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에 읽은 책들) 

(2017-01) 소피의 세계 2 (요슈타인 가아더 /장영은 / 현암사 / 228쪽)


(2017-02) 왕을 찾아서 (성석제 / 문학동네 / 404쪽)


(2017-03) 희랍어 시간 (한강 / 문학동네 / 194쪽)


(2017-04)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 (천명관 / 예담 / 288쪽)


​(2017-05) 소피의 세계 3 (요슈타인 가아더 /장영은 / 현암사 / 296쪽)


​(2017-06) 데카르트 철학의 원리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 양진호 / 165쪽)


​(2017-07)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우치다 타츠루, 이시카와 야스히로 / 김경원 / 갈라파고스 / 240쪽)


(2017-08) 철학의 근본문제에 관한 10가지 성찰 (나이절 워버턴 / 최희봉 / 자작나무 / 336쪽)

 

​(2017-09) 신기관 (프랜시스 베이컨 / 진석용 / 한길사 / 319쪽)

​(2017-10) 베이컨 <신기관> (박은진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26쪽)

(2017-11) (만화) 베이컨 신논리학 (홍성자 / 김광옥 / 주니어김영사 / 227쪽)

​(2017-12) 로크 인간지성론 (김상현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98쪽)

​(2017-13) 존 로크의 인간 오성론 읽기 (안병웅 / 울력 / 224쪽)

 

(2017-14) 우리의 소원은 전쟁 (장강명 / 예담 / 516쪽)

​(2017-15) 데미안 (헤르만 헤세 / 전영애 / 민음사 / 239쪽)

 

​(2017-16) 만화 존 로크 정부론 (이근용 / 주니어김영사 / 216쪽)

(2017-17) 통치론 (존로크 / 강정인, 문지영 / 까치 / 254쪽)

 

​(2017-18) 로크 <통치론> (정윤석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37쪽)

(2017-19) 피터드러커 매니지먼트 (피터 드러커 / 남상진 / 청림출판 / 376쪽)

(2017-20) 관용에 관한 편지 (존 로크 / 공진성 / 책세상 / 171쪽)

(2017-21) 표현의 기술 (유시민 / 생각의 길 / 368쪽)

​(2017-22) 성장을 위한 책읽기 (안광복 / 학교도서관저널 / 320쪽)

 

​(2017-23) 싯다르타 (헤르만 헤세 / 박병덕 / 민음사 / 240쪽)

 

​(2017-24) 리바이어던 (김용환 / 홉스 / 살림 / 283쪽)

 

 

​(2017-25) (만화) 리바이어던 (손기화(글) / 주경훈(그림) / 주니어김영사 / 211쪽)

 

 

(2017-26) 홉스 <리바이어던> (진병운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228쪽​)

 

(2017-27) 이방인 (알베르 카뮈 / 김화영 / 책세상 / 248쪽)

 

 

(2017-28) 곁에 두고 읽는 철학 가이드북 (제임스 M. 러셀 / 김우영 / 휴머니스트 / 360쪽)

​(2017-29) 데이비드 흄 (이준호 / 살림 / 288쪽)

 

​(2017-30) 흉 <인간지성에 관한 탐구> (윤선구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226쪽)

(2017-31) 기적에 관하여 (데이비드 흄 / 이태하 / 책세상 / 150쪽)

 

(2017-32) 풀꽃도 꽃이다 1 (조정래 / 해냄 / 400쪽)

 

(2017-33) 풀꽃도 꽃이다 2 (조정래 / 해냄 / 400쪽​)

(2017-34) 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 / 김종길 / 민음사 / 572쪽)

 

 

 

​(2017-35) 채식주의자 (한강 / 창비 / 247쪽)

 

​(2017-36) 연어 (안도현 / 문학동네 / 134쪽)

 

​(2017-37)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 자크 루소 / 주경복 / 책세상 / 224쪽)

 

​(2017-38) 사회계약론 (Du Contral social) (장 자크 루소 / 이환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226쪽)

 

​(2017-39) 루소 <사회계약론> (전병운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42쪽)

​(2017-40) 만화 루소 사회계약론 (손영운 / 팽현준 / 주니어김영사 / 240쪽)

 

​(2017-41) 에밀 (장 자크 루소 / 박호성 / 책세상 / 158쪽)

 

