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윤원근(글) / 김혜은(그림) / 주니어김영사 / 203쪽
(2016. 4. 8.)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의 정체에 대해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 보세요. 이 책은 자본주의가 어떻게 형성되고 움직이는지를 설명하면서 그 '정신적 뿌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르크스라는 이름을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거예요. 마르크스는 바로 공산주의 사상을 널리 퍼뜨린 인물로, 베버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이유는 이 마르크스가 제시한 자본주의에 대한 설명의 문제점을 비판하고 보완할 필요를 느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가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를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라 주장했습니다. 그러네 베버는 이 책에서 '노동의 합리적 조건'이 자본주의의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합니다.
(P.6)



  자본주의에서 돈은 중요해 생산자본은 돈을 뜻하거든. 또한 자본주의가 생겨나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임금노동자가 필요하고 마르크스가 말한, 나도아 착취현상이 많이 있었다는 것도 잘 알아. 하지만 그게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은 아니라고 생각해. 권력을 가진 자가 권력이 없는 자를 억압하고 착취하는 현상은 인류 역사, 어느 곳에서나 있어 왔기 때문이야.
  나는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이 '노동의 합리적 조직'에 있다고 생각해. 자본주의 정신은 첫째, 일하는 것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이다. 둘째,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이 인생의 최고목표다. 셋째, 시간을허비하는 것을 경멸하고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생활을 한다. 넷째, 일하기 위해 쾌락, 행복, 즐거움 등을 포기하고 쓸데없는 휴식과 게으름을 물리친다. 다섯째, 돈을 모으기 위해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한다. 자본가든 노동자든 이런 생활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자본주의야. 나는 이 책에서 이것을 '자본주의 정신'이라고 불렀어. 한다미로 돈보다 자본주의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거야.
(P.21) 



  나는 독일이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바라면서 이 책을 썼어. 어떻게 하면 강한 국력을 갖출 수 있을까 고민했지. 그렇게 찾아낸 경제적 답이 이 책이야. '노동하는 자체를 가치 있게 여기고, 정직하고 근면한 노동을 통해 돈을 버는 것을 인생 최고의 목표로 할 것이며, 시간을 허비하는 것을 경멸하며 계획을 세워 생활한다. 돈을 벌기 위해 행복과 즐거움을 포기하고 쓸데없는 휴식과 게으름을 물리치며, 그 돈을 모이기 위해 절약하고 검소하게 생활한다.' 바로 이게 자본주의 정신이지! 자본주의 정신을 생활화하면 강하고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어. 잘사는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자본주의 정신을 꼭 습득해야 해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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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일상과 그 너머에 대한 인문적 성찰)

류대영 / 생각비행 / 344쪽
(2016. 4. 5.)




자극적인 글들이 게시판을 도배하고 선거판 막말들이 흘러 넘치는 지금
평생 학문에 정진했던 노교수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혀주고 싶은 마음으로 쓰신 진솔한 글들 속에서
다정한 가족의 따뜻한 정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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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흘러 초로의 나이에 접어드니,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학문이라는 것의 의미, 내 자식들도 읽지 않은 글을 쓰는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자식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글을 썼다. 아비가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인데, 무엇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단서라도 제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 시간와 영원, 문학과 역사, 현상과 본질, 기억과 인식 등 평소 내 관심사들을, 일상 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썼다. 이삼 년 전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 나와 내 주위를 둘러보는 글이 논문보다 더 쓰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P.8)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탐욕의 덩어리다.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어릴 때나, 젊을 때나 나는 무수한 죄를 짓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초로에 접어든 지금도 그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식이 착하게 살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소원이 하늘에 닿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 하여금 조금식 선과 악을 구별하고 악행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했으리라, 천벌이란 그렇게 어머니들의 간절함이 모여서 내리는 모성의 벌인지도 모르겠다.
(P.35)



  가끔 나에게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고 묻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일상을 같이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을 고르라고 말해준다. 연애는 일상이 아니다. 일상 아닌 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겠는가, 시간이 가면 연애는 사라지고 일상만 남는다. 연애 때 행복했다고 결혼 후까지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니다. 결혼식은 연애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됨을 알리는 의식이다. 결혼 후의 삶은 일상의 연속이다. 매일 아침밥을 먹을 때마다 폭죽을 터뜨리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풍선과 촛불로 장식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상이란 지루하고, 짜증 나고, 귀찮고, 별다른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의 반복이요 연속이다. 그런 일을 수십 년이라도 같이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배우자인 것이다.
(P.152)



