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아 있는 나날 ㅣ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인데, 좋아하지 않게 된 내력이 재미있어 소개한다.
2017년 어느 날, 나는 그해 연말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될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읽는다. 읽기는 읽는데, 그냥 읽어치우기만 하면 됐을 것을, 심각하게 오독을 하고 만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은 오노 가스지라는 이름의 친 군국주의자 화가를 주인공으로 했다. 패전 후, 전쟁 중 청년들에게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어 일왕을 위해 영미귀축을 타도하고 장렬하게 옥쇄하자고 주장했던 과거를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으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 많이 죽는 바람에 극단적인 여초 현상이 벌어져, 자기 딸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할 수 없이 과거를 반성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는 수도 도쿄를 재건하려는 공사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일본이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 간에 앞으로는 상황이 더 좋아질 기회를 얻은 것이라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며 작품을 마감한다.
당시에 물론 그해 연말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지는 생각도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던 이시구로의 작품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파렴치한 장면이라, 그만 작품의 속내를 생각하기도 전에 파르르 성질부터 부렸던 거 같다. 작가 이시구로와 책의 주인공 오노를 싸잡아 한꺼번에 잡놈으로 부르면서 독후감을 쓰기에 이르렀으니. 그리고 차라리 잊으면 좋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자꾸 <부유하는…>이 머리에 삼삼하면서, 혹시 이시구로가 겉으로는 양심을 유지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속물 기질이 넘치는 원로 부역 화가 오노를 태연하게 등장시킴으로써 독자에게 전후 전범국의 문제를 거꾸로 환기시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던 거였다. 한 번 이렇게 생각을 해버리자 곧바로 오독誤讀임이 분명한 거 같아 언제 시간을 내서 한 번 다시 읽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됐다가, 그러느니 차라리 다른 책을 읽어보는 것이 편하겠다 싶어, 정말 오랜 망설임 끝에 읽은 책이 <남아 있는 나날>이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어보니까, 이 책에서도 <부유하는…>에서 이시구로가 채택한 문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의 일인칭 화자 ‘나’는 옥스퍼드셔에서 달링턴 가문이 2백년 이상 소유하던 저택 탈링턴홀에서 35년간 집사로 일해온 ‘스티븐스’다. 아버지 윌리엄 스티븐스에 이어 저택의 집사로 평생을 보내며,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봉사와 신뢰와 복종을 하면서도 이를 통해 자신의 품위를 발산하는 수준에게 허여 되는 ‘위대한 집사’를 평생의 목표로 삼은 인물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집사 가운데 한 명인 70대의 은퇴한 아버지를 자기의 집사 보조로 채용한 적이 있다. 1923년 당시의 70대 아버지가 탈링턴홀에서 1차, 2차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붕 아래 좁은 하인방에 누워 마지막 호흡을 하던 와중에도, 스티븐스는 자신을 집사로서 진정한 성년에 도달하는 계기이자 ‘품위’의 핵심적인 자질을 입증하는 기회였던 당대의 행사를 위해 조금의 어긋남없이 집사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윽고 성황리에 행사가 끝나갈 시간, 지붕 하인방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부음. 스티븐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자신의 슬픔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며 내외귀빈 여러분에게 최고급 포도주를 잔에 따라주면서 회담의 뒤풀이까지 일체의 흔들림 없이 집사의 품위를 보여준다.
훗날 달링턴 경은 저택에 수상과 외교부 장관, 그리고 독일대사 요하임 폰 리벤트로프를 초치하여 극비 회담을 열어, 영국 수상이 히틀러의 초청에 응해 독일을 방문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스티븐스는 여전히 영국 최고의 집사 가운데 한 명으로 이들이 호출하면 언제든 응할 수 있게 문 밖에 움직임 없이 서서 대기하고 있다. 바로 이때, 하녀들의 총무인 켄턴 양은 지역 근로자 벤 씨에게 청혼을 받고, 응접실 앞에 직립해 있는 스티븐스에게 오늘 벤 씨를 만나 청혼을 수락했으며, 1주일 안에 집을 떠날 수 있게 도와 달라 말한다. 스티븐스는 켄턴 양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기어이 켄턴 양을 떠나보내고야 마는 것도 오직 하나, 집사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품위있게’ 애틋한 아쉬움을 희생시킨 것 아니었을까.
