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 - 미암일기 1567-1577
정창권 지음 / 사계절 / 200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미암 유희춘이 1567년 10월 1일부터 1577년 5월 13일까지의 개인 일기를 바탕으로 씌여진 책이다. 저자는 매일 매일 한문으로 기록한 그의 일기를 통해 그가 살던 16세기 조선의 생활사를 엿보고자 한다.


저자의 의도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조선 후기에 비해, 전기나 중기의 생활상은 우리에게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사실, 우리가 아는 조선의 생활상은 거의 모두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의 생활상일뿐이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인지 여성 문학과 생활사를 공부하던 나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 구체적인 생활상이 더욱 더 궁금하였다. 도대체 이 시기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으며, 어떤 의식을 지니고 있었을까?'

저자는 그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미암 유희춘이 작성한 개인 일기인 [미암일기]를 참조하기로 한다. [미암일기]는 흔치 않은 개인일기이며, 더욱이 그 생활차체를 세세히 기록한 보기드문 기록이기도 하다.

허나, 안타까운 것은 이 책이 철저히 지배계급인 미암의 시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책은 그 시대의 생활사라고는 하나 온전히 양반계급의 생활상이 두드러진다.

물론,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책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더욱이 미암은 집안의 경제생활이 관심이 많아서 들어오고 나간 물건에 대한 소상한 내역을 일기에 모두 적어놓았다. 그것만으로도 그 시대 양반계급이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 나갔는지를 대략 짐작케 한다. (물론, 이도 중앙 관료 양반계층에 한 한다고 봄이 더 옳을 듯하다.)

어느시대를 막론하고 피지배계층의 생활에 크게 관심을 가진 적은 물론 거의 없었다고 본다. (있었다면 내가 모르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역사공부를 해도 피지배계층의 생활사 같은 것은 배우지 않는다.

미암 일기를 통해 양반 사회의 가족관계와 그 시대 여성(물론, 양반)의 지위를 짐작하게 하고, 또한 부가적으로 노비들의 위치도 알 수 있다. 이 시대 양반들은 노비가 없으면 생활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미암의 일기에서도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노비, 하면 그 어감 때문인지 중세 유럽의 노예와 비슷하게 들린다. 물론, 어느 정도 비슷하다고는 본다. 노비는 어찌되었던 양반의 개인 소유물이었다. 그렇지만, 개나 소처럼 대접받았던 것은 아니다. 아프면 의원을 불러 치료도 하고, 적절한 때에 휴가도 주며, 심지어 급료도 주었다(물론, 특별한 경우. - 미암의 경우 서울로 함께 올라와 집안을 돌보던 노비들에게). 자신의 노비를 지켜주기도 하였다.

또한 처가살이를 해서인지는 몰라도, 여성의 권위가 높았다. 물론, 그 많은 가족들의 생계를 챙기는 것은 여성이었으니, 당연한지도 모른다.

일기를 통해서 보면 미암은 상당부분 부인은 덕봉에게 의지하고 있으며, 그녀를 존경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덕봉이 그의 창작활동에도 도움을 줄 정도의 여인이며, 부부가 서로를 많이 아끼고 그리워함도 알 수있다. 심지어 부부싸움도 가능했다.(나는 조선시대에 여인은 무조건 남편의 말에 복종한다고 생각했다. 사극에선 할말 안할말 다하는 여인들이 많이 나오긴 하더라만.)

또 한가지, 서출이 양민이 되기도 의외로 어렵지 않은 시기였던 듯하다. 미암은 그의 서녀 셋을 모두 양민으로 속량시켜주었으며, 시집을 보낼때도 최선을 다해 그 제물을 마련해 주었다. 그 유명한 홍길동은 후기에나 나올수 있는 것이었다.

이 책은 상당히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16세기 양반이 쓴 개인일기를 통해 엿볼수있는 생활상이란 생각보다 많이 흥미롭다. 단지, 그 한계가 너무 분명하여 조금 안타깝다.

물론, 지배계층인 양반이 피지배계층의 생활에 관심을 가질리가 없으며, 피지배계층인 양민이 기록을 남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니 이정도가 어쩔 수 없는 한계일 것이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의 날개 - 압둘 칼람 인도 대통령 자서전
APJ 압둘 카람.아룬 티와리 지음, 이정옥 옮김, 채연석 감수 / 세상사람들의책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몇해전이었을까, 아마도 3년이상이 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내가 대학에 들어선 이후의 일이었으니. 떠오르는 IT강국이 인도라던 말을 들은 것은.

그말을 들었던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아, 인도는 이제 시작하는가 보구나..'라고만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이 책 <불의 날개>에 보면 최소한 로켓에 관한한 인도는 선진국이다. 세계 7번째(혹은 6번째)로 우주로켓 발사를 성공한 나라가 바로 인도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인도는 막연히 신비하고, 하드웨어적으로 많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보는 인도의 사진과 인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생긴 일종의 편견이리라.

