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
리오 휴버먼 / 책벌레

(2012.07.12.)

 

 

  이 책은 두 가지 목적이 있다. 그것은 경제 이론으로 역사를 설명하는 것과 역사로 경제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다. 이 결합은 중요하고도 필요하다. 역사의 교훈은 경제적 측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제대로 알기 어렵다. 반면, 경제 이론은 역사적 배경에서 분리되면 따분해진다.
(p. 11)

 

 

  봉건 시대에는 토지만이 거의 모든 필요한 재화를 생산했고, 그래서 사실상 토지만이 부의 열쇠였다. 부의 척도는 단 한 가지, 즉 보유한 토지의 양으로 결정됐다. 자연히 토지 쟁탈전이 계속 벌어졌고, 그래서 봉건 시대가 전쟁의 시대였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p. 25)

 

 

  봉건 시대 초기에는 토지만이 부의 척도였다. 상업이 확대되면서 새로운 종류의 부가 출현했다. 즉, 화폐 재산이었다. 봉건 시대 초기에 화폐는 활력이 없었고, 유동적이지 않고 정지해 있었다. 그러나 이제 화폐는 활력 있고, 유동적이며 움직이는 것이 됐다. 봉건 시대 초기에 토지를 보유한 성직자와 기사는 사회적 위계의 맨 위에 있었으며, 사회적 위계의 맨 아래에 있는 농노의 노동으로 살아 갔다. 이제 새로운 집단이 모습을 드러냈다. 즉, 매매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 가는 중간 계급이었다. 봉건 시대에는 부의 유일한 원천인 토지 보유가 성직자와 귀족에게 지배 권력을 가져다 주었다. 이제 부의 새로운 원천인 화폐 소유는 떠오르는 중간 계급에게 부분적인 정부 참여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p. 53-4)

 

 

  중세에는 자신이 먹고 사는 데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모으는 것도 부도덕하다고 생각했다. 성서는 이 점을 분명히 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
  당시의 한 저자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먹고 사는 데 충분한 것을 갖고 있는데도 더 높은 사회적 지위를 얻으려고, 또는 나중에 일하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것을 가지려고, 또는 자식들을 부유하고 중요한 인물로 만들려고 부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일하는 모든 사람은 사악한 탐욕, 육욕, 자기 과시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자연 경제의 기준에 익숙했던 사람들은 변하고 있던 화폐 경제에 그 기준을 그냥 적용했다. 만약 어려분이 여러분의 돈을 사용한 대가로 이자를 요구한다면, 여러분은 팔아서는 안 되는 시간을 파는 것이었다. 시간은 하느님에게 속한 것이었고, 여러분은 그것을 팔 권리가 없었다.
(p. 58-9)

 

 

  역사책을 읽어 보면 이런저런 왕들의 야망,정복,전쟁에 관한 이야기가 장황하게 이어진다. 그런 책들의 강조점은 완전히 틀렸다. 국왕들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기보다 왕권의 배후에 있는 진정한 힘, 즉 그 시대의 상인과 금융업자의 이야기에 지면을 할애하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이다. 국왕들은 언제나 상인과 금융업자의 재정적 원조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이 바로 왕권의 배후에 있는 권력이었다. 16~17세기의 200년 동안 거의 끊임없이 전쟁이 계속됐다. 전쟁은 돈이 들었다. 화폐를 가진 사람들, 즉 상인과 은행가들이 그 자금을 조달했다.
(p. 120-1)

 

  임근 노동자들도 고통을 받았다. 물가 상승의 시대는 거의 언제나 임금 상승의 시대이기도 하기 때문에 여러분은 만사가결국은 잘 풀렸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런 생각에는 중대한 함정이 있다. 그 함정이란 임금은 결코 물가와 똑같은 속도로 상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금 상승은 보통 싸워서 얻어야 한다. 임금 상승은 대개 탄압에 부딪히는 의식적인 대중 행동으로 획득하지만, 물가는 시장의 작용으로 상승한다. 노동자는 그런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p. 132)

