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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음악의 철학]

 말러를 듣는 사람으로써 한번쯤 읽어보고 싶었던 아도르노의 신음악의 철학. 철학자 아도르노는 음악에 대해 특히나 관심이 많았다고 하는데, 게중에 말러나 쇤베르크 일당(베베른, 베르크) 혹은 스트라빈스키에 대한 평을 많이 남겼다고 한다. 한분야에 전문가가 되기도 쉽지 않은데 음악의 철학적 접근이라니. 개인적으로는 음악은 머리 이전에 감각으로 듣고 받아들이는 언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기표와 기의로 이루어진 일상언어로 어떻게 해석되고 설명되는지가 조금은 궁금하다.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도전했으나 쉽지 않다고들 이야기하는 책이다. 선정되었으면 좋겠지만서도 선정되었다고 마냥 기쁘지만은 않을 책. 아마 읽게된다면 그 한달은 쉽지 않을 듯.




 [불국사에서 만난 예수] 

 사찰에서 만난 예수라니? 이땅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이 조선 후기 정도로 알고 있는 사람도 많은데, 실은 신라시대에 이미 '경교'라는 이름으로 당나라를 통해 전해졌다. '네스토리우스교'라고 불렸던 '경교'는 서기 300여년에 이단으로 박해받은 네스토리우스가 아랍, 중앙아시아, 아프리카로 이동하면서 전해진 기독교의 한 갈래이다. 중앙아시아를 거쳐 당나라에 전해지게 되는데 당나라에서는 부유층을 중심으로 성행했었다고 전해진다. 기득권 층을 중심으로 전해진 경교는 그 뿌리가 튼튼히지 못하여 중국에서 힘을 잃어버리고 말지만, 그 당시에 당나라와 교역하던 신라에서도 포교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이 근거로 불국사에 새겨진 돌십자가를 근거로 든다고 하는데, 글쎄. 자세한 내용은 책을 통해서 확인해보면 좋을 것 같다. 이제 곧 성탄절이기도 해서 기독교에 역사에 대한 책을 골라보았다.


[커뮤니티 디자인]

개인적으로 일본의 문화와 그 문화가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사랑한다. 우익들이 설치는 꼴과 별개로 말이다. 확실히 일본은 배울 것이 많다. 이미 우리나라의 체계가 일본을 모델로 만든 것들이 많기 때문에, 일본의 사례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사회 전반적인 문화의 결정체인 건축은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앞서있고 시사하는 바가 크다. 커뮤니티(Community)라는 것은 무엇일까. 주민들이 공통으로 이용하는 시설들을 총칭한 것으로 정의하면 아마 맞을 거라 생각된다. 서로 소통하고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커뮤니티가 형성되어야 좋은 도시, 좋은 마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문제는 실천방법이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는 것에 있다. 요즘처럼 온라인 기반의 커뮤니티가 발달되고 있는 사회에서 특히나 그렇다. 그래서 이 책이 궁금하다. 잘 작동하는 커뮤니티를 어떻게 실현시켰는지 말이다.



[왜 우리는 더불어 사는 능력이 세계 꼴지일까?]

사실 우리나라가 더불어 사는 능력이 떨어지는 나라는 아니었다. 그 옛날 농촌에서는 두레나 품앗이 같이 노동력을 공유하는 체계가 잘 형성되어있었고, 지금도 우리네 어머니들은 지인들과 함께 김장을 담그시곤 한다. 어쩌면 오늘날 공존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것은 무한 경쟁을 기반으로한 자본주의 체제가 만들어낸 것 같다. 사실 자본주의는 효율을 높여주기는 하지만 함께 성장하고 살아간다는 '연대' 혹은 '공동체' 라는 의식은 줄어들게 된다. 상대방을 같이 나아가야할 선의의 경쟁 대상이라기보다 짓밟고 이겨내야하는 적이라는 전쟁과 같은 구도를 형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체제 안에서 대안을 찾기란 쉽지는 않다. 의식의 변화와 체제의 변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이 책이 어떠한 대안을 제시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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얽힘의 시대 - 대화로 재구성한 20세기 양자 물리학의 역사
루이자 길더 지음, 노태복 옮김 / 부키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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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새 양자물리학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고 했더니 친구 중에 하나가 양자물리학이야말로 이 시대의 종교라고 이야기한다. 상당부분 동의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각 이상의 것을 동원해야 겨우 이해할 수 있을까 말까한 체계이니까 말이다. 이성적인 이해를 통해 본질로 깊숙하게 들어가다보면 어느 지점에서는 선택을 해야하는 순간이 온다. 이걸 믿어야하나?  

