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 있는 나날 민음사 모던 클래식 34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 민음사 / 2010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작가인데, 좋아하지 않게 된 내력이 재미있어 소개한다.

  2017년 어느 날, 나는 그해 연말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될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부유하는 세상의 화가>를 읽는다. 읽기는 읽는데, 그냥 읽어치우기만 하면 됐을 것을, 심각하게 오독을 하고 만다. 이시구로의 <부유하는…>은 오노 가스지라는 이름의 친 군국주의자 화가를 주인공으로 했다. 패전 후, 전쟁 중 청년들에게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에 뛰어들어 일왕을 위해 영미귀축을 타도하고 장렬하게 옥쇄하자고 주장했던 과거를 사과하거나 반성하지 않았으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나가 많이 죽는 바람에 극단적인 여초 현상이 벌어져, 자기 딸을 결혼시키기 위하여 할 수 없이 과거를 반성하는 시늉을 한다. 그리고는 수도 도쿄를 재건하려는 공사가 활발하게 전개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일본이 과거에 어떤 잘못을 저질렀던 간에 앞으로는 상황이 더 좋아질 기회를 얻은 것이라 함부로 주둥이를 놀리며 작품을 마감한다.

  당시에 물론 그해 연말에 노벨 문학상을 받을 지는 생각도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던 이시구로의 작품이라고는 상상도 못할 정도로 파렴치한 장면이라, 그만 작품의 속내를 생각하기도 전에 파르르 성질부터 부렸던 거 같다. 작가 이시구로와 책의 주인공 오노를 싸잡아 한꺼번에 잡놈으로 부르면서 독후감을 쓰기에 이르렀으니. 그리고 차라리 잊으면 좋았는데 그러지를 못했다. 자꾸 <부유하는…>이 머리에 삼삼하면서, 혹시 이시구로가 겉으로는 양심을 유지하는 척하면서도 속으로는 속물 기질이 넘치는 원로 부역 화가 오노를 태연하게 등장시킴으로써 독자에게 전후 전범국의 문제를 거꾸로 환기시키려 했던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던 거였다. 한 번 이렇게 생각을 해버리자 곧바로 오독誤讀임이 분명한 거 같아 언제 시간을 내서 한 번 다시 읽어보자고 결심을 하게 됐다가, 그러느니 차라리 다른 책을 읽어보는 것이 편하겠다 싶어, 정말 오랜 망설임 끝에 읽은 책이 <남아 있는 나날>이다.


  <남아 있는 나날>을 읽어보니까, 이 책에서도 <부유하는…>에서 이시구로가 채택한 문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 책의 일인칭 화자 ‘나’는 옥스퍼드셔에서 달링턴 가문이 2백년 이상 소유하던 저택 탈링턴홀에서 35년간 집사로 일해온 ‘스티븐스’다. 아버지 윌리엄 스티븐스에 이어 저택의 집사로 평생을 보내며, 주인에 대한 절대적인 헌신과 봉사와 신뢰와 복종을 하면서도 이를 통해 자신의 품위를 발산하는 수준에게 허여 되는 ‘위대한 집사’를 평생의 목표로 삼은 인물이다. 자신이 존경하는 몇 안 되는 집사 가운데 한 명인 70대의 은퇴한 아버지를 자기의 집사 보조로 채용한 적이 있다. 1923년 당시의 70대 아버지가 탈링턴홀에서 1차, 2차 뇌졸중으로 쓰러져 지붕 아래 좁은 하인방에 누워 마지막 호흡을 하던 와중에도, 스티븐스는 자신을 집사로서 진정한 성년에 도달하는 계기이자 ‘품위’의 핵심적인 자질을 입증하는 기회였던 당대의 행사를 위해 조금의 어긋남없이 집사의 업무를 수행했다. 이윽고 성황리에 행사가 끝나갈 시간, 지붕 하인방에서 들려온 아버지의 부음. 스티븐스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도 자신의 슬픔을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며 내외귀빈 여러분에게 최고급 포도주를 잔에 따라주면서 회담의 뒤풀이까지 일체의 흔들림 없이 집사의 품위를 보여준다.

  훗날 달링턴 경은 저택에 수상과 외교부 장관, 그리고 독일대사 요하임 폰 리벤트로프를 초치하여 극비 회담을 열어, 영국 수상이 히틀러의 초청에 응해 독일을 방문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스티븐스는 여전히 영국 최고의 집사 가운데 한 명으로 이들이 호출하면 언제든 응할 수 있게 문 밖에 움직임 없이 서서 대기하고 있다. 바로 이때, 하녀들의 총무인 켄턴 양은 지역 근로자 벤 씨에게 청혼을 받고, 응접실 앞에 직립해 있는 스티븐스에게 오늘 벤 씨를 만나 청혼을 수락했으며, 1주일 안에 집을 떠날 수 있게 도와 달라 말한다. 스티븐스는 켄턴 양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기어이 켄턴 양을 떠나보내고야 마는 것도 오직 하나, 집사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품위있게’ 애틋한 아쉬움을 희생시킨 것 아니었을까.


  그의 35년간 달링턴홀에서의 집사 생활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주인인 달링턴 경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한 번 신뢰하고 섬기기로 정하면, 달링턴 경이 세상을 뜰 때까지 무한 충성을 바쳐야 한다. 자신은 어떠한 모욕을 받아도 그것이 달링턴 경을 위한, 경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얼굴색 하나 바뀌지 않고 참을 수 있지만, 모욕이 경을 향한 것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바쳐서라도 이를 똑바로 해놓아야 집사로서의 품위가 손상되지 않으며, 위대한 집사가 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달링턴 경은 영국의 대표적인 전체주의자들과 가까운 사이로 나중에 적대국이 될 히틀러와도 모종의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는다. 심지어 달링턴 경은 능률이 떨어지는 민주주의를 지지하지도 않고, 오직 하나, 보다 신속하고 적극적인 대처가 가능한 파시즘을 신봉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1920년대 후반에 반유대주의를 주장하는 파시스트들의 눈 밖에 나기 싫어 집에 딱 두 명 있는 유대인 하녀를 해고하기도 하지만 세월이 지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치룬 후 본격적으로 나치의 야심이 유럽을 불안에 떨게 만들기 시작하자, 달링턴 경은 스티븐스 집사를 불러 자신이 해고하게 만든 유대인 처녀들에게 보상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라고 지시를 내린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결정이었다면서. 이때는 이미 영국 수상과 외무부 장관, 영국 주재 독일 대사와의 비밀 협상도 다 허사가 된 뒤였다. 스티븐스는 결국 이런 달링턴 경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봉사를 바쳤던 거였다.


  이제 전쟁이 끝나고 1953년에 달링턴 경은 회한에 싸인 생을 마감한다. 3년 후 가문의 상속자는 예전처럼 큰 행사도 없어서 저택이 필요 없게 되어 탈링턴홀을 미국인 백만장자 페러데이 씨에게 팔았다. 한때는 최대 28명의 종업원이 있었으며, 스티븐스는 집사로서 17명까지 거느린 경험이 있는 저택에, 작품의 시간적 무대인 1956년에는 스티븐스와 클레먼츠 부인, 그리고 두 명의 하녀만 남는다. 저택의 주인 페러데이는 오래된 역사를 품고 있는 저택과 저택을 위해 품위를 지키며 봉사할 수 있는 최상급의 집사 스티븐스를 세트로 구입하기를 원했던 것. 그러나 미국에 터전을 잡고 있는 페러데이는 사실 영국에서 집사를 고용할 정도로 대규모의 행사를 자기 집에서 열 형편은 아니다. 그는 작품 초두에, 즉 1956년 7월에 스티븐스 씨를 불러, 자신이 8~9월에 5주 정도 미국에 다녀올 예정인데, 나이 든 집사에게 자기가 타는 차 포드를 내줄 터이니 영국 여행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는다. 연료비도 부담해주겠다면서.