 

 

  영국에서는 1689년쯤에, 그 다음에 프랑스에서는 1789년 이후에, 시장이 자유를 위한 투쟁은 중간 계급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 혁명이 봉건제에 치명타를 가했다는 점에서 1789년은 중세의 끝으로 기록될만하다. 봉건 사회는 기도하는 사람들, 싸우는 사람들, 일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졌는데, 그 안에서 중간 계급 집단이 생겨났다. 중간 계급의 힘은 여러 해에 걸쳐서 점점 더 증대했다. 그들은 봉건제에 맞서 길고도 고된 투쟁을 전개했고, 특히 세 차례 결정적인 전투를 치렀다. 첫째는 종교개혁, 둘째는 영국 혁명, 셋째는 프랑스 혁명이었다. 18세기 말 그들은 마침내 낡은 봉건 질서를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력해졌다. 부르주아지는 봉건제 대신, 이윤 창출을 제1의 목적으로 하는 상품의 자유 교환에 기초한 전혀 다른 사회 체제가 등장했음을 알렸다.
  우리는 그 체제를 자본주의라고 부른다.

(p. 192-3)

 

 

  자본가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 건물,기계류,원자재 등이 그 것이다. 자본가는 노동력을 산다. 자본주의 생산은 이것들이 결합됨으로서 이루어진다. 화폐가 자본의 유일한 형태가 아니라는 점을 주의하자. 오늘날 산업 자본가는 현금을 거의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런데도 거액의 자본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생산수단, 즉 그의 자본은 그가 노동력을 구매함에 따라 증대한다.
(p. 198)

 

 

  노동자들이 조건 개선, 임근 인상, 노동 시간 단축을 획득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마도 노동자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 자신의 조직, 즉 노동조합이었을 것이다.
(p. 238)

 

 

  맑스가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른 것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였다. 맑스는 사회에 분명한 힘[세력]들이 작용할 때만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그는 노동자 계급만이 사회주의를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전 경제학을 자본가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는 것처럼, 맑스의 경제학은 노동자의 경제학이라고 할 수 있다. 자본가가 고전 경제학에서 도움과 위안을 얻을 수 있었듯이, 노동자는 맑스 경제학에서 자기 존재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맑스 경제 이론의 근본적인 핵심은 자본주의 체제가 노동 착취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p. 267)

 

 

  맑스는 노예 사회와 봉건 사회에서 노동자가 착취당했던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에서도 노동자가 착취당한다고 말했다. 다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착취는 숨겨져 있고 은폐돼 있다고 맑스는 말했다.
(p. 268)

 

 

  산업의 독점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더라도 똑같이 중요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금융의 독점이었다. 맑스는 이것을 예견했다. 대규모 “자본주의 생산과 더불어 전혀 새로운 힘, 즉 신용 제도가 무대에 등장한다. 이것 자체가 경쟁이라는 전투에서 새롭고 강력한 무기일 뿐 아니라, 많든 적든 사회의 표면에 흩어져 있는 가처분 화폐를 끌어들여 개별적이거나 연합한 자본가들의 손안에 쥐어 주는 보이지 않는 실이다. 신용은 자본의 집중을 돕는 특수한 도구다.”
(p. 302)

 

 

