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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토머스 하디 지음, 서정아.우진하 옮김, 이현우 / 나무의철학 / 2015년 5월
평점 :
절판
영국 남서부의 가상 지역 웨섹스를 무대로 토마스 하디는 몇 작품을 발표한다. 내가 읽은 순서로 나열하면, <더버빌 가의 테스>, <이름 없는 주드>, <캐스터브리지의 시장>, 그리고 오늘 독후감을 쓰는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이 네 권은 또한 내가 읽은 토마스 하디의 모든 것이면서, 전부 가상의 웨섹스 지역을 무대로 한 사실주의적 작품이고, 현재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하디의 장편소설 라이브러리다. 하디는 자신이 만든 전형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시골지역에 천착해, 소위 ‘지방주의’의 첫 발을 디뎠다고 해도 별 무리는 아닐 듯하다. 하디는 지방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잉글랜드 남서 지방 사투리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고, <더버빌 가의 테스> 해설에 나와 있지만, 사투리를 우리말 충청도 사투리로 번역한 건 <…테스> 말고는 없다.
이 책 제일 앞에 ‘로쟈’라는 인터넷 필명을 쓰는 유명한 책 읽기 강사 이현우의 해제가 놓여 있다. 작품의 가장 중요한 등장인물로 비록 가진 것은 하나도 없지만 학교를 졸업해 당시를 기준으로 하면 일정 수준 이상의 교양과 거만, 그리고 허영심을 가지고 있는 스무 살 처녀 밧세바 에버딘이라는 아가씨다. 19세기 작품답게 아가씨가 주인공이면 항용 그렇듯이 절세미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아가씨에게 모두 세 명의 남자가 접근, 청혼한다. 당신이 만약 본문 앞에 놓인 이 ‘해제’를 읽고 시작한다면, 읽는 재미의 절반은 놓쳐버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해제 속에는 이 에버딘 양이 갑, 을, 병, 세 명의 남자 가운데 누구하고 결혼을 하고, 어떤 인생의 굴곡을 거쳐 누가 어떻게 죽을 것인지, 스토리 전체를 아주 친절하게 일러준다. 그런데 독자가 이걸 미리 알아야 한다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작가 하디? 역자 서정아와 우진하? 소위 ‘서평가’ 이현우? 아니면 출판사 사장 또는 편집부장? 만일 6백 쪽이 훨씬 넘는 본문을 읽기에 시간이 없으면 이 해제만 읽어도 어디 가서 잘난 척하기는 충분하다. 말이 나온 김에 해제의 품질에 관해 조금 더 보태자면, 아니, 보태지 말자. 왜 해제를 역자나 빅토리아 시대의 소설을 전공한 그 많은 영문학자들 가운데 한 명에게 의뢰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해제가 독자를 현혹시킬 수 있는 건, 단 한 문장이다.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의 경우 ‘최초의 페미니스트 문학’이란 평판까지 얻었을 정도다.” (9쪽) 다 읽어본 독자들은 아시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완전히 반 페미니즘 적 아닌가? 애초에 토마스 하디는, 숨은 20세기에 넘어갔지만, 엄연히 19세기 작가로 처음부터 여성은 남성에 비해 어리석고 의존적이란 고정관념에 꽉 차 있는 사람이다. 쉽게 살 수 있는 그의 책 아무거나 읽어보시라. 하디를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할 수 있는 세 문장 이상으로 이루어진 문단을 찾을 수 있는지. “우리는 어리석음이라는 요소가 밧세바 에버딘의 성격을 구성하는 갖가지 특징과 단단히 결합했음을 알 수 있다. 어리석음은 그녀의 본성과 거리가 멀었다. 에로스의 화살에 수액처럼 묻혀 그녀에게 침투한 어리석음은 결과적으로 그녀의 성격 전반에 스며들어 천성을 오염시켰다.” (309쪽) 가장 현명한 여성도 외부에서 침투하는 어리석음엔 무방비다. 세 문장으로 구성된 여성비하는 이거 말고도 책에 쌔고 쌨다.
우리의 주인공 밧세바 에버딘 양은, 부모도 없고 돈도 없는 신세지만 학교는 졸업해서 콧대가 하늘을 찔렀고, 뭐 그게 당연할 정도로 기백이 있는 당찬 처녀이다. 당시에는 젊은 여자가 혼자 살 수 없는 법이라서 숙모네 집에 기숙해 얼마간 지낸다. 마차를 타고 캐스터브리지에서 노콤 언덕으로 오를 때 자수성가한 농부이자 제일 중요한 남성 등장인물인 가브리엘 오크를 처음 만나는데, 이 둘의 인연은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되건만, 독후감에선 그냥 넘어가자. 쥐뿔도 없는 아가씨가 마차 안에서 연신 거울을 바라보고 있는 걸 발견한 오크가 밧세바를 허영심 있는 여자라고 첫인상을 받았다는 것만 살짝.
근데, 가끔 첫인상이 정확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얼마 후 밧세바 에버딘 양은 숙모 집을 떠나 웨더베리에 큰 농장을 경영하고 있는 숙부네 집에 얹혀 살러 갔다. 독신에다가 친척이라고는 사방 팔방을 뒤져봐도 밧세바 양 말고는 하나도 없는 숙부가 몇 주 만에 뭘 먹었는지 갑자기 토사곽란을 하더니 꼴깍 숟가락은 놓는 바람에 그 큰 재산이 전부 밧세바 에버딘 양의 치마폭으로 뚝 떨어졌다는 거 아닌가. 이때를 맞춰 노콤에서의 사고로 전 재산을 잃고 일자리를 얻으러 방랑하고 있던 오크가 때마침 불이 난 에버딘 양의 농장에서 가장 훌륭하게 진화작업을 지휘하는 일이 벌어져 졸지에 에버딘 양을 ‘아씨’라고 호칭하는 목동으로 취직하게 된다.
