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혁명
박경철 / 리더스북
(2011.12.14.)
중요한 것은 험난하더라도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점이다. 순간을 쉽게 모면하기 위해 타협하거나 우회하면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히게 된다. 한계를 회피하려는 유혹은 악마의 키스처럼 유혹적이다. 하지만 여기에 말려드는 순간 우리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된다. 즉 욕망은 개선을 위한 의지인 동시에 자칫하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제단 위에 자신의 피를 뿌리는 어리석은 충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p. 18)
결과만 보고 과정을 무시하며 달리는 사회적 환경은 우회와 타협의 결과다. 국가는 잠재성장률을 넘는 GDP 성장률을 목표치로 내세운 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몇몇 대기업에 국가의 자원을 집중배분하고 토목사업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 과정에서 소외된 곳에 가야 할 자원, 사회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투자해야 할 자원들이 모두 한곳에 집중됨으로써 성장률이 높아졌음에도 정작 국민은 불행해졌다.
(p. 18)
모든 생각은 문자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내 생각의 범위는 내가 알고 있는 문자의 범위이고, 생각은 그 문자의 조합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나의 생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문자를 알고, 그것을 조합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문자로 된 것들을 익히고 다른 사람의 표현방식(사유)를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서는 소위 ‘문•사•철’이라 불리는 인문한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컨대 나의 사유를 두텁게 하고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결국 내 삶이 ‘새로운 자극 → 도전 → 생각 → 추적된 사유 → 태도화 → 새로운 자극’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p. 26)
침묵은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하는 나는 사실상 침묵 안에 존재하며 침목을 통해 나를 관찰하면서 ‘자아’ 혹은 ‘내면’이 성장한다.
침묵은 단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하는 순간 외부와 나를 분리시키므로,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이며 관성에 의한 모든 행위를 멈춘다는 의미다.
침묵이 단순히 ‘말하지 않는 것’과 다르기 위한 전제조건은 그것이 반드시 사색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온전하게 내가 주체인 침묵만이 능동적 침묵이며, 나 스스로 선택한 완전한 침묵의 시간, 나를 위한 온전한 숙고의 시간만을 침묵이라고 할 수 있다.
(p. 35)
우리가 사는 세계의 크기는 내가 인식하는 시선의 범위만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내가 인식하는 만큼이 내 세상의 크기인 것이다. 그러니 청년이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도전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 세상의 크기를 넓히는 것이도, 그만큼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p. 40)
청년의 시기에 중요한 것은 술잔을 비우며 뜨거운 열정을 노래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최소한의 침묵과 사색을 통해서 나 자신을 관찰하고 바로잡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p. 42)
우리의 내면에는 모두 창의성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다만 그 씨를 틔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독서, 공상을 통해 창의성이 자랄 토양을 기름지게 가꿔야 한다. 또 몸으로 실천하는 행동을 통해 싹이 돋아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p. 60)
우연성과 필연성의 문제는 늘 고민의 주제가 된다. ‘인생은 단순히 우연의 산물인가, 아니면 필연적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은 현실 속에서도 자주 맞닥뜨리는 것이다. 무의식의 결심과 선택의 지점에서 늘 우리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고, 이로 인해 우리는 선택의 연속인 삶을 늘 두려워하고 자신 없어 한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필연에 대한 갈망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삶의 모든 것을 운명이 장난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인데,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p. 61-62)
아무리 표현의 시대라고 해도 말에는 질서가 있고 설득의 힘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어떤 말이든 입 밖에 낼 때는 두 번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 한 마디를 하면 내 머리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는데, 이는 말은 원래 주고받는 것으로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면 반드시 실언을 하게 된다. 언어의 순발력은 속도가 아니라 효용성이므로, 생각이 언어로 바뀌어 입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걸러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p. 96)
말에서 중요한 첫 번째 덕목은 호흡인데,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는 대화 도중 말을 하고 싶을 때 딱 2초만 쉬면 된다.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은 실수를 할 것이고 나는 2초간 호흡을 고르면서 내 말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제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설득력이다. 나는 과연 그를 설득하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를 과시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말로써 부족함을 달래고 있는가? 원래 말의 목적은 설득이다. 즉 말의 대상은 타인이다. 타인은 나만큼 나에게 관대하지 않고 늘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타인이 보는 나의 인상은 순간의 실수로 뒤집힐 수 있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타인에게 나는 늘 경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는 분노를 다루는 것이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일에 대해 즉각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분노의 상대를 확실하게 적으로 돌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했을 때 한번 숨을 고르고 상황을 돌아본 후, 다음 국면에서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용기다.
네 번째는 진실성인데, 말의 앞뒤가 일관하고 논지가 바로 서 있으며 실수는 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평가를 자제하는 것인데,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희 주의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논지를 중언부언하거나, 사족을 다는 일은 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지름길이다.
(p. 97-100)
우리가 잘못된 선택이 아닌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늘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 즉 상황의 노예가 되지 않는것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딜레마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도록 놔두지 말고,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p. 210)
'시간이 없다'는 말은 위선이다. 시간은 늘 충분하다. 단지 우리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은 도전을 꿈꾼다면 잠을 희생하든 놀이를 포기하든 달콤하지만 의미없는 일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서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을 했다면 산을 옳기는 우공의 태도로 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진정한 도전이다.
(p. 214)
독서를 통해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생각하는 언어와 말하는 언어를 배우고,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고정되어 있어, 언어는 맥락이 있어야만 뜻이 형성된다.
언어, 즉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이 풍부할 수 없고 언어를 맥락화할 수 없다면 체계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란 맥락화된 생각을 가리킨다. 그래서 독서는 사유를 배우는 제1의 수단이며 창의력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독서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만나는 난관은 텍스트를 대하는 자세다.
생각을 모두 말로 옮길 수 없고 말은 문자로 고스란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를 할 때 단순히 문자를 읽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문자가 지시하는 저자의 진짜 생각을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p. 286-7)
SNS에서 오고가는 담론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며, 한 가지 견해를 두고 모두가 옳다고 착각하는 '무오류성의 함정'에 빠지기 쉬다. 만약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정책에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고 언론사라면 자사의 논조가 대중의 중심을 대표한다고 오해하게 될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못마땅한 사람은 입을 다물고 동의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 SNS상의 의견들은 비판에 민감하고 그래서 비판은 암암리에 위축된다.
(p. 338)
단발적으로 버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 정말 버려야 하는 대상은 장기적 인내가 필요한 것들이어야 한다. 잠을 참아내거나 담배를 참아내거나 술을 참아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늘 그것과 투쟁해야 하는 것들을 버리기로 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긴 투쟁을 이겨나가면 그것이 곧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지고, 의식은 명료해진다.
의식이 본능을 통제하고 극복하면서 필요한 일을 행하는 인내로 이어졌다면, 이미 의식의 통제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그것을 습관화함으로써 강고한 자아를 구축하고, 산만하고 저급한 무의식을 의식의 바다 밑 깊은 골짜기로 밀어버리면 된다. 그로써 우리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다음 우리가 단단한 바탕을 딛고 자신의 길을 심장이 터질 만큼 힘차게 달려나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아우라를 획득할 수 있다.
(p. 3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