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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 단편선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2
서머싯 몸 지음, 황소연 옮김 / 민음사 / 2021년 9월
평점 :
이 단편집을 이야기하기 위해 지난 연말에 읽은 <케이크와 맥주>로 운을 떼보자.
거기서는 그냥 보통의 사람들이 보기에, 아무나하고 잠을 자고,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 모든 것을 낭비해버리는 열혈 여성 로지 드리필드가 출연한다. 거의 대다수가 이렇게 단정하는 여성을 단 한 명, 작가의 페르소나가 분명한 어셴든이라는 중견작가만이 이이를 위하여 변호를 하는 바, “새벽처럼 순수한 여자”, “청춘의 여신인 헤베 같은 여자, 월계화 같은 여자”이며 방탕한 생활도 천성일 뿐이라서 “태양이 햇빛을 발산하고 꽃들이 향기를 내뿜듯 자연스럽게 자신은 내어준 것”이라 주장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걸 좋아”한 “그녀는 늘 진실하고 예의 바르고 순박한 여자”라고까지 칭송하기에 이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라고 하면 남들과는 좀 다른 독특한 시선으로 사람을 읽을 수 있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서머싯 몸 단편선 1》을 통해 서머싯 몸 만의 “시선의 전환”을 확실하게 체감하게 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주장하는 건 성실하게 세상을 살아야 한다는 보편적 진리를 따르면 적어도 남의 신세는 지지 않고 산다는 건데, 몸은 (자꾸 “몸은”, “몸은” 이러니까 꼭 body를 말하는 거 같다. 앞으로는 “M은”이라고 쓰겠다.) 이런 시각을 아예 외면해버린다. 이건 역설적으로 (한 번 더 주장하자면 ‘나처럼’) 건전한 의식으로 한 평생 살아온 사람들이 여태 우라질 “성실하게”를 엄수하기 위하여 누르고 누르며 지내느라 가슴 속에 맺혔던 응축된 스프링을 한 방에 풀어놓는 듯한 쾌감, 적어도 즐거움을 선사한다.
예를 들어 가장 짧은 작품 가운데 하나인 <개미와 배짱이>를 보면, 조지와 톰 램지 형제가 등장한다. 조지는 진지하고 고상한 성품을 지닌 성실한 봉급쟁이 변호사다. 계속 이런 삶을 유지하여 쉰 살이 되고, 3만 파운드의 노후자금을 비축하고, 교외에 집을 지어 정원을 가꾸며 건강을 위해 골프를 즐기는 것이 인생의 목표다. 말 그대로 개미의 삶. 조지의 가장 큰 불운은 동생, 친동생 맞다, 톰을 다른 서양 형제들과 비교해 과하게 사랑한다는 것. 톰은 직장에 다니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둘이나 생산해 적어도 생물학적 의무는 다 했지만, 어느 순간, 이제 난 돈벌이 안 해, 라고 선언하더니만 가정과 직장에서 자발적으로, 즉 자기 발로 뛰쳐나왔다. 그리고는 물쓰듯 돈을 펑펑 쓰는데 그걸 다 어떻게 감당을 하나.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 있으면 줄레줄레 찾아가 돈 좀 빌려달라고 있는 얘기 없는 얘기를 하고, 얼마나 구변이 좋은지 상대방은 빌려준 돈은 절대 갚지 않을 거란 분명한 사실을 확실하게 알고 있어도 다만 얼마라도 줘야 당연할 거 같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그리하여 “누구든 톰 램지를 알았고, 모두 못마땅해 하면서도 그를 좋아했다.”
톰은 심지어 사기도 쳤다. 어떤 사기인지는 알려드리지 않겠지만 바로 형한테. 세월이 흘러 예순은 돼 보이는 얼굴을 한 성실 그 자체인 조지 램지가 어느 새 마흔일곱 살이 되었다. 서른다섯 살처럼 보이는 톰은 마흔여섯. 이제 인생이 제대로 되려면, 조지는 전원주택에서 골프를 즐겨야 하고 그렇게 될 거 같은 반면, 평생 베짱이같이 놀고 먹은 톰은 얼어 죽기 일보직전이어야 하건만 불과 몇 주 전에 엄마 나이의 늙은 여자와 약혼을 하자마자 신부가 죽어 그에게 전 재산, 50만 파운드의 현금, 요트 한 척, 당시 세상에서 가장 집값이 비싼 런던의 집 한 채, 그리고 전원주택 한 채를 물려받았다. 그러니 평생 일개미로 산 조지 램지의 복장이 터지겠어, 안 터지겠어? 반면에 졸지에 큰 부자가 된 톰은 여전히 화자를 만나면 이렇게 얘기한다나? “어이, M! 주머니가 비지 않았으면 1 파운드만 빌려줄래?”
