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은행업무를 다 마치고 회사에 돌아오니 아뿔사! 핸드폰이 손에 없다. 자아, 생각해 보자. 어디에서 두고 왔는지 유력한 장소는 은행들!
우선은 핸드폰에 전화를 건다. 신호가 맹렬히 걸리곤 응답기로 넘어간다. 컬러링이 이쁘게 울어댄다.
세번, 네번. 안받는다. 꺼진것은 아니니 어딘가에 얌전히 있으면서 몸체를 떨어대고 있을 것이다.
다시건다. 잘 울리다가 끊기고 바로 메시지로 넘어간다.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리는 것이 느껴진다. 별로 좋지 않다. 다시 걸기를 여러차례. 울고 싶은 찰나!
...누군가 전화를 받는다.

...: 여긴 두산타워 지하 제일은행입니다. 경비아저씨가 가지고 있으니 가지러 오세요.
나: 울먹울먹. 감사합니다.

이게 오늘 내 핸드폰 분실사고의 실체다! 순간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아직 산지 몇개월밖에 안됐고 할부 끝나려면 당당 멀었다. 40만원이 넘어가는 고가의 핸드폰이.. 또 분실되어 나를 떠나려는 줄 알고 울뻔한 사고다.
지금 찾으러 가야한다. 4시 반이전에 도착해야만 한다 하지만 대충 30분은 걸릴 거리이다. -_- 힘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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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6-08 1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행이네요... 요즘은 잃어버려도 찾아주려 하지도 않는다는데...

작은위로 2004-06-09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에. 그렇죠?
사실 그래서 속으로 얼마나 떨었는데요. 제발 받아라. 받아라...하면서요^^
다행이지 뭐예요 ^^
 


 

 

 

 

 

 

 

 

 

 

 

 

 아는 사람이 보내준 '얼굴'이란 제목의 조각인데... 일명 이쁜이 삼남매란다.
 이건 우리집 삼남매로 보면....쿨럭...쿨럭

 강원도의 어디 공원이라는데... 어딘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가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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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사람이고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렇지만 술 마시고 남자때문에 속상해서 우는 일은 이해가 안간다. 어쩌면 나중에 나중에 내가 좀 더 커서(!) 남자때문에 속상해서 울일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일은 알수가 없는 것이고 나또한 속상해서 울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그닥 뭐라고 혼낸다거나 뒷담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정말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중의 하나이다. 남자가 뭐길래?

내 인생에서 남자로 인해 울었던 것은 짖궂었던 초등학교 시절 남자아이들의 장난때문에 외엔 전.혀 없었다. 하긴, 남자도 없었으니 당연지사이려나. 하지만 말이다. 꼭 술마시고 울어야 할까? 내 어깨에 기대서 언니, 미안해 하면서 울던 동생에겐 미안하지만 정말이지 이해가 안간다. 사실 제대로 사랑한번 안해본 내가 어찌 그 절박할 심정을 이해할수 있겠는가! 인생사의 인간관계란 정말이지 복잡하다. 의외로 눈치가 없는 나는 그 복잡한 상황의 일말을 잠깐 엿본 기분인데. 나는 남자로 보지 않았던 사람때문에 우는 학교 동생을 보니 새삼스럽기도 하고. 아무것도 모른채 이제 갓 연인이 된 언니와 저쪽 구석에서 사랑의 밀담을 나누는 오빠를 보니 참 이상한 기분이 들긴 하더라. 나에게는 남자로 안느껴진다고 해서(진짜 그렇게 느껴지지 않아서 오히려 여자친구처럼 생각되기도 했었다.) 남자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남자로서 바라보지 않아서 인지 오빠의 매력을 잘 모르겠다. 하긴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 뭐든 안멋있어 보이려마는...

내 인생에서 꼬인 남정네는 딱 둘이다. 한사람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헌팅당했었고, 한사람은 채팅은 아니고 메일주고 받기 하다가 알게된 사람이다. 사귄것은 아닌데. 뭐랄까? 조금 이상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전혀없이 만나서 웃고 떠들고 한다는게 조금 웃기게 생각되기도 했었다. 둘다 고등학교때 알던 사람들이고 둘다 두세번밖에 안만났고 둘다 내가 먼저 연락을 끊었다. 사실 고등학교때 헌팅 당한것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난 아무리 생각해도 그사람이 왜 나에게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던지 이해가 가질 않는다. 어쩌면 그 나이 특유의 어떤 호기심류의 감정이었으려나? 어쨌든, 그 이후론 남자라곤 친구이외엔 엮이질 않아서 인지 아님, 내 성격탓인지 간에 그것은 이해가 안간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이 생겨서 가슴이 아프다. 정도는 이해한다. 그렇게 해서 울수도 있다. 아무리 나라도 울고는 싶을 것이다. 흔히, 로맨스 소설에서 말하듯이 가슴이 무너지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도 술마시고 하염없이 우는 것은 그닥 좋게 보이질 않는다. 그냥 소리지르고 하염없이 울어버리고 털어버리는게 낫지 않을까? 술마시고 울면 보기도 좋지 않을 뿐더러 안쓰럽다기 보다 나중엔 조금 무감감해 진다. 보는 사람이. 나야 차라리 울고 털어버려라 하면서 내비 두었지만 학교 언니는 그만 울라고. 뭐, 그런사람때문에 우냐고. 혼냈었다. 간신히 진정했나 싶다가도 또 울고 울고 또 울고. 눈물이 끊기지도 않는지 울어댔지만 조금 서글프다. 사랑이 이렇게 힘든거라면 난 사랑 하고 싶지 않을 것 같다. 하긴 이정도는 힘든 축에도 안드려나? 아니다. 사랑에 힘들고 안들고가 어디있겠는가. 모조리 힘들고 상처일테지...