<불의 날개>라는 제목과 책 뒷면에 쓰여진 글대로라면 가난한 무슬림 소년의 성공기이다. 하지만, 압둘 칼람(현 인도 대통령)은 불행한 아이가 아니었다. 가난한 집의 아이가 아니었다. 그의 집이 물질적으로 가난했을지 몰라도, 그의 집은 행복으로 가득찬 부잣집이었다.

그에게는 훌륭한 아버지, 어머니와 인생의 멘토 자형, 동생의 앞날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귀금속을 담보로 잡혀준 누이가 있고, 훌륭한 선생님들이 주위에 많이 있었다.

나는 그가 많이 부러웠다. 그리고 조금 냉소적으로 생각했다. '칼람의 곁에는 훌륭한 사람이 많이 있잖아? 그가 기꺼이 존경한다고 할만한. 그저 단편적인 에피소드만 읽어도 좋은 사람이구나. 라고 느낄만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라고.

1부 준비를 읽으면서 나는 그랬다. 내 어린시절에 그러한 선생님들이 없었다고 그를 질투하며, 그가 이루어 낸 것들을 깍아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금씩 읽어나가면서 그러한 내 생각은 바뀌어갔다.

어쩌면, 내가 잘못된 길을 왔는지도 모른다. 칼람의 곁에 있던 사람들이 다 그가 저술한 대로, 마냥 좋기만한 사람이었을까? 그가 보고, 느끼고, 겪어온 부모, 형제, 스승들은 책에 나온 좋은 면 말고 나쁜점도 많았을 것이다. 역시나 인도인인 칼람은 내가 생각하는 인도인의 모습대로(이건 나만의 편견이다.) 긍정적인 모습만을 발견하고, 낙관적으로 사람을 바라본다.(너무 류시화 시인의 책들만 읽어온 탓인지도..)

그 주위의 사람들에게서 발견한 존경할만한 점들은 칼람 스스로 발굴해 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했을까? 어린 내 주위의 사람들에게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을 장점을 나는 놓친 것은 아닐까?

이 책은 좋은 책이다. 좋은 사람이 쓴 좋은 이야기로 가득찬 좋은 책.

사실, 읽기는 힘든 책이다. 압둘 칼람이 걸어온 길 자체가 내가 걷는 길과는 많이 다르고, 이 책을 읽는, 읽을 독자들과도 다른 길일 것이다.(극소수를 제외하고.) 수박 겉?기 식으로 아무것도 없는 바닥에서부터 우주로켓발사를 이룩해낸 과정이 쭈욱 나열되어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다양한 리더들과 그 자신이 발휘한 리더쉽이 기록되어있다.

하나의 프로젝트를 맡은 팀장들이 발휘하면 좋을 듯한 리더쉽이 들어있는 책이다.

이 책은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에게도, 밑의 팀원들에게도 읽은면 좋을 책이다.

다른 관점에서도 보자면, 자라는 어린 새싹들 보다는 그 어린 새싹을 길러 하나의 잘 자란 나무로 길러낼 농부(어른)들이 읽으면 좋을 책일 것이다. 어린 압둘 칼람의 곁에 어렵고 힘들때마다 포기 하지 않도록 이끌어준 이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그도 없었을 터이니, 그의 스승들이 그에게 해주고 북돋아주었던 용기를 본받아야 하지 않을까?!

많은 이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물론, 조금 지루한 면이 없잖아 있기에 읽기 힘든 면이 있겠지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구영웅전설 - 제8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
박민규 지음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은 도저히 웃으면서 읽을 수 없는 글이다. 가볍게 넘기면서 읽을 수도 없었다. 얇디 앏은 책 주제에(!) 읽는 데만 며칠을 소모했다. 순간 순간 읽기 싫어지던 그 감정때문에.

'나'는 정말이지 어처구니 없는 추문에 휩쓸려 자살을 결심하고 빨간 보자기를 목에 두른고 빌딩에서 뛰어내린다.(용감한건지, 무모한건지) 그 순간 하필이면! 대한민국의 상공을 지나던 슈퍼맨이 그를 구해간다.

내가 아는 슈퍼맨은, 내가 아는 원더우먼은, 내가 아는 배트맨은 영웅이다.(아쿠아맨은 안타깝게도 모른다.) 그런데 알고보면 그들은 '아메리칸 히어로'이다. -하긴, 그들이 구했던 곳은 항상 '아메리칸'이었을 뿐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난 항상 그 영웅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으음, 슈퍼맨보다는 '육백만불의 사나이(맞나?)'나 '소머즈'가 더 좋았다. 웬지, 그들은 인간 같았거든.(잘 기억은 안나지만) 인간같지 않은 영웅들은 싫었어. 아니면, 우리 영웅이 아니어서 였을지도 모르겠지만.

