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 종교를 보는 새로운 시각, 심층종교에 대한 두 종교학자의 대담
오강남.성해영 지음 / 북성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비교종교학자 오강남 교수와과 성혜영 교수의 대담집이다. 대담집이라고는 하는데, 둘 사이는 스승과 제자사이로 그냥 대담집이라기 보다는 인터뷰집 같은 느낌이 크다. 아무래도 오강남 교수가 주되게 말하고, 성혜영 교수는 매번 공감한다는 말과 함께 부연설명을 덧붙히는 식이다. 그래서 다소 지루한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크게 지루한 감은 없었지만, 다름 사람들은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 대담집에서 말하려는 건 역시 "깨달음"이다.  이 두 비교종교학자에 의하면, 종교는 표층종교와 심층종교로 나뉜다고 하였다. 한마디로 표층종교는 껍질에 불과하고, 표층에 머무르는 종교인들은 상당부분 문자주의,율법주의,근본주의 적이라고 한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는 경우다.  그리고 심층적 차원이란 것은 모든 종교에 얇든 두껍게 형성이 되어 있든 존재한다고 하는데, 이 차원에 있어서는 모든 종교가 같을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보자면, 흔히들 말하는 목표하는 지점을 같지만, 다만 가는 길이 다를뿐... 이라는 것이다.  (이 대담집의 두교수도 깨달음의 경지에 갔다고는 생각되지 않고,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므로)약간 갸우뚱거릴 수 밖에 없긴 하지만, 여러 깨달은 자라고 생각되는 이들을 보면 유사한 것 같기는 하다.  그리고 이러한 깨달음은 점진적인 수행없이도 도달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도덕적인 수행이라고 한다. 심층적차원에 도달했다 하여도, 도덕적 수행없이 간 경우에는 반사회적인 윤리적 행위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물론 깨달은 사람들이 우리의 윤리에서는 납득할 수 없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일때도 있지만).

그래서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라는 불교 수행 과정에 대한 논쟁은 돈오점수가 더 맞지 않을까 싶다.

물론 계속 반복하는 것이지만, 내가 깨달음에 도달했던 이도 아니며, 수행자도 아니므로 확신할 수는 없다. 

 

   다양한 종교의 부딪침이 강해지고있고, 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그 다종교들(압도적인 종교가 있기는 하지만)이 존재 하므로, 종교적 상식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읽지만 이런 종교학자들의 글을 읽을때 마다, 간혹 드는 의문이, 이들이 다 覺者라고 할수는 없을텐데, 그들의 말을 믿어도 좋을까? 나도 수행 과정에도 들지 못했는데 과연 이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는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붓다를 죽인 부처 - 깨달음의 탄생과 혁명적 지성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불교.  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이다.   중세의 유럽에서 사람들은 기독교 왕국을 꿈꾸었듯이 이 땅에서는 불국토라 하여 불교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불교가 외래종교이긴 하지만, 그만큼 한반도에 남긴 흔적들이 적지 않다. 비록 고려대 이후로 교세가 예전만은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불교를 어린시절 나는 외면해 왔다. 뭐 특별히 관심이 없었을 따름이지만, 불교를 할머니들이 믿는 그런 종교, 따분한 것 등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종교로서의 접촉이라기 보다는 붓다라는 거대한 사상가(?)의 가르침에 흥미가 느껴져 다가선 것이 불교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는데 큰 기여를 했다.  불교가 생각보다 만만한 종교가 아니였던 것이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던 불교의 편견이란 것은  비불교적인 한국불교에 기인한게 크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한국불교에는 비불교적인 것이 넘친다!

 

어떤 것이 비불교적인 것인가?

 

 첫째, 영험한 기도발을 믿고, 아이들이 무한경쟁에서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경쟁에서 이기기를 빌며, 100일 기도를 드리는 기복행위다. 붓다는 방편으로서 신통력을 이용한 바가 있으나, 그렇다고 그런 신통력을 가르침의 핵심으로 삼지 않았다. 

 

 둘째, 불자의 대부분이 여성들인 이 상황에서, 아직까지도 변성불성론이니, 여성불성론이니 하는 여성차별주의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승가는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으므로, 세속에서의 경제적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계속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수행 공동체로서의 존경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런탓에 아무리 어느 누구에게도 깨달음의 길이 열려 있다는 혁명적인 가르침을 주는 붓다라도 당시의 시대적 한계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다.  오늘날에서도 계속 그런 가르침을 고수한다면, 승가에 대한 존경은 잃을 수 밖에 없다.