나도 지금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헷갈리지만 조금 그렇다. 난 울고 싶지 않다. 울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남앞에서 그렇게 사랑때문에 울어대고 싶진않다.(그게 사랑이 아니더라도.) 사실 그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친한 사람들도 아니고 그저 대학에서 만나서 즐기는 사이일 뿐일텐데. 적어도 그렇게 울려면 아주 아주 친한 친구들앞에서만 가능할것같다. (물론, 아무리 친해도 그렇게 울어대고 싶진 않다. 그래도 운다면 그 친구들 앞에서만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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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경을 쓰게 된 것은 초등학교(그때당시의 국민학교) 5학년때였다. 그당시 우리집에는 엄마 대신 할머니가 계셨다. 시골의 할머니가 풍맞아 반신을 사용하지 못하시자 엄마는 할머니를 집에 모셔두고 자신이 내려가 직접 농사를 지으셨다. 그렇게 해서 시작된 할머니와의 생활은 그다지 순탄하지 못했다. 할머니들 특유의 잔소리와 짠순이(?)이 기질이 어린 우리 삼남매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나마 나는 어린 시절부터도 무언갈 참는데엔 익숙해져있었기에 견딜수 있었지만 장남이라는 이유로 이쁨받고 귀하게까지는 아니더라고 나름대로 잘 커온 둘째놈이 반항을 하기 시작했고 집을 나갔다가 들어오곤 했었다. 그럴때면 엄마는 속상해서 항상 우셨지만 시골에 계시는 엄마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별로 없었다.

어쨌든, 그건 애써 넘기고 내가 안경을 쓰게된 경위부터 이야기 하자면 눈병이 시작이었다. 당시 눈병이 유행하고 있었는데 내가 덜커덕 눈병에 걸리고야 말았던 것이다. 양쪽다. 그런데 문제는 할머니였다. 절대 병원엘 보내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며칠을 안약으로 버티다가 결국엔 사단이 일어났었다. 학교 수업중에 한쪽 눈에서 피가 난 것이다. 덕분에 선생님께 혼났었다. 조금 띠거운 듯한 말투로 눈병걸려놓고 병원도 안가니 그렇다고 말했었다.(왜 아직도 이걸 기억하느냐하면 서운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내 기억의 스승님들은 항상 어딘가 나를 속상하게 하신분들이 더 많았다.) 아무튼 덜컥 겁이난 나는 집에 돌아오자 마자 엄마에게 전화했다. 눈에서 피가 났다고. 엄마는 난리가 나서 할머니께 애 빨리 병원에 보내라고 했었나 보다. 그날 혹은 그 다음날이던가. 안과엘 갔다. 심할대로 심해진 눈병에 양쪽다 거즈를 대지 못하고 심한 한쪽(피가난 그눈)에만 거즈를 대고 주사를 맞고 집에 갔다가 다시 다음날 병원에 가서 거즈를 뜯는데... 피가 묻어있었다. (상당히 두껍게 대놔서 잘 몰랐었다.) 그래도 피났다고 한번 더 울거나 하진 않고 넘어갔었는데 문제는 눈병이 다 낳고나서야 발생하였다.

칠판이 잘 안보이는 것이다. 이에 엄마는 나를 데리고 안경점에 갔는데 양쪽 시력이 현저히 낮아진 것이다. 그전까지만 해도 1.5 1.5의 시력을 자랑하던 내 눈이 순식간에 안경이 필요해 질 정도까지가 되버린 것이다. 더군다나 양쪽 시력의 차이가 조금 심했다. 피가 났었던 눈의 시력이 더 많이 낮았던 것이다. 어쨌든 그일이후 엄마는 할머니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금쪽 같은 아들내미가 가출을 밥먹듯이 하는 불량학생이 된 것도, 딸의 눈이 망가진(?) 것도 모두 할머니 탓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내 동생이 소위 말하는 불량학생이 된 것도 내가 눈이 나빠진 것도 전적으로 다 할머니의 탓은 아니었을 테지만 애를 조금만 더 아껴주었다면 그리 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엄마는 생각했다. 사실 내 눈이야 병원에만 제대로 갔어도 피가 날 정도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이니 말이다.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 은연중에 나도 엄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혹은 나도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나는 할머니를 그렇게 좋아하지않았다. 그래서 병문안도 제대로 가지 않았었는데 후에 조금은 후회를 했었다.

