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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명수 컬처 시리즈 2
이언 M. 뱅크스 지음, 김민혜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1.

페이스북의 CEO인 마크 저커버그의 추천 책이다. 요즘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일단 유명한 사람들이 추천한 책을 읽어 그들을 닮아가자는 생각으로 읽게 되었다. 보통 추천책 하면 ‘총, 균, 쇠’처럼 묵직한 내용의 책이나 ‘손자병법’같은 고전 of 고전이 대부분이던데 SF소설이라 신박하기도 했다. 


정말 오랜만에 SF소설을 읽었는데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과학기술의 엄청난 고도화로 드론이 사람처럼 나오고 성별도 바꿀 수 있는 사회. 모든 자원이 충분해 돈이란 개념이 없고 무언가를 가지고 싶으면 바로 가질 수 있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일상을 보낸다. 체스나 바둑 같은 게임의 좀 더 고급버전?의 게임들을 하는데 게임을 엄청 잘하는 구게라는 인물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사는 ‘컬처’라는 문명에서 1등 정도의 수준으로 여유롭게 사는 도중 저 멀리 ‘아자드’라는 제국에 그들의 모든 것을 관장하는 게임에 참여하는 이야기이다. 체스와 비슷해 보이는데 말들이 살아 움직이는 형식의 게임을 통해 최종 승자가 왕이 되고 높은 라운드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장관, 판사와 같은 요직을 차지하는 사회에서 외계인인 구게가 다양한 사건에 휘말리는 이야기가 재미난다. 


읽고 나서 찾아보니 이언.M.뱅크스라는 작가는 이미 이 ‘컬처’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시리즈로 출간해왔다. 존재하지 않는 허구의 문명을 창조해 내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허구인 것을 알면서도 문명에 대한 디테일한 이야기들이 몰입도를 높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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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사람들 열린책들 세계문학 117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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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여기저기 돈을 다 쓰고 용돈이 떨어져서 먹고 싶은 것을 먹지 못한 때가 가끔 있었다. 예를 들어 버거킹에서 햄버거 세트를 먹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제일 작은, 거의 어린이 세트 같은 메뉴를 사 먹었어야 했던 기억. 그 당시 나는 스스로에게 왜 이렇게 가난하냐 젠장… 이라고 자책하며 먹었다. 길 가다가 맛있어 보이는 게 보이면 바로 사먹지 못하고 참아야 했던 순간에 스스로가 가난하다고 생각했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배부른 생각들의 연속이었다. 그때 돈이 없었던 이유는 여자친구랑 맛있는 것을 많이 사먹었고 친구들과도 술을 마셨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그저 먹고 싶은 걸 못 먹으니 가난을 들먹였다. 생각해보면 나는 가난을 제대로 마주해본 적이 없다. tv에서 후원금을 요청하는 공익광고가 나올 때나 신문 기사로만 읽었다. 서울역을 가면 지하철 역을 빠져나오며 볼 수 있는 노숙자들이 직접 마주한 경우에 속할 뿐이다. (그분들도 과연 진짜로 가난한 것인지 스스로 그렇게 원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는 가난에 대해 거의 상상에 준하는 정의를 가질 뿐이다. 오늘 벌어 오늘 먹고 사는 생활을 해 본적이 없어 그런 사람들이 어떤 심리를 가지고 사는지,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가난에 대해 진짜 마주해야 그들을 이해하고 도와줄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생각으로만, 이렇게 글로만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어야지 라는 말을 하는 것은 부족할 뿐이라고 책을 통해 깨닫는다.





2.

