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울었던가


아주, 조금 울었다 - 비로소 혼자가 된 시간, 

권미선, 허밍버드, 2017-07-15.


      아예 울지 않는다면 모를까.

  조금 운다는 건 힘들어져간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렇다. 혼자 울 장소를 찾는 일도 어렵다. 울지 않아야 할 일을 찾는 것도 어렵다. 울자고 들면 한없이 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우는 일이 이토록 어려운 일이 된다는 건 누구 말마따나 바빠서, 일까. 바빠서 울 틈이 없다는 자조적인 말을 들었던가, 했던가. 울음이 허락되지 않는 시간에 살고 있다는 건 시선이 직선이어서일지 모른다. 그러면 울 일도 없다가 더 적절한 말이 되려나. 울음을 우는 일보다 냉소나 분노하는 일이 더 잦아져간다.

  조금, 울었던가. 그래서 조금만 울 수밖에 없었던가. 안구건조증과 눈물 흘리는 일은 상관없는데도 눈물없음을 안구건조증 탓으로 돌리며 건조한 일상을 받아들인다. 사실은 우는 것은 하고픈 일이 아닌 것인지도.

  15년 꼬박 글을 써왔다는 라디오 작가의 에세이집은 내일로 가는 새벽녘, 덜컹거리는 창문이 전하는 바람과 함께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같다. 운문 형태의 책은 그 여백을 감성으로 채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도 내렸고 쌀쌀해지는데 감성을 함빡 머금어도 좋을 듯하다. 저자가 써내려간 다섯 장의 혼자가 된 시간의 이야기는 한번이라도 품었을 이야기라 공감의 여지가 있다. 다만 연인과의 이별 후의 감정쪽에 무게가 실려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뜻 보면 이별후의 감성이 책 전반을 채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립고, 미안하고, 외롭고, 보고 싶은 날들의 이야기. 더불어 시를 쓰고 싶어지게 한다. 감성이란 온갖 건조함을 뚫을 수 있는 힘일 수 있겠다. 그것이 글이든, 글을 통한 지난날 회상이든 우리는 모두 삶에서 위로받고 싶은 순간이 있기에.


세상에는 그런 일들이 있어.

엇비슷한 경험도 해 본 적이 없는 일들.

그래서 짐작은 하지만 완전히 공감할 수 없을 일들.

얼마나 슬플까, 얼마나 아플까, 느끼려고 노력할 뿐이지,

본인이 겪어 보기 전까지는 전혀, 똑같이 알 수 없는 일들.


우리는 우리가 겪어 본 만큼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아파하고, 더 많이 슬퍼하게 되니까.


그래서 아무 말 없이 오래 같이 우는 사람은

아마도 비슷한 아픔이 있는 사람들일 거야.

- 오래 우는 사람

  

  그래서 오래 울 수 있을까. 비로소 지난 경험을 그 마음을 기억하며 여전히 사그라지지 못한 그 감정들을 다 뽑아내기 위해 새로 뜯은 휴지가 모자랄 정도로 울 수 있을까. 어느 것에도 무엇에도 무뎌져 내가 너무 악해졌나, 너무 신경질적이 되었나 생각지 않을 수 있도록 물기를 내뿜을 수 있을까. 밤이 지나 아침이면 지난밤의 글이 마음을 어지럽게, 쑥스럽게 할지라도.

  오랜 시간이 흐른 뒤의 모래시계는 마모되어 시간을 삐끗한다. 급격히 변해가는 세상에서 한번쯤 삐끗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일인 것처럼 살아간다.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로 인해 오는 힘겨움이 더 크다는 것을 알아가는 시간. 더없이 마모되는 것이 사람들과 관계하는 일의 흔적이라는 것을, 시간의 마찰을 이겨내는 일이 살아감이라는 것을. 마냥 주절주절거리는 기분이 드는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이다.


그거 마찰 때문이야.

모래 알갱이들이 서로 부딪쳐서 깎인 거지.

시간이 갈수록 알갱이는 작아지고, 통로는 넓어지고,

그래서 빨리 떨어지는 거야.


난 모래시계를 들여다보다가,

문득, 우리 인생의 시간들도

모래시계 속의 모래 알갱이 같다는 생각을 했지.

점점 빨리 떨어져 내리는 것 같거든.

-모래시계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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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enown 2017-10-14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많이 울지는 마세요...아주, 조금만 우세요.

모시빛 2017-10-15 23:50   좋아요 1 | URL
밤이 지나 아침이 되면 지난밤 왜 그랬던가, 진짜 좀 울게 되네요 ㅎㅎㅎ

sprenown 2017-10-16 08: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래 울지는 마세요..한 방울만.ㅎㅎ, 힘찬 한주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