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무엇인가를 갈구한다. 사람들은 고독-궁극적으로는 죽음-앞에서 평안함을 원했다. 불변의 절대자라는 존재야말로 고통과 슬픔 그리고 외로움으로 점철된 삶에서 인간을 건져낼수 있는 최고의 발명품이었다. 신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절대자의 영원성의 이미지가 자신과 하나되는 것, 그럼으로 생에대한 긍정적인 감각을 유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종교의 본질이었다. 사람들은 마음에 평화를 얻었고, 사회는 안정되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절대자가 인간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아들을 인간의 죄를 위해 희생양으로 내어 주었다는 선홍빛의 서사구조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고, 문학적인 상상력이 덧붙여져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이러한 종교에 대한 통찰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당신은 크리스챤임이 분명하다. 오분도 채 되지 않는 문답과 세례라는 형식을 통해 기독교의 가치관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절대자에게 인간의 마음을 돌리는데 5분은 긴 시간이 아니지만, 절대자는 아무래도 자신의 피조물이 초월적인 권력을 통해 자신에게 복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 같다. 어느것에도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때 자신에게 돌아오기를 원하는 것이다. 연인처럼, 혹은 자식이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묵묵히 바라보는 어머니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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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표는 1년 안에 JLPT N1 등급 획득. 확인 결과 N1 등급은 일본어를 1200시간 공부한 정도의 실력이라고 하는데, 1년에 1200시간 하려면 하루에 4시간은 일본어에 투자해야한다는 말이 된다. 가능할런지는 모르지만, 일단 시작해 보기로 했다. (원래 잘 모를때 용감해지는 법이다.) 

 2009년에는 공부했던 토플에서의 소득은 외국어를 어떻게 공부해야하는지에 대한 감이 생겼다는 것이다. (목표점수가 달성되지 못했으므로 신빙성은 없지만) 첫번째 교훈은 교재의 수를 줄일 것. 그냥 한 두가지 책으로 거기에 담긴 내용을 (모두) 외운다. 새로운 것 하려고 하지말고 내가 말할 수 있는 문장이 될 때까지 반복한다. 책이나 영화, 애니는 읽고 또 읽는다, 보고 또 본다. 두번째는 글보다는 말 중심으로 공부할 것. 말이 되야 쓰기도 가능하고, 독해와 청해를 통해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단어와 문장의 패턴을 늘려갈 수 있으므로 말할 수 있는 언어 학습을 할 것.

 교재는 민나노 일본어가 유명하다고 하는데, 등급이 너무 잘게 나누어져 있고 (좋은말로 하면 체계적임) 여러권 보는 것 보다 한권으로 반복해야한다는 스스로의 원칙에 충실하기위해 한권으로 된 책으로 골랐다. 가격도 저렴하고 무엇보다 이쁜(잘생긴?) 여자 선생님의 무료 동영상 강의가 제공된다. 오!

 이 책을 시작할때 히라가나는 대충이나마 외운 상태였고, 가타카나는 다 못외운 상태였는데, 글자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까 이제는 대충이나마 읽을 수 있게 된듯. 2/3정도 봤는데 아직 가타카나를 완전히 못외웠다는 것은 아이러니...


 여하튼 여러번 보는 것이 목적이다 보니까 일단 기억이 안나더라도 읽어보고 외워보면서 진도를 나가고 있다.  일단 4가지의 문장 유형을 제시하고, 각각의 유형에 다른 단어를 집어넣어 다른 문장을 만들어보고, 최종적으로는 4가지 문장 유형이 담긴 실전화화로 마무리되는 양식. 큰 특징은 없지만 적당한 양이고 내용도 나쁘지 않은 듯. 일단 열심히 외우는 중... 


