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2011년에 읽은 책들)

 

 

(1) 부동산 시장 흐름 읽는 법 (김광수경제연구소 / 더팩트)

 

(2) 1Q84(1)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3) 1Q84(2)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4) 1Q84(3)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5) 역정 (리영희 / 창비)

 

 

(6) 시골의사의 부자경제학 (박경철 / 리더스북)

 

 

 

(7)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1) (뿔)

 

 

(8)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2) (뿔)

 

 

(9)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사상사)


(10) 부모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쓴소리 (문용린 / 갤리온)

 

 

(11) 위대한 개츠비 (F. 스콧 피츠제럴드 / 민음사)


(12)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넬레 노이하우스 / 북로드)


(13) 본 아이덴티티 (1) (문학동네)

 

 

(14) 본 아이덴티티 (2) (문학동네)


(15) 시계태엽 오렌지 (앤서니 버지스 / 민음사)


(16) 문재인의 운명 (문재인 / 가교)


(17) 진보의 미래 (노무현 / 동녘)

 

(18) 참 쉬운 마음 글쓰기 (이임숙 / 부키)


(19) 호밀밭의 파수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 민음사)


(20) 자기혁명 (박경철 / 리더스북)


(21) 뿌리깊은 나무 (1) (이정명 / 밀리언하우스)

 

(22) 뿌리깊은 나무 (2) (이정명 / 밀리언하우스)

 


(23) 아이의 10년 후는 다중지능이 결정한다 (정효경 / 밀리언하우스)


(24) 나는 꼼수다 (김용민 / 미래를소유한사람들)


(25)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 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오주석 / 솔

(2011.12.31.)

 

 

  옛사람의 눈은 이러한 마음자리 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어떠한 위대한 인간 또는 자연의 형상도 그 자체가 영원하다고는 보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렇게 그리지도 않았다. 현상은 변화하는 것이고 위대한 것은 오직 거기에 깃들었던 인간의 마음이었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그래서 사물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보았다. 마음을 그리는 것이었으므로 눈에 보이는 형태 그 자체에 너무 얽매이지 않았으며, 특히 현상 속에 드러나는 색채 효과에 집착을 보이지 않았다. 이러한 정신 풍토는 결국 점차 샐까을 재제하고 ‘수묵으로 그린 작품(수묵화(水墨畵))’에 대한 사랑을 배양하게 되었다. 눈보다는 마음으로 보고 사물의 외양보다는 본질을 드러내고자 하는 정신이 바로 수묵의 마음이다.
(p. 26)


  흑색은 참으로 신비롭다. 그것은 다채로운 유채색들이 그 화려한 젊은 시절을 다 보내고 노년의 원숙한 경지에 이른 것이다. 무채색은 지극히 순수하고 검소해서 내면의 정신적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그러므로 승려의 장삼빛이 회색이고 신부와 수녀 복장이 무채색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다. 한편 검정은 역설적으로 색 사운데서 가장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기도 한다. 현대 패션의 거장들이 단일 색상 가운데 가장 즐겨 사용하는 색이 다름 아닌 검정이라는 통계가 있다.
(p. 28)

 

  수묵화는 사물에 얽매이지 않으면서 동시에 그 사물에 대한 깊이 있는 사색을 가능케 한다. 수묵화는 회화 가운데 가장 철학적인 양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정신적인 것이다. 그것은 명상을 낳기 때문이다.
  수묵화의 화면은 전체적으로 회색조를 이룸으로써 항상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고 안정감을 준다. 그러므로 전통적으로 동양의 수묵화가 들은 대체로 장수를 누렸다.
(p. 29)

 

  수묵화는 점잖아서 보는 이를 자극하지 않는다. 대신 그것은 감상자가 평정한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하면서 그림 속의 세계로 스스로 들어올 것을 요구한다. 수묵화의 감상은 감각되는 형상에 수동적으로 지배되고 압도되는 과정이 아니다. 그것은 보는 이가 사전에 풍부한 시각 경험을 쌓고 또 다양한 인생의 체험을 겪은 후에, 그러한 역량을 바탕으로 은근하게 작품이 암시하는 격조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p. 30)

 

  우리 옛 그림에는 서양화에 없는 여백이란 것이 있다. 그것은 화가가 그림 바탕을 전혀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남겨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현상적으로는 ‘나머지 흰 부분’, 화면의 ‘빈 부분’이다. 그러나 여백은 정말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백에는 그려진 형상보다 더 심오한 것이 더 많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최상이 화가는 형상을 위하여 여백을 이용한다기보다 오히려 여백을 음미하기 위하여 형상을 그린다. 김홍도의 <주상관매도>가 바로 그 대표적인 예이다.
(p. 131)

