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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쓸모 - 21세기 프랑스 대표적 지성의 문학을 대하는 현대적 방식
앙투안 콩파뇽 지음, 김병욱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4월
평점 :
돈, 돈, 돈
문학의 쓸모 La litterature, ca paye
앙투안 콩파뇽 ,김병욱 (옮긴이), 뮤진트리, 2025-04-17.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시인 박인환(1926~1956)이 <목마와 숙녀>에서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라고 한 지 70년이 흘렀다. 종이 활자보다는 영상 시대, 그 영상에서도 쇼츠가 더욱 흥행하는 시대, 문학은 완전히 끊어지지는 않아서 어느 새는 흥했다가 또 어느 때는 존재감이 없는 듯하게, 오래도록 그 쓸모가 다해 가는 듯해도 가늘게 이어지고 있다.
문득문득 내 존재의 쓸모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될 때가 있다. 세상에 내 쓸모를 증명하는 일들이 버겁게 여겨지기도 하는데 그 쓸모의 몇 할은 ’문학‘에서 얻어오고 있다. 이 사회에서 쓸모의 기준이 되는 ’일‘, ’어느 정도의 돈벌이를 하는가‘가 아니라 문학에 내 쓸모를 빗대는 일, 아니 어쩌면 존재를 찾는 일은 가련하게 여겨지기도 한다. 미운 오리 새끼의 그것처럼 애달프고 멋쩍기도 한. ’돈이 되는지‘를 ’돈이 되지 않는‘ 것의 대표인 문학으로 말하는 것, 발버둥 같기도 하지만 인생을 살리는 방법인 것도 같다.
이 책은 형이상학적 논리로 전개되리라는 생각을 뒤집고 ’문학은 돈이 되는가‘로 시작한다. 이런, 원제가 “La litterature, ca paye!”란다. ’시는 수익성이 가장 높은 예술이다‘가 책의 첫 소제목으로 흥미를 돋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셈만 알고 이야기를 할 줄 모른다면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고, 아무것도 설득할 수 없다”. 문학의 쓸모는 다른 ’셈‘이다.
문학이 탐구하고 가르칠 수 있는 건 그리 많지는 않으나,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말하자면, 가까운 이웃과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 크고 작은 사물들에 가치를 부여하는 방식, 삶의 균형을, 삶에서 사랑의 자리라든가, 그 힘과 리듬을, 또한 죽음의 자리를 찾는 그 방식, 그밖에 다른 일들, 냉혹함, 연민, 슬픔, 아이러니, 유머 등, 필요하지만 어려운 일들을 생각하거나 생각하지 않는 그 방식 등.
*이탈로 칼비노 ‘사자의 골수‘, 1955년
문학이란 건 작가에게 ’돈‘이 되지도 독자에게도 ’시간을 낭비하는‘ 무용한 일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고, 수많은 사람들이 특히 순수문학을 덜 열광한다. 활자는 사람들에게 독인 듯, 시간낭비인 듯 여겨지고 있다. 사람들은 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 줄 수 있는 이야기에 열광한다. 무용함의 대표적인 책으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거론되고 있어, 마구 옹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다.
한편에 프루스트와 소파, 졸음, 낮잠, 예술을 위한 예술, 고치 속의 삶이 있다. 다른 편에 카버, 셀린, 거리, 분주한 삶. 문제의 ’정서적 지하철‘이 있다. 카버나 셀린을 읽는 게 프루스트를 읽는 것보다 더 많이 남는다. 돈을 더 빨리 벌 수 있고 투자금 회수도 더 빠른 것이다.
시간낭비. 수익을 중요시하는 자본주의 시대에 쓸모없는 문제작인 문학. 문학은 왜 필요한가. 일부 문학으로 ’돈‘을 버는 이들이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해당하지 않는다. 문학은 오래도록 실용적인 학문과 비교해 경쟁이 밀리고 밀려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문학‘은 전면에 드러내지도 않은 채로 현재 교육현장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문학적 소양‘을 요구하고 있다. 성공적인 주식투자 방법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보다 스토리를 갖춘 이야기가 먹혀들고, 권력을 쥐고픈 정치인들이나 타인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픈 사람들의 말과 태도에서 사람들은 ’문학적 소양‘을 찾는다. 어느 분야에서건 문학적 소양을 찾고 있으니 ’문학‘은 유용함이란 쓸모를 보여주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문학 자체는 외면하면서 또한 요구하는 현실 속에서 문학이 어떻게 시대에 맞게 유용함을 보여줄 수 있는가가,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이다.
글을 아는 사람은 자기 삶의 저자다. 문학과 독서, 둘의 응집체인 문학적 소양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들에게 늘 보상을 안겨준다. “그것은 이득을 늦게 보는, 하지만 아주 큰 이득을 보게 해주는 투자다.”
영상으로 인해 문자는 사라질 것처럼만 보였지만 다양한 플랫폼의 발전과 함께 SNS에서는 ’자기 이야기‘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물론, ’내 이야기만 하기‘로 흘러가기도 하지만, 어떡하든 기록을 남기려고 하는 이들이 생겨난다면 문학은 오래도록 그 쓸모를 이어가고 있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