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를 죽인 부처 - 깨달음의 탄생과 혁명적 지성
박노자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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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교.  말 그대로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이다.   중세의 유럽에서 사람들은 기독교 왕국을 꿈꾸었듯이 이 땅에서는 불국토라 하여 불교의 나라를 만들고자 했다.  불교가 외래종교이긴 하지만, 그만큼 한반도에 남긴 흔적들이 적지 않다. 비록 고려대 이후로 교세가 예전만은 못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런 불교를 어린시절 나는 외면해 왔다. 뭐 특별히 관심이 없었을 따름이지만, 불교를 할머니들이 믿는 그런 종교, 따분한 것 등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종교로서의 접촉이라기 보다는 붓다라는 거대한 사상가(?)의 가르침에 흥미가 느껴져 다가선 것이 불교에 대한 선입견을 바꾸는데 큰 기여를 했다.  불교가 생각보다 만만한 종교가 아니였던 것이다. 다만 내가 가지고 있던 불교의 편견이란 것은  비불교적인 한국불교에 기인한게 크다.  그것은 저자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한국불교에는 비불교적인 것이 넘친다!

 

어떤 것이 비불교적인 것인가?

 

 첫째, 영험한 기도발을 믿고, 아이들이 무한경쟁에서 다른 아이들을 제치고 경쟁에서 이기기를 빌며, 100일 기도를 드리는 기복행위다. 붓다는 방편으로서 신통력을 이용한 바가 있으나, 그렇다고 그런 신통력을 가르침의 핵심으로 삼지 않았다. 

 

 둘째, 불자의 대부분이 여성들인 이 상황에서, 아직까지도 변성불성론이니, 여성불성론이니 하는 여성차별주의적 이야기를 하고 있다.  승가는 스스로 경제활동을 할 수가 없으므로, 세속에서의 경제적지원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계속 지원을 얻기 위해서는 수행 공동체로서의 존경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런탓에 아무리 어느 누구에게도 깨달음의 길이 열려 있다는 혁명적인 가르침을 주는 붓다라도 당시의 시대적 한계에 따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때의 일이다.  오늘날에서도 계속 그런 가르침을 고수한다면, 승가에 대한 존경은 잃을 수 밖에 없다.

 

셋째,  한국불교의 주요한 성격으로 거론되는 호국불교 등이다. 부처의 제자들라는 사람들이 살생을 옹호한다?   대승불교의 여섯가지의 실천덕목에 지계란 것이 있다. 계율을 지킨다는 것이다.  그런 계율에서 첫번째로 나오는 것이 불살생의 계다.   

 

 이렇게 한국불교에는 문제점이 분명히 있다.  저자는 마지막 결론에서 현재의 한국불교, 종단불교에 미래는 없다고 한다.  솔직히 지금의 한국불교 문제점이 많아 보인다.  내부의 일은 알 수 없지만, 겉으로 들어난 것을 봐서는, 2000년 전의 붓다가 힌두교 사이에서 나왔던 것처럼 할 수 없다면 가망이 없다고 하지 않을까...  현재 원전번역이 활발해지고, 붓다의 원음에 가까운 가르침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 뭔가 다른 길을 모색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무지한 한 중생의 어리석은 생각일 뿐이다. 다만 그래도 혼탁한 세상에서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청정한 승가가 있는 것도 좋지 않나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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