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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읽는다는 것은 - 테리 이글턴의 아주 특별한 문학 강의
테리 이글턴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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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식사를 하는 법


  따스한 봄이다. 바람이 시원하게 그러나 조용히 불고 있다. 저 멀리 아이들과 사람들이 활기차게 떠드는 소리들이 들린다. 그리고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들도 잔잔히 들린다. 속도를 높여 지나가는 자동차 경적마저도 볼륨을 낮춘 배경음악으로 들린다. 나는 화알짝 핀 벚꽃나무 아래서 얘기를 듣고 있다. 강의를 듣고 있다. 아니, 나무 아래가 아니어도 좋다. 답답한 강의실이어도 상관없다. 밥시간을 넘긴 상태라도 좋다. 노교수님의 강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숨이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숨을 안 쉬는 줄도 모른 채 강의에 빠져 있다. 문학이론 강의가 봄날 만개한 벚꽃처럼 따사로울 수 있구나. 마지막 한 장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있구나.

  이런 강의라면 새벽이라도 한밤중이라도 꼿꼿하게 들을 수 있겠다. 흥미롭고 의미 있으며 무엇보다 쉽다. 테리 이글턴은 문학이론에 대해, 비평을 한다는 것에 어렵지 않게 접근하며 자연스레 그 방식에 몰입하게 한다. 테리 이글턴이 누구던가. 세상에, 마르크스주의 비평의 대가아닌가. 마르크스주의에 대해서라면 그 이론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개념과 용어의 이해의 문제로 일단 한발짝 물러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테리 이글턴의 문학이론서를 읽기 전엔 준비, 땅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편안한 문체와 쉬운 설명으로 저자의 책뿐만 아니라 문학을 읽는다는 즐거움이 배가가 되었다.

 문학을 읽는 방법은 다양하다. 어쩌면 생각없이 읽기도 한다. 그러나 책을 읽고 나면 대부분 한마디로 말하거나 한마디만 하기를 요청받는다. “재밌어?” 그 말 외에 다른 말을 하고 싶지만 들어주는 이가 없고 들어주는 이가 있을 땐 그의 목적은 분명하다. “그래서, 결론은?”

  ‘재미있다, 없다’의 결론을 내기 위해 우리는 문학책을 읽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재미있는 이유와 재미없는 이유를 ‘말하고 싶은데’ 결론과 줄거리만 말하라하니 의도와는 다른 형태로 귀결되어 버린다. 문학을 읽는다는 즐거움, 설렘이 한 단어 속에 묻히고 마는 것, 판매부수 속에 감춰지고 마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더 나아가 나의 문학을 읽는 방식이 단순해서 반대로 갈피없이 제각각이라서 재미를 놓친다면 그것 또한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어쩜, 저자의 말대로 어조와 분위기, 속도, 장르, 구문, 문법, 문장구성, 리듬, 서사 구조, 구두점, 다의성과 같은 “형식”적인 요소에 대한 주의 깊은 독서에 대한 욕구가 있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함께 이끌어갈 누군가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도 하다.

  형식에 대해서조 주의깊은 독서가 필요하다고 하는 저자는 도입부, 인물, 서사, 해석, 가치로 나누어 문학을 읽는 방법에 대해 얘기한다. 텍스트에 대한 해석이 옳고 그름과 정답이 없는 것이므로 자신 또한 거침없이 여러 비평을 했고 어떤 경우에는, 토머스 하디의 『무명의 주드』의 경우에는, 여주인공이 명예훼손으로 고소할 지도 모른다고까지 한다. 하지만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인지 저자의 해석들은 끌어당기는 힘이 있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감탄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접근할 수 있구나, 여기에 어떻게 대응하지? 이런 식으로 읽는다면 모든 책들이 지루할 틈없이 환상의 롤러코스트를 타는 기분이겠다.

 기분은 환상의 롤러코스트를 타겠지만, 저자는 문학을 읽는 것은 섬세한 읽기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섬세한 감식력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즐겁게 읽는 것은 실제 작품을 자의적으로 난도질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생각없이, 이유없이 오독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작품이 문장이 가진 아이러니를 잘 감별해 내고 의미를 표현하는 형식적인 방법을 잘 감별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냥 동떨어진 해석으로 홀로이 즐겁다고 깔깔깔 거리는 것과는 명백히 구분해야 한다.

  그래서 도입부를 읽을 땐 어조나 구문, 아니러니, 상징, 리듬 등등에 더욱 주의해서 살펴보고 인물들이 지닌 성격, “캐릭터”의 특성을 잘 감지해야 한다. 인물에 감정이입하여 인물에 빠지는 경우도 있지만 적당한 거리도 필요하다. 한 작품 속엔 다양한 인물들이 그만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있으니 말이다. 해석이라는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문학작품의 해석은 텍스트의 의미에 입각해서 이끌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의미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역사’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마도 이것은 책을 처음 읽었을 때와 두세번 읽었을 때 해석이 달랐던 경험을 통해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자는 문학을 읽는 것에 대해 ‘가치’에 대해 말한다. 위대한 가치를 지닌 작품은 무엇이며 불변의 가치라는 것이 있는가? 그에 대해 어떤 비평가는 독창성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여러 면에서 의혹을 제기하기 충분하다. 일단 새롭다는 것이 무조건 가치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 또 어떤 비평가는 문학적 고전을 변함없는 가치를 지닌 작품이라기보다 세월이 흐르면서 의미를 산출할 수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어쨌든 누군가가 위대한 작품이라고 평가를 한다면 그것은 실제적이기보다는 명목상의 판단에 가까운 것이다. 또한 문학작품을 즐기는 것과 경탄하는 것은 다르다는 점에서 즐거움을 가치로 삼는다면 가치에 대한 견해는 또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렇듯 가치에 대한 부분도 어쩌면 상대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분명한 것은 탁월함으로 간주되는 것을 결정하는 데에는 기준이 있다는 점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 기준은 공적인 것이고 개인의 우연적인 사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기준이란 가치를 판단하는 방법에 대한 지침이며 아마도 이 기준을 배우기 위해 다양한 경험과 실질적 지식이 필요하다. 그것은 많은 책을 읽으며 거듭 문학 비평을 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

  문학을 어떻게 읽을 지에 대해 원론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나 아마도 기본적인 것에 그 중요성이 있는 것처럼 제일 중요한 것을 알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방법대로 실제 작품을 분석하여 예를 들고 있는데 이론과 실제가 잘 조화되어 영양도 골고루 갖추고 맛도 탁월하며 식감도 좋은 아주 풍부한 식사를 한 느낌이다. 저자가 사례를 든 책들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놓친 것이 무엇이었나를 섬세한 감식력으로 쫓아가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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