그보다 더 어린 시절 시골에 내려가면 '아이고, 내새끼'하며 반겨주던 할머니가 조금은 많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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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책을 좋아한다. 책 읽다가 맨날맨날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고 눈이 나빠진 뒤론( 우리집에서 일명 안경잽이는 나뿐인데 이건 순전히 눈병걸려서 눈에 피가 났던 아픈 과거 뒤로 쓴 것이다.) 맨날 트집이었다. '책좀 그만봐라. 책에서 밥이 나오냐, 빵이 나오냐. 책만 읽으니까 눈이 나빠지지 않았느냐' 등등의 말도 안돼는 트집거리였다. 심지어 아주 아주 어린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내가 읽던 책마저 엄마는 어디론가 숨겨버리곤 했었다. 엄마가 책을 사주시지 못했기에 내가 읽던 책들은 대부분 서울에서 외삼촌이 보내주신 것들이었다. 그래서 내가 어린 시절(초딩때) 읽은 책들의 대부분은 전래동화, 혹은 위인전 류 뿐이었다. 그래도 난 그게 없어서 못읽곤 했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신났었다. 책방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그 전까진 전혀 몰랐다. 우리집 근처엔 당시만 해도 대여점이 없었다.) 중학교 들어와서야 만화도 읽게 되었고 책방을 제집 드나들듯이 드나들었다. 학교 도서관도 나에겐 천국이었다. 고등학교때도 빌려읽을 수 있는 한도까지 항상 빌려 읽곤 했었다. 일주일에 2권뿐이라는게 난 항상 불만이었다. 도서실에 제집다니듯 한 덕에 난 지금의 친한 친구 하나를 알게 되기도 했다.

지금이야 책들을 사서 고이 고이 모셔두지만 그때야 사정이 사정이었다. 재작년에 이사할때만 해도 책이 많지 않았었지만 지금은 책장이 부족해 또 사야할 판이다. 이사할때 내가 아끼는 그 책들을 사촌동생들이 몇권가져가 버려서 중간중간 빈것도 있다. 아무튼 그렇게 책만 읽어대던 내가 학교를 핑계로 독서량이 줄었다. 사실 많이 피곤하긴 하다.

책이라면 없어서 못읽던 내가 요새는 아주 게으름을 팍팍 부리고 있다. 오늘 제출해야 할 레폿이 있건만 난 또 어제밤 그냥 자버리고야 말았다. 크에에엑! 언제쯤 게으름이 사라질수 있을것인가?

 

P.S 사실 여기엔 다 적지 않았지만 내 게으름은 가끔 극에 달해 나를 괴롭힐 때가 있다. 청소도 하기 싫어 안하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게을러서 밥먹기를 게을리하기도 한다. 빨리 고쳐야 한다. 이 게으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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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초의시종 2004-06-04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거의 제 이야기를 듣고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특히 책 읽는 걸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 어머니 이야기를 들으니 더더욱 ㅡ ㅡ; 하지만 이젠 조금은 벗어나있는 셈이죠. 아주 조금.
그리고 게으름이라...... 아마도 제 경우에는 병이 아닌 가 싶습니다......ㅜ ㅜ

작은위로 2004-06-04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언...^^;;;;
자아, 로렌초의 시종님 병이라면 고쳐야죠. 우리 같이 노력해요!!!(혼자 하기는 싫어서 끌고 가려고 하는중임..;;;;) 책 안읽는다고 구박하는 어머니가 있는가 하면 많이 읽는다고 구박하는 어머니도 있겠지요. 저희 어머니는 저에게 책좀 그만봐라! 동생에겐 책좀 봐라! 했던 분이라 말이 안맞아서 둘다 서로 말을 안들었다는...쿨럭! -_-

로렌초의시종 2004-06-0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력이라...... 안그래도 오늘 학교에서도 대학와서 좀 부지런해지려고 했는데 말 같이 안된다고 한숨을 쉬었더랬죠 ㅡ ㅡ; 방학 동안에는 어떻게든 눈 뜨고 있는 동안에는 되도록 이 일 저일 많이 챙기고 부지런하게 살아보려구요!!!!(말 같이 될까나??? ㅡ ㅡ;) 저희 어머니도 역시 그러셨죠. 동생에게는 제발 책 좀 읽으라고 노래를 하셨지만, 동생은...^^;

작은위로 2004-06-04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흐흐 우리 같이 열심히! 하자구요.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