'바나나맨'은 마치 자신은 황인족이 아니라는 듯이, 자신은 백인이라는 듯이 강제 송환된 한국에서도 속으로 그들을 비웃고 있다. 너무 어린나이부터 세뇌된 탓일것이다. 그건 '바나나맨'의 탓만은 아니다. 어렸던 '나'는 빌딩에서 뛰어내림과 동시에 죽었고, '바나나맨'은 슈퍼맨으로부터 탄생했다.

가여운 바나나맨, 자신이 이용당하다가 필요없어져서 버림받았다는 사실도 모르는 구제불능의 멍청이!

자신도 영웅이 될거라면서 행복에 겨워했지만, 사실은 백인이 아닌 영웅은 필요없었단 사실을 모르는, 너무나도 백인이 되기를 소망하며, 갈망했던 '나'. 그런 이유로 '바나나맨'이라는 이름을 받아야만 했지. 그리고선 버림받고.

단 한번의 임무도, 그저 놀이처럼 보냈던 바나나맨, 어쩌면 그 임무라는 것도 그를 조롱하기 위한 '아메리칸 히어로'들의 작전이었을지도 모른다!

여전히 세계를 움직이는 힘의 논리의 중점엔 미국이 있고, 슈퍼 특공대를 중심으로 그런 논리를 풍자인지, 냉소인지로 풀어낸다. 미국을 대표하는 '아메리칸 히어로'들을 내세워서. 백인 영웅이 되고 싶어하는 바나나맨을 통해서.

헐리우드 영화들을 보면 잘 들어나지 않나? 미국을 제외한 나라의 정의는 없다. 미국이 정의다, 라는게.

재미없다.

'바나나맨'에게는 이름이 없다. 슈퍼맨에게도, 원더우먼에게도, 배트맨에게도 이름은 있는데, 바나나맨은 이름이 없다. 왜냐면, 알것같지 않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붕우 - 권교정 단편시리즈 2
권교정 지음 / 시공사(만화)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붕우유신'. 오륜(五倫)의 마지막에 위치하며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한다.'는 뜻이다. 벗 붕(朋), 벗 우(友). 국어사전에서 '벗'을 찾아보면, 서로 가까이 사귀는 사람이라고 나온다. 서로 가까이 사귀는 사람이며, 그 사이에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친구란, 벗이란, 그런 사이여야한다.

같은 스승 밑에서 수학한 방연과 서하는 둘도 없는 친구이다. 서로 실력을 겨루는 사이이지만, 서하는 그냥 평화롭게 살기를 원하고, 방연은 성공하고자 하는 야심이 있는 남자이다. 세월은 흘러서 서하는 고향에서 그대로 살지만, 방연은 조정에 출사해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다. 전쟁이 터진 어느날, 방연은 자신보다 뛰어난 능력을 지닌 친구 서하를 불러들인다. 그리고 그것이 비극의 전조였다. 스승의 딸이자, 방연의 아내인 위부인의 모략으로 서하는 방연을 의심하게 되고, 방연은 오히려 더 크게 오해하도록 만든다.

서하가 살아있음을 알고 웃으며 갔던 방연과 방연의 진심을 모르고 웃던 서하는 벗이었으나, 벗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벗이 자신을 배신했다고 생각한 서하는 거리낌없이 방연을 죽일 수 있었고, 벗이 살아있음을 알게된 방연은 웃으며 죽어갈 수 있었다. 서하는 불행했고, 방연은 행복했다?로 간단히 정의될 수는 없겠지.. 벗을 믿지 못한 서하는 그로인해 더이상 그 누구도 믿지 못하게 될 것이다. 벗의 믿음을 잃어버린 방연은 죽기, 아니 서하가 살아있음을 알기 전까지 힘들어했다. 서하가 진실을 알아야 했는가? 그건 답을 못하겠다. 아마도 방연은 서하가 진실을 알기 원치 않을 것이다. 나는 그래서 위부인의 편지가 서하에게 도달하지 못한 것이라고 믿는다.

단편집에 실린 두번째 작품, 권교정이 새로이 해석한 '피터팬'의 후크가 너무나도 내 마음에 든다. 아, 그 남자 너무 귀엽다. 내가 아는 후크는 비열하다. 똑딱악어를 무서워하고, 피터와 아이들을 무척이나 싫어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나는 피터팬을 책으로는 읽은 적이 없다. - 어린 시절 우리집에는 책이 없었고, 외삼촌이 보내주었던 책들은 전부 전래동화류나 위인전류였다. - 그래서인지 부록(?)으로 삽입되어 있던 후크에 대한 내용이 재미있다, 아니 것보단 상당히 흥미롭다. 원작의 '후크' 도 상당히, 멋있는 남자다.

