 제일 먼저 떠올랐는데요...근데 당최 내용이 기억나지 않더군요.^^::: 제목만 각인되어 있고 세월이 지났다고 까마득하게..이래서 책을 읽은 후 리뷰를 쓰는 일이 필요한가 봅니다. 새삼 열심히 써야지란 생각이 언뜻 들기도 하고 sprenown님이 인상깊다고 하니 ‘첫번째 아내‘를 다시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sprenown 2017-10-17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굳이 읽지 않으셔도, 비슷한 맥락일 겁니다. 푸른수염과 결혼한 여자. 오동나무 장.푸른 수염이 호모였다는 ..이런 지저분한 얘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