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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읽고 쓰기의 변화에 대하여
대학을 수시를 통해 들어간 나. 정시 한방 외에 보험이라는 마음과 고등학교 때에 나름 책을 읽었다는 거만함,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하고 있었다는 자부심 때문에 수시를 위해 논술을 꽤 준비했었다. 논술은 분량 제한이 없는 것도 있었지만 대부분 2,000자나 3,000자 분량의 서론, 본론, 결론이 맞아 떨어진 완성된 긴 글을 요구하는 것이 많았기에 2 시간, 3시간씩 글을 쓰곤 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는 아는 것도 없고, 별 생각도 없었는데, 어떻게든 꾸역꾸역 쓸려고 사자성어로 서론을 시작해 보기도 하고, 그날 신문에서 본 사건을 예시로 드는 등, 그래도 분량을 다 맞추어서 썼었다.
그런데, 이제는 A4 한 장을 채우는 글을 쓰는 것도 버겁다. 사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쓰는 이 독후감을 제외하면 내가 글을 제대로 쓴 적이 있나(그렇다고 독후감 글도 제대로 쓰는 것은 아니지만), 더 나아가 생각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있나 한다. 카카오톡은 2줄만 넘어가도 일단은 전송을 누르고, 회사에서 이메일을 보낼 때도 첨부파일을 열어보면 되는 것이기에 본문에 그리 긴 글을 쓰지 않는다. 하다못해 이 독후감을 쓸 때도 하나의 완성된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워 소제목을 핑계 삼아 짧게 짧게 쓰고 있는 모습에서 이 책의 저자가 지적하고 있는 우리 인간의 변화가 나에게 또한 영향이 왔구나 하고 느꼈다. 저자는 부제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고 하며 사람들이 이제는 좁고 깊게 생각하기 보다는 넓고 얕게 생각하는 방식으로 뇌의 작동 방식이 서서히 바뀌고 있다고 한다. 현시대의 사람들은 ‘무기여 잘 있거라’ 나 ‘죄와 벌’ 같은 내용이 긴 책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하며 더 짧고 간결한 문장에 익숙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두꺼운 책을 읽으면서도 집중하기가 어려워서 다 읽고도 제대로 기억하는 능력도 떨어진다고 한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도서관에서 괜찮은 책을 찾았는데 그 두께가 너무 두꺼워서 책을 내려놓았던 적도 꽤나 많았고, 기승전결이 있는 소설보다는 인문사회나 지금 이런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같은 내용이 딱딱 끊어지는 책을 무의식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지금도 사실 ‘21세기 자본’이라는 책을 읽는데, 책의 내용이 너무 길어서 다른 짧은 책을 먼저 읽거나, 책을 읽더라도 스마트폰에 손이 가서 빌린지 3주가 되었지만 아직도 절반도 읽지 못했다는 것이 그러한 점을 방증한다.
단언컨데 나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을 잘 사용하지 않는 축에 속한다. 스마트폰은 카카오톡과 노래, 검색 외에는 잘 사용하지 않고, 앱도 뭐가 좋은지 모르고, 태블릿도 없고, 25세 남자치고 컴퓨터도 잘 할 줄 모르고,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문명의 이기를 잘 사용하고 있지 않다. 그것보다는 종이 신문을 읽고, 책을 읽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술에 종속되지 않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를 돌아보니 나 역시 벌써 기술시대에 알맞은 뇌 구조로 변화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이런 흐름을 보니 저자의 걱정에 십분 동의한다. 저자는 우리의 편의를 위해 우리와 닮게 만들려는 기계의 역사가 이제는 기계와 닮아지려는 인간의 역사로 변하고 있다고 우려를 표한다. 컴퓨터처럼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이 인정받고 컴퓨터처럼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이 인정받는 사회. 어쩌면 인공지능을 주도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인터넷업체들이 인간의 뇌가 너무나 따라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 뇌를 기계처럼 퇴화시켜서 인공지능을 한층 쉽게 만들려고 하는 술수일까라는 이상한 생각도 든다.
이 책에서 저자는 인터넷의 이런 방향을 비난하거나 그러면 안된다는 식으로 말하지는 않는다. 단지 이런 변화를 실제적 자료를 통해서 잘 정리하여 보여주고 있는데, 그가 잘 인용하는 맥루한의 글에서 나도 크게 감명을 받았다. 맥루한은 미디어에 대한 그의 글을 통해서 우리는 얻은 것뿐 아니라 잃은 것에 대해 민감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기술의 영광이 우리의 핵심 자아를 마비시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내부적인 감시의 눈이 멀도록 손을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기술의 시대에서 모든 미디어, 회사, 광고들이 기술을 찬양할 것이다. 그것을 균형있게 바라보는 것은 결국 우리의 역할이라는 것, 나도 얼마나 기술 호의적으로 생각해왔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 종이책의 가치에 대하여
킨들. 전자책의 혁명을 이끌어 낸 제품으로 출시 당시 전세계 이북의 인기를 증폭시켰다고 한다. 나는 사용해본 적이 없어서 다른 이북들과는 별다른 차이를 못느꼈지만은 다양한 기능에 책을 읽기에 최적화 되어 있다고 했다. 전자책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책 출판비용의 획기적 감소, 오탈자 문제로부터의 해방, 소비자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 더 나아가 인쇄용 나무의 절약까지, 전자책을 찬양하는 쪽에서는 그 장점을 부각하느라 입에 침이 마를 새가 없다.
하지만 책은 종이여야 한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대표적 이유들은 종이 책을 읽어야 책 냄새도 나고, 한 권을 온전히 읽었다는 느낌도 나고…생각해보니 논리도 없고 그냥 전자책을 써보지 않아서 그렇게 말한 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저자는 전자책 시대의 부정적 측면을 실험과 자료를 통해 잘 보여주고 있다 .어떤 실험에 따르면 전자책을 보는 그룹은 종이책을 읽은 그룹에 비해 집중력이 월등히 떨어졌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의 소설을 읽을 때, 전자책을 통해 인터넷으로 찰스 디킨스를 검색하고, 그의 대표작들의 간략한 줄거리를 읽어보고 하느라 정작 책을 읽기까지 30분이 넘게 걸렸다고 한다. 책을 읽다가 바로 다른 멀티태스킹을 할 수 있는 능력 덕분에 오히려 책을 깊이 있게 읽는 것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종이책을 읽으면서도 그런 방해는 종종 일어난다. 심지어 나는 지금 여기까지 글을 쓰면서도 생각이 끊길 때마다 스마트폰을 이유 없이 3번은 들여다 봤다. 그러니 큰 스마트폰이라고 할 수도 있는 전자책을 보면서는 오죽할까.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작가와 마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대화할 때 상대방에 정신을 쏟으며 대화하지 스마트폰이나 노래를 들으며 대화하지는 않는다. 이런 가치를 모르고 책을 단지 하나의 콘텐츠로 바라보는 구글, 아마존과 같은 대기업들은 책을 예능 프로그램이나 유희처럼 꾸미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이책은 계속 살아남을 것 같다. 인공지능이 처음 논의되었을 때에, 인간의 뇌와 흡사한 인공지능이 조만간 나올 것이라고 예측되었었다. 하지만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인공지능은 인간의 목소리만 화려하게 따라하는 깡통수준이라고 한다. 전자책도 이와 같지 않을까. 아무리 종이책의 질감을 살리고, 종이책의 냄새를 복사하고, 시각적 피로함을 덜려고 노력하려고 해도 종이책이 가진 그 무형의 고차원적 가치를 따라할 수는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