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스 1
토마스 하디 / 정종화 / 민음사 / 412쪽
(2016. 3. 27.)



  "테스, 별에는 그 나름대로 세상이 있다고 했어?"
  "응."
  "우리가 사는 세상처럼?"
  "잘 모르겠지만 그럴 것 같아. 별들은 때대로 우리집 조생(早生) 사과나무에 달리는 사과처럼 보여. 대부분의 사과는 멋있고 싱싱한데 진딧물이 붙은 벌레 먹은 병든 사과도 몇 개 있지."
  "우리는 어느 쪽에 사는 거야? 멋있는 쪽이야, 진딧물이 붙은 쪽이야?"
  "진딧물이 붙은 쪽이지."
  "싱싱한 별이 훨씬 더 많은데 우리가 싱싱한 쪽에 자리를 잡지 않은 건 운이 나쁜 거야!"
(P.55)



  제대로 계획한 일이 잘못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부름이 올 사람을 데려오지 못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시간과 일치하는 일이 거의 없다. 보는 것이 곧 행복한 일로 이어지는 순간에 자연이 "보라!"고 인간에게 말하고 인간이 "어디?"라고 외쳤을 때 "여기."라고 답하는 일이 드물다. 그러다 숨바꼭질은 지루하고 지치는 게임이 된다. 인간 발전의 절정과 정점에서 이런 모순이 보다 훌륭한 통찰력에 의해, 그리고 우리를 지금 덜컹덩거리며 끌고 가는 것보다 더 짜임새 있게 운영하는 사회적 기구의 상호작용에 의해 시정될 수 있을지 우리는 생각해 본다. 그러나 완전한 해결 방법은 예측할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지금은 수백만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서로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이 완전한 순간에 만나는 완전한 총체의 두 동강 난 반쪽이 아니었다. 사라진 반쪽은 나중 제시간이 올 때를 기다리며 둔감한 상태에서 혼자 지상을 돌아다니는 것이다. 이러한 혼돈의 기다림 속에서 근심과 실망과 충격과 재난과 스쳐 가는 운명이 일어난다.
(P.74)



  어째서 비단만큼이나 섬세하고 사실상 눈처럼 티없는 이 아읆다운 여자의 살결에 운명처럼 추한 무늬가 박히게 되었는가? 어째서 늘 조잡한 사람이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을 차지하고, 엉뚱한 남자가 자기 짝이 아닌 여자를 소유하며, 엉뚱한 여자가 남의 남자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분석철학도 우리의 질서 의식에 맞는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재난 속에 보복의 가능성이 숨어 있을 수도 있음을 우리는 사실상 인정해야 할지 모른다.
(P.132)



  그녀가 산보하는 시간은 어둠이 깔린 다음이었다. 이런 시간에 숲으로 들어가면 그녀는 조금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았다. 빛과 어둠이 너무나 고르게 평형을 이루어, 낮의 압박과 밤의 긴장이 서로 중화되고 그래서 절대적 정신이 자유가 허용되는 정확한 저녁 순간을 그녀는 간발의 차이로 알고 있었다. 살아 있다는 불운의 최소한의 차원으로 축소되는 순간이 바로 이런 시각이었다. 그녀에게 어둠은 무서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그녀의 머릿고에 있는 오직 한 가지 생각은 인간을 - 집단으로 뭉치면 그렇게 무서우면서도 하나의 단위 속에서는 그렇게 보잘것없고 불쌍하기까지 한, 세상이라 불리는 냉랭한 집합체를 - 어떻게 피하는가 하는 것 같았다.
(P.154)



  "경험에 의해서." 로저 애스컴은 말한다. "우리는 긴 방황 끝에 지름길을 찾는다." 그러나 긴 방황이 우리의 다음 행로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 경우 우리의 경험은 무슨 소용이 있다는 것인가? 테스 더비필드의 경험이 바로 이런 종류의 무용한 경험에 해당된다. 테스는 결국 무엇을 해야 할지를 경험에서 배웠다. 그러나 이제 와서 누가 그녀의 교휸에서 얻은 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녀가 더버빌 갈 가기 전에 자신과 세상 전반에 알려진 여러 가지 금언의 내용과 구절에 따라 살았더라면 그녀는 더버빌로부터 기만당하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금언의 전체적 진리를 몸으로 느끼고 그것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것은 테스의 능력을, 그리고 다른 어떤 사람의 능력도 넘어서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많은 사람들이 성 아우구스티누스와 더불어 하느님에게 이렇게 풍자적으로 말햇을 것이다. "당신께서 허락한 길보다 더 나은 진로를 말씀하셨습니다."
(P.177)



  "역사는 이미 아는 것 이상 더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왜요?"
  "내가 긴 역사의 대열에 선 사람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옛날 책 속에 있는 한 사람의 역할을 할 거라는 점을 안다는 것, 그것은 날 슬프게 만들어요. 그게 이유예요. 최선의 방법은 자신의 천성과 자신의 과거사가 수천 수만 명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자신의 인생과 행동이 수천 수만 명의 그것과 같을 거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 거예요."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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