  인간은 과거를 사는 존재다. 모든 경험은 과거이며, 그 경험에 대한 기억만 현재라는 순간순간에 남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삶은 머릿속에 기억이라는 과거의 지층을 쌓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통과한다. 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로병사의 과정을 톻과해간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시간은 나를 소멸하게 하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러나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시간의 지층을 내 머릿속에 쌓으면서 흘러간다. 머릿속에 쌓인 기억의 총합이 내 삶이고, 나다. 기억이 나의정체성을 만들어내고, 내 세계관을 형성하며, 내 판단을 좌우한다. 기억이 풍성하고 아름다우면 내 삶이 풍성하고 아름다우며, 기억이 단조롭고 내용이 부실하면 내 삶 또한 그러한 것이다. 현재의 삶이 기억의 길이ㅘ 부피와 무게를 좌우한다. 어떤 기억을 가질 것이냐는 기본적으로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현재는 과거를 결정하고,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의 삶을 만든다.
(P.195)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직후 나는 '참회록'을 하나 썼다. 거기서 나는 이렇개 고백했다. "이번 사고로 희생당한 수많은 고귀한 생명들, 특히 꽃 같은 어린 학생들의비극적 죽음 앞에서 저는 모든 가치관이 마비되는 충격을 느낍니다. 이 개명천지에서 어떻게 그런 참담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저의 이성과 학식은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못합니다." 살아갈수록 내가 모르는 일, 모르기 때문에 의미를 발견하기 힘든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한다. 그것이 내 한계이고, 나아가 인간의 한계이리라. 모든 일이 의미 있을 수 없다. 의미 없는 일은 의미 없는 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필요하다.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일에 억지로 의미를 갖다 붙이다 보면 위에 언급한 목사처럼 되기에 십상이다. 인간이 벌인 일에 신을 끌어들이고, 자기 생각을 신의 뜻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뒤얽힌 문제다 구체적으로 누구의 욕심과 어떤 어리석음이 얽혀 있는지 밝히면 된다.
(P.226)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와 잘 통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아니, 어디를 가더라도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없어도, 그 반대인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세상의 일반적인 이치다. 직장 동료 가운데 대놓고 나와 불화하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어딘지 나와 맞지 않아 같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안이 있을 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나와 상충되는 방식으로 판단하며, 나와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그런 사람을 항상 피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어찌 그런 것이랴. 불편한 사람과도 같이 밥 먹고, 같이 회의하고, 우연히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해야 한다. 밥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소위 지성인이 모였다고 하는 대학교수 공동체도 예외는 아니다.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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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2
토마스 하디 / 정종화 / 민음사 / 348쪽
(2016. 3. 31.)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소설의 주인공인 테스는 과연 어떠한 사람으로 비춰질까?
19세기 사회에서는 못된 패륜과 사기꾼, 살인자로 생을 마친 테스에게 일말의 동정심이 있었을까?
19세기 잘못된 관습과 사회의 분위기를 깨뜨리고자 희망했던 작가가 테스라는 인물을 통해 그런 것들을 보여준건 아닐까?
유독 자연에 대한 상세한 묘사들이 소설의 중간, 중간에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테스가 살아가던 시대 상황을 반영한 당시의 사회법에 의해 억울한 운명을 맞게되는 테스의 시련과

언제난 변하지 않는 자연법과의 대조를 통해 현세태의 부조리를 고발하려는 하디의 정신이 들어 있는 것이다.
아버지와 형들과 같이 신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농부가 되기로 결심했던 에인절(천사)이

테스에 대한 자신의 잘못된 생각들을 예수가 사막에서 깨우친것 과 같이

저 먼 브라질 오지에 시련을 겪으며 깨닫게 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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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녀의 이야기가 끝났다. 강조할 부분은 강조하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에도 설명도 첨가되었다. 테스의 목소리는 처음 이야기를 시작했을 때보다 높게 오르지 않았다. 변명도 없었으며 울지도 않았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모든 사물의 외형적 모습이 변하고 있었다. 화상 위에 깔려 있는 불은 작은 악령처럼 보였으며, 그녀의 처지에 조금도 관심이 없는 듯이 악마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난로 가리개마저도 빈둥거리며 웃고 있었다. 물병에서 반사되는 빛도 오직 자신의 색채에만 관심이 쏠린 것 같았다. 그녀 주변의 모든 사물이 그녀가 처한 사태와 아무 관계가 없음을 무섭게 강조하고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키스를 퍼붓던 이후에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적어도 사물의 실체에는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사물의 본질은 변해있었다.
(P.11)

