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일상과 그 너머에 대한 인문적 성찰)

류대영 / 생각비행 / 344쪽
(2016. 4. 5.)




자극적인 글들이 게시판을 도배하고 선거판 막말들이 흘러 넘치는 지금
평생 학문에 정진했던 노교수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읽혀주고 싶은 마음으로 쓰신 진솔한 글들 속에서
다정한 가족의 따뜻한 정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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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흘러 초로의 나이에 접어드니, 삶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언인지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학문이라는 것의 의미, 내 자식들도 읽지 않은 글을 쓰는 의미를 다시 묻는다.
  이번에는 아예 처음부터 자식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글을 썼다. 아비가 글을 읽고 쓰는 사람인데, 무엇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단서라도 제공하고 싶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 시간와 영원, 문학과 역사, 현상과 본질, 기억과 인식 등 평소 내 관심사들을, 일상 속에서 생각나는 대로 썼다. 이삼 년 전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느낀 것은, 이렇게 나와 내 주위를 둘러보는 글이 논문보다 더 쓰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P.8)



  인간이란 태어날 때부터 탐욕의 덩어리다. 그 탐욕을 채우기 위해 어릴 때나, 젊을 때나 나는 무수한 죄를 짓고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초로에 접어든 지금도 그 버릇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자식이 착하게 살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소원이 하늘에 닿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로 하여금 조금식 선과 악을 구별하고 악행의 길에서 벗어나도록 했으리라, 천벌이란 그렇게 어머니들의 간절함이 모여서 내리는 모성의 벌인지도 모르겠다.
(P.35)



  가끔 나에게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하느냐고 묻는 학생들이 있다. 나는 일상을 같이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을 고르라고 말해준다. 연애는 일상이 아니다. 일상 아닌 것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겠는가, 시간이 가면 연애는 사라지고 일상만 남는다. 연애 때 행복했다고 결혼 후까지 행복한 것은 결코 아니다. 결혼식은 연애가 끝나고 일상이 시작됨을 알리는 의식이다. 결혼 후의 삶은 일상의 연속이다. 매일 아침밥을 먹을 때마다 폭죽을 터뜨리고, 화장실에 갈 때마다 풍선과 촛불로 장식하며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일상이란 지루하고, 짜증 나고, 귀찮고, 별다른 의미 없어 보이는 일들의 반복이요 연속이다. 그런 일을 수십 년이라도 같이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좋은 배우자인 것이다.
(P.152)



  인간은 과거를 사는 존재다. 모든 경험은 과거이며, 그 경험에 대한 기억만 현재라는 순간순간에 남아 있다. 아우구스티누스식으로 말하자면, 인간의 삶은 머릿속에 기억이라는 과거의 지층을 쌓으면서 시간의 흐름을 통과한다. 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생로병사의 과정을 톻과해간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시간은 나를 소멸하게 하는, 저항할 수 없는 힘이다. 그러나 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억이라는 시간의 지층을 내 머릿속에 쌓으면서 흘러간다. 머릿속에 쌓인 기억의 총합이 내 삶이고, 나다. 기억이 나의정체성을 만들어내고, 내 세계관을 형성하며, 내 판단을 좌우한다. 기억이 풍성하고 아름다우면 내 삶이 풍성하고 아름다우며, 기억이 단조롭고 내용이 부실하면 내 삶 또한 그러한 것이다. 현재의 삶이 기억의 길이ㅘ 부피와 무게를 좌우한다. 어떤 기억을 가질 것이냐는 기본적으로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다. 현재는 과거를 결정하고, 과거에 대한 기억은 현재의 삶을 만든다.
(P.195)




  세월호 사고가 일어난 직후 나는 '참회록'을 하나 썼다. 거기서 나는 이렇개 고백했다. "이번 사고로 희생당한 수많은 고귀한 생명들, 특히 꽃 같은 어린 학생들의비극적 죽음 앞에서 저는 모든 가치관이 마비되는 충격을 느낍니다. 이 개명천지에서 어떻게 그런 참담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저의 이성과 학식은 어떠한 설명도 해주지 못합니다." 살아갈수록 내가 모르는 일, 모르기 때문에 의미를 발견하기 힘든 일이 너무 많다는 사실을 더욱 절감한다. 그것이 내 한계이고, 나아가 인간의 한계이리라. 모든 일이 의미 있을 수 없다. 의미 없는 일은 의미 없는 대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필요하다.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운 일에 억지로 의미를 갖다 붙이다 보면 위에 언급한 목사처럼 되기에 십상이다. 인간이 벌인 일에 신을 끌어들이고, 자기 생각을 신의 뜻과 동일시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인간의 욕심과 어리석음이 뒤얽힌 문제다 구체적으로 누구의 욕심과 어떤 어리석음이 얽혀 있는지 밝히면 된다.
(P.226)




  여러 사람이 모인 곳에는 나와 잘 통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맞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아니, 어디를 가더라도 나와 잘 맞는 사람은 없어도, 그 반대인 사람은 반드시 있다. 그것이 내가 지금까지 경험한 세상의 일반적인 이치다. 직장 동료 가운데 대놓고 나와 불화하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어딘지 나와 맞지 않아 같이 있으면 불편한 사람은 있다. 그런 사람들은 어떤 사안이 있을 때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생각하고, 나와 상충되는 방식으로 판단하며, 나와 전혀 다르게 행동한다. 그런 사람을 항상 피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직장생활이라는 것이 어찌 그런 것이랴. 불편한 사람과도 같이 밥 먹고, 같이 회의하고, 우연히 마주치면 웃으면서 인사해야 한다. 밥벌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소위 지성인이 모였다고 하는 대학교수 공동체도 예외는 아니다.
(P.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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