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예술의 전당 '오르세 미술관'전을 보러 가려했다. 그런데 당일 예매한 표는 다음날 부터 입장할 수 있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에 당황하다가 마치 이걸 보러 왔다는 듯이 들어간 '르 코르뷔지에'전. 사실 바로 전날에 친구가 언급했던 건축가였다. 현대 건축의 아버지이며 아파트라는 개념을 창조한 사람. 그래서 '르 코르뷔지에'에 대한 완전 기초적인 정보를 가지고 감상하였다. 




1.

한마디로 천재인 사람이다. 물론 예술의 전당에 전시하는 사람치고 예술적 천재가 아닌 사람이 있겠냐마는....이 사람은 현대 3대 혁신을 이끈 사람으로 추앙받는다. 포드가 생산의 혁신, 빌 게이츠가 정보의 혁신을 이끌었다면 르 코르뷔지에는 주거의 혁신을 이루어냈다고 한다. 대단하다. 세계대전 이후로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도시로 밀려오자 주거에 대한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났다. 기존 건축 체제로는 한계가 있던 찰나, 그가 아파트 개념을 주창하며 현대 건축으로의 변혁을 주도했다. 물론 기존 건축가들과 예술가들의 엄청난 비난이 있었다고 한다. 투박한 건축물이 전혀 아름답지 않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사람의 편안한 생활을 위한 완벽한 기준을 제시하여 주거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사람이 살기에 적당한 크기의 집은 어느정도일까 라고 항상 생각했던 그는 '모듈러'라는 기준을 만들어냈다. 183cm의 사람이 팔을 위로 뻗었을때 나오는 길이 230cm를 생활의 기준으로 삼았는데 이것이 적당한지 물어본 아인슈타인에게 극찬을 받을 정도로 혁신적인 아이디어였다. 여기서 우리가 흔히 부르는 '4평의 기적'이 탄생한 것이다. 내가 딱 183cm이기에 모듈러에 최적화된 사람이라 그냥 기분이 좋았다. 




그는 현대건축의 5원칙도 만들어냈는데 1.필로티(지면에서 건물을 띄우는 방식), 2.옥상정원(필로티로 생긴 1층의 손실을 옥상정원의 휴식공간으로 만회), 3.자유로운 파사드(철근 콘크리트 방식을 사용하여 어디에든 문과 창을 달 수 있음), 4.자유로운 평면(벽이 하중을 견디지 않아도 되어 연속성과 개방성을 획득), 5. 가로로 긴창(역시 벽이 하중을 견디지 않아도 되어 파노라마식 창이 가능). 이 그것이다. 이는 철근 콘크리트를 대대적으로 활용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전에는 돌로 건물을 쌓아서 벽이 하중을 지탱해야 했고, 그래서 창과 문을 조그맣게 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철근 콘크리트로 하중이 완벽히 분산되어 건물을 공중에 띄워도 되고 벽을 온통 창으로 뒤덮어도 가능했던 것이다. 사실 건축의 ㄱ도 몰랐었는데 이 정도만 알아도 대학교 건축학과 1학년과 한 5분은 대화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운상가가 르 코르뷔지에의 현대건축5원칙을 원용하여 최초로 만들어진 건물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모두가 알듯이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사실 르 코르뷔지에는 면적의 극히 좁은 면적에 아파트를 집중시키고 나머지는 녹지로 활용하기로 원했다고 한다. 그는 자연을 이해했고,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극도의 효율만 추구했을 뿐이니...도시공학을 단단히 잘못 이용하고 있다. 미국의 센트럴파크처럼 강제적인 공원이 필요하다. 서울역 고가공원같은 완전 인위적인 것 말고...용산 미군기지 철수 후 공원이면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여유는 줄 수 있을 것이다.




2.

한 예술가를 대상으로 한 전시회는 언제나 신비롭다. 그의 파란만장한 삶이, 몇십년의 삶이 2시간의 관람시간에 응축되어 있다. 처음은 언제나 유년기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말년에는 그의 마지막 작품, 혹은 사진과 함께 시대가 사랑한 예술가라는 칭호가 붙는다. 신비롭다. 유년기와 말년의 작품이 한자리에 있다니 몇십년을 뛰어넘는 연결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흐름을 보려하지만 예술가는 과연 흐름을 표현하려 했을까. 예술가는 현재의 감정을 분출할 뿐이다. 10대의 드로잉이 80대의 유화를 예측이나 했을까. 우리는 10대와 80대에서 같은 것을 보려하지만 사실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우리의 인생도 일관되지 못한데 예술가의 인생이 일관되었다고 바라는것이 이상하다. 뭉크는 항상 절규와 같은 절망적인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라는 우리의 흐름. 하지만 그는 찬란한 그림도 그렸고, 행복도 느꼈다. 고흐도 그렇게 어려운 그림을 그렸던 말년에 동생 테오의 자식이 태어나자 가장 행복한 그림 '아몬드 나무'를 그렸다. 우리는 흐름을 보면 안되고 각각의 그림에 담긴 예술가의 감정에 공감해야 한다. 그러면 두 시간 내내 그의 몇십년 인생의 숨결을 같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출처

1.르 코르뷔지에전 포스터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374720

2.빌라 사보아 사진

http://blog.hwenc.co.kr/172

3.세운상가 사진

https://namu.moe/w/%EC%84%B8%EC%9A%B4%EC%83%81%EA%B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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