 한자어로 된 동사나 형용사를 읽고 쓰는게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을 다 보고 난 후 동사와 형용사로 쓰이는 한자만 따로 정리해서 외우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얼마전 일본 대학원 모집 요강을 다운받아 읽어 볼 일이 있었는데(물론 구글 번역기를 이용했다.) 문자의 90프로가 한자라는 사실에 멘붕. 그러나, 한자만 알아도 대충의 의미는 파악이 가능하다는 뜻도 된다. (발음도 모르고 쓰지도 못하는데 독해가 파악된다는 아이러니...) 고난이도의 일본어를 구사할 수록 한자는 필수인 듯. 이 기회에 한자도 외우고 좋지? 라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책을 구입.       


 한자의 형성원리를 통해 뜻을 설명하는 책으로 영어로 치면 어원을 통한 단어 학습법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어원을 안다고 발음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함정이지만. 뭐 어쩌겠나 죽어라 외워야지.


 목표는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여기에다 이번주의 목표는 무엇인지, 무엇을 공부했는지 기록해보려고 한다. 일년 쯤 뒤에 돌아보면 꽤나 신기할듯. 물론 그때까지 꾸준히 공부를 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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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2013-01-25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본어 공구 해야하는데 이놈의 귀차니즘...
이학년 때 제 2 외국어로 일어를 배우는지라 열심히 해야하는데..

일개미 2013-01-28 09:35   좋아요 0 | URL
우리 모두 열심히 해봐요! 귀차니즘을 극복합시다!

일개미 2013-01-30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http://blog.naver.com/tamaraciel/120040991551
참고할만한 블로그!
 
[죽음이란 무엇인가]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죽음이란 무엇인가 - 예일대 17년 연속 최고의 명강의 삶을 위한 인문학 시리즈 1
셸리 케이건 지음, 박세연 옮김 / 엘도라도 / 201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비리그로부터의 명강의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의 서점을 점령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2010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부터 였던 것 같다. 2011년에는 와튼 스쿨 원하는 것을 얻는 법이 공전의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고, 올해는 예일대의 인기 강의라는 죽음이란 무엇인가가 한국에 출간 되었다. 명강의라 함은 오랜기간 학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는 것이고 이는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거나 내적인 의미가 있었다거나, 아니면 적어도 강의 자체에 매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다.(학점을 잘 줬을지도 모르겠다.) 확실히 원하는 것을 얻는 법은 삶의 실용적인 측면에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유용한 관점을 제시해 주었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것인가. ’죽음이라는 단어에서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해주리라고 기대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 커다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 '죽음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거창하게 시작하지만, '물리주의자가 바라보는 생의 긍정'이라는 어쩌면 특이할 것 없는 결론으로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저자는 인간은 물질로 이루어진 유한한 존재라는 관점을 강력하게 견지하면서 이러한 관점을 독자들이 수용하기를 바래마지 않는다. 꽤나 정교하게 짜여진 것처럼 보이는 논리의 틀 안에서,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영혼이나 인격과 같은 요소들의 존재는 부정당한다. 그러나 육체는 어떠한가. 시간이 지나면서 노쇠하고 결국 썩어서 없어지기는 하지만 그 자체가 우리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을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저자에게 육체야 말로 우리 존재의 본질적인 것으로 여긴다.

 

 '물리주의적 관점'은 인간은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기계와 같다는 것이다. 인간의 육체는 다만 컴퓨터나 여타 기계에 비해 더욱 다양하고 복합적인 기능을 수행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관점으로 인간의 삶과 죽음이 충분히 설명된다고 보기 때문에, 영혼이나 절대자의 개념을 상정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한다무신론적이고 유물론적인 인간관을 가지고도 생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어쩌면 조금은 새로운 시선일 수도 있겠다삶의 가치를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자들과 비교해보면 특히나 그렇다. (심지어 몇몇 철학자들은 자살이야말로 인간이 자유의지로 행할 수 있는 유일한 행위라고 말하지 않던가?) 저자는 인생 자체가 축복이라는 관점에 기울어 있는데 읽어나가다보면 물질 이상의 것은 없다는 유물론적인 관점위에 인생은 (신의) 축복이라는 기독교적인 시선을 교묘하게 덧칠해놓은 듯 한 인상을 받게된다.