​(2017-42) 엄마의 수학 공부 (전우성 / 오리진하우스 / 393쪽)

 

​(2017-43) 1인 1기 (김경록 / 더난출판사 / 272쪽)

 

​​​​(2017-44)​ 침팬지 폴리틱스 (프란스 드 발 / 황상익 / 바다출판사 / 1982 / 302쪽)

 

(2017-45) 고독한 산책자의 명상, 말제브르에게 보내는 편지 외 (장자크루소 /진인혜 / 책세상 / 237쪽)

(2017-46) 어떻게 읽을 것인가 (고영성 / 스마트부스 / 304쪽)​

 

 

 

 

 

 

 

 

 

 

 

 

 

(2017-47) 생의 이면 (이승우 / 문이당/ 300쪽)

 

 

(2017-48) 삐딱한 책읽기 (안건모 / 산지니 / 280쪽)​

(2017-49) 나와 청소년문학 20년 (박상률 / (주)학교도서관저널 / 212쪽)​

(2017-50) 덧없는 행복 (루소 사상의 현대성에 관한 시론) (츠베탕 토도로프 / 고봉만 / 문학과 지성사 / 169쪽)

 

(2017-51) 손석희 저널리즘 (정철운 / 메디치미디어 / 280쪽)

 

​(2017-52) 페스트 (알베르 카뮈 / 김화영 / 민음사 / 508쪽)

 

(2017-53) 여덟 단어 (박웅현 / 북하우스 / 204쪽)

 

(2017-54) 남한산성 (김훈 / 학고재 / 384쪽)

 

(2017-55)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장 지글러 / 유영미 / 갈라파고스 / 201쪽)

 

(2017-56) 동물원에 가기 (알랭드보통 / 정영목 / 143쪽)

 

(2017-57)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최재천/효형출판 / 267쪽

)

 

(2017-58) 보다 (김영하의 인사이트 아웃사이트) (김영하 / 문학동네 / 212쪽)

 

​(2017-59) 에드워드 호퍼 (Hopper) (롤프 귄터 레너 / 정재곤 / 마로니에북스 / 96쪽)

 

(2017-60) 겨울 나그네 (Die Winterreise) (빌헬름 뮐러 / 김재혁 / 민음사 / 188쪽)

 

​(2017-61) 말하다 (김영하 산문 삼부작) (김영하 / 문학동네 / 252쪽)

 

(2017-62) 너의 목소리가 들려 (김영하 / 문학동네 / 282쪽)

 

(2017-63) 가끔은, 상상 (하비에르 페레스 / 김유경 / 어바웃어북 / 280쪽)​

 

(2017-64) 빈방의 빛 (마크 스트랜드 / 박상미 / 한길아트 / 118쪽)

 

(2017-65)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라 (김영하 / 문학동네 / 272쪽)

 

(2017-66)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 (김유라 / 한국경제신문 / 296쪽)​

 

(2017-67) 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 이인규 / 민음사 / 36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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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 / 이인규 / 민음사 / 366쪽
(2017. 12. 31.) 




  어렴풋이 그녀는 자신이 어던가 모르게 부서져 엉망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렴풋이 그녀는 자신이 단절되어 있다는 것, 즉 자신이 살아 있는 세상의 실체와의 접촉을 잃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직 클리퍼드와 그의 작품만이 있을 뿐이었다. 진정한 존재가 없 는, 즉 속에 아무것도 없는 것들만이 말이다! 공허에 이은 공허. 어렴풋이 그녀는 알아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깨달음은 돌에다 머리를 들이받는 것과 같았다.
(P.41)


  마이클리스는 운전기사와 하인을 거느리고 아주 멋들어 진 차를 타고 예정된 시간에 도착했다. 그는 완전히 본드 가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보는 순간 클리피드의 '지방 명문가 출신' 영혼은 어던가 반발하여 움츠러들었다. 그는 자신의 외모로 풍겨내고자 하는 것과 별로 정 확히-글쎄 별로 정확히-아니 사실 전혀 조금도-일 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클리퍼드에게 있어 이것은 더 따져볼 것 없는 충분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사람을 아주 정중히 대했다. 그의 놀라운 성공에 대한 정중함이었 다. 이른바 세속적 성공이라는 암캐 여신이 겸손한 듯 오만 당돌한 마이클리스의 발꿈치 주변을 보호하듯 으르렁거 리며 맴돌고 있었는데, 이 암캐가 클리퍼드의 기를 완전히 꺾어버렸다. 왜냐하면 클리퍼드 자신 역시, 받아만 준다면 성공이라는 이 암캐 여신에게 기꺼이 몸을 팔아넘기고자 했기 때문이다.
(P.44)