 

셋째,  한국불교의 주요한 성격으로 거론되는 호국불교 등이다. 부처의 제자들라는 사람들이 살생을 옹호한다?   대승불교의 여섯가지의 실천덕목에 지계란 것이 있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런 계율에서 첫번째로 나오는 것이 불살생의 계다.   

 

 이렇게 한국불교에는 문제점이 분명히 있다.  저자는 마지막 결론에서 현재의 한국불교, 종단불교에 미래는 없다고 한다.  솔직히 지금의 한국불교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내부의 일은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들어난 것을 봐서는, 2000년 전의 붓다가 힌두교 사이에서 나왔던 것처럼 할 수 없다면 가망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현재 원전번역이 활발해지고, 붓다의 원음에 가까운 가르침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뭔가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지한 한 중생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다만 그래도 혼탁한 세상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청정한 승가가 있는 것도 좋지 않나 싶어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조선의 9급 관원들 - 하찮으나 존엄한 너머의 역사책 6
김인호 지음 / 너머북스 / 201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그대로 조선의 하급직, 9급관원들의 이야기를 실록에서 뽑아 정리한 것이다.   <조선 전문가의 일생>과도 겹치는 부분이 있지만, 반 이상은 새롭게 얻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었다.  소유, 중금, 금루관, 갑사, 마의, 목자, 조졸등...  마지막에는 이게 관원들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인지 긴가민가 했지만.

 

이렇게 소개한 직업의 이들은 조선의 밑을 받치고 있는 이들이었다.  왕과 양반관리들은 이들을 착취했고, 핍박했다.  시대적 한계라고 치더라도 절로 연민이 가는 삶이다.  그들이 열심히 살아갔기에 조선이란 나라가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을 테지만...

 

새로운 지식을 얻은 것이기에 즐겁기는 했지만,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았다. 실록에만 의존해서 그런지 자료가 더 부족해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록이 거의 남지 않은 그들의 이야기를 실록에서 찾아서 이렇게 정리한 것도 분명히 대단한 것이지만, 아무래도 독자입장에서는  만족하지는 못하지 않겠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역사용어 바로쓰기
박명림, 서중석 외 지음 / 역사비평사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6년 9월 쯤에 구입했으니,  5년 넘게 묵혀두다가 오늘에서야 다 읽었다.  그리 어려운 내용들로만 채워진 것은 아닌데, 이렇게 늦게 읽었으니, 참 이런 게으름뱅이도 없다 싶다. 

 

 이책은 계간지 <역사비평>에서 기획연재된 것을 묶어서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여러 학자들이 글을 썼기 때문에 글의 길이나 깊이는 편차가 있고,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동의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40편의 글이 실렸는데, 기본적으로 나의 공부가 없기 때문에 그냥 그렇구나 하면서 배우면서 읽었다.  물론 간혹 나의 관심사에서 좀 먼 이야기라던가, 내심 이건 아닌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글이 한 편 정도는 있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드는 생각이었는데, 정말 역사'용어'를 바로잡는 건 아주 필요한 일이라는 것.  이름짓기는 결국 이름 붙혀지는 어떤 것에 대한 성격의 규정인데, 그냥 단순히 이름 짓기가 아니라 어떤 이에게는 고통이 될 수도 있는 아주 현실적인 힘을 가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후속 작업으로 책이 더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약간은 아쉬운 부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퀴르발 남작의 성
최제훈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0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제훈의 단편집이다.  왠지 모르게 박민규가 연상이 되는데, 다른 것보다는 환상적인 분위기가 감돌아서 그런지 모르겠다. 무엇보다도 재기발랄한 느낌이 들게 하는 단편들이다.   특히 <셜록 홈즈의 숨겨진 사건>,<마녀의 스테레오타입에 대한 고찰>에서 그런 점을 느낀 것 같다.  아무래도 홈즈를 좋아하는 편에 속하니까 재미있게 볼수도 있었던 것이고. 괴물을 위한 변명은 소설 <프랑켄슈타인>을 읽지 않았으니,  어떤 부분을 뒤틀고 이야기 한건지 감이 안오니 다소 나에에게는 평범했다. 

 

 그외에의 단편에서는 다소 지루한 감이 크고, 무슨 소리인지 모르니 그냥 넘어갔다.(지루해도 읽히기는 잘 읽히는 기묘한 상황이...) 그렇게 나에게 있어 크게 주목할만한 단편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최제훈이라는 작가를 알게 해준 단편집이었던 것 같다.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는 야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