 

  옛분들은 자연을 겉태로 보지 않고 그 마음으로 보았다. 특히 하늘은 형이상학적인 것이다. 하늘은 지극히 큰 것으로 온갖 생명과 도덕의 원천이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이 그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서양화법이 도입된 이래 푸른 하늘이 화폭에 그려지게 된 것은 회화 기법의 발전이 아니라 회화 정신의 쇠퇴였다. 진정한 하늘은 인간의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닌 까닭이다. 오히려 하늘의 가장 큰 특징은 ‘비어 있다는 점’에 있으니, 그저 화면에 하늘을 위한 여백을 남겨두는 행위야말로 진정 하늘을 잘 그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p. 133)

 

  오늘날 우리는 서양식 가로쓰기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읽는다. 이때 시선은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그리고 위에서 아래로 진행한다. 그림 보는 사람의 잠재적 시선은 먼저 좌상(左上)으로 갔다가 대각선을 따라 우하右下로 흘러내린다. 여기서 우선적으로 시선이 닿는 곳은 왼편 상단이다. 그 다음은 알파벳 X를 쓰듯이 왼쪽 획의 흐름을 따라서 보고 이어서 오른 획의 방향을 따라 보는 것이다.
  옛 그림은 이와 달리 반드시 위에서 아래로, 오른편에서 왼편으로 눈길을 옮겨 감상하도록 되어 있다. 즉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로 이어지는 대각선의 흐름을 따라 보는 것이다. 조상들은 한문이건 한글이건 그렇게 쓰고 읽었으며, 그러므로 옛 그림에서 중요한 자리는 오른쪽 상단이고, 왼쪽 하단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 우상右上에 제목을 적고 좌하左下에 작가의 관지(款識)를 넣는 것은 그 때문이다.
  작품을 ‘읽는’ 동서양의 방식 차이는 아주 작은 듯하나, 그것이 초래하는 결과는 이처럼 예상 밖으로 엄청나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옛 그림은 애초 가로쓰기식으로 보면 그림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있다. 옛 화가들에게는 세로로 읽고 쓰는 것이 너무나 당연했으므로, 보는 이도 당연히 우상右上에서 좌하左下 쪽으로 감상해나갈 것이라 생각하면서 구도를 잡고 세부를 조정하고 또 필획(筆劃)의 강약까지도 조절했기 때문이다.
(p. 174-17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이의 10년후는 다중지능이 결정한다
정효경 / 밀리언하우스

(2011.12.16.)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 알아야 한다. 마술이 좋다면 마술로써, 글을 쓰는 게 좋다면 글로써 성공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한다. 마술을 좋아한다고 해서 자녀가 남보다 ‘못한’ 길을 걷는 게 아니다. ‘다른’길을 걷는 것이다. 공부와 담을 쌓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더 멀리, 높게 하는 것이다. 자녀의 능력을 토대로 얼마든지 현재의 공부 상태를 발전시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마술을 잘 하는 자녀에게 ‘커서 뭐가 되려고 그러냐’고 꾸짖는 것 보다, ‘네가 과학이나 음악, 미술을 더 열심히 공부한다면 사람들을 더 놀라게 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 한 마디가 아이의 의지를 더욱 북돋울 수 있는 것이다.
(p. 22)

 

  교육이 자녀의 미래를 열어 주는 것인지 아니면 자녀의 인생을 완전히 책임져야 하는 일인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자녀의 미래를 열어 준다는 건 당장은 보기 안쓰러워도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하지만 자녀의 인생을 책임지는 일은 체력이 약해 쓰러지면 자신이 떠안을 테니 안쓰러운 꼴은 안보겠다는 것이다.
  인생은 100m 달리기가 아니라 마라톤 경주다. 부모는 자녀에게 정해진 양의 물과 음식을 나눠주어야 한다. 때로는 많은 양을 줄 때도 있겠지만 때로는 굶어야 하는 고통도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종착역까지 지치지 않고 달리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 30)

 

  아이가 좋아한다고 해서 무조건 그 영역을 적성이 있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가 좋아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는 분야가 무엇인지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적성이 있는 분야가 발견되면 그 분야를 더욱 계발함으로써 그 분야갸 강화될 수 있고, 취약한 분야를 더욱 열심히 계발함으로써 그 분야를 보완할 수 있다.
  가드너 박사는 다중지능 이론을 바탕으로 개개인의 소질 계발을 하되 전인적인 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것을 가장 이상적이라고 보았다. 우선 아이의 적성을 찾아서 계발함으로써 그것을 강점으로 삼고 취약한 부분들을 골고루 계발함으로써 약점을 보완하는 것이 좋다.
(p. 15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기혁명
박경철 / 리더스북

(2011.12.14.)