  세상이 활동을 시작하는 시간에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우며 쏟아지는 일상의 햇빛이 좀 더 강해지자 그녀는 즉시 낙엽더미에서 빠져나와 용기 있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신의 잠을 방해하면서 일어났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숨어들었던 조림 단지는 언덕이 끝나는 지점으로, 단지의 울타리 너머에는 경작지가 있었다. 나무 아래에 꿩이 여러 마리 떨어져 있었고 빛깔이 선명한 깃털에는 피가 젖어 있었다. 어떤 녀석은 죽어 있고, 어떤 녀석은 힘없이 날개를 파닥거리고, 어떤 녁서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고, 어떤 녀석은 급하게 숨을 몰아쉬고, 어떤 녀석은 몸통을 뒤틀고 있고, 또 어떤 녀석은 몸통을 뻗은 채 누워 있었다. 자연의 힘으로는 그 이상 견디기 어려워 밤 사이에 고통이 끝난 운 좋은 녀석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다.
(P.96)

  아름다움이란 결국 그것을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대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객체가 무엇을 상징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P.128)

  나에게 당신이 어떤 해를 끼친 줄 알면서도, 그걸 잘 알면서도, 나에게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나는 심한 분노를 느껴요! 당신이나 당신 같은 인간들은 나 같은 사람의 삶을 슬픔으로 쓰라리고 암담하게 만들어서 지상의 쾌락을 얻어요. 그런 쾌락을 다 맛본 다음에는 개종을 해서 하늘나라에서 쾌락을 찾는다니 아주 잘 되었네요. 그만두세요. 난 당신을 믿지 않아요. 당신이 하는 짓을 증오해요.
(P.150)

  탑의 꼭대기 위에 높은 막대기가 세워졌다. 그들의 시선이 그 막대기에 쏠렸다.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 몇 분 뒤에 막대기 위로 어떤 물체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바람에 나부끼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검은 조기였다.
  '정의'가 행해지고 신들의 대수장이, 아이스킬로스의 말대로 테스와 희롱을 끝낸 것이다.그리고 더버빌 가문의 기사들과 귀부인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그들의 무덤 속에서 잠을 잤다. 말없이 그 광경을 지켜보던 두 사람은 마치 기도라도 하듯 땅 위에 몸울 구부려 꼼짝 않고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고 깃발은 계속 소리 없이 나부꼈다. 기운이되돌아오자 그들은 땅에서 일어나 손을 잡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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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 1
토마스 하디 / 정종화 / 민음사 / 412쪽
(2016. 3. 27.)



  "테스, 별에는 그 나름대로 세상이 있다고 했어?"
  "응."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잘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아. 별들은 때대로 우리집 조생(早生) 사과나무에 달리는 사과처럼 보여. 대부분의 사과는 멋있고 싱싱한데 진딧물이 붙은 벌레 먹은 병든 사과도 몇 개 있지."
  "우리는 어느 쪽에 사는 거야? 멋있는 쪽이야, 진딧물이 붙은 쪽이야?"
  "진딧물이 붙은 쪽이지."
  "싱싱한 별이 훨씬 더 많은데 우리가 싱싱한 쪽에 자리를 잡지 않은 건 운이 나쁜 거야!"
(P.55)



  제대로 계획한 일이 잘못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부름이 올 사람을 데려오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시간과 일치하는 일이 거의 없다. 보는 것이 곧 행복한 일로 이어지는 순간에 자연이 "보라!"고 인간에게 말하고 인간이 "어디?"라고 외쳤을 때 "여기."라고 답하는 일이 드물다. 그러다 숨바꼭질은 지루하고 지치는 게임이 된다. 인간 발전의 절정과 정점에서 이런 모순이 보다 훌륭한 통찰력에 의해, 그리고 우리를 지금 덜컹덩거리며 끌고 가는 것보다 더 짜임새 있게 운영하는 사회적 기구의 상호작용에 의해 시정될 수 있을지 우리는 생각해 본다. 그러나 완전한 해결 방법은 예측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지금은 수백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완전한 순간에 만나는 완전한 총체의 두 동강 난 반쪽이 아니었다. 사라진 반쪽은 나중 제시간이 올 때를 기다리며 둔감한 상태에서 혼자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러한 혼돈의 기다림 속에서 근심과 실망과 충격과 재난과 스쳐 가는 운명이 일어난다.
(P.74)