 

 이는 논리적인 전개를 통해 얻게된 일반해라기 보다는미국이라는 상황에만 성립하는 특수해라는 인상을 준다. 이른바 '박탈이론'이라고 불리는, 살지 못하면 누리지 못하는게 많기 때문에 생이 가치있다고 하는 주장을 오늘날 여전히 대부분의 주민이 극빈한 상태에 놓여있는 소말리아나 북한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 저자의 관점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빈곤에 의해 고통받지 않아야하며 자기의 노력에따라 자신의 꿈을 성취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어야한다. 구상에 이 정도의 요건이 갖춰진 나라는 많지 않기 때문에 저자의 주장은 의심스럽다.

 

 두가지 정도만 더 지적하고 마무리하려고 한다. 한가지는 개념의 정의에 관한 문제이다. 명확한 경계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 이런 질문은 신체 기관을 향하면 더욱 문제가 된다. 이를테면 인간의 인격을 담는 장기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뇌일 것이라는 가정이 그렇다. 뇌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을 조절하는 중추인 것은 맞지만, 뇌는 다른 장기나 신체 부분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육체가 쇠락해질때 뇌에 영향을 미쳐 우울증을 가져오기도 하는 것을 보면 뇌와 다른 신체조직이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인격의 핵심이 뇌에서 온다는 논의를 진전시키려면, 뇌는 다른 장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적인 중추 기관이라는 것이 입증되어야한다. 

 

 다른 한가지는 많은 것을 계량화시킴으로 설명 되는 것에서의 문제점이다명확하고 구체적인 정의가 명확한 결론을 이끌어 내는 것은 사실이다. 과학에서 정확한 실험 결과를 위해서는 명확한 실험값이 요구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러나 인생의 행복이나 슬픔이 객관적인 수치로 표현 될 수 있는 것인지는 의문이다. 설령 수치화될 수 있다고 해도 행복과 슬픔을 구분하는 기준점은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 것일까. 삶 자체를 긍정 혹은 부정하기 위해 우리의 삶의 행복과 불행을 수치화시킨다는 가정은 그야말로 머리 속에서만 행해지는 사고실험일 뿐이지 않은지? 

 

 이런 비판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통해 미국의 아이비리그의 명강의라 불리기 위한 필요 요건들을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유용하다. '정의는 무엇인가'의 구성방식과 유사하게, '죽음이란 무엇인가' 역시 죽음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 개념과 의미에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독자는 그 질문에 답하기도 하고 저자의 관점을 수용하기도 하고 반박하기도 하면서 자신만의 관점을 형성해 나간다.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자신만의 관점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조금은 비판적인 관점을 가지고 이 책을 바라보더라도 저자는 자신의 소임을 다했다면서 즐거워 할 것이리라.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기 시작한 저학년의 대학생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실제로도 이 책의 시작은 대학생들을 위한 교양 철학강의 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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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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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2011년 기준 10만명당 31.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OECD 국가 중에서 자살율이 1위라고 한다. 20대의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고 하니, 우울증을 비롯한 마음의 병은 이미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정신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을까. 정신분석학과 현대의학이 주류인 시대에, 이 책은 철학을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취한다. 철학자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통해서 말이다.  