  코니는 얼마나 자주 저녁마다 이 네 사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앉아 있었던가! 다른 사람이 한두 명 더 끼기도 하는 이들의 대화에 말이다! 그들이 어떤 결론에도 결코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는 사실에 대해 그녀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그들이 지껄이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것이 좋았는데, 토미가 그 자리에 있을 때면 특히 그랬다. 그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보통 사내들처럼 키스를 하고 몸을 비비대는 것 대신에, 그들은 자신들의 정신을 그녀에게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굉장히 재미있었다. 그러나 그 얼마나 차디찬 정신들이 있던가!  게다가 한편으로는 약간 짜증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녀는 오히려 마이클리스가 그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비록 그들 모두가 마이클리스에 대해, 잡종 강아지 같은 출세 주의자(affiviste)라느니 저질스럽기 짝이 없는 무식하고 방자한 상놈이라느니 하면서 아주 지독한 경멸을 퍼부어대었지만 말이다. 잡종개에다 방자한 상놈이든 아니든, 그는 자기 나름대로 결론에 도달해 있었다. 정신생활을 과시하면서 갖가지 말로 그저 결론 주위를 맴돌기만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P.75)


  이건 굉장히 중요한 점이야. 아, 하지만 오늘날 세상은 비판이 필요하지. 죽도록 가해지는 비판이 말이야. 정신생활을 하면서 우리의 악의를 자랑하고, 썩어빠진 낡은 허울을 벌거벗기자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지.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있는데, 그건 바로 이런 것이네. 즉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느 정도 우리는 각각 온전한 생명을 지닌 하나의 유기적 총체라는 것이네. 그런데 우리가 정신생활이란 것을 시작하는 순간 그 생명의 사과 열매를 따버리는 것이 되는 거야. 사과와 나무 사이의 연결, 즉 유기적 연결을 끊어버리는 셈이지. 따라서 우리의 삶에 정신생활 말고 아무것도 없다면, 우리는 바로 따버린 사과와 같은 존재가 되는 거야. 나무에서 떨어져 나왔다는 말이지. 그리고 나아가, 마치 따버린 사과가 썩는 것이 자연적 필연인 것처럼, 우리가 악의에 가득 차게 되는 것은 논리적인 필연인 거야.
(P.80)


  “내가 보기에 볼셰비키주의란." 찰리가 말했다.
  “그저 소위 부르주아라는 것에 대한 지극한 증오에 불과한 것 같아. 그런데 부르주아가 무엇이냐 하는 것은 완전히 정의(定義)되어 있지 않은 상태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자체를 뜻하기까지 해. 또 사람의 뭇 감정과 정서란 것들 역시 아주 확고하게 부르주아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적이지 않은 감정이나 정서를 가진 사람은 새로 발명하지 않고는 찾아볼 수가 없을 거야. 그렇다면 각 개인들, 특히 개별 인격체로서의 각 사람은 부르주아가 되고 마는 셈이지. 따라서 개개인은 억압해야만 하는 존재인 거야. 보다 커다란 것, 즉 소비에트 사회와 같은 것에 개인은 함몰되어야 하는 거지. 하나의 유기체라는 것조차 부르주아야. 따라서 이상(理心)적인 것은 기계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 하나의 단위로서 유기체가 아닌 것. 그리고 서로 다른 많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각 부분들이 똑같이 필수적인 것은 바로 기계밖에 없으니까 말이야. 각각의 사람은 기계의 한 부품을 이루고 증오, 즉 부르주아에 대한 증오가 그 기계의 동력을 이루고 있는 것, 바로 그게, 내가 보기엔 볼셰비키주의야.”
  “그래, 정말 맞아" 토미가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또한 산업의 이상(理想) 전체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기도 해. 한마디로 그것은 바로 공장 소유자의 이상이야. 증오가 그 동력이라는 점을 그가 부인할 거라는 사실만 빼고 말이야. 하지만 역시 증오인 것은 마찬가지지. 생명 그 자체에 대한 증오를 동력으로 하고 있으니까."
(P.81)


