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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닦고 스피노자 - 마음을 위로하는 에티카 새로 읽기
신승철 지음 / 동녘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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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 2011년 기준 10만명당 31.7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OECD 국가 중에서 자살율이 1위라고 한다. 20대의 가장 높은 사망 원인이 자살이라고 하니, 우울증을 비롯한 마음의 병은 이미 개인의 문제를 넘어 사회적인 문제가 된 것이다. 현대인을 괴롭히는 정신병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할 수 있을까. 정신분석학과 현대의학이 주류인 시대에, 이 책은 철학을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취한다. 철학자 스피노자의 <에티카>를 통해서 말이다.  


 스피노자를 이야기하면서 데카르트에 관한 언급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에게 큰 영향을 받았지만, 향후에 데카르트와는 다른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게 된다. 저자는 스피노자 관점을 통해 데카르트의 철학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현대인들의 마음의 병에 대한 주요한 원인 중에 하나로 데카르트적인 세계관을 지적한다. 그렇다면 데카르트인 세계관은 무엇이고,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일까. 스피노자의 관점은 어떠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 


 자아

 

우선 자아을 바라보는 관점을 비교해보자. 모든 것이 의심스러웠던 데카르트에게 '생각하는' 자아만이 확실하게 믿을 수 있는 불변의 존재였다. 이는 신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가던 당시에 신을 대체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스피노자는 자아가 고정된 실체라는 것에 의문을 던진다. 오히려 자아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변용', 즉 '~이 되기(becoming)'를 통해 유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한가지의 역할만 가지고 또 거기에 고정된 상(像)을 쫒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할을 수용하고 또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는 자아를 가지자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논지를 발전시켜 나아가 불안이나 강박은 고정된 상(像)을 자신에게 억압적으로 투영시켰을때 역시 정신질환 일어날 수 있다는 관점을 취한다. (1장 불안증, 5장 강박증) 

 

 정신과 육체

 

  그들이 바라보는 정신과 육체에 대한 관점은 어떠했을까. 데카르트는 정신과 육체를 이분법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육체에서 나오는 감각은 신뢰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이성이라는 도구만을 가지고 끊임없는 회의했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다. 한편 스피노자는 정신과 신체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인식한다. 운동을 통해 체력이 좋아지면 그에따라 정신도 맑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나, 건강이 나빠진 사람이 쉽게 우울증에 걸리는 것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스피노자는 육체로부터 오는 감각이나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오히려 그것들을 억압하는 것이 정신질환을 유발할 수 있다고 본다. 육체와 정신의 균형이 깨어지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정신병을 일으킬 수 있다. (7장 도착증, 8장 공황장애)  

 

 개인과 공동체

 

 그럼 개개인을 다수로 확장시켜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살펴보자. 데카르트의 개인은 공동체 속에서 고립된 섬처럼 작용한다고 본다. 그 안에서 각각의 개인은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라기 보다는, 고정적이고 불변하는 개체이다. 스피노자가 바라보는 관점은 다르다. 어떠한 관계를 갖느냐, 어떤 식의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느냐가 한 사람의 정서를 좌우한다고 본다. 상호 긍정하는 관계에서는 기쁨을, 억압된 관계에서는 슬픔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따라서, 나와 타인이 맺고 있는 관계망을 재설정하지 않고, 단지 개개인의 태도나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을 통한 치유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2장 우울증)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


 한편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을 스피노자는 '특이성'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개개인을 공장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만들어낸 기성품과 같이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개성을 가진 수공예품으로 여기는 것과 같다고도 할 수 있겠다. 특이서의 관점은 전체를 지배하는 신은 외부에 존재하지 않으며, 신은 유일무이한 개체 안에 내재되어있다는 범신론적인 관점으로 발전한다. 이러한 관점은 전체에 매몰된 개인이 그 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4장 신경증, 9장 중독)

 

 결론

 

 데카르트가 고정적이고 이성 중심적인 관점 취한다면, 스피노자는 유동적이고 관계 중심적인 입장을 지지한다. 이성이라는 도구는 과학과 기술을 발전이라는 성과를 이루어내기도 했지만, 누군가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한 것이다. 이성과 함께 이루어온 근대 서양사의 공과를 모두 데카르트에게 돌릴 수 는 없겠지만, 근간에는 데카르트의 철학이 있었다는 것을 부정하기는 힘들다. 따라서 대안적인 차원에서 관계 중심적인 스피노자의 관점은 관계망의 재설정을 통한 정신적인 아픔의 치유를 포함해, 수평적관계 속에서 각자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패러다임으로 유용하게 사용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진다.

  
 안타까운 점은 우리 시대의 아픔이 단지 개개인의 '내재적인 역능'을 변화시키는 차원에서는 해결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청년 실업이나 비정규직과 같은 사회 문제를 통해 생겨나는 개개인의 상실감은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손보지 않고 개개인이 관계망을 재설정 하는 것으로는 해결하기 힘들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사람은 결국 부대끼며 살아야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것에 있다. 저자가 스피노자의 입을 빌려 '관계망을 재설정하라'는 말은, 인간은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또 다른 표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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