 양자물리학의 세계는 신비롭다. 원자보다 더 작은 양자-전자,광자 등을 포함하는 최소 단위의 총칭-의 세계에서는 고전물리학의 논리가 완벽하게 들어맞지 않게된다.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 하나는 빛이 파동이냐 입자이냐에 관한 것인데, 고전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이 둘의 경계가 명확한 반면 양자물리학의 세계에서는 이 둘의 경계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보는 가시적인 세계에서는 파동은 파동이고 입자는 입자일 뿐이다. 그러나 미시 세계에서 양자는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다. 

 이런 모호함, 그리고 경계 없음 이상으로 놀라운 것은 조건이 완벽하게 주어져도 양자의 세계에서는 양자의 위치를 확률적으로 밖에 파악할 수 없다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이다. 조건이 완벽하게 주어지더라도 그 정확한 결과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개념은 조건을 통해 정확한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고전물리학 체계를 완전히 뒤엎는 것이었기에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물리학은 양자물리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마치 코페르니쿠스가 지동설을 통해 우주의 중심은 지구라는 천동설 패러다임을 흔들어 놓았듯, 양자물리학은 조건을 알고 있으면 미래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고전물리학에 근거한 신념 체계를 깨트려 놓았다. 양자물리학은 모든 것을 결정론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사고체계를 바꿔놓았다. 인간의 이성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겸손 혹은 무기력함을 심어준것이다.

  이 책 만으로 양자물리학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양자 물리학에 흥미를 가지게 되는 출발점으로는 적당할지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현대 물리학의 체계를 완전하게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여겨진다. 양자물리학은 우리가 쓰는 일상어로 설명되어질 성질의 것은 아니다. 물리학의 체계는 수학적인 설명이 필요하고, 양자물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수학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양자물리학에 호기심이 생기는 사람들은 더 다양한 책들- 특히 수식으로 설명하는- 을 접해보기를 바란다.

 구체적인 양자물리학의 체계에 대한 이해라는 측면에서는 한계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물리학의 거장들의 대화와 사고의 흐름은 꽤나 흥미로운 부분임을 부인할 수 없다. 보어, 보른, 파울리, 아인슈타인, 하이젠베르크, 슈뢰딩거, 드브로이, 봄, 오펜하이머, 파인만, 벨과 같은 기라성 같은 물리학의 거장들의 대화가 이 책을 수놓고 있다면 물리학에 관심있는 그 어느 누가 이 책을 거부할 수 있겠는가. 생생한 대화들은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 자리에 동참하고 싶다는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이들의 대화는 물리학이 어떠한 수식 체계 이전에 하나의 신념체계라는 것을 보여준다. 아인슈타인은 평생동안 양자물리학이 이야기하는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신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마디였다. 물론 아인슈타인의 신념과는 달리 양자물리학의 불확실성이 양자의 세계를 설명하는 적확한 체계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말이다. 물리학자들은 자신의 신념체계를 논증하기도하고, 타인의 체계를 이어받기도 하며, 또는 반박하면서 물리학의 체계를 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있다. 