  코니는 어렴풋이 인간 영혼의 커다란 법칙 가운 데 하나를 깨달았다. 즉 감정적 성향을 지닌 영혼이 심한 충격을 받아 상처를 입을 때, 그 충격으로 육체가 완전히 죽지 않는 경우, 육체가 회복되면 그에 따라 영혼도 함께 회복되는 듯이 보인다. 하지만 이는 단지 겉모습일 뿐이다. 사실은 습관이 다시 되살아나 움직이는 것에 불과하다. 서서히, 서서히, 영혼에 박힌 상처는, 느리지만 그 끔찍한 고통이 점점 깊어가는 타박상처럼, 그 존재가 느껴지기 시작하고 마침내는 영혼 전체에 퍼져 가득 차게 된다. 그리하여 상처에서 완전히 회복되어 그것을 다 잊었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바로 그때, 그 끔찍한 후유증은 최악의 상태가 되어 우리 앞에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P.107)


  그는 현대에서도 가장 현대적인 목소리를 내는 작가로 여겨졌다. 비범하고 기괴한 인기 본능으로, 그는 사 오 년 만에 젊은 '지성인 계층' 가운데 가장 이름을 날리는 사람들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 지성이란 것이 어디에 쓸모가 있는지는, 고니로서 도무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클리퍼드는 사람들과 그들의 행동 동기를 약간 해학적으로 분석해 내는 데 정말 뛰어난 솜씨를 보였는데, 결말에 가서 모든 것을 산산조각 난 상태로 끝내는 식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강아지가 소파의 쿠션을 갈가리 물어 찢는 행동과 다소 비슷한 점이 있었다. 다만, 그의 경우 어리고 장난기 넘치는 것이 아니라 묘하게도 나이 먹은 티가 나고 거의 외설스러울 정도로 기발하다는 점이 달랐다. 그것은 기괴했으며 또한 아무것도 아니기도 했다. 코니의 영혼 밑 바닥에서 메아리치며 계속 울리는 느낌은 바로 그것이었 다. 그 모든게 다 공허한 것, 즉 훌륭하게 꾸며 전시한 공허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하나의 전시 행위였다. 전시 행위! 전시 행위! 전시 행위!
(P.109)


  능욕당한 존재라! 육체적 접촉 없이도 인간은 얼마나 더럽게 능욕당할 수 있는가! 죽은 말과 표현들에 의해 능요 당하는 것이 바로 외설적인 것이며, 죽은 생각은 결국 강박 관념이 되고 만다.
(P.206)


  요컨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가장 사사로운 일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 수야 있겠지만, 그럴 경우 오로지 고통에 부대끼면서 노력하고 싸워나가는 각 인간의 영혼을 존경하는 마음으로만, 그리고 섬세하고 분별력 있는 공감의 마음으로만 그 이야기를 들어야한다. 왜냐하면 풍자조차도 공감의 한 형식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공감이 흘러나오거나 움츠러드는 방식이야말로 바로 우리의 인생을 진정으로 결정하는 요인이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 소설, 즉 제대로 창조된 소설이 갖는 엄청난 중요성이 존재한다. 그런 소설은 우리의 공감 의식을 자극하여 흐르도록 해주고 그 흐름을 새로운 곳으로 이끌 수 있으며, 또 우리의 공감을 죽은 것들을 피해 멀리 떨어지도록 이끌 수 있다. 그러므로 소설은 제대로 창조되었을 때 삶의 가장 내밀한 부분들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다. 왜냐하면 예민한 각성의 물결이 밀물과 썰물로 가득 찼다가 빠져나가면서 깨끗이 씻어내고 새롭게 해줄 필요가 있는 곳은 무엇보다도 바로 삶의 내밀한 열정적 부분이기 때문이다.
​  그러나 소설 역시 소문과 마찬가지로, 기계적이고 인간 영혼에 무감각한 가짜 공감과 혐오를 자극해 조장할 수 있다. 소설은 사실상 가장 타락한 감정들조차 미화할 수 있 는데 그런 감정이 관습적인 측면에서 '깨끗한' 것일 때 그렇다. 그럴 경우 소설은 소문과 마찬가지로 결국 사악한 영향을 끼치게 되며 또 소문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그것이 표면상으로는 항상 천사들 편에 서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사악한 영향을 끼친다. 볼턴 부인이 이야기하는 소문은 항상 천사들 편에 서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정말 나쁜 사람 이었고, 그녀는 정말 훌륭한 여자였답니.......”라는 식이었다. 그런데 볼턴 부인의 이야기로도 코니가 알 수 있었던 바이지만, 그 훌륭하다는 여자는 실은 그저 말만 얌전스레 하는 여우이고 반면 남자는 솔직하게 화를 내는 사람 일 뿐이었다. 그러나 볼턴 부인이 전하는 그 관습적이고 사악한 영향을 끼치는 공감의 통로를 통해, 그 남자는 솔직하게 화를 내는 것으로 인해 '나쁜 남자'가 되어버렸고, 그 여자는 말만 얌전하게 하는 것으로 '훌륭한 여자'가 되어버린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소문은 듣는사람을 수치스럽게 만드는 것이다.
(P.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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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라​
김영하 / 문학동네 / 272쪽
(2017. 12. 13.) 