 

중요한 것은 험난하더라도 바른 길을 가야 한다는 점이다. 순간을 쉽게 모면하기 위해 타협하거나 우회하면 결국 빠져나올 수 없는 미로에 갇히게 된다. 한계를 회피하려는 유혹은 악마의 키스처럼 유혹적이다. 하지만 여기에 말려드는 순간 우리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 신세가 된다. 즉 욕망은 개선을 위한 의지인 동시에 자칫하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제단 위에 자신의 피를 뿌리는 어리석은 충동일 수도 있는 것이다.
(p. 18)

 

결과만 보고 과정을 무시하며 달리는 사회적 환경은 우회와 타협의 결과다. 국가는 잠재성장률을 넘는 GDP 성장률을 목표치로 내세운 후,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몇몇 대기업에 국가의 자원을 집중배분하고 토목사업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경제성장률을 달성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 과정에서 소외된 곳에 가야 할 자원, 사회의 안정과 행복을 위해 투자해야 할 자원들이 모두 한곳에 집중됨으로써 성장률이 높아졌음에도 정작 국민은 불행해졌다.
(p. 18)

 

  모든 생각은 문자의 정교한 조합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내 생각의 범위는 내가 알고 있는 문자의 범위이고, 생각은 그 문자의 조합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나의 생각을 넓히기 위해서는 많은 문자를 알고, 그것을 조합하는 방법을 익혀야만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문자로 된 것들을 익히고 다른 사람의 표현방식(사유)를 끊임없이 배워야 하는 이유다. 나아가서는 소위 ‘문•사•철’이라 불리는 인문한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요컨대 나의 사유를 두텁게 하고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결국 내 삶이 ‘새로운 자극 → 도전 → 생각 → 추적된 사유 → 태도화 → 새로운 자극’으로 이어지는 순환고리 속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p. 26)

 

  침묵은 나의 외부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각하는 나는 사실상  침묵 안에 존재하며 침목을 통해 나를 관찰하면서 ‘자아’ 혹은 ‘내면’이 성장한다.
  침묵은 단지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침묵하는 순간 외부와 나를 분리시키므로, 침묵한다는 것은 단순히 말을 하지 않는 것 이상이며 관성에 의한 모든 행위를 멈춘다는 의미다.
  침묵이 단순히 ‘말하지 않는 것’과 다르기 위한 전제조건은 그것이 반드시 사색과 함께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온전하게 내가 주체인 침묵만이 능동적 침묵이며, 나 스스로 선택한 완전한 침묵의 시간, 나를 위한 온전한 숙고의 시간만을  침묵이라고 할 수 있다.
(p. 35)

 

  우리가 사는 세계의 크기는 내가 인식하는 시선의 범위만큼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다. 내가 인식하는 만큼이 내 세상의 크기인 것이다. 그러니 청년이 넓은 세상을 여행하고 도전하는 것은 그만큼 자기 세상의 크기를 넓히는 것이도, 그만큼 자신에게 기회를 주는 일이기도 하다.
(p. 40)

 

  청년의 시기에 중요한 것은 술잔을 비우며 뜨거운 열정을 노래하는 것만이 아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 최소한의 침묵과 사색을 통해서 나 자신을 관찰하고 바로잡는 시간이 꼭 필요하다.
(p. 42)

 

  우리의 내면에는 모두 창의성의 씨앗이 자라고 있다. 다만 그 씨를 틔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독서, 공상을 통해 창의성이 자랄 토양을 기름지게 가꿔야 한다. 또 몸으로 실천하는 행동을 통해 싹이 돋아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
(p. 60)

 

  우연성과 필연성의 문제는 늘 고민의 주제가 된다. ‘인생은 단순히 우연의 산물인가, 아니면 필연적인 무엇인가가 존재하는가?’라는 의문은 현실 속에서도 자주 맞닥뜨리는 것이다. 무의식의 결심과 선택의 지점에서 늘 우리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는 원인이고, 이로 인해 우리는 선택의 연속인 삶을 늘 두려워하고 자신 없어 한다. 그리고 이런 두려움은 필연에 대한 갈망으로 연결된다. 그것은 삶의 모든 것을 운명이 장난이라고 믿어버리고 싶은 마음인데, 세상의 모든 종교와 사상이 여기서 출발하는 것이다.
(p. 61-62)

