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에 읽은 책들)

 

 

(2016-01)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 서병훈 / 책세상 / 254쪽


(2016-02) 생각한다는 것 / 고병권 / 너머학교 / 136쪽


(2016-03)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 강신준 / 사계절 / 240쪽


(2016-04) 오늘 자본을 읽다 / 강신준 / 길 / 378쪽


(2016-05) 탐구한다는 것 / 남창훈 / 너머학교 / 132쪽

 


(2016-06) 거꾸로 읽는 세계사 / 유시민 / 푸른나무 / 400쪽


(2016-07) 마담 보바리 / 귀스타브 플로베르 / 김화영 / 민음사 / 557쪽


(2016-08) 기록한다는 것 / 오항녕 / 너머학교 / 132쪽


(2016-09) 프토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 박성수 / 문예출판사 / 340쪽


(2016-10)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 다락원 / 104쪽


(2016-11)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강성화 / 서울학교 철학사상연구소 / 129쪽


(2016-12)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 / 김상희 / 풀빛 / 252쪽


(2016-13) 막스 베버 소명으로서의 정치 / 막스 베버 / 최장집, 박상훈 / 후마니타스 / 236쪽


(2016-14) 자유론 / 존 스튜어트 밀 / 박홍규 / 문예출판사 / 320쪽


(2016-15)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1 / 조지 엘리엇 / 이봉지, 한애경 / 민음사 / 448쪽


(2016-16) 읽는다는 것 / 권용선 / 너머학교 / 132쪽


(2016-17) 공산당 선언 /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 이진우 / 책세상 / 172쪽


(2016-18) 공산당 선언 / 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 강유원 / 이론과실천 / 132쪽


(2016-19)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2 / 조지 엘리엇 / 이봉지, 한애경 / 민음사 / 445쪽


(2016-20) 논술과 철학 강의 2 / 김용옥 / 통나무 / 299쪽


(2016-21) 테스 1 / 토마스 하디 / 정종화 / 민음사 / 412쪽


(2016-22) 테스 2 / 토마스 하디 / 정종화 / 민음사 / 348쪽


(2016-23) 파이어스톤 도서관에서 길을 잃다 / 류대영 / 생각비행 / 344쪽

 


(2016-24) (만화)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윤원근(글) / 주니어김영사 / 203쪽

 


(2016-25) 공부중독 / 하지현, 엄기호 / 위고 / 196쪽


(2016-26) 주홍글자 / 너대니얼 호손 / 김욱동 / 민음사 / 432쪽


(2016-27) 은퇴자의 공부법 / 윤영선,윤석윤,최병일 / 어른의 시간 / 252쪽


(2016-28)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 / 라인홀드 니버 / 이한우 / 문예출판사 / 294쪽


(2016-29) 마션 / 앤디 위어 / 박아람 / 알에이치코리아 / 600쪽


(2016-30) 댓글부대 / 장경명 / 은행나무 / 248쪽


(2016-31) 열광금지 에바로드 / 장강명 / 연합뉴스 / 306쪽


(2016-32) 사피엔스 / 유발 하라리 / 조현욱 / 김영사 / 636쪽


(2016-33) 철학교수님이 알려주는 공부법 / 2004년 / 나이절 워버턴 / 박수철 / 지와사랑 / 144쪽


(2016-34) (만화) 데카르트 방법서설 / 박철호(지은이) / 이대종(그림) / 주니어김영사 / 237쪽


(2016-35) 방법서설 / 르네 데카르트 / 이현복 / 문예출판사 / 342쪽


(2016-36) 데카르트 / 존 코팅엄 / 정대훈 / 궁리 / 106쪽


(2016-37) 데카르트의 <방법서설> / 2003년 / 윤선구 / 서울대학교 철학사상 연구소 / 90쪽

 

(2016-38)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 / 장강명 / 문학동네 / 188쪽