  예전이라면 당연히 사양해야 마땅한 주인의 제안이지만, 때마침 20년 전에 결혼을 위해 달링턴홀을 떠났던 전 총무 켄턴 양이 편지를 보내와 이곳에서 보낸 시절이 그립다고 한다. 읽기에 따라 다시 일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도 해석할 수 있는 내용이다. 내가 이해하기로는, 애초에 읽는 사람, 즉 스티븐스가 켄턴 양과 다시 일할 수 있었으면, 하는 강한 희망, 한때는 사랑이었을지도 모르는 희망이 그로 하여금 페러데이의 제안을 받아들여 최고급 포드를 타고 솔즈베리, 도셋, 서머싯, 콘월, 웨이머스를 유람하게 되었을 것이리라.


  이 책의 등장인물에서 이해못할 사람은 없다. 달링턴 경은 해고했던 두 명의 하녀에 대한 보상을 거론함으로써 일본의 화가 오노와 달리 자신의 잘못을 그나마 인정하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영국의 파시스트로 파시즘의 형제 히틀러와 독일을 돕기 위해 일하다가 전쟁의 위협이 다가오자 급격하게 몰락한 귀족이며, 스티븐스는 이런 주인의 약점을 애초에 알려고 하지 않으면서 오직 충성을 다해 자신의 품위를 얻어, 최종적으로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남아 있는 나날>과 <부유하는…>, 두 편의 이시구로를 읽어보니 이게 바로 이이의 화법, 작법이 아닌가 싶었다. 그냥 보여주고 판단을 독자에게 맡기는 것. 물론 두 편만 읽고 작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래서 좀 더 읽어보기로 했는데, 다음엔 단편집을 한 권 골랐다.

  아직 단정지도 못하겠고 단정할 필요도 없지만, 여섯 살에 영국으로 이민간 일본인, 영국 안에서도 일본식 교육을 받은 것 같은 느낌이 글 속에서 나는 건 내 후각에만 그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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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lcat329 2022-02-08 10:1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시구로가 노벨문학상을 받기 전 이 작품으로 처음 만났어요. 저는 집사의 관점에서 진행되는 이 소설이 너무 재밌었고 그의 주인에 대한 잘못된 맹목적인 충성심이 인상적이었어요.
자신은 옳은 일을 한다고 믿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에 기여하고 있는 상황과 그 안에서 혼란을 느끼는 집사의 모습이 단순하게 보이진 않더라구요.
급격한 역사의 변화 속에서 구시대의 인물이 겪는 혼란을 통해 골드문트님 말씀대로 ‘그냥 보여주고 판단은 독자에게 맡기는‘거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단편이라면 녹턴인가요?
저도 갖고 있는데 안 읽었네요.ㅎ

Falstaff 2022-02-08 12:38   좋아요 3 | URL
이시구로, 이이가 음흉하기 이를 데 없어요. ㅎㅎㅎ 감정을 배제한 상태에서 읽어야지 읽다가 흥분하면 말려드는 거 같더군요.
옙. 지금 대기중인 책이 녹턴입니다. 귀신이셔요. ㅋㅋ

잠자냥 2022-02-08 10:2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남아 있는 나날>은 가즈오 이시구로 작품 중 제가 별로 안 좋아하는 작품입니다. 스티븐슨이란 인물, 정말 평생 노예처럼 살았는데, 자유로워질 수 있는 지금도 여전히 노예와 같은 굴종이 내재된 인물. 어휴 생각만 해도 답답합니다. 그런데 그것도 골드문트 님이 말씀하신 영국 안에서의 ‘일본식 교육‘ 받은 느낌이랑 통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Falstaff 2022-02-08 12:49   좋아요 3 | URL
옙.
이 작품을 좋아하기는 힘들 거 같습니다. 흥미롭지만 정 가지 않는 인간들만 득시글거려서....
근데 위대한 집사가 요즘 연봉 많이 받는 성공한 직장인하고 어딘가 닮은 거 같아서 읽는 내내 씁쓸했습니다. 저도 스티븐스 집사하고 다른 게 없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숨기지 못했습지요.

공쟝쟝 2022-02-08 10:23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오! 골드문트님 모처럼 저도 읽었던 소설이예요! 반갑기도 하고 그런 의심(?)을 하신게 신기하기도 해요 ㅋㅋㅋ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의심이다! 저는 꼰대 옹호소설이라기 보다는 (저는 에휴 답답이 답답이 이러면서 읽었어요!) 마지막 두번째 문단처럼 느꼈어요! 일부러 이런 사람들을 보여주고 좀 더 다양한 감정을 일으키게 하는 구나~ 그리고 나서 앤써니홉퀸스옹 나오는 영화봤는데 울었음…… (역시 배우가 너무 품위 있었음…)

Falstaff 2022-02-08 12:42   좋아요 2 | URL
전에 읽은 <부유하는 화가...>와 이 책의 공통점이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만 등장한다는 거였습니다. 아니라고 믿지만, 혹시 모릅니다. 이시구로가 그들을 위한 변명을 조금은, 아주 조금은 해주고 싶었는지도.
아직까지 이런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는 못했습지요. 그래 좀 더 읽어봐야겠습니다.

포스트잇 2022-02-08 11:1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생각을 하셨네요. 이시구로 소설을 읽고 나서 불쾌했던 느낌을 받았던 게 저만은 아니었군요.
아주 영리, 영악한 작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좋아하는 독자들이 많더군요.

Falstaff 2022-02-08 12:44   좋아요 3 | URL
아, 그러셨습니까. 반갑습니다.
사실 지금 저는 당시에 느꼈던 불쾌감이 타당한 것인지, 오해인지 그걸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레이스 2022-02-08 12:0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히려 부유하는 화가들이 더 좋았어요
메시지가 보여서...
남아있는 나날과도 연결되는 메시지가 있지요?!
무사유에 대한 경고!

Falstaff 2022-02-08 12:45   좋아요 2 | URL
ㅎㅎㅎ 그레이스 님께서 무사유면, 사유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겸양의 말씀도 참.... ^^

새파랑 2022-02-08 12:2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전 <남아있는 나날>을 ˝이시구로˝의 첫 책으로 읽었는데 그렇게 재미있지 않아서 안읽다가, <클라라와 태양>이 화제길래 읽었더니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그 다음에 읽은 <나를 보내지마>는 더 좋고 ㅋ 그의 초기작들 읽다보면 일본 느낌이 나긴 합니다. 배경이 그래서일 수도 있구요 ㅎㅎ 세번째 작품 리뷰가 기대됩니다~!!

Falstaff 2022-02-08 12:47   좋아요 4 | URL
세상이 엎어져도 제일 확실한 건, 소설 읽으면서 제일 중요한 건, 내 맘에 드느냐, 아니냐일 거 같아요. 새파랑님께서 후졌다고 하시면 그 책은 후진 거고요, 좋다면 좋은 겁니다. 그잖아요? 저는 좀 천천히 읽겠습니다. ㅎㅎ

독서괭 2022-02-08 15: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안 좋아하셨던 이유가 이해가 되네요. 저라도 그렇게 읽었을 듯요. 저는 <클라라와 태양>만 사 놓고 안 읽고 있는데, <클라라와 태양>이랑 <나를 보내지마>를 대체로 추천하시더라고요. 올해는 꼭 읽어야겠습니다;; 근데 <남아있는 나날>도 왠지 읽어보고 싶어요. 리뷰로 줄거리 다 봤는데도요.

Falstaff 2022-02-08 16:16   좋아요 2 | URL
ㅋㅋㅋ 저는 그럼 독서괭 님께서 먼저 클라라 읽고 서평 올리시면, 그걸 보고 결정하겠습니다. (음메 좋은 거!)
클라라와 보내지마에서는 다른 식으로 작품을 썼는지, 조금 궁금합니다. 어떻게 변했을지도 그렇고요. ^^

독서괭 2022-02-08 16:28   좋아요 2 | URL
네…? 그럼 몇년간 못 읽으실 수도 있는데요😅

Falstaff 2022-02-08 16:37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괜찮아요. 그거 말고도 지금 읽을 책이 겁나 쌓여 있습니다!

scott 2022-02-17 22: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즈오가 골드문트님 말씀처럼
부유하는 과 이 작품은 일종의 연장선이자 앞 선 작품에서 미흡했던 것을 보완하며 쓴 작품이라고 합니다 ㅎㅎㅎ


Falstaff 2022-02-18 07:13   좋아요 2 | URL
흠. 두 작품은 정치적으로 좀 수상합니다.
이시구로한테 정이 똑 떨어져서 이이를 읽으려면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ㅋㅋ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 - 2020년 개정판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에우리피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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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리피데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극작술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 극의 긴박한 국면을 마무리하는 방법인데, 이때 극작가가 사용하는 것이 여태까지 극의 내용과는 별 연관이 없이 신을 포함한 초자연적 힘으로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요샌 의미가 좀 더 넓어져서 한 문제적 인간을 작품의 줄거리와 별로 관계없이 작가가 목숨을 거두어, 이른바 문학적 사형집행 한 방에 모든 갈등을 제거하는 것도 포함한다. 물론 이제 정말로 이렇게 작품을 쓰면 그런 사람들을 일컬어 습작 작가라 하고, 이런 습작 열라 써 봤자 그럴 듯하다고 얘기하는 인간은 1도 없을 정도로 구식이다. TV 드라마에서도 이 비슷한 결말을 구경하기 힘들지만 20세기 말에도 의례 누구 하나 죽어 자빠져야 드라마틱한 결말이라 얘기할 정도였으니,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사실 대단한 발명이었음직도 하다.