 

  아무리 표현의 시대라고 해도 말에는 질서가 있고 설득의 힘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 어떤 말이든 입 밖에 낼 때는 두 번 생각해야 한다. 누군가 한 마디를 하면 내 머리는 즉각적으로 반응을 하는데, 이는 말은 원래 주고받는 것으로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말이 먼저 나가면 반드시 실언을 하게 된다. 언어의 순발력은 속도가 아니라 효용성이므로, 생각이 언어로 바뀌어 입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한 번 걸러주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
(p. 96)

 

  말에서 중요한 첫 번째 덕목은 호흡인데, 호흡을 고르기 위해서는 대화 도중 말을 하고 싶을 때 딱 2초만 쉬면 된다. 그 사이 다른 사람들은 더 많은 실수를 할 것이고 나는 2초간 호흡을 고르면서 내 말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제거할 수 있다.
  두 번째는 설득력이다. 나는 과연 그를 설득하고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를 과시하고 있는가, 그것도 아니면 말로써 부족함을 달래고 있는가? 원래 말의 목적은 설득이다. 즉 말의 대상은 타인이다. 타인은 나만큼 나에게 관대하지 않고 늘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바라보기 때문에 타인이 보는 나의 인상은 순간의 실수로 뒤집힐 수 있다. 인간은 자기가 보고싶은 것만 보기 때문에 타인에게 나는 늘 경계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세 번째는 분노를 다루는 것이다. 나를 분노하게 하는 일에 대해 즉각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분노의 상대를 확실하게 적으로 돌리는 가장 빠른 방법이다. 누군가 나를 화나게 했을 때 한번 숨을 고르고 상황을 돌아본 후, 다음 국면에서 문제를 다시 생각하는 것은 비겁함이 아니라 용기다.
  네 번째는 진실성인데, 말의 앞뒤가 일관하고 논지가 바로 서 있으며 실수는 바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평가를 자제하는 것인데,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특히 사람에 대한 평가는 극희 주의해야 한다.
  여섯 번째는 같은 말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같은 논지를 중언부언하거나, 사족을 다는 일은 말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지름길이다.
(p. 97-100)

 

  우리가 잘못된 선택이 아닌 올바른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은 바로 현재의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스스로 늘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 즉 상황의 노예가 되지 않는것이다.
  우리의 삶은 선택의 연속이다. 선택의 딜레마를 조금이라도 완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선택을 강요받지 않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가는 것이다. 즉, 나를 둘러싼 환경이 나에게 선택을 강요하도록 놔두지 말고, 스스로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좋은 선택을 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p. 210)

 

  '시간이 없다'는 말은 위선이다. 시간은 늘 충분하다. 단지 우리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시간이 없는 것이다. 무언가 새로은 도전을 꿈꾼다면 잠을 희생하든 놀이를 포기하든 달콤하지만 의미없는 일들을 포기하고 새로운 시간을 만들어서 충분히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상황을 만들어가면서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선택을 했다면 산을 옳기는 우공의 태도로 그 일에 몰두하는 것이 진정한 도전이다.
(p. 214)

 

  독서를 통해 사람들이 각자 다르게 생각하는 언어와 말하는 언어를 배우고, 내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은 언어로 고정되어 있어, 언어는 맥락이 있어야만 뜻이 형성된다.
  언어, 즉 어휘가 부족하면 생각이 풍부할 수 없고 언어를 맥락화할 수 없다면 체계적인 생각을 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유'란 맥락화된 생각을 가리킨다. 그래서 독서는 사유를 배우는 제1의 수단이며 창의력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독서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만나는 난관은 텍스트를 대하는 자세다.
생각을 모두 말로 옮길 수 없고 말은 문자로 고스란히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독서를 할 때 단순히 문자를 읽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문자가 지시하는 저자의 진짜 생각을 해석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다.
(p. 286-7)

 

  SNS에서 오고가는 담론은 서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유통되고 소비되며, 한 가지 견해를 두고 모두가 옳다고 착각하는 '무오류성의 함정'에 빠지기 쉬다. 만약 정치인이라면 자신의 정책에 절대적 지지를 받고 있다고 착각할 것이고 언론사라면 자사의 논조가 대중의 중심을 대표한다고 오해하게 될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못마땅한 사람은 입을 다물고 동의하는 사람은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친다. 그래서 SNS상의 의견들은 비판에 민감하고 그래서 비판은 암암리에 위축된다.
(p. 338)