(2016-39) 정희진처럼 읽기 / 정희진 / 교양인 / 312쪽 / 2014


(2016-40) 데카르트 / 콤 소렐 / 시공사 / 166쪽 / 1999


(2016-41) 성찰 / 르네 데카르트 / 양진호 / 책세상 / 208쪽 / 2011년


(2016-42) 만약 고교야구 여자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 이와사키 나쓰미 / 권일영  동아일보사 / 264쪽


(2016-43) 퓨처 스마트 / 제임스 캔턴 / 박수성,이미숙,장진영 / 비지니스북스 / 576쪽


(2016-44) 방법서설 성찰 데까르뜨 연구 / 르네 데카르트 / 최명관 / 서광사 / 270쪽


(2016-45) 고전, 어떻게 읽을까? / 김경집 / (주)학교도서관저널 / 380쪽


(2016-46) 거짓말하는 어른 / 김지은 / 문학동네 / 242쪽


(2016-47) 아이들은 이야기밥을 먹는다 / 이재복 / 문학동네 / 220쪽


(2016-48)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 헤르만 헤세 / 임홍배 / 민음사 / 494쪽


(2016-49) 언플래트닝 생각의 형태 / 닉 수재니스 / 배충효 / 책새성 / 208쪽


(2016-50) 소피의 세계 1 / 요슈타인 가아더 /장영은 / 현암사 / 238쪽

 

 


(2016-51) 동화의 윤리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 / 유영진 / 문학동네 / 228쪽


(2016-52) 에티카 /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 조현진 / 책세상 / 168쪽


(2016-53) 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 이수영 / 오월의 봄 / 3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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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자유와 긍정의 철학
이수영 / 오월의 봄 /
(2016. 12. 18.)



  내게 스피노자의 철학은 온통 발명으로 보였다. 서양 철학에 과문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신'이 그렇고, '속성'이 그러하며, '감정'이 그러하고, '평행론'이 그러했다. 스피노자의 '신체'는 또한 얼마나 위대한 개념이며 '공통개념'은 또한 얼마나 위대한 개념이었던가. <에티카>는 개념의 발명으로 넘쳐나는 텍스트였다. 스피노자는 기존의 개념에 새로운 용법을 설정하는 철학적 발명에서 획기적이었다. 스피노자가 경험했던 증오와 저주, 죄의식과 전쟁들은 이렇게 발명된 개념들과 더불어 완전히 소멸되어버리는 것 같았다. 철학자의 삶이란 무엇이고, 철학이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피노자의 <에티카>처럼 분명하게 보여주는 책은 처음이었다. 수학적이고 기하학적인 증명의 방식이라는 서술 체계상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읽어나갔을 때 스피노자의 체계는 삶에 대한 놀랄 만한 아름다움과 긍정으로 가득한 개념들의 발명이었다.스피노자의 개념적 발명과 더불어 나는 삶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되었다.
(P.9)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신체와 무관한 정신, 혹은 신체에 대해 지배적인 정신, 신체보다 우월한 정신이라는 통념을 비판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정신과 신체를 분리해서 정신에 자유의 의지를 부여하는 이 통념이 오히려 정신과 신체의 관계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자, 자유의지적인 신이라는 개념을 통해 수많은 종교적 미신들을 형성한 장본이기 때문이다. 의지도 정신의 한 양태인 한에서 양태들의 인과법칙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 신체와 정신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없다는 것, 신체의 질서와 정신의 질서가 서로 같다는 것, 신체의 능력을 파악하기 위한 노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 이것이 스피노자가 주장하고 확립하려는 신체론의 골자이다.
(P.186)



  이해한다는 것은 어떤 것이 필연적으로 존재하게 된 원인에 의한 파악이다. 원인에 의해 어떤 결과를 파악한다는 것은 그 결과를 원인을 통해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적합한 관념이고 참된 인식이다. 들뢰즈에 따를 때 스피노자는 "인간들 자신은 이해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들에게 작용하고 있는 합리적이고 필연적인 원인들에 그 결과를 다시 연결시키면서 그것의 생산과정을 추적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를 철학적 작업과  현실 분석에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결과를, 그것을 낳은 원인에 연결시키기, 이 원인에 대한 인식을 통해 결과에 대한 인식을 분명히 하기, 이것이 스피노자의 인식론이다.
(P.232)