에우리피데스가 <메데이아>를 비롯한 다양한 작품에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써먹고 한 세기가 흘러 등장한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인데, 그는 세기전 3백년 대에 여태까지의 이야기 밖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온 신들에 의하여 결말이 나는 방식에 이의를 제기했다. 작품의 결말은 전적으로 작품 이야기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며.


  그리스 고전은 참. 한 마디로 하자면 적나라하다. 뭐 감정을 숨기거나 그런 거 없다. 그래서 2천5백 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무수한 사람들에게 읽히고, 연구하게 만들고, 심지어 전율하게 만들 수 있는 거 같다. 열 편의 비극을 담고 있는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 이 가운데 살인에 의한 죽음이 등장하지 않는 건 한 편도 없다. 인권이라는 개념이 없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살인의 대상이 직계가족만 아니라면, 죽이고 나서도 죄의식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대상이 어린 아이여도 마찬가지다.

  친족 살해도 참 다양하다. 내가 처음 메데이아 이야기를 들은 것이, 분명히 십대는 아니었다, 아마 대학 시절이었던 거 같은데,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 1》 같은 권위있는 역자의 번역이 아니라 그저 ‘그리스 로마 신화’ 같이 대단한 축약이 아니었나 싶다. 당시에도 깜짝 놀랐지만 에우리피데스의 원전을 읽어보니 더 대단하다. 본문을 소개하는 것 대신에 <메데이아>의 1번 주석의 부분을 옮겨보자.


  “천신만고 끝에 황금 양모피를 가져온 이아손에게 펠리아스가 왕위를 물려주지 않자, 메데이아는 펠리아스의 딸들 앞에서 늙은 숫양 한 마리를 토막 쳐 약초와 함께 솥에 넣어 끓여 (팔팔 끓은 양을 다시 살려) 젊음을 되찾게 해 주고 나서, 펠리아스도 같은 방법으로 회춘하게 해 주겠다고 약속하고는 그의 딸들로 하여금 아버지를 토막 치게 한다. 그런 다음 메데이아는 효과 없는 약초를 주어 딸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자가 되게 한다.”


  실화와 전설, 신화를 통틀어 가장 엽기적인 여성인 메데이아는 이 일 전에 잘생긴 이아손한테 반해 조국을 배신하고 이아손과 함께 도망했는데 이들을 추격하는 오라비 압쉬르토스도 죽인 적이 있다. 그러니까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방해가 되거나 도움이 된다면 무조건 죽이고 보는 거다. 이 메데이아-이아손 신화 가운데 에우리피데스는 후반부를 차용해 비극을 만들었다. 당대의 그리스 관객들은 이야기의 앞부분을 다 알고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물론 다른 작품들도 모두 마찬가지지만.

  이올코스에서 펠리아스를 죽이고 추방된 메데이아-이아손 부부는 코린토스로 옮겨와 아들 둘을 낳고 잘 살다가 이아손이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기로 마음먹으면서 말 그대로 신화는 드라마틱해진다. 크레온이 마녀 메데이아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 당장 코린토스를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고, 메데이아는 왕에게 애걸복걸을 해 하루의 기한을 연장한다. 그리고는 드레스와 머리띠에 독을 묻혀 왕의 딸에게 결혼선물로 주는데, 드레스와 머리띠를 두르자마자 왕의 딸은 비참하게 살이 썩어 급사하고 만다. 이를 본 크레온 역시 딸의 몸에 손을 댔다가 같이 죽음을 맞는다. 이어서 메데이아는 자신을 배신한 남편 이아손에게 가장 큰 슬픔, 아이를 잃는 아픔을 주기 위하여 아빠 닮아 잘 생긴 두 아들을 칼로 찔려 죽여버린다는 신화.


  이 신화를 만든 게 아니라, 이미 있던 신화의 후반부에 기초하여 비극을 쓴 것이다. 신화에서 비극으로 변신을 해야 하고, 신화에 무슨 저작권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상당한 부분은 작가가 임의대로 다시 해석하여 쓰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채집한 지 150년 정도가 지난 우리나라 판소리도 여러 본에 따라 이야기의 세부사항이 다른 것처럼 신화 역시 오랜 세월 구전되면서 조금씩 변화되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 비극마다 약간의 차이가 발생한다.

  그래서 네번째 실린 <헤카베>에서는 트로이를 폐허로 만든 그리스 군이 수많은 전리품과 노예를 싣고 귀국길에 오르는 순간 아킬레우스의 영혼이 나타나 트로이의 죽은 왕 프리아모스와 왕비 헤카베의 딸 폴뤼세네를 제물로 바치라고 요구하여, 그의 친구 오뒷세우스가 폴뤼세네를 데리러 왔을 때 헤카베가 탄원을 하는 장면이 있다. 반면에 아홉 번째 작품 <트로이아의 여인들>에서는 폴뤼세네가 제물로 바쳐지는 것은 같은데, 제물로 정해졌고 이미 새하얀 목덜미에서 피가 뿜어져 나와 아킬레우스의 무덤을 적신 후임에도 헤카베는 그런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으로 그렸다. 그러니 여기선 A라고 이야기하고 저기서는 B라고 할 수 있느냐, 라는 비난은 옳지 않다는 말씀이다. 원작을 드라마로 만들 때 드라마 작가가 원작을 약간 훼손하는 것은 타당한 권리이기도 하다.


  다시 말하지만 거의 대부분은 전해져 내려오는 신화를 극화한 작품이다. 그래서 여태까지 나도 그랬지만, 작품의 스토리를 가지고 에우리피데스를 논하는 건 조금 어색하다. 신화에는, 모르기는 해도, 메데이아가 이아손이 다른 여자와 결혼하기로 한 것에 질투가 나서 이아손의 아들들을 죽여 복수했다, 정도로 묘사되어 있을 것을, 에우리피데스는, 이아손의 아들이지만 자기가 열 달 동안 품다가 직접 낳은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는 절절한 회한과 고통을 노래하는 데 의의가 있다. 어차피 코린토스의 왕과 왕의 딸을 죽였으니, 메데이아는 사형을 모면할 수 없을 뿐더러, 살려두면 이들이 성장하여 복수를 꾀할 것이 틀림없으리라 판단한 코린토스 왕가가 두 아들 역시 죽이리라는 것을 아는 어미가 차라리 자기 손으로 직접 죽음을 맞게 하는 편이 좋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자, 내 마음이여, 무장해라. 왜 주저하는 거지? / 끔찍하지만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범행이 아닌가! / 자, 가련한 내 손이여, 칼을 들어라! 칼을 들고 / 고통스러운 경주의 출발점으로 다가서도록 해. / 비겁자가 되지 말고, 아이들 생각은 하지 마. / 그들은 내 귀염둥이들이고, 네가 그들을 낳았다고! / 이 짧은 하루 동안만 네 자식들을 잊었다가 나중에 / 울도록 해! 네가 아이들을 죽이더라도 아이들은 역시 / 네 귀염둥이들이 아닌가! 나야말로 불운한 여인이구나!” (78쪽)