  한 친구는 어느 도시에 가든 청바지를 사입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집에는 세계 각국에서 산 청바지로 옷장이 그득합니다. 대부분은 리바이스나 게스 같은 대중적 브랜드의 블루진입니다. 나는 그것들을 서로 구별할 수 없지만 친구는 기가 막히게 가려 냅니다. 이것은 지난 겨울 런던에서 산 진이고, 이것은 베이징에 서 산 건데 어쩐지 가짜 같지만 나름의 매력이 있고 “청바지를 사입고 나오면 이상하게 미음이 푸근해진디구." 그 마음을 알 것 같았습니다. 낯선 도시에서, 여행자들은 누구나 자기만의 의식을 치르는 것 같습니다. 그 친구처럼 청바지를 사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처럼 서점에 들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 이곳에도 프란츠 카프카와 알베르 카뮈를 읽는 사람이 있고 연말이면 달력과 수첩을 사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위안이 됩니다.
(P.82)


  어쩌면 인간은 그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새의 울음소리를 완벽하게 흉내내는 폴리네시아의 원주민처럼, 자칼의 가면을 쓰고 행진하는 아마존의 어느 샤먼처럼, 인간은 어떤 순간 완벽하게 다른 존재 일 수 있는 게 아닐까요? 정말 인간은 삶의 전 순간을 오직 인간으로만 사는 것일까요? 그러니까 제 말은, 개나 돼지, 새나 물고기인 그 어떤 순간, 그것을 부인하기 어려울 때가 간혹은 있지 않은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교도들이 전생을 믿는 게 아닐 까요? 우리가 우리의 긴 윤회 과정 어디쯤에선가 왜가리나 멧돼지, 코끼리나 흰소있을 수 있다는 믿음은 왜 이렇게 자연스러운 것일까요?​
​(P.87)


  그녀는 황동 손잡이를 잡아당기고 호텔로 들어옵니다. 그리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또각또각 삐거덕 또각. 나무계단의 소리가 정겹습니다. 나는 언제나 나무계단이 있는 집에서 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도 그 꿈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나는 단층집과 아파트에서만 살았습니다. 인간의 무게를 묵묵히 견디며
조용히 신음소리를 내는 나무계단은 가져보질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이 호텔을 택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세상에 엘리베이터도 없다니! 그녀는 투덜거렸지만 나는 그게 더 미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다시 태어난다면 나무가 되고 싶고 나무의 생을 마친 후에는 계단이 되고 싶습니다.
(P.91)


  광화문 스타벅스는 소란스러웠다. 계산대 앞에는 여섯 명이 줄을 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분홍색 카디건을 입은 여지는 빨간 털모자를 쓴 친구와, 크림치즈를 바른 베이글과 달콤한 티라미수 케이크 중에서 어떤 것이 맛있는지 토론하고 있었다. 혼자 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은 한 여 자 가수의 배꼽과 그녀가 그것으로 버는 돈, 새로운 다이어트요법에 대해 떠들어댔다. 그 웅웅거리는 소리들은 원두분쇄기의 요란한 소음에 묻혔다. 캐논볼 애덜리의 색소폰 소리는 스피커를 나오자마자 바람 빠진 풍선처럼 바닥으로 가라앉아 사람들의 발길에 차였다. 거리에 면한 창가 자리에 한 남자가 앉아 오늘의 커피를 홀짝 이면서 세종문화회관 쪽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었다.
(P.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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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의 빛
마크 스트랜드 / 박상미 / 한길아트 / 118쪽
(2017. 12. 09.) 