  기쁨, 슬픔, 욕망은 인간사 모든 감정의 기본 레고 블럭이다. 사랑이든 증오든, 공포든 희망이든, 질투든 정욕이든 모든 감정은 이 세 감정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다시 말해 인간의 모든 감정은 인간만의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라 필연적으로 형성되는 자연 법칙의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증오나 자만, 질투나 탐욕이야말로 인간의 타락한 본성이라고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회개해야만 사라지는 감정, 징벌의 대상이 되어야 할 감정, 더 이상 존재하지도 말아야 할 인간의 실수, 신적인 계율의 위반, 신의 세계 속에서는 존재할 수도 없는 악마적인 인간의 속성, 스피노자는 인간 감정에 대한 이런 모든 부정의 언사들을 고발한다.
(P.245)




  빛이 빛과 어둠을 구분하는 원칙이듯이 참된 인식만이 참과 거짓의 판별 기준이 된다. 원인에 의한 인식만이 참된 인식이기 때문에 우리 인간의 삶이 도덕적이고 부적합한 환상적 관념들에 의해 비틀릴 때 그것을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은 도덕이 아니라 바로 이성적 인식과 능동의 삶인 것이다. 좋은과 나쁨의 윤리학, 그것은 선악의 도덕과 그 도덕으로 인해 허무주의적인 저주의 대상이 된 삶을 교정하는 최고의 원리인 것이다.

  인간이 일정 정도 비틀렸을 때, 우리는 이 비틀림의 결과를 기하학적 방식으로 그 원인들에 다시 연결시킴으로써 그것을 교정하게 될 것이다. 이 광학적 기하학은 <에티카> 전체를 관통한다.
(P.294)




  스피노자는 폭력과 공포에만 의존하는 통치를 지속 가능하지 않은 통치라고 비판한다. 비록 국가의 기초에 형벌이라는 폭력이 내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국가의 정치가 주권자의 폭력에 지배될 때 정치적 안정성은 달성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형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이익과는 하등 상관없는 일들을 억지로 하기는 하겠지만 그것도 다만 일시적일 수 있을 뿐이다. 비자발적인 굴종 속에서 대중들이 기원하는 것은 오직 통치자의 불행과 통치자에게 악이 될 일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권력의 역전이 가능하게 보일 때는, 다시 말해 통치자의 통치를 전복할 수 있을 때는 그동안 기원해왔던 그 "악"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것이 대중들의 정치적 본성이기 때문이다.
(P.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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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카
베네딕투스 데 스피노자 / 조현진 / 책세상 / 168쪽
(2016. 12. 18.)

 




  스피노자의 인간관은 정신과 신체의 관계에 대한 발상의 전환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조건에 대해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스피노자가 지적하듯이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이는 일차적으로 인간이 항상 외부 대상과 맞닥뜨림으로써 직간접적으로 그것의 영향을 받는 존재임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런 조건이 대부분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는 자기 보존 욕구를 위축시키기 때문에 인간을 분노나 공포와 같은 수동적인 정서의 노예로 만든다는 점이다. 이처럼 우선 인간이 외부 원인의 영향에서 항시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존재로 파악되기 때문에 정념에서 벗어나는 것이 윤리적 과제로 제시되며, 이런 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정념과 그 원인이 중요한 철학적 주제로 부각된다.
(P.9)




  '스피노자는 결과가 있으며 원인이 있으며, 원인이 있으며 결과가 반드시 따라나온다는 것을 자명한 공리로 간주하는 인과적 결정론자이며, 따라서 흔히 자유 의지라고 불리는 선택 의지는 성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선택 의지라는 것은 '내가 선택지 중에서 다른 것을 선택할 수도 있었음'을 의미하는데, 원인이 주어지면 결과가 반드시 따라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런 선택의 여지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자유럽게 선택했다는 생각은 오히려 선행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내가 원하던 것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나중에 그렇게 판단한것에 불과하다는 게 스피노자의 선택 의지에 대한 비판의 요지다.
(P.70)