가난은 고통이다. 이 책에서 말하는 가난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는 그런 가난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는 극빈에 가까운 상태를 말한다. 저축을 통해 미래에 대한 꿈을 키우기는커녕 당장 주린 배를 채우는 걱정이 하루 종일 따라다닌다. 가난은 사람들을 불안의 그늘에서 살게 하며, 자신감을 잃게 만들어 자존감마저 상실케 한다. 가난은 남들이 하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지나치게 신경을 쓴다. 내 옷이 싸구려인 것을 사람들이 알아채며 어쩌지, 내 신발이 좀 닳아 버린 걸 수군거리는 건 아닐까? 그렇게 자기 식대로 해석하고 자책에 빠져 버린다. 이 책이 그런 심리를 가진 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혹시 병이라도 걸린다면 일용할 양식을 구할 길이 없어 삶이 끝장 날지도 모르는, 그야말로 절벽 끝에서 아슬아슬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그려냈다. 주인공인 하급 공무원 제부시킨과 그가 사랑하는 바르바라 사이의 편지 형식으로 구성되어 제부시킨의 유일한 희망인 그녀에 대한 열렬한 사랑이 더욱 안타깝게 그려진다. 그녀에게 꽃을 사서 보내기 위해 구멍이 숭숭 뚫린 옷이나 신발을 새로 사지도 못하고 오로지 그녀의 인정을 받기 위해 노력한다. 자신의 처지 때문에 적극적으로 구애하지도 못하는데 바르바라 역시 가난한 상황이기에 어쩌지를 못한다. 둘 다 마음이 있지만 너무나 가난하여 뭘 할 수가 없는 상태. 다만 편지를 통해서 서로를 걱정하며 위안을 얻을 뿐이다. 이내 여주인공은 처녀의 명예를 더럽힌 지주에게로 떠나게 된다.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렇게 제부시킨은 모든 것을 잃었다.


3.

가난해서 가장 미칠 것 같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픈데 아무것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여주인공 바르바라는 어린 시절부터 가난했는데, 어머니는 아픈 몸을 이끌고 일을 지속하다가 결국은 드러눕게 된다. 


P.84 – 어머니는 날마다 더 쇠약해져 갔다. 병마는 구더기처럼 어머니의 삶을 눈에 띄게 순식간에 갉아먹으며 무덤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걸 다 보고, 다 느끼고, 그저 이 모든 것에 안타까워하며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이 모든 일이 내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미칠 것 같은 상황이다. 돈을 빌릴 수도 빌릴 힘도 없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결국 그 사람을 보낸다면 내가 힘이 없어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져버릴 것이다. 


도스토옙스키는 본인이 가난한 인생을 살았기에 가난한 사람들의 심리와 행동을 날카롭게 그려낼 수 있었다. 이 책은 그의 처녀작인데 그의 전체 책 중에 유일하게 3번이나 고쳐 쓴 책이라고 한다. 그만큼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는 것이고, 제대로 표현해 내었다. 역자는 도스토옙스키라는 작가를 낳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지구상에 러시아인의 존재 이유는 충분하다고 했는데, 과연 맞는 말인 것 같다. 





<출처>

1.가난한 남성 사진

https://pixabay.com/ko/%EB%B6%88-%EC%8C%8D-%ED%95%9C-%EB%B8%94%EB%9E%99-%EB%B9%88%EA%B3%A4-%EB%85%B8%EC%88%99%EC%9E%90-%EC%8B%A4%EC%A7%81-%EB%8F%88-%EC%82%AC%EB%9E%8C-%EC%9C%84%EA%B8%B0-1775239/

2.손잡은사진

https://www.shutterstock.com/video/clip-9036973-stock-footage-pan-of-unrecognizable-elderly-person-holding-hands-with-anothe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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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키호테 1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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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사 소설에 너무 빠져들어 동네의 농부를 꼬드겨 종자로 삼고 여행을 떠난 돈키호테. 여행 초반부터 풍차에 냅다 들이박고 앓아 눕게 되고 회복 후에 다시금 여행을 떠난다. 죄수를 옮기는 중인 왕의 호송대를 공격하여 죄수들이 달아나게 하고, 일반 여관을 성이라고 착각하다가 숙박객들의 놀림감이 된다. 자신에게 잘못된 일이 발생할 때마다 마법사의 탓으로 돌리며 꿋꿋하게 여행을 계속하는데, 어느새 그의 이야기가 책으로 쓰여져 널리 퍼진다. 그래서 그를 알아본 어느 귀족의 성에 기거하며 귀족 부부의 장난에 그대로 넘어가 놀림을 받는다. 종자인 산초는 귀족에게 섬을 지배하는 자리를 받아서 꿈을 이루었다. 하지만 자신이 꿈에 그리던 삶과는 다름을 깨닫고 다시 돈키호테 주인에게 돌아간다. 그들의 끝없는 여행은 돈키호테를 마을로 돌려보내기 위해 백색 기사로 분장한 주민에게 패배하여 승리한 기사도의 명령대로 마을로 돌아가는 것으로 끝이 난다.  마을로 돌아온 돈키호테는 이내 시름시름 앓다가 통곡하는 산초와 마을 주민들 앞에서 숨을 거둔다. 성공한 덕후가 될 뻔했던 돈키호테. 제정신일 때는 그 누구보다 현명하고 올바른 말만하고 정의감에 가득 차 있었다. 종자의 말을 인정할 줄도 알았고 신학자와의 대화에서도 논리적이었다. 




