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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탈출 - 건강, 부 그리고 불평등의 기원
앵거스 디턴 지음, 이현정.최윤희 옮김, 김민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5년 11월
평점 :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분의 책이라면 일단 끌리고 본다. 책 제목에 하버드, 서울대, 노벨상 같은 단어가 들어가면 눈길이 가는게 참 스스로가 안타깝지만 끌리는 건 어쩔 수 없다. 노벨상은 어떻게 보면 세계의 현재까지의 성과와 미래의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하버드가 대문짝하게 들어간 책보다는 나은 것 같다.
앵거스 디턴의 이 책은 현재의 불평등한 세상을 옹호한다. 우리가 불평등하기는 하지만 지금의 최하층 수준의 생활도 과거의 최상류 층보다 많은 혜택을 받고 있다고 한다. 엄청나게 증가한 수명과 의료 발달, 넘치는 음식 등등 절대적으로 보자면 우리는 모두 과거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이 요체다. 그리고 그것을 평균 수명의 변화, 각종 병의 완치율을 토대로 설명한다. 그러면서 현재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지금 행해지고 있는 전반적인 방안들에 대해서도 말하며 비판을 가한다. 현재의 불평등을 무조건 타파해야 하고 돈 잘 버는 국가들이 최빈국들을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되었고,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다.
P388
– 지금은 식민주의를 우리를 이롭게 하기 위해 남에게 해를 입히는 나쁜 일로 생각하고 원조를 남을 돕기 위해 우리를 희생하는(아주 약한 정도지만) 좋은 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런 관점은 너무 단순하고, 역사를 너무 무시하고, 너무 자화자찬하는 관점이다. 식민주의의 수사도 어쨌든 사람들을 돕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인간적 속성은 전혀 인식하지도 않은 채 문명과 개화를 안겨준다는 내용이었지만 말이다. 오늘날 인도주의라는 수사는 정치인들이 돈으로 덕목을 산다는 사실을 은폐하는 수단이다. 원조가 세계 빈곤을 해결하려는 우리의 도덕적 의무를 충족하는 길이라면 절대 해를 끼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가 해를 입히고 있다면 ‘그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원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세이브 더 칠드런으로 매월 만원씩 자동이체가 되고 있는 나에게 하는 말인 줄 알았다. 나는 이 돈이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누가 혜택을 받는지, 어떻게 사용이 되는지 모르고, 만원씩 이체가 되고 있다는 사실도 잘 까먹는다. 다만 tv나 신문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볼 때, 까먹고 있는 이 자동이체를 기억해내며 ‘그래, 난 지금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지, 흠흠’이라고 자화자찬한다. 앵거스 디턴에게 한 대 얻어터져도 할말이 없는 가식적인 생각이었다. 원조를 식민주의와 연관 지어 말한 그의 논리는 내가 지금껏 가진 생각과 다를 바 없었다.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왔던 것을 치를 떨며 싫어했던 내가 의식적으로는 마찬가지로 도와주는 것이다. 물론 내가 어려운 친구들에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해 내가 이득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도와주는 것에서 큰 차이는 없던 거 같다. 원조는 사실상 돈으로 덕목을 산다는 것이 정말 맞는 말인 거 같다. 또한 단순한 원조는 나라의 발전을 막는다고 한다. 사실 선진국들의 국민들이 1달러씩만 내도, 그리고 지금 모인 지원금만으로도 세계의 빈곤은 곧바로 없어질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대로 원조가 필요한 곳으로 흘러가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지속될 뿐이라고 한다. 도와주는 국가는 원조를 받는 국가에게 이래라 저래라 내정간섭을 할 수가 없다. 돈을 주면 빈곤국의 정부는 단연
많은 돈을 부정부패로 이용한다. 쌀을 사서 많이 풀어주면 그 나라 쌀값이 엉망이 되어 더 이상 자급자족을
할 수가 없고 원조에 더욱 의지하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 된다.