  스피노자에게 "실재성은 완전성과 동일한 것"이며 따라서 어떤 부류의 개체가 존재하고 자기 보존하는 힘을 갖고 있는 한 그것은 완전하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자체로 놓고 볼 때 일생 동안 성장할 수 있는 능력이나 광합성 작용을 할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은 동물에게는 없는 식물만의 독특한 능력일 뿐 아니라 식물의 조직화 수준에 걸맞게 생명을 유지하는 데 크게 공헌한다. 따라서 단순히 이동 능력이 부재 한다는 사실 때문에 식물이 동물보다 불완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P.97)




  자기 보존 욕구를 선하다고 판단하고 그렇지 못한 것을 악하다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는 또한 '인간 본성의 전형'이라는 개념을 통해 선과 악이 개념과 완전성과 불완전성의 개념을 복권시킨다. 여기서 인간 본성의 전형이란 인간이 스스로에게 부과한 어떤 인간의 이상적인 도덕의 경지를 가리키며, 그런 점에서 그것에서 가까울수록 더 완전하고 선한 인간으로 여겨지는 반면 그것에서 멀어질수록 덜 완전하고 악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P.100)




  스피노자는 데카르트의 주장 밑에 깔려 있는 두 전제, 즉 정신과 신체의 인과적 상호 작용설과 의지의 절대성을 문제 삼는다. 먼저 스피노자는 데카르트가 말하는 정신과 신체의 연합이라는 관념이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인간 행위에 대해서도 설명해주는 바가 없는 '신비한' 가설에 불과하며, 그래서 데카르트가 결국 신체와 정신의 상호 작용을 설명하기 위해 신을 끌어들이는 인위적 해결책에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스피노자가 보기에 이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정신과 신체가 서로 인과적 상호 작용을 하는 것이 아님에도 데카르트는 마치 그것을 자명한 것처럼 여긴다는 것이다.
(P.109)



  스피노자의 철학은 또한 종교에 대한 비판적 접근을 통해 맹목적 신앙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 스피노자는 신의 본성에 대한 오해가 인간 본성의 결함을 비방하고 슬픔을 찬양하며 기쁨을 증오하는 미신적 태도로 연결된다고 본다. 이런 스피노자의 분석은 더 이상 목적론적 관점에서 신을 보지 말고 인간의 힘을 위축시키는 정서들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를 긍정하고 기쁨을 추구하라는 '기쁨의 윤리학'을 대안으로 내놓게 한다. 스피노자의 철학은 분명 종교와 관련된 많은 시사점뿐만 아니라 종교에 대한 건전한 비판의 근거 역시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더 나아가 스피노자의 종교 비판은 이성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우리에게 줄 수 있다.
(P.124)



  스피노자의 인간관 역시 간과할 수 없는 현재성을 지니고 있다. 철학사에서 이른바 합리주의자로 분류되는 스피노자는 역설적이게도 '이성'이 아니라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자기 보존의 힘이 신체와 정신 모두에 관계될 때 이를 스피노자가 '욕망'이라고 부른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런 주장은 다른 합리주의자와 달리 인간을 정신과 신체로 이루어진 하나의 통일적 존재로 보았음을 말해준다.
(P.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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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의 윤리 (사라진 아이들을 찾아서)
유영진 / 문학동네 / 228쪽
(2016. 12. 12.)