그의 35년간 달링턴홀에서의 집사 생활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인인 달링턴 경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한 번 신뢰하고 섬기기로 정하면, 달링턴 경이 세상을 뜰 때까지 무한 충성을 바쳐야 한다. 자신은 어떠한 모욕을 받아도 그것이 달링턴 경을 위한, 경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참을 수 있지만, 모욕이 경을 향한 것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를 똑바로 해놓아야 집사로서의 품위가 손상되지 않으며,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달링턴 경은 영국의 대표적인 전체주의자들과 가까운 사이로 나중에 적대국이 될 히틀러와도 모종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심지어 달링턴 경은 능률이 떨어지는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처가 가능한 파시즘을 신봉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1920년대 후반에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파시스트들의 눈 밖에 나기 싫어 집에 딱 두 명 있는 유대인 하녀를 해고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치룬 후 본격적으로 나치의 야심이 유럽을 불안에 떨게 만들기 시작하자, 달링턴 경은 스티븐스 집사를 불러 자신이 해고하게 만든 유대인 처녀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었다면서. 이때는 이미 영국 수상과 외무부 장관, 영국 주재 독일 대사와의 비밀 협상도 다 허사가 된 뒤였다. 스티븐스는 결국 이런 달링턴 경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를 바쳤던 거였다.
이제 전쟁이 끝나고 1953년에 달링턴 경은 회한에 싸인 생을 마감한다. 3년 후 가문의 상속자는 예전처럼 큰 행사도 없어서 저택이 필요 없게 되어 탈링턴홀을 미국인 백만장자 페러데이 씨에게 팔았다. 한때는 최대 28명의 종업원이 있었으며, 스티븐스는 집사로서 17명까지 거느린 경험이 있는 저택에, 작품의 시간적 무대인 1956년에는 스티븐스와 클레먼츠 부인, 그리고 두 명의 하녀만 남는다. 저택의 주인 페러데이는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는 저택과 저택을 위해 품위를 지키며 봉사할 수 있는 최상급의 집사 스티븐스를 세트로 구입하기를 원했던 것. 그러나 미국에 터전을 잡고 있는 페러데이는 사실 영국에서 집사를 고용할 정도로 대규모의 행사를 자기 집에서 열 형편은 아니다. 그는 작품 초두에, 즉 1956년 7월에 스티븐스 씨를 불러, 자신이 8~9월에 5주 정도 미국에 다녀올 예정인데, 나이 든 집사에게 자기가 타는 차 포드를 내줄 터이니 영국 여행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연료비도 부담해주겠다면서.
예전이라면 당연히 사양해야 마땅한 주인의 제안이지만, 때마침 20년 전에 결혼을 위해 달링턴홀을 떠났던 전 총무 켄턴 양이 편지를 보내와 이곳에서 보낸 시절이 그립다고 한다. 읽기에 따라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애초에 읽는 사람, 즉 스티븐스가 켄턴 양과 다시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강한 희망, 한때는 사랑이었을지도 모르는 희망이 그로 하여금 페러데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고급 포드를 타고 솔즈베리, 도셋, 서머싯, 콘월, 웨이머스를 유람하게 되었을 것이리라.
이 책의 등장인물에서 이해못할 사람은 없다. 달링턴 경은 해고했던 두 명의 하녀에 대한 보상을 거론함으로써 일본의 화가 오노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그나마 인정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영국의 파시스트로 파시즘의 형제 히틀러와 독일을 돕기 위해 일하다가 전쟁의 위협이 다가오자 급격하게 몰락한 귀족이며, 스티븐스는 이런 주인의 약점을 애초에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오직 충성을 다해 자신의 품위를 얻어, 최종적으로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아 있는 나날>과 <부유하는…>, 두 편의 이시구로를 읽어보니 이게 바로 이이의 화법, 작법이 아닌가 싶었다. 그냥 보여주고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것. 물론 두 편만 읽고 작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좀 더 읽어보기로 했는데, 다음엔 단편집을 한 권 골랐다.
아직 단정지도 못하겠고 단정할 필요도 없지만, 여섯 살에 영국으로 이민간 일본인, 영국 안에서도 일본식 교육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글 속에서 나는 건 내 후각에만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