P409
– 빈곤 감소에 미치는 이민의 영향은 자유무역의 영향을 작아 보이게 만든다.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나라로 이주하는 데 성공한 이민자들은 고향에서보다 형편이 좋아지고 이들의 송금으로 고향의 가족들이 잘 살 수 있다. 송금은 원조와 매우 다른 영향을 미치며 송금을 받는 사람이 정부에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여
통치를 약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선할 수 있다. 도움이 되는 일시적 이민은 특히 아프리카인들을 위해
서구 구가에서 대학 및 대학원 장학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운이 따른다면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원조
기관으로부터 또는 그들의 국내 정권으로부터 독립하는 방법을 발전시킬 것이다.
빈곤국에서의 이민 허용과 대학 지원. 앵거스 디턴이 생각하는 올바른 원조 방향의 일부분이다. 이민의 긍정적인 부분을 잘 파고들었다. 송금은
원조와 다르다는 점에서 무릎을 탁 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선진국들의 흐름은 정 반대이다. 장벽을 쌓고, 이민자들을 제한하고,
쫓아낸다. 종교적 갈등이 크긴 하지만 이를 통해 앞으로 빈곤국이 일어설 수 있는 확률이
더 줄어드는 것은 분명하다. 아메리칸 드림을 전세계에 선전하며 세계의 멜팅 팟 역할을 했던 미국마저 폐쇄주의로 돌아서니 빈곤국의 희망은 더 사라질 뿐이다.
우리나라 국민들 역시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다. 한민족 정서 때문인지 일자리가 워낙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무조건 반대라는 의견이 많다. 그럼 우리 국민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원조도 해주면서 향후 국가 간 관계를 쌓을 수 있는 것은 대학 교육 지원이다. 우리나라는
식민지 경험을 거치고도 단기간에 중진국 대열에 오를 수 있었다. 이것은 예전부터 식민지를 토대로 발전해
온 유럽과 전쟁을 토대로 발전한 미국과는 다른 모델이다. 과거 새마을 운동의 모델을 배우기 위해 많은 최빈국 주요인사들이 찾아왔었는데 사실 제대로 정리해서 알려주었는지는 의문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어려운
국가들의 인재들을 대학 장학생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에서 비비면서 생활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정부 요인이 된다면 자연스레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가질 수 있다. 우리의 경험도 알려주고 진정한 원조도 해주며 미래 관계까지 개선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다. 대학입장에서도 향후 입학생이 줄어드는 추세에서 여러 국가의 장학생들을 받는다면 그렇게 아둥바둥 힘쓰는 국제화 지수에서 포인트를 얻을 수 있으니 그들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최빈국이었다. 정말로 세계에서 2번째로 가난하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 성장의 경험이 원조의 재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P415
– 기대 수명 증가율이 낮아지고 있지만 이는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다. 사망하는 연령이
높아지고 있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일은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기대 수명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실체가 아니라 척도이다. 기대
수명이 항상 사회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말해주는 올바른 척도는 아니며 중년층과 노년층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 본질적으로 어린이의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
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적어도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디턴의 바람대로 두 가지 모두 중요하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출산율이 현저하게 낮고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고령층보다 어린이의 생명이 우선시 되고 있는 것 같다. 일부 급진적인 사람들은 몇 세 이상이 되면 얼른 죽어야 한다는 막말까지 서슴없이 하고, 정부는 정신을 망각한 출산가능여성지도까지 만들면서 구차하게 출산율을 높이려고 한다. 지금 온통 출산율에 대해서 정책이 쏠리고 있는데(그렇다고 효과적이고, 진정한 정책은 한가지도 없다.) 그와 같이 고령층에 대한 정책도 시급하다. 노령층이 건강해지면서 정년 연장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며 고령층의 교육도 병행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최종 은퇴 연령이 남성 72.9세, 여성 70.6세로 OECD 평균
남성 64.6세, 여성 63.1세는
당연히 뛰어넘고 1위라고 한다. 경제적 이유 등 원치 않게
일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 수치는 그들이 은퇴하고도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을
위한 고용책이나 교육책, 문화생활 확충 등 전반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실버산업이 한 때 붐이었던 것 같았는데 최근에는 별다른 이슈가 없어 아쉽다.
출처
1.앵거스디턴사진
http://www.economist.com/blogs/freeexchange/2015/10/economics
2.대학강의 사진
http://blog.daum.net/molossi/303
3.세이브더칠드런
https://www.justgiving.com/fundraising/Matthew-Martynia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