  재미있는 비극(들)이다. 그러나 6백쪽, 열 작품을 연이어 읽는 것은 조금 무리다. 휴일 이틀을 온전히 제단에 올려놓아야 한 권을 읽을 수 있는데, 나야 이제 휴일 아닌 날이 없어서 가능하지 다른 분들은 아무래도 쉽지 않을 듯하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서 하루에 딱 한 작품 씩 읽는다 치면, 열흘. 중간에 휴일 이틀이 있으니 휴일엔 두 편 씩 읽으면 여드레 걸린다. 좋다. 연달아 읽으면 질릴 수도 있겠으나 마음먹고 여드레에 걸쳐 읽으면 작품마다 새롭지 않을까. 다만, 책값이 조금 비싸다. 책의 가치와 비교해보라, 이런 얘기 하지 마시라. 비싼 건 비싼 거다. 도서관 이용하시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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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07 06:51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를 읽을때 에우리피데스 비극을 계속 연결시키게 돼요^^
당시 복수는 명예였기에 당연했고,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위해 그리고 친족과 공동체를 위해 복수하지 않는 것을 수치로 여겼던 시대여서 지금의 잣대로 볼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헤카베가 안타까웠죠. 폴뤼세네의 죽음도 그렇구요.
죽어서까지 배신에 대한 복수를 하는 아킬레우스의 인격이 ^^

Falstaff 2022-02-07 07:08   좋아요 4 | URL
아, 그렇겠네요. 전 <아이네이스>를 먼저 읽어서 그저 <일리아드> 뒷얘기란 거, 카르타고의 여왕 디도와 어떻게 만나고 헤어질까, 뭐 이런 잡생각만 했는데 말입니다. ^^
하여튼 그리스 비극은 이상하게 독자를 공감하게 만드는 거 같더라고요. 저는 지금도 누가 소위 무인도 책 물어보면 소포클레스 비극전집을 첫 번째로 듭니다.
ㅎㅎㅎ 죽은 아킬레우스가 복수를 하고 싶어서 그랬는지, 좋은 여자는 다 아가멤논이 가져가서 귀신이라도 심통이 도졌거나 욕심이 나 그랬는지, 전 심통이라는 데 한 표!

청아 2022-02-07 08: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엑스 마키나‘라는 영화가 있는데 에우리피데스로부터 유례된 거군요! 다행히 저희 도서관에 2권까지 있네요^^*

Falstaff 2022-02-07 10:26   좋아요 3 | URL
에고, 사이에 지금 치과 가서 임플란트 수술 받고 왔습니다. ㅠㅠ
즐겁게 읽으세요! 으쌰!!

잠자냥 2022-02-07 09: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데우스 엑스 마키나‘ 대단한 발명이라는 말에 ㅋㅋㅋㅋ 극공감합니다. ㅋㅋㅋㅋ 아니, 그나저나 골드문트님 이제 언제 어느 시간이고 (독서로) 방랑이 가능하게 되신 겁니까?

Falstaff 2022-02-07 10:32   좋아요 5 | URL
옙! 근데 백수가 과로사한다고 더 바쁘네요!! 웬 할 게 이렇게 많은지 말이지요.
산소 가서 보고해야지, 건강보험, 고용보험 처리해야지, 그간 신세진 사람들한테 고맙다고 해야지,
안 얻어 터지고 살려면 세탁기 돌려야지, 청소기 밀어야지, 하루에 적어도 한 끼는 해다 바쳐야지, 수다 떠는 거 다 듣는 척해야지 (이게 제일 힘든 태스크입니다!), 아휴, 하루 해가 언제 졌는지 몰라요! ㅋㅋㅋㅋ

공쟝쟝 2022-02-08 10:39   좋아요 1 | URL
아 부럽다! 책 방랑 많이해주세요 골드문트님! ㅋㅋㅋ 헤헤…

coolcat329 2022-02-07 11:1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데우스 엑스 마키나! 또 하나 알았습니다.
첫 번째 이야기부터 엄청 센 인물이 등장하네요. 오...😨
이런 책이야 말로 진정한 고전인데 읽기 쉽지 않지요?

근데 자유인이 되신 거 축하드려요. 그동안 열심히 사셨으니 좋아하시는 술, 책 여유롭게 즐기시면서 건강도 챙기시고 북플에 재미있는 글 마니 올려주세요~☺



Falstaff 2022-02-07 11:22   좋아요 3 | URL
ㅋㅋㅋ 고맙습니다.
정말 축하받아야 할 일인데, 대개 ˝앞으로 뭐할 거여?˝ 이렇게만 묻더라고요.
뭐 하긴 뭐 합니까. 즐기며 놀아야지요.
전 특히 혼자 놀기에 특화된 체질이라서 아무 걱정 없습니다. 일을 하더라도 이젠 절대로 돈 벌기 위해 일을 하진 않을 겁니다.
제일 좋은 건, 우라질 영어에서 완전 해방됐다는 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2-02-07 1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데우스 엑스 마키나- 대단한 발명 ㅎㅎ 정말 그러네요. 누굴 죽이고 토막내는 게 너무 아무렇지 않게 나와서 지금 시대에 읽으면 깜짝깜짝 놀라게 되는 것 같아요;;
골드문트님 안 그대로 많이 읽으시는데 이제 더 많이 읽고 쓰시는 건가요! (그런데 골드문트님 글 느낌은 청년 같으세요)

Falstaff 2022-02-07 16:06   좋아요 1 | URL
그리스 고전, 정말 읽을 만해요. 제가 별 하나 뺀 건, 1. 책이 비싸다. 화려한 장정 하지 말고 좀 싸게 팔 수 없었을까, 2. 한 방에 계속 읽으면 질린다. 라는 이유 때문인데, 사실 여유잡고 읽으신 분은 5별을 주시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집에 있으면 책 읽을 시간이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 걸 알고 요즘 놀라는 중입니다. 책 많이 읽는 주부들, 오오, 대단하세요. @.@
저야 언제나 청춘 아닙니까, 골드문튼데요. ㅋㅋㅋㅋㅋ

mini74 2022-02-07 14: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들이 아주 좋아했을만한 발명이네요 ㅎㅎ 그동안 고생많으셨습니다 골드문트님 ~ 이제 직장에서 해방되어 집요정 도비가 되신건가요. ㅎㅎ

Falstaff 2022-02-07 16:07   좋아요 1 | URL
ㅋㅋㅋ 집요정 맞습니다!
도비는 아니고 황금입술 금순입니다. ㅋㅋㅋㅋㅋ

유부만두 2022-02-08 06: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전 이 비싼 책 두 권 다 샀지요. 그리고 몇 편 씩만 골라 읽고 있어요.
우렁차게 잔인하고 거창하게 소란스러운 게 우리나라 아침드라마 혹은 넷플릭스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몇년전 연극으로, 또 NT live 로 메데이아를 봤는데요, 전 마지막 장면의 각기 다른 해석들이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 이해영 주연의 연극은 두 아이의 살해 후 이아손이 아이들을 감싸 안고(희곡에선 감히 만지지도 못하게 메데이아가 만드는데 말이죠) 울고, 하늘에 ‘정의‘를 구합니다. 그리고 그 살해 현장, 무대의 피칠갑한 곳을 여성 코러스들이 걸레질을 합니다;;;; 제목은 메데이아지만 마무리는 이아손의 고통이었어요.

NT live 연극은 의상이나 무대가 다 현대식인데요, 군복 바지 입고 담배를 뻑뻑 피우며 복수의 칼을 갈던 메데이아는 무대 밖에서 살인을 합니다. 무대, 집안 거실로 돌아온 메데이아는 이아손과 한참 말로 다투죠. 그 다음 좌절한 이아손을 냅두고 메데이아는 그 문제의 두 포대(!)를 업보처럼 질질 끌면서 퇴장합니다. 자, 내가 좋은데 묻어줄게, 이런 말을 했던 거 같아요. 메데이아는 곧 하늘마차를 타고 아테네로 날아가겠지요.

Falstaff 2022-02-08 07:46   좋아요 1 | URL
아, 연극으로 보셨군요!
저는 <폭군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만 봤는데 둘 다 고전적 연출이었습니다. 무대만 밝은 톤의 조명과 플라스틱 의자 등으로 현대식이었고요.
ㅎㅎㅎ 하여간 실제 공연에서 제일 중요한 건 희곡, 대본이 아니라 연출인 것 같습니다.