내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 관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내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것인 동시에 그동안 비평가들로 인해 빚어진 오해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다. 이제껏 씌어진 글들은 왜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호퍼의 그림 앞에서는 비슷한 종류의 감동을 받는지, 그 주된 이유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를 찾아가는 내 접근 방식은 주로 미적인 것으로 호피 그림의 사회적인 면보다는 그 회화적 전략에 관심을 둔 것이다.​
  물론 그의 그림은 이 세상과 약간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흔히 그의 그림을 두고 20세기 초 미국인의 삶의 변화에서 온 만족감과 불 안감을 보여준다고 하는데, 이것만으로는 관객들이 그의 그림에 그토록 강렬하게 반응하는 이유를 다 설명할 수 없다. 호퍼의 그림은 사회상의 기록도, 불행에 대한 은유도 아니다. 또 그처럼 부정확한 성격을 지니는, 미국인의 심리적 기질에 관한 것도 아니다. 호피의 그림은 현실이 드러내는 모습을 넘어서는 것으로, 어떤 '감각'이 지배하는 가상 공간에 관객을 위치시킨다. 이 책의 주제는 비로 그 공간을 읽어내는 것이다.
(P.5)


  <나이트호크>를 보고 있으면 두 개의 모순적인 명령어 사이에서 주춤거리게 된다. 사다리꼴은 가던 길을 계속 가라고 우리를 재촉 하고, 어두운 도시 속 환한 실내는 우리에게 머물 것을 종용하는 것이다. 도로와 길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호피의 다른 그림과 마찬가지로, 이 그림에서도 역시 차는 보이지 않는다. 이 장면을 우리와 함께 보 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보다 앞서 보았던 사람들도 없다. 그림 속의 장면은 오직 우리에게만 존재한다. 경험하는 모든 것은 완벽하게 우리 것이 될 것이다. 호퍼의 그림에서 상실감과 덧없는 부재감을 동반하는, 여행이 배제된 순간은 점점 무성해질 것이다.
(P.15)
​​


  호퍼의 그림은 짧고 고립된 순간의 표현이다. 이 순간은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분위기를 전달하면서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를 암시한다. 내용보다는 분위기를 보여주고 증거보다는 실마리를 제시한다. 호피의 그림은 암시로 기득 차 있다. 그림이 연극적일수록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까 궁금해지고, 그림이 현실에 가까울수록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여행에 대한 생각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을 때, 그림은 우리를 더욱 끌어들인다. 어차피 우리는 캔버스를 향해 다가가거나, 아니면 그로부터 떠나가는 존재가 아닌가.
  우리는 그의 그림을 볼 때-우리 자신을 자각하고 있다면-그림이 드러내는 연속성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이야 한다. 호피의 그림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삶의 사건들로 채위질 장소로서의 빈 공간 (vacancy)이 아니다. 즉, 실제의 삶을 그린 것이 아닌, 삶의 전과 후의 시간을 그린 빈 공간이다. 그 위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위져 있고, 그 어두움은 우리가 그림을 보며 생각해낸 이야기들이 지나지 게 감상적이거나 요점을 벗이나 있다고 말해준다.
(P.48)


  시간을 둘러싼 질문들-우리는 시간 속에서 무엇을 하고 있고, 시간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는가?-은 호퍼가 그의 그림에 어둠을 얼마나 가두어놓느나, 또는 적어도 제한하고 있느냐의 문제 안에 존재하는 것 같다. 호퍼의 그림에는 기다림이 많다.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은 아무 할 일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배역(配役)으로부터 버림 받은 등장인물처럼, 이제 기다림의 공간 속에 홀로 갇힌 존재들이다. 그들에겐 특별히 가야 할 곳도, 미래도 없다.
(P.49)​