에버딘 양의 농장에 경계를 맞대고 있는 큰 목장의 주인 볼드우드 씨도 중요한 등장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밧세바 양이 스무 살. 볼드우드 씨는 마흔 살. 이이는 전형적인 잉글랜드 사람으로 무뚝뚝하고, 건장하고, 힘도 좋고, 매사에 옳은 일을 해 자기 명예에 스크래치 가는 걸 제일 싫어하고, 자기와 관계없는 곳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 하지만 선량한 마음씨가 필요하면 언제든 머뭇거리지 않는 잉글랜드 특유의 계급인 향사 정도의 위치다. 캐스터브리지의 곡물시장에 가면 단 한 사람의 신사다운 사내이며 큼직한 로마식 윤곽의 이목구비와 청동 같은 윤기의 얼굴에 품위가 넘쳐 흐르는 모습이 다른 이들에게 위압감을 줄 정도다. 당연히 이웃 농장의 어린 소유주에는 전혀 관심도 없고, 심지어 그토록 어여쁜 밧세바 양의 얼굴 한 번 힐끗 쳐다보지 않는 신사……였다.
볼드우드 씨의 모든, 모.든. 불행은 밧세바 양의 짓궂은 장난으로 시작한다. 이제 스물한 살이 된 밧세바 에버딘. 발렌타인 데이가 다가오고, 캐스터브리지까지 나가서 발렌타인 카드를 한 장 사온 것까지는 좋았다. 카드에 “장미는 빨갛고, 제비꽃은 푸르고, 카네이션은 감미롭네. 바로 당신처럼”이라고 써서 농장의 어린 일꾼 테디 코건에게 주려고 했다가, 하녀인 리디 스몰베리와 장난 도중에 동전을 던져 제비를 뽑은 결과 볼드우드 씨에게 보내버린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촛농으로 봉인을 해야 하는데, 에버딘 농장에서 사용하는 많은 문장 가운데 하필이면 “나와 결혼해주오.”라고 쓴 문장을 찍어 보낸 거다. 마흔한 살의 독신남에게. 아니나 다른까, 청교도 같은 집에 도착한 편지의 인장 내용은 심오하고 엄숙한 명령문이라서, 아마 우리말로 번역하며 청유형으로 바뀐 것이지 원문엔 예컨대 Marry me, 정도로 쓰인 모양 아닐까, 이 편지를 감히 장난으로 보낸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한 거다. 게다가 익명의 편지라니, 볼드우드 씨는 인생 최초의 혼란을 겪으면서 발렌타인 카드 자체를 무례한 행위로 간주하지 않고 정중하게 청혼을 해달라는 요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웨섹스 지방이니까.
에버딘 농장의 어린 하녀로 일하던 패니 (작 중 중요한 단역) 문제로 친하게 지내는 목동 오크를 통해 카드의 필적이 에버딘 양임을 확인한 볼드우드 씨는, 난생 처음으로 여성에 대한 사랑이 뭉근하게 달구어지기 시작해서, 시간이 지남에 따라 활활 불타오르게 된다. 그리하여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에버딘 양에게 돌진해서 곧바로 청혼을 하는데, 밧세바 입장에선 아닌 밤중에 홍두깨 떨어진 꼴이다. 결코 진지하지 않은 가벼운 장난이었다는 것을 함부로 고백하지 못할 만큼 진지하고 신중한 태도에 그만 콱, 질리고 만다. 스무 살 더 먹은 남자가 접근, 청혼하는 게 징글맞고 역겹다고? 때는 빅토리아 시대다. 이 책이 나온 때가 1874년. 불과 2년 전, 하디의 멘토 격이었던 조지 엘리엇의 작품 <미들 마치>에서 도로시아 브룩도 열여섯 살 연상의 성공회 신부 커소번 씨와 즐거운 마음으로 결혼한다. 오히려 자기가 커소번 씨에게 합당한 배우자 자격이 있을까를 의심하면서. 나이 차이는 당시엔 아무 장애도 아니었다.
근데 에버딘 양에게는 문제가 있다. 애초 발렌타인 장난으로 시작한 것이지 조금이라도 그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다른 남자, 자신보다 여덟 살 많은 자수성가한 농장주가 청혼을 한 적이 있으나 그때도 그를 사랑하지 않아 정중하게 거절했음에야 이제 자신 스스로가 부유한 농장 주인이 된 상태에서 뭐하러 사랑하지도 않는 중늙은이의 품에 안기겠는가. 문제는 볼드우드 씨가 청혼을 거절당하자 거의 모든 일상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것. 추수를 해놓고 마당에 낫가리가 쌓여 있는데, 천둥번개와 폭풍우가 쏟아져도 그걸 그대로 방치해 내다 팔기는커녕 돼지 먹이로도 주지 못하게 되어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치는데도 전혀 관심을 쏟지 못할 정도로 피폐해진다. 혼자서는, 나중에야 밝혀지지만, 에버딘 양을 향한 편집증적 마음을 감추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여곡절 끝에 완벽하게 인생을 망가뜨린다. 이게 다 갓 부자가 된 밧세바의 발렌타인 장난으로 시작된다.
왜 이게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여성의 장난으로 한 남자의 인생이 완전히 거덜이 나서? 재미는 있지만 읽는 도중 내내 불쾌하던데, 나만 그랬나보다. 독후감에선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또다른 중요한 등장인물의 행위도 도무지 이해불가. 우리말 제목도 참 후지게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