유부만두 2022-02-08 06: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참, 어제 2월 7일이 찰스 디킨스 생일이었는데, 뭣좀 드셨어요?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는 구식 찬란한 표현법을 생각하며)

Falstaff 2022-02-08 07:47   좋아요 1 | URL
아휴.... 디킨스는 정말 안 읽을 거라니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임플란트 해 박는 바람에 끓인 밥 식혀서 배추김치 반찬 해 먹었습니다. ㅠㅠ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영국 남서부의 가상 지역 웨섹스를 무대로 토마스 하디는 몇 작품을 발표한다. 내가 읽은 순서로 나열하면, <더버빌 가의 테스>, <이름 없는 주드>,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그리고 오늘 독후감을 쓰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이 네 권은 또한 내가 읽은 토마스 하디의 모든 것이면서, 전부 가상의 웨섹스 지역을 무대로 한 사실주의적 작품이고, 현재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하디의 장편소설 라이브러리다. 하디는 자신이 만든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시골지역에 천착해, 소위 ‘지방주의’의 첫 발을 디뎠다고 해도 별 무리는 아닐 듯하다. 하디는 지방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잉글랜드 남서 지방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고, <더버빌 가의 테스> 해설에 나와 있지만, 사투리를 우리말 충청도 사투리로 번역한 건 <…테스> 말고는 없다.

  이 책 제일 앞에 ‘로쟈’라는 인터넷 필명을 쓰는 유명한 책 읽기 강사 이현우의 해제가 놓여 있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로 비록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학교를 졸업해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과 거만, 그리고 허영심을 가지고 있는 스무 살 처녀 밧세바 에버딘이라는 아가씨다. 19세기 작품답게 아가씨가 주인공이면 항용 그렇듯이 절세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아가씨에게 모두 세 명의 남자가 접근, 청혼한다. 당신이 만약 본문 앞에 놓인 이 ‘해제’를 읽고 시작한다면, 읽는 재미의 절반은 놓쳐버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해제 속에는 이 에버딘 양이 갑, 을, 병, 세 명의 남자 가운데 누구하고 결혼을 하고, 어떤 인생의 굴곡을 거쳐 누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스토리 전체를 아주 친절하게 일러준다. 그런데 독자가 이걸 미리 알아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작가 하디? 역자 서정아와 우진하? 소위 ‘서평가’ 이현우? 아니면 출판사 사장 또는 편집부장? 만일 6백 쪽이 훨씬 넘는 본문을 읽기에 시간이 없으면 이 해제만 읽어도 어디 가서 잘난 척하기는 충분하다. 말이 나온 김에 해제의 품질에 관해 조금 더 보태자면, 아니, 보태지 말자. 왜 해제를 역자나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을 전공한 그 많은 영문학자들 가운데 한 명에게 의뢰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해제가 독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 건, 단 한 문장이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의 경우 ‘최초의 페미니스트 문학’이란 평판까지 얻었을 정도다.” (9쪽) 다 읽어본 독자들은 아시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완전히 반 페미니즘 적 아닌가? 애초에 토마스 하디는, 숨은 20세기에 넘어갔지만, 엄연히 19세기 작가로 처음부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어리석고 의존적이란 고정관념에 꽉 차 있는 사람이다. 쉽게 살 수 있는 그의 책 아무거나 읽어보시라. 하디를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세 문장 이상으로 이루어진 문단을 찾을 수 있는지. “우리는 어리석음이라는 요소가 밧세바 에버딘의 성격을 구성하는 갖가지 특징과 단단히 결합했음을 알 수 있다. 어리석음은 그녀의 본성과 거리가 멀었다. 에로스의 화살에 수액처럼 묻혀 그녀에게 침투한 어리석음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성격 전반에 스며들어 천성을 오염시켰다.” (309쪽) 가장 현명한 여성도 외부에서 침투하는 어리석음엔 무방비다. 세 문장으로 구성된 여성비하는 이거 말고도 책에 쌔고 쌨다.


  우리의 주인공 밧세바 에버딘 양은, 부모도 없고 돈도 없는 신세지만 학교는 졸업해서 콧대가 하늘을 찔렀고, 뭐 그게 당연할 정도로 기백이 있는 당찬 처녀이다. 당시에는 젊은 여자가 혼자 살 수 없는 법이라서 숙모네 집에 기숙해 얼마간 지낸다. 마차를 타고 캐스터브리지에서 노콤 언덕으로 오를 때 자수성가한 농부이자 제일 중요한 남성 등장인물인 가브리엘 오크를 처음 만나는데, 이 둘의 인연은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건만, 독후감에선 그냥 넘어가자. 쥐뿔도 없는 아가씨가 마차 안에서 연신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한 오크가 밧세바를 허영심 있는 여자라고 첫인상을 받았다는 것만 살짝.

  근데, 가끔 첫인상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얼마 후 밧세바 에버딘 양은 숙모 집을 떠나 웨더베리에 큰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숙부네 집에 얹혀 살러 갔다. 독신에다가 친척이라고는 사방 팔방을 뒤져봐도 밧세바 양 말고는 하나도 없는 숙부가 몇 주 만에 뭘 먹었는지 갑자기 토사곽란을 하더니 꼴깍 숟가락은 놓는 바람에 그 큰 재산이 전부 밧세바 에버딘 양의 치마폭으로 뚝 떨어졌다는 거 아닌가. 이때를 맞춰 노콤에서의 사고로 전 재산을 잃고 일자리를 얻으러 방랑하고 있던 오크가 때마침 불이 난 에버딘 양의 농장에서 가장 훌륭하게 진화작업을 지휘하는 일이 벌어져 졸지에 에버딘 양을 ‘아씨’라고 호칭하는 목동으로 취직하게 된다.

  에버딘 양의 농장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큰 목장의 주인 볼드우드 씨도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밧세바 양이 스무 살. 볼드우드 씨는 마흔 살. 이이는 전형적인 잉글랜드 사람으로 무뚝뚝하고, 건장하고, 힘도 좋고, 매사에 옳은 일을 해 자기 명예에 스크래치 가는 걸 제일 싫어하고, 자기와 관계없는 곳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지만 선량한 마음씨가 필요하면 언제든 머뭇거리지 않는 잉글랜드 특유의 계급인 향사 정도의 위치다. 캐스터브리지의 곡물시장에 가면 단 한 사람의 신사다운 사내이며 큼직한 로마식 윤곽의 이목구비와 청동 같은 윤기의 얼굴에 품위가 넘쳐 흐르는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다. 당연히 이웃 농장의 어린 소유주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심지어 그토록 어여쁜 밧세바 양의 얼굴 한 번 힐끗 쳐다보지 않는 신사……였다.

  볼드우드 씨의 모든, 모.든. 불행은 밧세바 양의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한다. 이제 스물한 살이 된 밧세바 에버딘.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오고, 캐스터브리지까지 나가서 발렌타인 카드를 한 장 사온 것까지는 좋았다. 카드에 “장미는 빨갛고, 제비꽃은 푸르고, 카네이션은 감미롭네. 바로 당신처럼”이라고 써서 농장의 어린 일꾼 테디 코건에게 주려고 했다가, 하녀인 리디 스몰베리와 장난 도중에 동전을 던져 제비를 뽑은 결과 볼드우드 씨에게 보내버린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촛농으로 봉인을 해야 하는데, 에버딘 농장에서 사용하는 많은 문장 가운데 하필이면 “나와 결혼해주오.”라고 쓴 문장을 찍어 보낸 거다. 마흔한 살의 독신남에게. 아니나 다른까, 청교도 같은 집에 도착한 편지의 인장 내용은 심오하고 엄숙한 명령문이라서, 아마 우리말로 번역하며 청유형으로 바뀐 것이지 원문엔 예컨대 Marry me, 정도로 쓰인 모양 아닐까, 이 편지를 감히 장난으로 보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거다. 게다가 익명의 편지라니, 볼드우드 씨는 인생 최초의 혼란을 겪으면서 발렌타인 카드 자체를 무례한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정중하게 청혼을 해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웨섹스 지방이니까.