 왜 많은 학자들이 왜 눈에도 보이지 않는 미시세계의 원리를 밝혀내는 것에 자신의 인생을 바친 것일까. 몇가지 생각이 든다. 이 체계를 밝혀냄으로 효용을 만들어 낼 수도 있고, 그 자체가 세상을 설명하는 지적 유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호기심이야말로 그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우주의 시작과, 형성에 대한 물음에 답해줄 가능성이 있는 몇 안되는 도구가 바로 양자 물리학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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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을 쓰는 사람이 되고자한다면 정신병자의 사례를 분석해보는 것도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분열증 환자들은 기표와 기의를 분리시킬줄 알고(이것은 운문의 특성이다) 자신의 광기를 설명할 광기를 서사적으로 그리고 논리적으로 구성할줄 안다(이것은 소설의 구조와 매우 유사하다). 게다가 다르게 보기라는 특성도 가지고 있다. 관습적이지 않은 시선을 가졌다는 말이다. 

 

 다음은 어느 정신병동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소금을 매고가는 당나귀가 시내를 건너다가 넘어지자 무게가 줄어드는 것을 알고 시내를 건널때마다 넘어졌으나 솜을 매고 가던날에 요령을 피우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우화에서 한 환자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나귀는 노예의 삶을 마감하기 위해서 자살한 것이다.'

 

  사실 이런 사례들은 우리가 바라보는 의도나 세상의 틀이 얼마나 고정적인지 잘 보여준다. 정상이라고 하는 것은 경계를 긋고 그 안에서 규범에 맞는 것과 그렇지 않늘 것을 구분하는 것인데 세상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는 경우가 살아가다보니 점점 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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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의 정당도 한가지 방법일 수는 있다. 그러나 기득권이 언론과 재벌과 현란한 이미지 메이킹으로 자신들의 정적을 교묘하게 깎아내리는 판에서 과연 제3의 정당이 그 공격을 이겨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우리가 바라보는 정치권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처럼 국회의원들이 매일 싸움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안건과 토론이 오가고 오랜 시간의 힘겨루기를 통해 법안이 통과되고 예산이 심의된다. 정말 누가 어떻게 일하는지 궁금하다면 뉴스에 나오는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언행이 아니라 국회도서관에서 회의록을 들추어보는편이 낫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불신이 어떻게보면 정보부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노무현이라는 인물을 재평가하고 있다. 그가 추구했던 가치나 객관적인 자료를 보더라도 완전히 실패한 정권이라고 폄하할 수만은 없었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참여정부가 추구하던 가치는 수직적인 사회구조가 만들어내는 독점을 해체하는 것에 있었다. 정권을 잡은 그들이 수평사회를 만들기위해 실천한 방법론 중의 하나가 바로 모든 일을 투명하게 처리하는 것, 즉 정보의 공개였다. 정보가 공개되면 비밀리에 행해지던 일과 거기서 나오는 부정한 권력이 힘을 잃는다. 역대 가장 많은 정부 기록물을 남긴 것은 참여정부였다. 통계상 이번 새누리당 정부의 그것의 8배에 해당하는 양이다. 경제나 안보의 문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볼만하다. 당시 한국은 신자유주의의 조류에서 자유무역협정을 진행해야만하는 입장에 놓여있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더이상 경제적 쇄국정책을 지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개성공단을 통한 경제협력을 통해 북한의 저렴한 노동력과 대한민국의 기술력을 결합해 한국산 상품을 만들어 수출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미국을 상대로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으며 남과 북이 개성공단을 통해 상생하는 경제 공동체를 만든다는 구상이었다. 단지 안보만을 외치고 대결구도로 몰아가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된다면 안보라는 가치는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다는 관점이었다. 