  나는 무엇인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나를 둘러싼 것들은 무엇이며 이들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평생 따라다닐 이 질문은 어린이 시기에 시작된다. 많은 어른들은 어린이 시기에 이런 질문은 공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각하며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을 보류할 것을 아이들에게 주문한다. 하지만 어린이 시기는 삶의 토대가 될 자기와 타자, 자기와 세계 사이에 적절한 관계를 맺는 시기이기에 이 질문과 응답은 매우 중요하다.
(P.13)




  아이는 부모의 증상이다. 아이의 특정한 행동, 심리적 질환은 부모에게서 기인한다. 부모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을 아이의 무의식은 알아채고 그에 맞게 행동한다. 어떤 갈등과 싸움이 있더라도 타자의 욕망이 아닌 자신의 욕망을 끝까지 추구하는 것은 그래서 윤리적 결단을 요구한다. 의사 결정권이 없는 아이에게 이런 윤리적 결단을 구호로서 요구하는 것은 쉽지만 실제 삶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P.20)




  유소년기에 읽은 특정한 문학 텍스트가 어른이 되어서도 계속 기억에 떠오르는 것은 단순히 우연이거나 감동이나 재미 때문만은 아닌 것이다. 경험을 통해 생긴 심리적 외상이 문학 텍스트를 만나 상징적 파생물로 변형되기도 하지만, 텍스트가 가지고 있는 이해 너머에 있는 무엇이 외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런 외상은 자기 삶의 경험과 뒤섞이기도 하고, 고유한 텍스트의 질문 형태로 남아 해석을 기다리면서 계속 보존된다.
(P.51)


  나를 화나게 한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위치에 있다면, 그리고 그로 인해 벌어질 싸움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 화를 그에게 곧장 돌려주면 된다. 문제는 싸움을 감당할 수 없거나, 화나게 한 사람이 자신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어서 곧장 화를 돌려줄 수 없는 경우다. 이 경우 사람들은 화를 풀 다른 대상을 찾는다. 그 대상은 누구나 예상하듯 자기보다 약한자이다. 자기 때문에 생긴 화든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생긴 화든 자기가 다스리지 못한 화는 이렇게 먹이사슬을 따라 아래로 아래로 이동한다.
  사람들의 관계에서 먹이사슬의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는 존재는 바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이 화의 근원이 어디인지 알지 못한 채 이렇게 화풀이의 종착역이 되고 한다. 이런 사회적 위치로 인해 화와 분노를 처리할 방법이 마땅히 없는 아이들은 그들 사이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를 찾는다. 그렇게 왕따와 학교 폭력이 생겨나고 햄스터를 믹서에 가는 동영상처럼 끔찍한 동물 학대가 벌어진다.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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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세계 1
요슈타인 가아더 /장영은 / 현암사 / 238쪽
(2016. 12. 11.)




  철학이란 기원전 600년경 생겨난, 아주 새로운 사고 방식이다. 그 전에는 여러 종교가 인간의 모든 문제에 답해 주었지. 그러한 종교적 설명이 대대로 이어져 신화에 이르게 되었다.
  신화란, 삶이 왜 지금처럼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는 신들의 이야기이다. 수천 년에 걸쳐 전세계적으로 철학 문제에 관한 신화적 해석이 번창했다. 그러나 그리스 철학자들은 인간이 그저 신화적 해석에만 의지할 수 없음을 증명해 보이고자 노력했다.
(P.38)



  우리의 관심사는 초기 철학자들이 어떤 해답을 발견했느냐가 아니라 어떤 문제를 제기했고, 어떤 해답 방식을 추구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즉 그들이 무엇을 정확히 생각해 냈는가 하는 것보다는 어떻게 생각했는가가 우리에겐 더욱 중요하다.
  우리는 초기 철학자들이 눈에 보이는 자연의 변화를 꼬집어 문제를 제기하는 데에 힘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영원한 자연 법칙을 발견하려 애썼다. 전승된 신화에 의존하지 않은 채,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자 한 것이지. 무엇보다도 자연 자체를 관찰함으로써 자연의 진행 과정을 깨닫고자 노력한 거다.
  철학은 이러한 방법으로 종교에서 해방되었다. 따라서 자연 철학자들이 학문적 사고 방식을 향한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생각은 이후 모든 자연 과학의 원동력이 되었다.
(P.52)




  소피에게 철학이 무척 흥미로웠다. 소피가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꼭 되새겨 보지 않고, 자기의 이성만으로도 다른 사유 방식에 다라 그 생각들을 뒤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소피는 근본적으로 철학은 배워서 익힐 수 없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아마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을 배울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P.66)