  역사상 모든 시대에 항상 공황이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성장하기 전에 일어난 공황과 그 후에 일어난 공황 사이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18세기 이전에 가장 흔한 형태의 공황은 흉작이나 전쟁과 같은 어떤 비정상적인 사건 때문에 일어난 것이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광황, 즉 자본주의의 도래와 함께 발생한 공황은 비정상적인 사건 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경제체제의 본질적인 부분으로 비쳐진다. 이러한 공황의 특징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이다. 이러한 공황에서는 가격이 상승하지 않고 하락한다. 여러분은 공황과 불황의 또 다른 특징들도 알고 있다. 노동과 자본 모두의 실업, 이윤 감소, 그리고 생산과 유통 모두에서 산업 활동의 일반적인 둔화,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역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 자본 설비, 노동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데도 생산은 일어나지 않는다. 도대체 왜?
  경제학자들의 대답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 가지 사실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한다. 여러분이 처음에 그 사실을 이해하지 않으면 광황의 원인은 비밀로 남을 것이다.
  매우 중요한 사실은 단순히 다음과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윤을 남기는 교환을 위해서 상품을 생산한다.
우리 사회에서는 생산수단 소유자들에게 이윤을 얻을 기회가 주어질 때만 땅에서 광물을 채굴하고, 농작물을 수확하고, 사람들이 일자리를 얻고, 산업의 수레바퀴가 움직이고, 상품을 사고 판다.

  그들이 모두 옳기도 하고, 또 모두 틀리기도 하다. 임금이 오르고 사회복지가 확대되면 늘어나는 상품 공급을 흡수할 시장이 마련될 것이라는 홉슨의 주장을 옳다. 그러나 임금 인상은 단기적으로는 생산의 이윤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그는 틀렸다. 낮은 임금과 복지 삭감이 단기적으로 생산의 이윤을 증가실킬 것이라는 하이예크의 주장은 옳다. 하지만 임금 삭감은 늘어나는 상품 공급을 흡수할 시장을 파괴하기 때문에 그는 틀렸다. 홉습은 대중의 구매력을 증대시킴으로써 시장을 획복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반면, 하이예크는 대중의 구매력을 감소시킴(임금 삭감)으로써 수익성을 회복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칼 맑스의 지지자들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자본주의의 딜레마다. 자본주의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자본주의에서는 공황을 피할 수 없다고 그들은 주장한다. 맑스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는 아무런 해결책도 없다고 말했다. 공황을 없애려면 자본주의를 없애야 한다고 그는 썼다.
(p. 330)

 

 

  자본가들이 국가 계획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런 계획이 반드시 소득 분배의 문제를 새로운 논쟁거리로 만들기 때문이다. 자본가의 이론에 따르면, 너무나 불평등한 소득 분배조차도 ‘자연 법칙’의 결과이기 때문에 정당하다. 소득 분배가 매우 불공평하다는 비난에 직면한 자본가들은 어깨를 으쓱하며 일허게 말할 것이다. ‘왜 우리를 괴롭히는가? 누구나 자기가 받을 만한 것을 받는다. 그것이 자연 법칙이다.’ 그러나 계획 경제에서는 소득 분배의 문제를 그렇게 가볍게 처리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꽃 튀는 쟁점이 되고, 더 이상 비인격적인 힘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중앙 조정 기구의 중요한 임무가 된다.  대중의 감정이 정부에 영향을 미치는 그러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오늘날 존재하는 엄청난 소득 격차가 상당히 감소할 것임은 분명하다. 계획에 따라서 대중은 더 많은 소득을, 자본가는 더 적은 소득을 얻을 것이다.
  이런 이유를 보면 그런 발전을 반대하는 지도자들이 자본가라는 것은 당연하다.
(p. 342)

 

 

  동인도 제도 사람들이 원숭이를 잡는 방법에 관한 아서 모건의 이야기에는 자본가들을 위한 교훈이 담겨 있다. “그들은 코코야자 열매를 따서 원숭이의 맨손이 겨우 통과할 만한 구멍을 판다. 그 속에 설탕 덩어리 몇 개를 넣고 코코야자 열매를 나무에 매단다. 원숭이는 코코야자 열매에 손을 밀어 넣어 설탕을 쥐고 주먹을 빼려고 애쓴다. 그러나 구멍이 작기 때문에 원숭이의 꽉 쥔 주먹은 빠지지 않는다. 그리고 탐욕 때문에 원숭이는 파멸한다. 왜냐하면 원숭이는 목표물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p.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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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6-02-22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맑스군요. 반갑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