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란 무엇인가 - 독점계약 번역 개정판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15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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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 – 역사란 무엇인가?


1.


E.H.카.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역사학자일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국사 과목을 듣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이 사람이 등장한다. 역사에 대한 개괄적 설명이 교과서의 서두인데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명언은 언제나 밑줄이다. 시험에도 객관식이나 단답형으로 단골손님이다. 그렇지만 딱 암기용에 머물렀었다. 대부분이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알고 있지만 읽지는 않는다. 나도 역시 그러했고, 카의 역사론은 기억 한편에서 서서히 잊혀져 가고 있었다. 그러다가 2016년 국정교과서 사태가 터지고 다시금 역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읽어야지 했다가 국정교과서가 폐지되고 나니 읽게 되었다. 도대체 역사가 무엇이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왜 ‘대한민국 수립’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사이에 두고 서로가 이리도 으르렁거리는 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읽었다. 송강호 주연의 영화 ‘변호인’에 등장한 책으로 그 당시 사상서로 분류되어 박해를 받을 정도였다는 책을 읽는다는 나름의 스릴도 있었다.




읽어보니 한 나라의 역사 교과서 서론에서 언급할 가치가 충분한 책이고 시대를 관통하는 책이다. 수능에서 국사 과목을 선택하기 전에, 한국사능력시험을 깨작대면서 공부하기 전에, 역사 관련 다양한 책들을 읽기 전에 이 책을 읽었더라면 이해의 깊이가 달랐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생길 정도다. 내용이 길지 않지만 묵직하다. 저자는 역사는 과학과 그리 다르지 않다, 절대적으로 진실된 역사란 것은 없다, 역사는 진보에 대한 것이다 라는 등등 굵은 주장들을 차근차근 풀어나간다. 먼지 쌓인 책들 마냥 정적인 것만 같은 역사는 카의 주장들로 인해 역동적이고 항상 변화하는 것으로 변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옥 같은 말은 가장 객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역사가는 자신이 현 시대의 편향성에 어쩔 수 없이 물들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로 그 시대의 문화와 사상을 배운다. 문명과 떨어져 제3의 위치에서 문명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부모의 교육 자체가 이미 사회적이고 특정 사회의 가치를 내포한다.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역사가는 객관성이 없는 자기 허세적인 역사가일 뿐이다.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와 상통하는 의미로 내가 무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역사가는 ‘필연적으로’, ‘결과적으로’라는 말을 쓰면 안되며 그런 말을 쓰는 역사가는 별로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고 한다. 일단 내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고 시대를 뛰어넘어 정답을 찾아 나서는 것이 역사가의 의무라는 점에서 고루해 보였던 그들이 멋있어 보인다. 



2.

2016년 국정교과서 사태 당시에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더 재미있고 깊숙하게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당연히 국정교과서는 잘못되었다는 느끼고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왜 잘못되었는지는 애매했다. 이제야 알겠다. 전 정부의 무지를 인정하지 않는 태도. 자신들이 쓴 역사서가 정답이라는, E.H.카가 그렇게 비판하는 역사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사람들이다. 과거를 바꾸려고 낑낑대는 그들의 모습에서 과거의 신문 내용을 정부의 입맛대로 수정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 ‘1984’가 생각났었다. 잘 막아서 다행이지 정말 큰일 날 뻔했다.


현재 OECD국가에서 국정교과서를 채택한 국가는 없다. 전세계적으로 북한, 베트남, 스리랑카, 몽골 등이 국정교과서만을 채택하고 있다. 대다수의 국가들이 검정과 자유발행제를 채택해 다양한 역사교과서가 나올 수 있도록 한다. 왜냐하면 앞서 말했듯이 역사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쓴 이 역사교과서가 정답일 수가 없으니 이것만 있으면 안 되고 다른 의견을 가진 교과서들과 함께 비교하며 개선해 나가야 한다. 역사는 과학과 같으며 인간에 대한 이해를 향해 끊임없이 발전하고 움직여야 한다. 역사가는 역동적인 지금의 역사를 가장 앞에서 이끌고 있으며 역동성에서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깨닫게 된다. 과거에서 현재를 읽고 미래를 보니 그들은 시간을 다루는 자들이다.



마지막문장 – ‘그래도 그것은 움직인다’ 라고.