 

  단발적으로 버리는 것은 소용이 없다. 정말 버려야 하는 대상은 장기적 인내가 필요한 것들이어야 한다. 잠을 참아내거나 담배를 참아내거나 술을 참아내는 것처럼, 지속적으로 늘 그것과 투쟁해야 하는 것들을 버리기로 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긴 투쟁을 이겨나가면 그것이 곧 새로운 습관으로 이어지고, 의식은 명료해진다.
  의식이 본능을 통제하고 극복하면서 필요한 일을 행하는 인내로 이어졌다면, 이미 의식의 통제상태에 들어간 것이다. 이제 그것을 습관화함으로써 강고한 자아를 구축하고, 산만하고 저급한 무의식을 의식의 바다 밑 깊은 골짜기로 밀어버리면 된다. 그로써 우리는 단단한 사람이 될 수 있다. 그 다음 우리가 단단한 바탕을 딛고 자신의 길을 심장이 터질 만큼 힘차게 달려나갈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이 갖지 못한 특별한 아우라를 획득할 수 있다.
(p. 39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밀밭의 파수꾼

J. D. 샐린저 / 민음사

(2011.11.25.)
 
어른들은 자신들의 말이 늘 맞다고 생각하니까. 난 그런 일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어른들이 내 나이에 맞는 행동을 하라고 말하는 것은 지겹기까지 하다.
(p. 20)
 
지나치게 무언가를 잘한다면, 자신이 조심하지 않는한, 다른 사람에게 괴시하게 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에게 더 이상은 잘한다고 할 수가 없는 것이다.
(p. 170)

돈이란 언제나 끝에 가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들어버린다.
(p. 154)
 
여자들의 문제점은 남자가 마음에 드면, 정말 나쁜놈을 놓고도 열등감이 있다고 이야기하고, 그 반대로 나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정말 훌륭할 뿐만 아니라, 열등감을 진짜로 가지고 있어도 거만하다고 말하는 것읻. 아주 똑똑한 여자들조차도 그렇다.
(p. 182)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 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보 같겠지만 말이야.
(p. 230)
 
미성숙한 인간의 특징이 어떤 이유를 위해 고귀하게 죽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반면 성숙한 인간의 특징은 동일한 상황에서 묵묵히 살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p. 248)
 
인간들의 행위에 대해 놀라고, 당황하고, 좌절한 인간이 네가 첫 번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거야. 그런 점에서 보면 넌 혼자가 아닌 거지. 그걸 깨닫게 되면 넌 흥분하게 될 거고, 자극받게 될 거야. 현재 네가 겪고 있는 것처럼, 윤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고민했던 사람은 수없이 많아. 다행이 몇몇 사람들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지. 원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거기서 배울 수 있을 거야. 나중에는 네가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줄 수 있게 될지도 몰라. 그러면 네가 그 사람들에게 배웠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너한테서 뭔가를 배우게 되는 거야. 이건 정말 아름다운 상호간에 원조인 셈이지. 이건 교육이 아니야. 역사이며, 시인 셈이지
(p. 250)
 
학교교육이란 건 많은 도움을 주지. 학교 교육이란 건, 어느 정도까지 받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게 되지. 자기의 사고에 맞는 것은 어떤 것인지, 맞지 않는 것은 무엇인지를 알 수 있게 돼. 나중에는 자기 사고의 일정한 크기에 어떤 종류의 사상을 이용해야 할 것인지를 알게 될 거애. 게다가 자기에게 맞지 않는 사상들을 하나하나 시험해 보는 데 드는 시간도 절약해 주고 말이지. 결국 학교 교육이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크기를 알게 해주고, 거기에 맞게 이용하게 해주는 거야.
(p. 251)
 
 
주인공 홀튼 콜필드가 크리스마스 휴가 전에
펜시 고등학교에서 퇴학을 당한 후 집에 돌아 오기 전에
몇일간에 만난 사람들에 대한 사소한 일상에 대한
일들을 방황하고 있는 십대 소년의 시각으로 그만의 방식으로 세상에 대한 생각들을 이야기한다.
 
홀든 콜필드라는 놈은 지나친 자기 편향적이고,
사회 부적응자 일 뿐일지도 모르지만, 반면에 대다수의 대중이라고 하는
우리들 모두가 반쯤은 미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홀든 콜필드가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 또한 부정 할 수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