  그리스인 들은 아폴론의 지혜에 의지했다. 아폴론 신은 과거와 미래에 관한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지.
  많은 정복자들은 델포이의 신탁을 받기 전에 절대 전쟁터로 나가지 않았으며, 감히 다른 중대한 결단을 내리려 들지도 않았다. 따라서 아폴론 신의 사제들은 특히 백성과 국가에 대해 해박한 식견으로 조언해 주는 외교관이나 고문 역을 해 냈다. 델포이 신전 입구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이 새겨져 있었다.
  '너 자신을 알라!'
  이 말은 인간은 결코 인간 이상일 수 없다는 말이다.그리고 누구도 자신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말한다.
(P.83)
 



  소크라테스가 보여 준 사유의 본래 핵심은, 그가 누구를 가르치려 하기보다 오히려 대화 상대자에게서 배우려는 인상을 준 것이다. 그는 절대로 학교 선생처럼 가르치지 않고 대화로 이끌어 나갔다.
  그러나 그가 단순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으면 그리 유명한 철학자가 될 수 없었을 테지! 또 사형 선거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소크라테스는 맨 먼저 문제만을 제기하고선, 자신은 마치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한 태도를 즐겨 취했다. 그러고는 대화를 진행하는 동안, 종종 상대방이 자기 생각의 허점을 깨닫도록 유도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그의 대화 상대를 궁지로 몰고가, 결국 무엇이 옳고 그른지 깨닫도록 했찌.
(P.100)




  철학자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아주 적은 것만을 알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알고 있다. 바로 그 때문에, 그는 거듭 참된 인식에 도달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바로 그 같은 드문 사람이다. 소크라테스에겐, 자신이 인생과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아주 분명했다. 그리고 이제 이것이 결정적인 요점인데, 소크라테스 자신이 너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철학자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이 많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이다. 또 그러한 사실이 그 자신을 괴롭히지. 그렇게 보면 철학자는 거짓된 지식을 뽐내는 이들보다는 훨씬 현명하다. 내가 "가장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지. 소크라테스는 스스로 "내가 알고 있는 단 한 가지는,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살이다."하고 말했다.
(P.104)




  "무엇이 선인지 아는 사람은 선을 행할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올바른 인식은 올바른 행동을 유도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옳은 일을 행하는 사람만이 올바른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그릇된 행동을 하는 것은 우리가 더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식의 폭을 넓히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또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아주 분명하고 보편 타당한 개념 정의를 내리는 것 역시 무척 중요했다. 소크라테스는 소피스트와는 반대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별하는 능력은 사회가 아니라 인간 이성에 있다고 믿었다.
(P.106)




  플라톤은 '감각 세계'의 뒤편에 참된 현실이 있음을 믿었다. 그는 이 현실성을 이데아의 세계라고 불렀다. 여기서 우리는 영원 불변의 이상형을, 곧 각양 각색의 자연 현상들 배후에 있는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이같이 특이한 플라톤의 생각을 오리는 이데아론 이라고 한다.
(P.129)

 

  아리스토텔레스는 말의 '형상'을 모든 말이 공유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 바로 이 점에서 후추 과자를 만드는 틀의 비유는 더 이상 맞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후추 과자를 만드는 틀은 개별 후추 과자로부터 독립하여 스스로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사이 소위 자연의 서랍장 속에서 실재한다는 것을 아리스토텔레스는 믿지 않았다. 아리스토텔레스 생각엔 이러한 '형상'은 사물의 고유한 특성으로서 사물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었다. 또 그는 닭의 ㅓ'이데아'가 닭보다 먼저라는 플라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다. 닭의 '형상'이란 각각의 닭 속에 내재하는 닭의 고유한 특징에 뿌리박고 있다는 그는 생각했지. 예를 들면 닭이 달걀을 낳는다는 그런 특성 말이다. 따라서 닭의 '형상'과 닭은 영혼과 육체의 관계처럼 나눌 수 없는 것이지.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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