  빛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밖에 나가서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 호퍼는 밖에서 유화작업을 하지 않았다. 호퍼처럼 천천히 작업하는 화가에게 빛은 너무 빨리 바뀌었던 것이다 자세한 묘사가 사라지고 있는 그의 세계와 어울리는 빛을 표현하기 위해서 그는 상상력이 필요 했고, 이러한 작업에는 작업실이 최적이었다. 그의 그림은 즉흥적이 기보다는 조심스럽고 꼼꼼하게 계획된 것이다. 마찬가지로 그의 빛은 축하의 빛이라기보다는 기념의 빛이다. 호퍼의 빛이 기하학적인 견고성을 갖추게 된 것은 그가 빛이 흩어지지 않도록 빛에 어떤 생명을 주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빛은 오히려 빛이 저항하고 있는 대상을 떠올리게 할 뿐이다. 그에게 빛은 결국 어둠이라는 더욱 강한 세력의 휴지(休止)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P.58)


  우리가 이 그림(뉴욕극장, 1939) 앞에 서 있는 모양은 안내원과 더 닮았는 지도 모른다. 그림을 보고 있는 게 아니라 들여다보고 있는 거라고 한다면, 내면을 '보고 있는 안내원에게 마음이 가는 이유가 설명될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우리의 시선이 그림의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옮겨가면서, 우리는 두 가지 모순적인 충동-그림을 보고, 그림 속을 들여다보는-에 따라 움직인다. 우리는 이 그림에서, 호퍼의 다른 그림에서처럼 그림의 기하학적 요소와 서사성이 부딪히며 빚어 내는 드라마를 보는 대신, 이 둘이 함께 작용하는 것을 본다. 어떤 이는 여자 안내원이 눈을 감고 있으니 관객과 상응할 수 없다고 말 할지도 모른다. 그 말도 맞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것에서 시선을 돌려 내면을 바라볼 때에도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안다고 말 할 수 있지 않을까? 결국 우리의 사고라는 공간 속에 유폐된 이미지들이 세상에 관한 지식으로 변하는 것이니까.
(P.76)


그림(바다 옆의 방)의 왼편으로는 자연과 상반되는 모습인, 좁고 붐비는 실내가 있다. 그곳엔 소파 또는 의자와 옷장 그리고 그림과 같은 집안 살림들이 보인다. 그림은 우리에게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갈 것을 요구 하는데, 바다가 아니라 좁은 틈으로 보이는 실내를 보라고 하는 것 같다. 바다마저 실내를 들여다보는 것 같고, 빛은 우리가 보아야 할 방향을 가리기는 듯하다 호퍼의 다른 그림들과는 달리, 이 그림에서 순간은 정지된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기념비적인 기하학적 형태를 띤 것 같지도 입다. 대신 우리가 보는 시간을 감안하여 연장된 순간처럼 느껴진다. 그림을 가로질러 우리는 그림 깊숙이 들어간다. 가구로 채워진 두번째 방은 첫번째 방의 반향(反響)이다 두 공간이 한 쌍을 이룬 것은 우리에게 위안을 준다. 가정의 안정에 기본이 되는 지속과 연결이라는 개념을 실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자연의 의지를 구현하는 한 쌍의 힘인 바다와 하늘은 전혀 해롭지 않은 모습이다
(P.99)


  호퍼의 후기 작품인〈빈방의 빛〉에서 빛은 고요하지 않다. 창을 통해 들어온 빛은 같은 방에 두 번-한 번은 창과 가까운 벽에,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조금 안으로 들어간 벽에-떨어진다. 이 그림에 서 일어나는 일은 이게 전부이다. 우리의 시선은〈바다 옆의 방〉에서 처럼-실제 거리든 은유적인 거리든-움직이지 않는다. 빛은 두 공간을 한꺼번에 비추지만, 연속성의 느낌보다는 종말의 기미를 준다. 이것이 어떤 리듬을 내포하고 있다면, 이 리듬은 도중에 끝날 것이다.
(P.102)


​  호퍼의〈이른 일요일 아침〉은 전통적인 구성을 파괴하는 평면적 구성으로 일단 눈길을 끈다. 하지만 그림은 예상외로 그 평면성을 다차원적으로 만드는 여러 장치를 가지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창문 이다. 호퍼의 그림에는 건물이 자주 등장한다. 이 건물들에는 창문이 있고, 창문들 중 어떤 것은 닫혀 있고 어떤 것은 반쯤 열려 있는 상태다. 이 그림에서도 예외 없이 창문들은 열리고 닫힘을 반복한다. 창문의 열려진 틈에 호퍼는 주로 가장 어두운 색을 칠하는데, 이
것은 다른 그림들에서 깊이감을 주는 데 이용되는 장치들(예들 들면 소실점의 이용이라든가)보다 덜 명백하지만, 설명하기 힘든 강렬한 힘으로 보는 사람을 끌어들인다. 이때 아까와는 조금 다른 아득한 감정을 다시 한번 경험하게 된다. 평면적인 그림에서 예상치 못한 깊이감이 느껴지는 순간 낯익은 것이라 생각되던 일요일 아침의 정경은 갑자기 알 수 없는 것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P.106)