 

 오늘날 민주당은 너무 심하게 까이고 있다. 자신들이 행동한 것 이상의 비난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마치 오늘날의 기독교를 보는듯 하다. 그러나 민주당도 기독교도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들의 할일을 하고 있다. 단지 그것들이 드러나지 않을 뿐 인것이지 그들이 행동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기독교가 부담하고 있는 복지 분담은 국가재정의 상당부분을 커버할 정도로 크다.)오히려 비난하고 싶다면 이러한 정책을 반대한 새누리당과 악의적으로 비난을 일삼는 보수언론을 탓해야한다. 기득권들이 장악하고있는 언론은 민주당이 새누리당과 별반 다르지 않으며(심지어는 더 추악하고) 부패한데다가 무능하기까지한 당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사실 이러한 프레임으로 이득을 보는 것은 새누리당이다. 애초에 출신 성분 조차가 친일, 독재, 성적 부도덕함에서 시작하는 당은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있지만 능력있는 그리고 안보를 지키는 보수라는 이미지로 국민들을 속이고 있다. 잘 생각해보고 또 지표로 확인해보자. 어떤 정부가 기득권을 위한 정책을 실현했으며 또한 안보에 위협을 주는 사건을 만들어냈는지 말이다. 물론 욕먹을 구석도 있지만 추구하는 지향점이나 정책에서도 민주당정권이 훨씬 미래지향적이었다.

 

 문제의식은 민주당 해체와 제 삼당을 결성하는 것에 있는게 아니라 기득권층에 대항하여 효과적으로 그리고 공정하게 재편성할 수 있는 방법론을 고민하는 것이다. 제 삼당이 나오고 그 당이 민주당을 대신할 수 있을지라도 기득권을 돌파할 수 없다면 결국 실패할수밖에 없다고본다. 그건 애초에 승패가 정해져있는 싸움일지도 모른다. 심지어는 안철수 조차도 말이다. 나는 그가 이야기했단 상생과 소통을 믿었으나 그는 민주당조차도 설득하지 못했다. 과연 민주당보다 더 악랄한 그들이 안철수의 생각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줄까? 나는 세상이 천천히 변한다고 생각한다. 이번 대선의 목표는 정권교체이고 이렇게나 삽질을 해댄 정권이 바뀌지 않는다면 도덕적인 헤이함이 팽배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는 결국 반칙과 편법을 낳고 희망을 사그러지게할 것이며 보수가 그토록 강조하는 시장 경쟁력을 낮아지게 만들 것이다. 

 

 민주당이 똥통이라면 집권당은 방사능물질이다. 똥은 냄새가 날 뿐이지만 방사능은 사람을 죽인다. 나는 방사능의 위협을 앞에 두고 똥냄새를 지적하는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적어도 자신들이 권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방사능도 자신의 독성을 줄이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것이 그저 시늉에 불과한 것이라도 말이다. 청소노동자 후보와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후보를 존중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필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정책도 나라를 잃고 나면 무슨 소용이 있겠나. 올바른 정체성도 가치도 없는 나라는 죽은 나라고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대통령에 선출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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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개미 2012-11-30 0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한줄 정리: 그래 내 핸펀 바탕화면 ㅁㅈㅇ이다...
 

한번도 물고 빨고 그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말하면 거짓이려나. 하여간 물고 빨고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한 욕구인 것은 사실이지만 요새는 유행처럼 이런게 너무 흔해 빠져버린게 되고 말았다. 그런데 정신적으로 소통하지 못하면 육체적으로도 밋밋한 관계가 된다는 사실...근데 난 이걸 어떻게 알고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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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gore 2012-11-29 0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요즘 열반했다네

일개미 2012-11-29 21:29   좋아요 0 | URL
나무아미타불...

흐그흐그 2012-11-29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사고실험으로 검증해봐도 그 사실은 자명하다.
라고 쓰고
운다
흐그흐그.....

일개미 2012-11-29 21:29   좋아요 0 | URL
울지마 울지마 울지마

이진 2012-11-30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뜬금없지만 시쳇말로 ASKY라는 단어가 있다지요...
안생겨요.... 크크

일개미 2012-11-30 01:25   좋아요 0 | URL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