  어째서 비단만큼이나 섬세하고 사실상 눈처럼 티없는 이 아읆다운 여자의 살결에 운명처럼 추한 무늬가 박히게 되었는가? 어째서 늘 조잡한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차지하고, 엉뚱한 남자가 자기 짝이 아닌 여자를 소유하며, 엉뚱한 여자가 남의 남자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분석철학도 우리의 질서 의식에 맞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재난 속에 보복의 가능성이 숨어 있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사실상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P.132)



  그녀가 산보하는 시간은 어둠이 깔린 다음이었다. 이런 시간에 숲으로 들어가면 그녀는 조금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빛과 어둠이 너무나 고르게 평형을 이루어, 낮의 압박과 밤의 긴장이 서로 중화되고 그래서 절대적 정신이 자유가 허용되는 정확한 저녁 순간을 그녀는 간발의 차이로 알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불운의 최소한의 차원으로 축소되는 순간이 바로 이런 시각이었다. 그녀에게 어둠은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고에 있는 오직 한 가지 생각은 인간을 - 집단으로 뭉치면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하나의 단위 속에서는 그렇게 보잘것없고 불쌍하기까지 한, 세상이라 불리는 냉랭한 집합체를 - 어떻게 피하는가 하는 것 같았다.
(P.154)



  "경험에 의해서." 로저 애스컴은 말한다. "우리는 긴 방황 끝에 지름길을 찾는다." 그러나 긴 방황이 우리의 다음 행로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경우 우리의 경험은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테스 더비필드의 경험이 바로 이런 종류의 무용한 경험에 해당된다. 테스는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경험에서 배웠다. 그러나 이제 와서 누가 그녀의 교휸에서 얻은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녀가 더버빌 갈 가기 전에 자신과 세상 전반에 알려진 여러 가지 금언의 내용과 구절에 따라 살았더라면 그녀는 더버빌로부터 기만당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금언의 전체적 진리를 몸으로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테스의 능력을,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의 능력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더불어 하느님에게 이렇게 풍자적으로 말햇을 것이다. "당신께서 허락한 길보다 더 나은 진로를 말씀하셨습니다."
(P.177)



  "역사는 이미 아는 것 이상 더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왜요?"
  "내가 긴 역사의 대열에 선 사람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옛날 책 속에 있는 한 사람의 역할을 할 거라는 점을 안다는 것, 그것은 날 슬프게 만들어요. 그게 이유예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천성과 자신의 과거사가 수천 수만 명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인생과 행동이 수천 수만 명의 그것과 같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 거예요."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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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과 철학 강의 2
김용옥 / 통나무 / 299쪽
(2016. 3. 17.)




  머리가 좋은 사람은 철학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머리가 너무 좋기 대문에 너무 쉽게 사물을 터득하고 그러기 때문에 너무 쉽게 흘려버리는 것 같다. 나같이 머리 나쁜 사람이 오히려 철학하기에는 적합한 것 같다. 쉽게 얻은 것은 쉽게 잃는다. 인가은 모르는 것을 철저하게 모를 때만이 아는 것을 철저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요즈음 학생들에게 걱정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너무도 많은 것을 너무도 쉽게 알아 버린다는 것이다. 안다는 것은 때때로 인간을 기만한다. 그리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든다. 때때로 무지가 인간을 고귀하게 만들 수도 있다. 나의 경우, 구조적 사고의 결여가 구조적 사고를 잉태시켰다는 아이러니를 독자들은 깊게 되씹어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P.38)



  소크라테스는 철학을 무지로부터의 탈출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은 매우 의미심장한 말이지만, 이때 무지를 너무 경멸스러운 그 무엇, 버려야만 할 형편없는 것으로만 생각하는 것은 인간의 이해를 매우 협소하게 만들 수도 잇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무지에서 탈출해야 하지만, 무지로부터의 탈출을 가능케 하는 것은 무지에 대한 깊은 이해로부터 출발한다. 순수한 인간의 무지를 너무 무시했다는 데에 소크라테스철학의 한계가 있고, 따라서 희랍철학은 고대 중국의 도가계열의 사상가들이 보여준 무지의 심오한 철학을 달성하지 못했다. 철학이 지혜의 사랑이라고는 하지만 희랍철학은 결국 지혜에 도달하기보다는 지식의 추구에 머물고 말았다. 이것은 희랍철학 전통을 이은 서양인들이 인류에게 남겨놓은 거대한 문화유산인 동시에 거대한 죄악이다.
(P.38)



