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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평점 :
독자라서 서평
당선, 합격, 계급, 장강명, 민음사, 2018.
공채제도가 한국사회에만 있는 제도였나? 아무튼 이 책은 한국사회에 있는 수많은 공채제도 중에서 특히 문학공모전에 관한 르포다. 저자는 ‘공채라는 특이한 제도, ‘간판’에 대한 집착, 서열 문화, 그리고 기회를 주기 위해 기획된 시스템이 어떻게 좌절을 낳게 됐는지에 대해 쓰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문학공모전에 중점을 두고 공채제도가 가지는 현실의 문제와 대안에 대해 다루고 있다. 관련 종사자들의 인터뷰와 자료를 풍부하게 조사하여 다양한 사례를 든 취재 형태로 작가가 전직 기자라는 점이 소설보다 확실히 느끼게 한다.
장강명은 문학계 공채제도의 혜택을 많이 받은 작가다. 많은 문학상 수상작가라는 타이틀과 기자전력 사회현실을 다루는 소재들을 글로 녹여냄으로써 스타작가가 되었다. 그래서 또한 그런 작가가 기본적으로 문학 공채제도에 대하여 부정적인 전제를 두고서 다루는 취재기는 어떤 흥미진진함과 통찰이 있을까, 기대되었다. 그런데, 오히려 이 책을 통해 공채라는 시스템이 누군가에게는 희망이기도 했음을 좀더 느끼게 되었다는 아이러니.
미국의 사회학자 토비 허프는 서양에서 근대 과학이 발전하고 동양에서는 그러지 못한 것을 인재 평가 방식의 차이에서 찾는다. 동양에서는 국가나 스승이 젊은이들의 능력을 평가했다. 그런 사회에서는 젊은이들이 선배들이 세운 기준을 충실히 다르게 된다. 반면 유럽의 대학에서는 일찍부터 논쟁과 토론이 발전했고 이는 체계적인 회의론으로 이어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식 공개채용 제도가 과연 불합리한 제도일까. 세상에 완벽한 시스템은 없으니 어떤 시스템이라도 문제가 존재한다. 생각해보면 공개채용은 한국에서 가장 비리가 없는 제도라고 인식된다. 문제은행식 시험이든 어쨌든 공평하게 문제를 풀고 맞은 개수에 의해 합격이 가려지는 이 방법에 대해 특별히 불편부당한 제도라고 하지 않고 오랜 세월 흘러왔다는 것은, 그만큼 사람이 개입되는 모든 것을 믿지 못하는 한국사회의 문화가 더 크게 작용하고 있다. 한국 문화 자체가 공채제도 이외의 다른 평가방식을 감당할 여건이 미흡한 것도 같다. 미국 사회학자 토비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다.
저자는 공채제도가 사회적 계급을 형성한다고 지적한다. 공채제도의 지나친 경쟁은 합격은 곧 간판을 얻는 것, 권력을 얻는 것과 같게 된다. 합격자간 군대와 같은 기수문화 형성으로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구조가 형성됨은 물론이다. 반대로 불합격한 이들은 열등감과 패배의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공채제도가 아닌 다른 형태의 채용 시스템은, 어떤 장단점이 있는가에 관한 진지한 취재가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서양에서 주로 이루는 심층면접과 추천에 의한 채용제도의 한국 적용이 공채제도를 뛰어넘는 대안이 되리란 보장은 없다. 오히려 이러한 제도가 더욱 암울해 보인다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보면 알 수 있다.
주로 다루는 것이 문학상이니 문학상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문학상 출신 저자는 이 문학상제도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다. 또한 많은 문학상 지망자들이 문학상 제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것으로, 그러면서도 다른 길이 없기에 문학상에 도전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른 길이 없다는 의미는 자기 책을 낼 기회를 말한다. 가장 쉽고 빠르게 자신의 책을 낼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장편문학상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장강명처럼 여러 공모전에 도전하는 기출간 작가들이 늘었고 거대 상금을 내건 공모전 또한 폐지되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공모전 제도에 대한 대안으로 다른 형태의 책출간 방식을 이야기한다. 몇 개월 사이 5권의 책을 출간한 인기작가, 김동식 작가의 예를 든다.
김민섭 작가는 김동식 작가가 왜 잘 돼야 하는지를 설명했다고 한다.
“소수 심사위원들의 눈에 들어 ○○문학상이라는 간판을 달고 작가가 되는 일, 그러한 제도권의 선택이 아닌 독자들이 만들어 낸 작가라는 것‘도’ 가능한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고, 여러분은 거기에 동참했고 그 증거가 지금 여기 앉아 있다고, 했다.”
‘왜 잘 돼야 하는지’에 대한 김민섭 작가의 김동식 작가의 사례에 대한 의견은 참고할 만하지만 한편에서 바라보면 ‘소수의 권력자’에 의해 간판을 달고 작가가 된 사례에 다름 아니다. 단지 특정 커뮤니티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게시판 이용자들과 교감하며 쓴 글들을 책으로 엮은 줄 알았더니, 거기엔 김민섭 작가의 적극적인 역할과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명한 간판을 단 이의 적극적인 마케팅에 힘입은 바와 심사위원의 심사를 통한 문학상과 차이는 있지만 또한 어떤 차이가 있는가, 그런 의문이 든다. 소수라고 하지만 심사위원은 차라리 복수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나는 젊은 한국 신인 소설가 두 사람이 책을 내고 독자를 만난 과정에 의미시장한 공통점, 보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공통의 결핍 지점’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독서 공동체다. 김동식, 또는 이진이라는 신인 작가의 신간 한국 소설이 나왔는데 읽어보니 준수하더라, 또는 보통이더라, 또는 시원찮더라는 이야기가 오가는 공간. ‘우리 작가’라며 무조건적으로 열광하지도, 미등단 작가(또는 문단 작가)라며 외면하지도 않는 공간. 두 작가의 작품을 비교하면 어떤지, 지난달, 지난해에 나온 다른 신인 작가의 작품에 비하면 어떤지 토론하는 공간. 그러다 적절한 맥락에서 호시 신이치와 프레드릭 브라운과 역대 수림문학상 수상자들의 이름과 작품이 언급되는 공간. 그런 대화와 평판이 계속해서 쌓여 가는 공간. 그래서 예비 독자에게 정보를 주고,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공간.
취향없이 흥미와 재미를 느끼기도 전에 공부로 길들여진 독서,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보며 읽는 책, 누군가 유명한 이가 읽거나 추천하는 책들을 읽는데 적극적인 독서 시장과, 독자들. 길들여진 한국사회의 ‘독서’의 세계인데 저자는 독자의 몫이라 말한다. 어떤 형태로든 서평을 쓰라고 말한다. 독자들이 더 많이 책을 읽고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와 수준을 가져야 한다는 것, 책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의 필요성을 이야기한다. 맞는 말인 듯한데 몹시도 허무하게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