 스피노자를 이야기하면서 데카르트에 관한 언급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에게 큰 영향을 받았지만, 향후에 데카르트와는 다른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게 된다. 저자는 스피노자 관점을 통해 데카르트의 철학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에 대한 주요한 원인 중에 하나로 데카르트적인 세계관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인 세계관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스피노자의 관점은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자아

 

우선 자아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해보자.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던 데카르트에게 '생각하는' 자아만이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불변의 존재였다. 이는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던 당시에 신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스피노자는 자아가 고정된 실체라는 것에 의문을 던진다. 오히려 자아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용', 즉 '~이 되기(becoming)'를 통해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가지의 역할만 가지고 또 거기에 고정된 상(像)을 쫒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수용하고 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자아를 가지자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논지를 발전시켜 나아가 불안이나 강박은 고정된 상(像)을 자신에게 억압적으로 투영시켰을때 역시 정신질환 일어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1장 불안증, 5장 강박증) 

 

 정신과 육체

 

  그들이 바라보는 정신과 육체에 대한 관점은 어떠했을까.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육체에서 나오는 감각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성이라는 도구만을 가지고 끊임없는 회의했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한편 스피노자는 정신과 신체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운동을 통해 체력이 좋아지면 그에따라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나, 건강이 나빠진 사람이 쉽게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스피노자는 육체로부터 오는 감각이나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오히려 그것들을 억압하는 것이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육체와 정신의 균형이 깨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정신병을 일으킬 수 있다. (7장 도착증, 8장 공황장애)  

 

 개인과 공동체

 

 그럼 개개인을 다수로 확장시켜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살펴보자. 데카르트의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고립된 섬처럼 작용한다고 본다. 그 안에서 각각의 개인은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기 보다는,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개체이다. 스피노자가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어떠한 관계를 갖느냐, 어떤 식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정서를 좌우한다고 본다. 상호 긍정하는 관계에서는 기쁨을, 억압된 관계에서는 슬픔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타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을 재설정하지 않고, 단지 개개인의 태도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을 통한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장 우울증)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


 한편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을 스피노자는 '특이성'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개개인을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낸 기성품과 같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성을 가진 수공예품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겠다. 특이서의 관점은 전체를 지배하는 신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신은 유일무이한 개체 안에 내재되어있다는 범신론적인 관점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관점은 전체에 매몰된 개인이 그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4장 신경증, 9장 중독)

 

 결론

 

 데카르트가 고정적이고 이성 중심적인 관점 취한다면, 스피노자는 유동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입장을 지지한다. 이성이라는 도구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 것이다. 이성과 함께 이루어온 근대 서양사의 공과를 모두 데카르트에게 돌릴 수 는 없겠지만, 근간에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대안적인 차원에서 관계 중심적인 스피노자의 관점은 관계망의 재설정을 통한 정신적인 아픔의 치유를 포함해, 수평적관계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패러다임으로 유용하게 사용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 시대의 아픔이 단지 개개인의 '내재적인 역능'을 변화시키는 차원에서는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청년 실업이나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 문제를 통해 생겨나는 개개인의 상실감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손보지 않고 개개인이 관계망을 재설정 하는 것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사람은 결국 부대끼며 살아야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에 있다. 저자가 스피노자의 입을 빌려 '관계망을 재설정하라'는 말은,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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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예술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거짓말처럼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반성과 함께 뒤늦게나마 페이퍼를 작성한다.

 

역사에 관한 책을 읽고 싶어져서 몇권을 골라보았다.

주제는 비주류를 위한, 비주류에 관한, 비주류에 의한 역사.

 

  유라시아 고려인 디아스포라의 아픈역사 150년

 유대인들은 남북왕조가 무너진 후 신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에 강제로 끌려가게된다. 그들은 훗날 팔레스타인 땅으로 되돌아 왔지만, 일부는 바빌론에 남겨져 공동체 생활을 유지하게 된다. 이처럼 한 인종이 자신의 살던 곳이 아닌 다른 나라로 이주해 '흩뿌려지거나 퍼지는 것'을 '디아스포라'라고 부른다. 고려인은 19세기에 연해주 등지에 살던 조선인(그 당시)들이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인해 중앙아시아로 '흩뿌려진' 사람들을 지칭한다. 일제의 패망이후 사할린 섬에 남겨진 조선인과 같이 유라시아에 걸친 고려인들을 모두 합친다면 그 규모가 50만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나 주류가 아닌 이들의 삶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한국에서도, 북한에서도, 소련에서도,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에서도 이들은 이방인일 뿐이었다. 소외되었던 그래서 기록되지 못했던 그들의 삶을 저자는 어떻게 그려내었을까.