  에버딘 농장의 어린 하녀로 일하던 패니 (작 중 중요한 단역) 문제로 친하게 지내는 목동 오크를 통해 카드의 필적이 에버딘 양임을 확인한 볼드우드 씨는, 난생 처음으로 여성에 대한 사랑이 뭉근하게 달구어지기 시작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활활 불타오르게 된다. 그리하여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에버딘 양에게 돌진해서 곧바로 청혼을 하는데, 밧세바 입장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떨어진 꼴이다. 결코 진지하지 않은 가벼운 장난이었다는 것을 함부로 고백하지 못할 만큼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에 그만 콱, 질리고 만다. 스무 살 더 먹은 남자가 접근, 청혼하는 게 징글맞고 역겹다고? 때는 빅토리아 시대다. 이 책이 나온 때가 1874년. 불과 2년 전, 하디의 멘토 격이었던 조지 엘리엇의 작품 <미들 마치>에서 도로시아 브룩도 열여섯 살 연상의 성공회 신부 커소번 씨와 즐거운 마음으로 결혼한다. 오히려 자기가 커소번 씨에게 합당한 배우자 자격이 있을까를 의심하면서. 나이 차이는 당시엔 아무 장애도 아니었다.

  근데 에버딘 양에게는 문제가 있다. 애초 발렌타인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지 조금이라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른 남자, 자신보다 여덟 살 많은 자수성가한 농장주가 청혼을 한 적이 있으나 그때도 그를 사랑하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했음에야 이제 자신 스스로가 부유한 농장 주인이 된 상태에서 뭐하러 사랑하지도 않는 중늙은이의 품에 안기겠는가. 문제는 볼드우드 씨가 청혼을 거절당하자 거의 모든 일상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것. 추수를 해놓고 마당에 낫가리가 쌓여 있는데, 천둥번개와 폭풍우가 쏟아져도 그걸 그대로 방치해 내다 팔기는커녕 돼지 먹이로도 주지 못하게 되어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는데도 전혀 관심을 쏟지 못할 정도로 피폐해진다. 혼자서는,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에버딘 양을 향한 편집증적 마음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완벽하게 인생을 망가뜨린다. 이게 다 갓 부자가 된 밧세바의 발렌타인 장난으로 시작된다.

  왜 이게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성의 장난으로 한 남자의 인생이 완전히 거덜이 나서? 재미는 있지만 읽는 도중 내내 불쾌하던데, 나만 그랬나보다. 독후감에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또다른 중요한 등장인물의 행위도 도무지 이해불가. 우리말 제목도 참 후지게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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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04 0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04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2-02-04 09:47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빡쳐서 ㅋㅋㅋ 아니 이게 무슨 페미니즘이란건가.. 했었어요. 요즘 페미니즘 담겨있다 하면 책이 잘 팔리니까 그냥 일단 넣고 본 것 같아요. 아오 증말 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2-04 11:46   좋아요 2 | URL
ㅋㅋㅋㅋ 저도 똑같이 생각했습니다. 개나 소나 다 페미니스트를 자청하더라고요.
전 페미니스트까지 못 간 거 같습니다. 그게 어디 하루 이틀 사이에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잠자냥 2022-02-04 10: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고 빡쳐서 ㅋㅋㅋ 아니 이게 무슨 페미니즘이란건가.. 했었어요.222222

아오 등장인물 하나같이 죄다 극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결말도 극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한테 왜 그랬니 토머스 하디.....

해제 정말 극극혐 ㅋㅋㅋㅋㅋ

Falstaff 2022-02-04 11:51   좋아요 1 | URL
와우, 따라쟁이! 책 읽고 빡치신 분이 많군요. 고맙게도. ㅋㅋㅋㅋ
이 책이 다양한 면에서 하디 가운데 가장 망작이었습니다. 편집까지도 말입죠.
근데 왜 그이가 해제를 썼을까요? 정말 궁금하거든요. 그리고 대개 해제나 해설, 작품론 같은 글을 쓴 사람은 표지에 노출시키지 않는 게 일반적.....이지 않은 모양입니다.
유명해본 적이 있어야 알지! ㅋㅋㅋㅋ

coolcat329 2022-02-04 20:3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얘기지만...저는 표지가 참 별로네요. 어디선가 본 듯한 3류 스릴러 소설같은 느낌이 드는데 저만 그런건지 ㅎㅎ

Falstaff 2022-02-05 12:03   좋아요 1 | URL
저게 혹시 영화의 한 장면 아닌가 싶습니다. 딴엔 멋있어 보이라고 자극적인 사진 올렸겠지만 더 후졌어요. 출판사 관계자들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멋있네, 멋있네, 삽질하고 있을 겁니다. ㅋㅋㅋㅋ

공쟝쟝 2022-02-08 1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만큼은 너무 매력적인데여? ㅋㅋㅋ 오ㅡ 왜 다 싫어하는 데 나는 읽고 싶은 것인가 ㅋㅋㅋㅋ 마성의 에버딘! 군중으로 부터 멀리 달아나!!!
 
유사를 바라보며 창비시선 153
민영 지음 / 창비 / 1996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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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장斷章



  외로울 때는

  눈을 감는다,

  바람에 삐걱이는

  사립을 닫듯……


  목마를 때는

  돌아눕는다,

  눅눅한 바람벽에

  허파를 대고……


  하지만, 내연內燃의 피

  독毒이 되어 거꾸러질 땐

  뜨겠다, 죽어도 감지 못할

  새파란 눈을!  (전문)



  20대 초중반에 암송하던 시 가운데 하나다. 그의 첫 시집 《단장》의 표제시로 간결한 시어만을 사용했다. 시집 출간이 아닌, 내가 시집을 읽은 시절에 유행하던 민중시, 마치 논문을 읽는 것처럼 대단한 서사로 울부짖던 운동시와 완전히 차별되는 서정. 그러면서 결국 드러나는 시선에 대한 각오를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이어 두번째 시집 《용인 지나는 길에》까지 읽고 나도 생활, 삶의 유사quicksand에 빠져 오랜 세월 민영을 잊고 살았다. 술과 살림에 젖으면 가끔 바람에 삐걱이는 사립을 닫으면서. 연초에 시집을 읽어볼까, 싶어 인터넷 책방을 뒤지다가 문득 이이의 이름을 기억했다. 전에 좋아했던 시인.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그리하여 구입한 민영의 시집이 창비시선 153번 《유사流沙를 바라보며》와 367번 《새벽에 눈을 뜨면 가야 할 곳이 있다》, 이렇게 두 권. 예전에 읽은 시집을 뒤져보다가 또 눈에 띈 시인이 <저문 강에 삽을 씻고>의 정희성. 그의 시집 《그리운 나무》도 덩달아 샀다. 민영, 정희성. 마치 오래된 형님들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좋았다.

  《유사流沙를 바라보며》는 1996년 초판 1쇄. 당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일인당 시집 구입을 가장 많이 하는 나라였음에도 25년이 지나도록 초판 1쇄의 새 책을 살 수 있으니 세상에 시 읽는 사람이 참 적구나. 민영이라면 그래도 알 만한 독자는 다 아는 시인인데. 얼마나 오래 창고에 있었는지, 틀림없이 새 책이라지만 워낙 바싹 말라 제본한 것이 갈라지고 손에 먼지가 검게 묻는다. 시인 생각을 하니 내가 괜히 미안해질 정도로.


  민영은 강원도 철원에서 1934년에 태어난 갑술년 개띠다. 올해 89세. 그러나 만 3세가 되는 1937년 부모를 따라 만주의 간도 화룡현에 살러 갔다가 해방이 되던 소학교 4학년 때 간도가 팔로군과 정부군 사이의 전쟁터로 변모하자 두만강을 건너 조선으로 돌아온다. 이때 세라복에 단발머리를 하고 다니던 구장 집 외동딸 순영이는 그대로 화룡에 남아 1990년대 예순이 넘은 나이가 되도록 창가에 앉아 풍금을 치던 화사한 얼굴을 시인의 마음 속에 지우지 못하게 만든다.

  시인이 난 곳은 철원 가운데서도 지금은 이북 땅인 모양이다. 그래 시인이 휴전선 남쪽의 첫 마을 철원군 월정리라는 곳에 들렀을 때, 기차도 다니지 않는 정거장을 새로 만든 것을 보고, 시 한 수를 지었다.