후크를 괴롭히는(?) 피터팬이 너무 너무 미울 정도로 권교정의 후크가 맘에 든다는 것은 어쩌면 작가의 의도대로 된걸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은 쉽게 잊어버린다. 팅커가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데려오고, 피터에게 거짓말을 했던 것은 잊혀지는게 무서워서 이다. 후크는 아이들을 원래의 세계로, 네버랜드 밖으로 내보내고 싶어하지만, 차마 어린 시절의 친구 팅커를 해칠 수 없다. 곱게 아이들을 원래의 세계로 내보내고, 잡아온 아이들의 식사를 꼼꼼히 챙기면서도, 그 진심을 내보이지 않는다. 조금 심술궂다. 어쨌든, 그는 사실은 아이들을, 팅커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이다. 어른이 되었음에도, 사실 그는 누구보다(네버랜드의 아이들보다) 순수한 건지도 모른다.

아,그래. 나는 벗이(혹은 벗이었던 이) 살아있음을 알고 웃으며 갔던 방연(비록, 슬프더라도)과 무뚝뚝하고 못돼고 괴상한 듯하면서도 사실은 너무나 자상한 후크가 너무 마음에 든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올웨이즈 Always
권교정 지음 / 시공사(만화) / 2001년 11월
평점 :
품절


나는 사람을 사귀는데 서툴다. 먼저 다가가서 웃어주거나, 말을 걸어주는 법이 없고(없다기보단 힘들어하고), 쉽게 말을 놓지도 않는다(나보다 몇살어리더라도.). 그래서 친구가 그닥 많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친구 적음에 슬퍼하는 것도 아니다. 나에게는 100명의 사람들보다 소중한 친구들이 있으니까.

처음에 우리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다 기억하지는 않는다. 단순히 클래스메이트이거나, 혹은 같은 동아리였을뿐이었던 우리가 정말 친구가 된 것에 어떤 이유가 있었을까? 티격태격 싸우면서 이어져온 인연도 있고, 계속 친구로 있고 싶다고 생각했던 친구도 있고.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온 친구도 있다. 그 와중에도 서로 같은 점과 다른 점, 비슷한 점들을 보고 신기해 하고, 세월이 흘러가면서 서로를 닮아가는 모습에서 미소짓기도 한다.

친구라는 말은 애매모호한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하기도 하고, 어느 사람을 지칭할 때 '이 친구가 말야,' '그 친구, 그거 말야.'식으로 나갈만큼 흔히 쓰여지는, 어쩌면 별 것 아닌 것 같은 단어이지만, '친구'는 그렇게 쉬운 단어가 아니다. 어느 순간 '너 이제 내 친구해라.'라고 해서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아무것도 아닌 관계가 쉽게 친구라는 의미있는 관계로 돌아서지는 못한다. '친구' 사이에는 신뢰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쉽게 사귀고, 쉽게 헤어지는 요즘의 연인들과는 다른 것이다.) 단순히 아는 친구와 '친구'는 다르니까.

기현과 태경은 클래스메이트이지만, 어느 순간 이전에는 '아무것도 아닌' 관계였다. 처음, 서로의 존재를 인식하고부터는, (아니 그보단 조금씩 알아가면서) 한발, 한발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닌'  친구가 되어갔다. 친구의 말 한마디에 쑥쓰러워 하기도 하고, 그가 나보다 잘하는 것에는 질투도 하고, 나중에는 점점 '대화'를 나누고 싶어하는.

기현의 시점에서 표현되어지는 일상에 갑자기 나타난 녀석 태경은, 뭐랄까? 주인에게 칭찬받고 싶어하는 강아지 같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초롱초롱 쳐다보는. 갑자기 옆자리로 쳐들어오고, 영화보러가자고 졸라대고, 집으로 놀러오고. 기현은 그런 태경이 익숙지 않고, 불편하다고 느끼지만 사실은 쑥쓰럽고, 기쁘(?)다.

작가가 여자여서인지는 몰라도, 사실 대화체는 조금 여성스러운 면들이 있다. 남자친구들 사이에서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잘 몰라도) 내 친구들 사이에서의 대화는 가끔씩 조금, 닭살스럽다. '너 이렇게 이쁜데 왜 아무도 몰라주냐.' 'XX야, 넌 웃는게 진짜 이뻐.' 라는 둥의 대화가 심심찮게 오간다.

커다란 사건이나, 극적 반전 같은게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만화는 재미있다. 마치 고등학교 시설 내가, 혹은 내 친구들이 서로 알아가고 친구가 되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지는게 참 좋다. 약속이 있다가도, 친구가 우울하거나 하다고 하면, 있던 약속도 취소하고 당장 달려가는 것은 우리가 친구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의 친구들이 언제까지나 함께 있을거라고 믿고, 그렇게 만들고 싶다. 그리고 기현과 태경 또한 그러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