 

 

  파시즘과 제3세계주의 사이에서

 스스로가 자신을 설명할 기회를 가진다면 어떠한 글이 쓰여질까.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이 가능할까. 장점은 부각되고 단점은 포장되지 않을까. 취직을 위한 자기소개서의 샘플을 보면 어느 하나 쓸만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막상 일을 시작한 신입사원은 자기소개서와는 딴판이다. 한편, 자신이 직접 기술한 스스로에 대한 모습 보다는 타인이 나를 보는 시선은 좀 더 객관적일 가능성이 크다. 지인이 소개시켜주는 소개팅에서 나오는 상대방의 수준이 내가 사회적으로 평가받는 수준과 유사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을 접한적이 있었는데, 인간을 수치화한다는 점이 불쾌하기는 하지만 냉정하게 바라보면 꽤나 수긍이 가는 이야기였다. 저자는 일본인이다. 어쩌면 그의 시선이 우리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것 보다는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갖게 한다. 저자는 뉴라이트가 이야기하는 것 처럼 이승만과 그의 세력들이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시장경제의 옹호자가 아니라는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나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반제국주의 그리고 반자본주의적인 기조 속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기반을 형성해 나갔다는 주장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이다.

 

 99%의 로마인은 어떻게 살았을까

 스스로가 1%라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의 삶은 훗날 역사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마 존재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먼지와 같이 역사 속에서 사라지겠지. 평범한 개개인들의 삶은 사회를 만들어내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이들보다는 권력구조의 상위의 존재들을 중심으로 기술되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러한 서술에 가려져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화려한 로마제국과 그 시대는 그 화려함을 떠받치는 대다수의 기억되지 않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 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쩌면 이 책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항상 화려하게만 보였던 로마라는 여자친구의 화장을 걷어내고 마주하는 그녀의 '생얼'일지도 모른다.

 

 

 

 맥주, 문화를 품다

어느나라에나 그 지역을 대표하는 술이 있다. 동양에서는 쌀을 이용해서 곡주를 만들었고, 유럽은 홉을 이용해서 맥주를 만들어 마셨다. 석회질의 물이 마시기에 좋지 않았던 것도 맥주가 생활 음료로 받아들여지는데 한 몫을 했다고 한다. 이 책은 맥주에 대한 이야기한다. 그러나 단순히 맥주의 종류나 특성에 대한 것만은 아니라고 한다. 기원과 종교 그리고 삶에서 발견되는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맥주의 문화사라고 해야할까? 하여간, 맥주야 모임에서 빠지기 힘들 정도로 자주들 마시는 것이지만 이런 뒷 얘기들까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알아두면 술자리 안주로도 유용할 것 같은 책. 

 

 그나저나 비주류에 관한 추천을 한다고 해놓고 주류에 관한 책을 선정하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세계사의 구조

 잘은 모르겠으나 맑스를 기반으로했다고 하니, 결국은 오늘날 자본주의 사회가 가진 문제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으로 기술한 책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문제제기와 어떠한 방식으로 바라보는지, 그리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 맑스가 오늘날에 주류는 아니지만 브레이크가 사라진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비판하는데는 여전히 유효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 '가라타니 고진'이라는 저자의 이름은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다. 나같은 문외한이 이름이나마 알고 있다는 것은 저자가 그 분야에서 상당한 내공을 쌓아온 사람이라는 얘기다. 그말인즉슨, 독창적인 관점을 기대하게된다는 말도 된다. 이미 신간평가단의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선정해 주셨지만 뒤늦게나마 그 행렬에 동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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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가 2013-01-15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꺠알같네여. 고소미.

일개미 2013-01-16 17:59   좋아요 0 | URL
알아봐주셔서 감사하므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