<인상깊은 구절>


p.109 – 역사는 운동이며, 운동에는 비교가 포함된다. 따라서 역사가는 ‘선’이라든가 ‘악’이라는 비타협적이고 절대적인 말보다는 ‘진보적’이라든가 ‘반동적’이라는 비교의 성질을 가진 말을 사용하여 그 도덕적 판단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은 여러 사회나 역사적 표준을 어떤 절대적 기준과의 관계에서가 아니라 그것들의 상호관계에서 규정하려는 기도인 것이다.


p.112 – 과학자, 사회과학자 및 역사가는 모두가 같은 연구의 서로 다른 부문에 속하고 있다. 즉, 어는 것이든 인간과 그 환경, 환경에 대한 인간의 작용, 인간에 대한 환경의 작용에 대한 연구인 것이다. 연구의 목적은 동일하다. 곧 자기의 환경에 대한 인간의 이해력과 지배력을 늘리는 것이다. 


p.137 – 실례를 들어보면, 존스가 어느 파티에서 평소의 주량을 넘는 술을 마신 후 브레이크가 다 부서져 가는 자동차를 몰고 돌아가다가 앞이 막힌 막다른 모퉁이에 이르러, 그 모퉁이의 가게에서 담배를 사기 위해 길을 건너던 로빈슨을 치여 죽였다… 이 사고는 운전자가 술이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일어난 것인가? 또는 고장난 브레이크가 원인이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막다른 모퉁이가 있었기 때문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를 가진 로빈슨 때문인가?


p.141 – 우연적 원인은 일반화 될 수 없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수한 것이므로, 어떤 교훈도 주지 않고 어떤 결론도 낳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또 한 가지 주장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에 관한 논의의 열쇠가 되는 것은 바로 앞에서 본 목적이라는 관념이다. 그리고 목적의 관념은 필연적으로 가치판단을 포함하는 것이다 .


p.152 – 다윈의 혁명은 진화와 진보를 동일시함으로써, 즉 역사와 마찬가지로 자연도 결국은 진보하는 것이라고 판명함으로써 모든 곤란은 제거된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것은 진화의 근원인 생물학적 유전과 역사상의 진보의 근원인 사회적 획득을 혼동함으로써 훨씬 중대한 오해의 길을 열었던 것이다. 


p.159 – 진보에 대한 믿음은 결코 자동적이거나 불가피한 과정을 믿는다는 것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인 발전을 믿는다는 뜻이다. 진보라는 것은 추상적인 용어이다. 인류가 추구하는 구체적인 목적은 때에 따라 역사의 진로에서 나타나는 것이지, 역사 밖의 어떤 원천으로부터 나오는 것은 아니다. 


p.176 – 정적인 세계에서는 역사란 무의미하다. 역사는 그 본질상 변화이며, 운동이면 진보이다. 그래서 나는 결론적으로 진보는 ‘역사 기술의 기초가 되는 과학적 가설’이라고 한 액튼의 말로 되돌아가기로 하겠다. 


p.212 – 역사란 과거 사실의 단순한 재현이 아니라 과거의 어떤 사건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해석, 평가하여 재구성할 때 확립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출처

1.영화 변호인 한장면

http://star.ohmynews.com/NWS_Web/OhmyStar/at_pg.aspx?CNTN_CD=A0001935379

2.국정교과서 사진

https://1boon.kakao.com/ppss/58ae768d6a8e510001b99ae4

3.국정교과서 집필진명단

http://khanarchive.khan.kr/entry/%EC%97%AD%EC%82%AC%EA%B5%90%EA%B3%BC%EC%84%9C-%EA%B5%AD%EC%A0%95%ED%99%94-%EA%B4%80%EB%A0%A8-%EA%B7%B8%EB%9E%98%ED%94%BD-%EB%89%B4%EC%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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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라디오 2017-05-29 23:4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놓고 아직 펼쳐보지 못한 책인데 읽고싶어지네요^^

윙헤드 2017-05-30 07:52   좋아요 1 | URL
저도 읽어야지읽어야지하면서 오랜시간 읽지못했는데 막상 읽으니 생각보다 빨리 읽혀서 좋았습니다:)

마르케스 찾기 2017-05-30 05: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변호인˝에서 (이 리뷰의 사진에서 처럼ㅋ) 노무현 변호사 역의 송강호가 반발하던 모습에서 진짜 제목만 알고 있었던 이 책을 읽으리라 결심하고 바로 구입했죠.
알고는 있지만, 읽진 않았던 책..
진즉 읽었어야 했던 책이었어요ㅋ

고양이라디오 2017-05-30 13:55   좋아요 0 | URL
저도 영화의 한 장면 기억에 남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