  철학은 보다 보편적인 것을 지향하지만 아주 절대적인 것을 주장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절대의추구라는 것에서 해방되지 않으면 인간과 우주에대한 진실의 상당한 부분을 잃어버리게 되거나 영영 못보게 되고 만다. 그리고 철학은 정직해야 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데 주저해서는 안된다. 모르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 즉 모르는 것을 어디까지 모르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처럼 정확한 앎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절대에 관한 서양철학의 주장은 희랍철학의 존재로에서부터 시작하여 기독교의 신학으로 체계화된 매우 특수한 문화적 현상아지 그것이 철학의 필요불가결한 테마는 아니다.
(P.46)



  철학은 상식의 긍정이며 확인이다. 결국 상식의 끊임없는 새로운 해석이다. 움직일 수 없이 확고부동한 너무도 빤한 사실의 끊임없는 확인이다. 확인하고 또 확인하는 인간의 삶의 과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처럼 겸손한 것은 없다. 우주를 다 안다고 말하지도 않고 우주의 창조와 종말을 논하지도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너무도 인간적이다.
  이렇게 겸손한 철학을 여러분들이 배울 수 있는 첩경은 여러분들 자신이 겸손해지는 길밖에 없다. 우리는 모두 진리 앞에서 겸허해야 한다. 우리마음을 비워야 하는 것이다. 우리마음에 꺼리낌없이 무슨 이야기든지 다 할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P.69)



  칸트라는 위대한 철학자는 실로 위대한 명언을 인류사에 남겼다. '나는 철학(Philosophie)을 가르치지 않는다. 나는 철학하는 것(philosophieren)을 가르칠 뿐이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우리나라의 칸트를 공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직도 이 칸트의 한마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칸트의 문제의식 속에서 칸트의 개념이 제기한 어려운 문제들을 풀려고만 노력하고 있는 사람은 칸트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다. 칸트의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일수록 이러한 오류에 빠져있다. 우리가 칸트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칸트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칸트가 자기의 문제의식을 해결하려고 노력한 생각의 길, 그 방법, 그 삶의 자세가 되어야할 것이다.
(P.100)



  철학은 사물의 구조를 대상으로 하지만 그 사물의 구조를 인식하는 인간의 마음의 구조에 더 궁극적인 관심을 갖는다. 내가 말하는 마음은 포괄적인 몸이라는 것의 한 양태이지만, 하여튼 그 마음의 구조야말로 현금 철학이 담당하고 있는 가장 핵심적인 과제이며 타분과과학에 양보할 수 없는 영역인 것 같다.
(P.110)



  나는 여러분들이 철학을 학 위해서는 우선 마음의 우상들을 타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상이란 우리 마음에 자리잡고 있는 권위의 상징들을 말한다. 이를 좀 더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철학사에서 흔히 말하여지고 있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우상타파론을 소개하겠다.
  베이컨은 자연과학이 서유럽사회에 자연탐구의 새로운 방법론으로 등장했을 때 이러한 방법론을 새롭게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또 자연과학적 방법을 통하여 자연과 신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확보해 볼려고 노력한 철학자이다.
  베이컨은 인간의 앎에는 다음의 4가지 우상이 있다고 했다. 우상을 그는 이돌라(Idola)라고 불렀는데, 이돌라라는 것은 희랍어로 거짓된 형상의 뜻이다. 이 4가지 우상을 우리의 지식에서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고 따라서 인류의 진보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P.173)


  이제는 어떻게 철학공부를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철학을 공부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고는 나는 생각한다. 하나는 철학을 철학사의 공부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고, 하나는 철학을 철학의 문제중심으로 즉 주제별로 공부하는 것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객관적 지식의 정확한 흡수가 중요하게되고 후자의경우에는 나의 삶의 체험에 비춘 깨달음이 더 중시된다. 전자가 보다 통시적이라면 후자는 보다 공시적일 것이고, 전자가 보다 객관적이라면 후자는 보다 주관적이 될 것이다.
(P.205)



  철학은 철학하는 것의 결과이며 그러한 결과의 집적이 곧 철학사이다. 그러나 이때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야할 것은 모든 철학사는 문화사다 라는 사실이다. 모든 철학사는 그 철학사에 흐르고 있는 문화의 역사이다. 그러나 모든 철학사는 또 문화사처럼 상대적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보편적 인간의 역사이다. 모든 철학사에서 제기되는 문제, 즉 모든 철학이 제기하는 문제는 인간의 보편적 상황이지만,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의 시도는 필연적으로 문화사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 때문에 철학의 위대함은 그 문제제기에 있는 것이며, 결코 그 문제해답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문제의 해답은 궁극적으로 그 문제를 풀어가는 인간이 살고 있는 사회구조와 그 사회의 문화의 논리에 의하여 규정될 뿐이다.
(P.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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