  월정리에서



  남들은 모두 신록을 찾아서

  남쪽으로 떠날 때

  나 홀로 북쪽으로 길을 잡았다.


  눈 덮인 산야에는

  오랑캐꽃 한 송이 피지 않았고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길 잃은 노루가

  남쪽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 그리운 고향은

  백설白雪의 산마루 저편에 있었다.


  흰 저고리에 감색 치마

  애젊은 누이가 탄불을 갈아 넣고

  아들을 떠나보낸 늙은 어머니는

  동구 밖을 내다보고 계셨다.  (전문)



  시인의 고향 가장 가까운 곳까지 갔건만 거기서 한 발짝도 더 가까이 갈 수 없는 곳. 그곳을 꽃이 만발할 상춘의 계절, 봄에 찾았다. 봄은 봄이건만 아직 철조망 사이엔 눈이 덮였고, 그 산마루 너머에 고향이 있다니, 유년의 봄은 늙은 시인에겐 여전히 유년에 머물러, 아들을 보내는 늙은 어머니는 동구 밖을 내다보고 계시는데, 만 세 살의 시인이 아무리 천재라 해도 이 장면을 정확한 유년의 기억이라 말할 수 없다. 독자가 읽기에는, 오십 살이 되기까지 시인의 새끼 손가락에 봉숭아를 들여주던 어머니, 삼천포에서 잠깐 살고, 단양에서도 산 것처럼 보이는 어머니가 자신을 떠나 보내던 모습을 그린 것이려니 한다. 지금은 용인의 땅 속에서 여전히 자식 걱정을 하는. 그래서 ‘월정리 – 백설 쌓인 산마루 저편의 고향 – 어머니’로 연결되는 게 아닌지.

  아마도 고향에 관해서는 주로 어머니를 통해 이야기를 들었을 터. 어떤 시 속에서도 아버지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까. 민통선 안에 도피안사(到彼岸寺)라는 절이 있고, 이 절에서 모시는 부처가 비로자나불인 모양이다. “사변 전만 하더라도 철원 사람 모두의 원찰이었다”는데, 이 도피안사를 우리말로 하자면 “해탈에 이르는 절” 정도겠다. 철원 사람들은 이 절의 이름 ‘도피안’을, 물론 처음엔 제대로 발음했겠지만, 현명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시 외래어인 도피안도 우리말로 발음하기 편하게 “되피”로 일컫게 되기 시작했고, 그리하여 ‘도피안사’는 간략하고 쉽게 “되피절”이 돼버린다. 똑바로 세운 엄지를 왼손으로 감싸 안은 비로자나불 역시 그냥 “부처님”으로 삼아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은 여러 세대를 거쳐 “되피절 부처님”이 되었겠다.



  되피절 부처님



  내 어린 시절

  한다리 건너 관우리 지나

  되피절 부처님 찾아가던 길은

  초록빛 비단의 꿈길이었네.


  바늘에 찔린 오른손가락

  왼손으로 지그시 감싸 쥐시고

  이승의 새빨간 노을을 보며

  안스러이 웃으시던 되피절 부처님.


  내 고향 철원이

  모을동비毛乙冬非라 불리던 아득한 옛날

  가난한 집 아이들 누더기옷을

  꿰매주시다 다친 손가락.


  그 손에는 흘러내린 자비의 피가

  싸움에 지친 마음에 연꽃을 피워

  철원 평야 매운 바람 거두어 가고

  통일의 봄볕을 비쳐주소서!  (전문)



  염원하는 시. 시의 내용보다 위에서 얘기했듯 도피안사 비로자나불이 되피절 부처님으로 변하는 과정이 훨씬 재미있었다. 앞에 소개한 시 <월정리에서>와 비슷하지만 <되피절 부처님>은 한 시절 모을동비라는 이름이었던 철원의 실향민을 대표해서 아직 눈이 녹지 않은 휴전선이 해동되어 진정한 통일의 봄볕이 쬐기를 바라고 있다.

  이외에도 이 시집에서는 멕시코와 북미 지역의 원주민의 아픔과 바람을 이야기하고도 있는데, 1996년이면, 내년 외환위기, 즉 세계통화기금에 의한 구제금융과 이에 따른 옵션의 실행을 위해 엄청난 시련을 앞두고 있었으니, 역으로 이야기하자면 가장 흥청망청 외화를 써버리던 시기였다. 1 달러에 7백원 대의 환율이었으니 김영삼 정권은 국제화, 세계화를 부르짖어 누구나 다 국경 밖으로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시 한 편을 팔아서 오십 평생 찬 없는 밥을 먹으며 아이 기르는 일 빨래하는 일에만 매달려 살아온 아내의 약을 사야 했던 시인도 미국이며 멕시코를 방방곡곡 여행했나보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원주민의 애사를 알게 되고 이에 감화되어 많은 시편을 쓰고 이 시집에 게재했으나, 그저 내 생각엔 굳이 시집의 1/3 이상을 채울 필요가 뭐……

  그보다는 시인이 예순을 꽉 채웠을 때 다시 시를 생각하는 마음을 쓴 이 시가 훨씬 좋았다.



  반가 返歌



  나이 예순이 꽉 차는 날

  탄탄한 대로를 나는 버리고

  외진 산길을 걷기로 했다.


  조숙한 천재 랭보는

  열아홉 피끓는 어린 나이에

  돈 안되는 시를 외면했다지만,


  후진국에 태어나서

  가난밖에 보답없는 시를 써온 나는

  이제야 지나온 먼 길을 돌아본다.


  불면으로 뒤척이던 기나긴 밤을

  한 구절의 시를 찾아 헤맨 적도 있지만

  꽃보다 소중한 목숨을 위해


  이 아침,

  동해바다의 거센 물결

  모래 위에 쓴 글씨를 다시 지운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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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2-03 10:1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북쪽길, 외진 산길, ,,
세상과 다른 길을 선택한 고독이!
마지막시 마지막 2연에서는 시인의 마음이 어떨지 알것 같아요 ㅠ

Falstaff 2022-02-03 17:00   좋아요 3 | URL
ㅎㅎㅎ 참 오래 전에 좋아한 시인입니다. 역시 서정시가 좋아요. ^^

mini74 2022-03-08 17: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골트문트님 서재에서 시공부 하네요~~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

새파랑 2022-03-08 17:51   좋아요 3 | URL
벌써 나왔군요~! 골드문트님 당선 축하드립니다 ^^

Falstaff 2022-03-08 21:54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두 분도 축하합니다. ^^

그레이스 2022-03-08 18: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축하합니다
시 좋았어요

Falstaff 2022-03-08 21:52   좋아요 3 | URL
고맙습니다. 그레이스 님도 페이퍼 축하합니다. ^^

이하라 2022-03-08 19: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뷰 당선 축하드립니다. 골드문트님^^

Falstaff 2022-03-08 21:53   좋아요 2 | URL
고맙습니다. ^^

독서괭 2022-03-09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Falstaff 2022-03-09 05:49   좋아요 1 | URL
고맙습니다. ^^

thkang1001 2022-03-09 13: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골드문트님! 이달의 당선작 선정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Falstaff 2022-03-09 14:46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
 
서머싯 몸 단편선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2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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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단편집을 이야기하기 위해 지난 연말에 읽은 <케이크와 맥주>로 운을 떼보자.