그동안 내가 상세한 스토리는 절대 언급하지 않았으면서 통째로 이야기해버리는 건 죽을 때가 되어 마음이 변한 건 아니고, 제일 짧은 단편이기도 하고, 위에서 얘기한 M 특유의 “사고의 전환”을 잘 보여주고 있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모두 열한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이 가운데, 작품 모두가 기대한 대로 M의 필력을 자랑하지만, 내가 읽기에 제일 재미있던 것은 첫번째로 실린 <비>였다.
의사 맥페일 박사가 영국에서 사모아 섬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사모아 북쪽 일대에서 열성적인 선교활동을 펼치다가 귀국해 일년만에 다시 섬으로 돌아가는 데이비슨 부부를 배에서 만나 친해지게 된다. 그런데 홍역이 돌아 이들은 중간 기착지에서 내려 상당한 기간동안 호텔이 없는 기착지의 현지인 집 2층에 머무르게 되고, 1층엔 통통한 다리가 도드라져 보이고 흰 드레스를 입은 톰프슨 양이 들어온다.
M이 글쎄, 선교사들에게 무슨 좋지 않은 감정이 있는지 모르지만, 책에 등장하는 모든 선교사들과 마찬가지로 이 데이비슨 부부 역시 선교사 집단의 위세를 등에 업고 여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막강한 힘을 구사하는, 기독교 원리주의자 정도로 묘사를 했던 바, 들어온 날부터 스윙 재즈와 남자들을 불러들여 춤판을 벌이는 톰프슨 양을 호놀룰루의 유곽에서 온 여성으로 간주하여 총독에게 압력을 넣어 가장 가까운 시간 안에 쫓아내려 하는 데 성공한다.
문제는 “쫓아내려 하는 데”에만 성공했다는 거. 톰프슨 양은 총독의 명령에 따라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하게 되면 상당히 난처한 입장에 처해질 수밖에 없어서, 앨프래드 데이비슨 씨에게 울며불며 참회를 해 샌프란시스코 말고 시드니로 가게 해달라고 매달린다. 선교사 데이비슨은 이래서 또 한 명의 집 나간 검은 양을 영혼의 목자이신 주님의 품으로 되돌리는 데 성공하지만, 문제는 이 작품을 쓴 작가가 다른 이도 아닌 M이라는 거. 그게 어디 쉽나. M이 원래부터 종교하고 그리 친하지 않은 건 다들 아시지?
이 작품이 대표적으로, 독자는 자기가 생각하는 거하고 결말이 조금 과하긴 해도 비슷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걸 확인하고 쾌감을 느낀다. 사실 독자를 가장 만족하게 하는 건, 이런저런 단서를 꾸준하게 제시하면서 미궁에 빠뜨리려 노력하지만, 독자로 하여금 마치 자기 독법이 좋아서, 결코 작가가 그것까지 넘보지는 않았으리라고 착각에 빠져, 자기 예상과 비슷하게 결말을 맺는 것이다. 이 작품의 결말이 딱 그렇다. 철없는 독자는 결말을 읽으면서 그것 봐, 내 생각대로 되잖아, 라고 흐뭇해 하다가, 조금 후, 커피 두 모금 마실 시간이 지나면,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도 혹시 M이 애초부터 계산하고 있던 거 아냐? 라는 의심이 들게 된다.
책을 읽기 전에, 물론 당신이 정말로 《서머싯 몸 단편선 1》을 읽을 때 쯤에는 이 충고를 잊겠지만, 절대로 여태 배운 선한 공식을 염두에 두지 마시라. 즉,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부도덕의 끝은 파멸이다, 이런 건 M 앞에서 거의 언제나 공염불이 될 터이니 괜히 읽으면서 조마조마할 필요도 없다. 근데 문제는 그게 마음 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는 거. 정말이다. 물론 구라일 수도 있다. 그러니 읽어보시라. 특히 <삶의 진실들>에서 아버지의 충고를 무시하고 몬테카를로에서 도박하기, 남에게 돈 빌려주기, 여자와 접촉하기를 순서대로 차근차근 저지르는 한 청춘의 앞날에, 아, 축복 있을진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