이 책은 흔히 볼 수 있는 화가의 모노그래프가 아닌, 스트랜드라는 시인의 특별한 시각을 담은 책이다. 호퍼는 불공평 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자주 '미국적 사실주의 작가'라고 일컬어진다.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이런 평가에 대해 항상 불만을 품어왔다 호퍼의 폭과 깊이를 제한하는 말로 들리기 때문이다. 호퍼는 보통의 평보다 좀 더 보편적이면서도 복집한 작가이고, 스트랜드는 그걸 누구보다 정밀하게 읽어내고 있다. 난 과학보다 정확한 것이 시인의 언어라고 믿는 편이데, 스트랜드는 이 책에서 놀라운, 때로는 따라 잡기 힘들 정도의 정교한 관찰력을 보여준다. 예를 들어 <이른 일요일 아침>에서 그의 관찰은 매우 인상적이다.

  '부동(不動)과 정적(靜寂)의 몽상적인 조화로 미술적인 순간은 길게 늘어나고, 그 앞에 선 우리는 특별히 허락된 목격자들이다.'

  호퍼 그림의 분위기뿐 아니라 형식적인 측면, 그리고 호피의 그림 이 요구하는관람객의 '특별한 시각' 즉, 그 그림의 초월적인 깊이까지를 압축해서 담아낸 문장이다. 또한 스트랜드는 호퍼의 공간을 시간적인 은유로 표현하면서 그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지원을 열어주기도 한다.
(P.112)


이제까지 우리가 예술 작품을 감상한 방식이 모두 '지나치게 감상적이거나 요점을 벗어나'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스트랜드의 고유한 '호퍼 읽기를 통해 호퍼의 그림을 감상하는 데 도움을 받을 뿐 아니라 예술을 보는 전반적인 시각까지도 변화하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림을 볼 때 필요한 건 미술사적인 지식과 비평적 관찰뿐만이 아니다. 스트랜드를 통해 우리는 '나'라는 개인의 고유한 시각, 명철한 시정으로 예술에 접근하는 태도를 배우게 되는 것이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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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상상
하비에르 페레스 / 김유경 / 어바웃어북 / 280쪽
(2017. 12. 06.) 



  어떤 상상은 허무맹랑한 '공상'이라며 쓸모없이 여기고, 어떤 상상은 '사색'이라며 높이 삽니다. 상상은 바람과 같습니다. 가뒤두거나 어떤 형태를 만 들 수
없습니다. 바람처럼 그냥 자유롭게 흐르게 둬야 합니다. 그런 상상에 등급이란 어울리지 않습니다. 평소 우리는 너무 많은 생각을 머릿속에 가뒤두고 있습니다. 가끔은, 생각을 자유롭게 놓아두세요. 이곳저곳을 방황하다 돌아온 당신의 생각은 꽤 근사한 모습이 되어 있을 거예요.
(P.5)


​나무 한 그루가 있었습니다.
나무에게는 사랑하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도 뛰고 배가
고파지면 사과를 따 먹곤 했습니다.
때로는 나무 뒤에 숨어 숨바꼭질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나무에 기대서 단잠을 자기도 했지요
소년은 나무를 무척 사랑했고
나무는 행복했습니다.

소년은 오늘도 어김없이 나무를 찾아욌습니다.

“시간이 흘러 네가 날 떠나려고 해도,
널 붙잡자고 내 전부를 내주지는 않을 거야.”

나무는 밑동만 덩그러니 남아 있는
아버지 사과나무를 보며 중얼거렸습니다.
(P.36)


연필을 뾰족하게 깎고
어디로 갈지 생각한다
화성, 달, 해왕성, 명왕성,
심이 더 굵거나 얇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연필이랑
상상력이면 충분하다.
(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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