  거기서는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나하고 잠을 자고,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모든 것을 낭비해버리는 열혈 여성 로지 드리필드가 출연한다. 거의 대다수가 이렇게 단정하는 여성을 단 한 명, 작가의 페르소나가 분명한 어셴든이라는 중견작가만이 이이를 위하여 변호를 하는 바, “새벽처럼 순수한 여자”, “청춘의 여신인 헤베 같은 여자, 월계화 같은 여자”이며 방탕한 생활도 천성일 뿐이라서 “태양이 햇빛을 발산하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듯 자연스럽게 자신은 내어준 것”이라 주장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한 “그녀는 늘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순박한 여자”라고까지 칭송하기에 이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라고 하면 남들과는 좀 다른 독특한 시선으로 사람을 읽을 수 있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서머싯 몸 단편선 1》을 통해 서머싯 몸 만의 “시선의 전환”을 확실하게 체감하게 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건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따르면 적어도 남의 신세는 지지 않고 산다는 건데, 몸은 (자꾸 “몸은”, “몸은” 이러니까 꼭 body를 말하는 거 같다. 앞으로는 “M은”이라고 쓰겠다.) 이런 시각을 아예 외면해버린다. 이건 역설적으로 (한 번 더 주장하자면 ‘나처럼’) 건전한 의식으로 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 여태 우라질 “성실하게”를 엄수하기 위하여 누르고 누르며 지내느라 가슴 속에 맺혔던 응축된 스프링을 한 방에 풀어놓는 듯한 쾌감, 적어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가장 짧은 작품 가운데 하나인 <개미와 배짱이>를 보면, 조지와 톰 램지 형제가 등장한다. 조지는 진지하고 고상한 성품을 지닌 성실한 봉급쟁이 변호사다. 계속 이런 삶을 유지하여 쉰 살이 되고, 3만 파운드의 노후자금을 비축하고, 교외에 집을 지어 정원을 가꾸며 건강을 위해 골프를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말 그대로 개미의 삶. 조지의 가장 큰 불운은 동생, 친동생 맞다, 톰을 다른 서양 형제들과 비교해 과하게 사랑한다는 것. 톰은 직장에 다니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생산해 적어도 생물학적 의무는 다 했지만, 어느 순간, 이제 난 돈벌이 안 해, 라고 선언하더니만 가정과 직장에서 자발적으로, 즉 자기 발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물쓰듯 돈을 펑펑 쓰는데 그걸 다 어떻게 감당을 하나.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줄레줄레 찾아가 돈 좀 빌려달라고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하고, 얼마나 구변이 좋은지 상대방은 빌려준 돈은 절대 갚지 않을 거란 분명한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도 다만 얼마라도 줘야 당연할 거 같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리하여 “누구든 톰 램지를 알았고, 모두 못마땅해 하면서도 그를 좋아했다.”

  톰은 심지어 사기도 쳤다. 어떤 사기인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바로 형한테. 세월이 흘러 예순은 돼 보이는 얼굴을 한 성실 그 자체인 조지 램지가 어느 새 마흔일곱 살이 되었다. 서른다섯 살처럼 보이는 톰은 마흔여섯. 이제 인생이 제대로 되려면, 조지는 전원주택에서 골프를 즐겨야 하고 그렇게 될 거 같은 반면, 평생 베짱이같이 놀고 먹은 톰은 얼어 죽기 일보직전이어야 하건만 불과 몇 주 전에 엄마 나이의 늙은 여자와 약혼을 하자마자 신부가 죽어 그에게 전 재산, 50만 파운드의 현금, 요트 한 척, 당시 세상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런던의 집 한 채, 그리고 전원주택 한 채를 물려받았다. 그러니 평생 일개미로 산 조지 램지의 복장이 터지겠어, 안 터지겠어? 반면에 졸지에 큰 부자가 된 톰은 여전히 화자를 만나면 이렇게 얘기한다나? “어이, M! 주머니가 비지 않았으면 1 파운드만 빌려줄래?”

  그동안 내가 상세한 스토리는 절대 언급하지 않았으면서 통째로 이야기해버리는 건 죽을 때가 되어 마음이 변한 건 아니고, 제일 짧은 단편이기도 하고, 위에서 얘기한 M 특유의 “사고의 전환”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모두 열한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작품 모두가 기대한 대로 M의 필력을 자랑하지만, 내가 읽기에 제일 재미있던 것은 첫번째로 실린 <비>였다.

  의사 맥페일 박사가 영국에서 사모아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사모아 북쪽 일대에서 열성적인 선교활동을 펼치다가 귀국해 일년만에 다시 섬으로 돌아가는 데이비슨 부부를 배에서 만나 친해지게 된다. 그런데 홍역이 돌아 이들은 중간 기착지에서 내려 상당한 기간동안 호텔이 없는 기착지의 현지인 집 2층에 머무르게 되고, 1층엔 통통한 다리가 도드라져 보이고 흰 드레스를 입은 톰프슨 양이 들어온다.

  M이 글쎄, 선교사들에게 무슨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책에 등장하는 모든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데이비슨 부부 역시 선교사 집단의 위세를 등에 업고 여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막강한 힘을 구사하는, 기독교 원리주의자 정도로 묘사를 했던 바, 들어온 날부터 스윙 재즈와 남자들을 불러들여 춤판을 벌이는 톰프슨 양을 호놀룰루의 유곽에서 온 여성으로 간주하여 총독에게 압력을 넣어 가장 가까운 시간 안에 쫓아내려 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쫓아내려 하는 데”에만 성공했다는 거. 톰프슨 양은 총독의 명령에 따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게 되면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해질 수밖에 없어서, 앨프래드 데이비슨 씨에게 울며불며 참회를 해 샌프란시스코 말고 시드니로 가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선교사 데이비슨은 이래서 또 한 명의 집 나간 검은 양을 영혼의 목자이신 주님의 품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하지만, 문제는 이 작품을 쓴 작가가 다른 이도 아닌 M이라는 거. 그게 어디 쉽나. M이 원래부터 종교하고 그리 친하지 않은 건 다들 아시지?

  이 작품이 대표적으로, 독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거하고 결말이 조금 과하긴 해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확인하고 쾌감을 느낀다. 사실 독자를 가장 만족하게 하는 건, 이런저런 단서를 꾸준하게 제시하면서 미궁에 빠뜨리려 노력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마치 자기 독법이 좋아서, 결코 작가가 그것까지 넘보지는 않았으리라고 착각에 빠져, 자기 예상과 비슷하게 결말을 맺는 것이다. 이 작품의 결말이 딱 그렇다. 철없는 독자는 결말을 읽으면서 그것 봐, 내 생각대로 되잖아, 라고 흐뭇해 하다가, 조금 후, 커피 두 모금 마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혹시 M이 애초부터 계산하고 있던 거 아냐? 라는 의심이 들게 된다.


  책을 읽기 전에, 물론 당신이 정말로 《서머싯 몸 단편선 1》을 읽을 때 쯤에는 이 충고를 잊겠지만, 절대로 여태 배운 선한 공식을 염두에 두지 마시라. 즉,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부도덕의 끝은 파멸이다, 이런 건 M 앞에서 거의 언제나 공염불이 될 터이니 괜히 읽으면서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다. 근데 문제는 그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 정말이다. 물론 구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읽어보시라. 특히 <삶의 진실들>에서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몬테카를로에서 도박하기, 남에게 돈 빌려주기, 여자와 접촉하기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저지르는 한 청춘의 앞날에, 아, 축복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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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2-02-02 02: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왠지 이 책 제 취향일듯... ㅎㅎ 달과 6펜스는 사춘기소녀에게 진짜 강렬한 책이었는데 사실 그게 이후 나이들면서는 꼭 서머싯 몸을 읽겠다는 생각을 오히려 없애더라구요. 하지만 골드문트님 리뷰를 보니 내가 아는 서머싯 몸이 아닐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관심 뿡뿡!!!

Falstaff 2022-02-02 20:20   좋아요 0 | URL
핸펀으로는 답글 달기가 쉽지 않아서 좀 늦었습니다. ㅋㅋㅋㅋ
이 책 재미납니다. 6펜스하고는 많이 다릅니다. 삶의 역설을 드높이는 작품이 대부분이고요. <비>는 영화로도 만들었고, 심지어 오페라로 만들어 실제로 공연까지 했다고 하더군요!!!

해변의미풍 2022-06-24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서머싯 몸 단편 1,2편이 민음사에서 나왔네요. 예전에 삼중당문고에 몸의 단편이 10여편 실려있었는데 그때 읽은 이야기의 내용이 어찌나 강렬했던지 <비>,<레드>, <편지>,<인간의 요건>,<열두번째 아내>,<시인>,<점심>등의 직품은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도 기억에 남아있네요. 이번에 나온 단편1에 있는 작품 중에서는 특히 <샘>과 <에드워드 버나드의 몰락>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리고 본 단편1에 수록된 <삶의 진실들>도 예전 KBS인가 EBS를 통해 본 기억이 있는데 유투브에 Quartet 이라는 제목의 내용으로 올라와 있네요. 좋아하는 작가의 단편을 올려주시고 언급해주셔서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