내심 돈키호테가 편력 기사의 최고 영예인, 사모하는 공주로부터 인정받으며 끝나기를 바랬다. 하지만 공주 한 번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다른 기사에게 패배하였다는 슬픔 속에서 죽게 되어 아쉽다. 여행 내내 다른 사람들의 놀림감으로 취급된 것이 대부분이어서 막판엔 조금이라도 잘 되기를 바랬지만 현실은 항상 뜻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나약한 인간이 돈키호테도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꺾여 버린 것이다. 그의 꿈이 꺾여버려 슬프지만 그의 여정은, 꿈을 이루는 과정은 아름다웠다. 기사가 사라져 버린 시대에 자신의 이상을 밀어붙이는 모습에서 나는 그처럼 꿈을 따르며 살고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사회의 기준을 보며 그렇게 살고 있는데, 돈키호테 같은 사람을 보면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하고 혀를 끌끌 찰 것 같다. 하지만 정작 꿈을 이루는 과정중의 돈키호테는 다른 사람의 시선 따위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자기 꿈에 대한 확신.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바꾸는 것 같다. 돈키호테도 그에 대한 책이 나와 멀리 퍼졌으니까. 우리도 인생에서 한번쯤은 돈키호테처럼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는 여정을 떠나야만 한다.



2.

저자인 세르반테스는 전쟁에서 포로 생활을 하다가 11년 만에 귀국했다고 한다. 그의 몸값을 지불하기 위해 가족이 큰 비용을 치루었는데, 그가 돌아오자 집안의 경제 상황은 너무나 나빠져 있었다. 아버지는 이미 늙고 난청에 시달리고 있었고 나머지 가족들도 힘들게 버티고 있었다. 현실 앞에 젊은 시절의 문필가의 꿈은 짓눌려 버렸다. 그럼에도 어찌저찌 살다가 책들을 내게 되고 돈키호테라는 명작을 탄생시켰다. 돈키호테와 참 많이 닮은 그의 모습이 연상된다. 




P.683 – 산초, 무슨 말을 들었다고 해서 화를 내거나 괴로워하지 말게. 그랬다가는 결코 끝이 없을 테니 말이세. 자네는 자네 양심에 따라 살면 되는 거라네.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상관하지 않으면서 말이지. 함부로 말을 못 하도록 험담가들의 혀를 묶으려는 일은 들판에 대문을 세우려는 것과 마찬가지라네.

P.831 – 잠을 발명한 자 복받았으면 좋겠습니다요. 잠은 인간의 모든 근심을 덮어 주는 외투이며, 배고픔을 없애 주는 맛있는 음식이고, 갈증을 쫓아내는 물이며, 추위를 데워 주는 불이자, 더위를 식혀 주는 차가움으로, 결론적으로 말해서 무엇이든 살 수 있도록 어디에서나 통용되는 돈이자, 목동을 왕과 똑같이 만들어 주고 바보를 똑똑한 자와 똑같게 만드는 저울이며 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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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6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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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간관계에 대하여


실제 사건을 소재로 한 이 소설을 끝까지 다 읽으면 남자 주인공인 샤를르가 안쓰러워 죽겠다. 조용하게 살고 있던 시골 의사는 어느 농부를 진찰하러 갔다가 그의 딸 엠마에게 반해 결혼하게 된다. 시골에서의 의사라는 안정적인 일상과 집에는 아름다운 부인이 있으니 그의 신혼은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엠마는 그런 쳇바퀴 같은 삶에 따분함을 느끼게 되고 다른 남자에게 끌리게 된다. 젊은 귀족에게 한번 데이고, 남편에게 제대로 말하지도 못하고 끙끙 앓다가 결국 요양을 위해 부부가 다른 동네로 이사하는데 거기에서도 서기와 눈이 맞아 불륜을 이어 나가다가 역시나 열정적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런 불륜의 과정에서 많은 돈을 쓰고 돈이 떨어지자 사채업자에게 빌려서 쓰고 사채가 쌓이자 다시 사채를 써서 막다가 결국 가산을 탕진한다. 사채가 돌고 돌아 엄청난 이자로 돌아오고 거기에 충격을 받은 엠마는 음독을 한다. 아무것도 모른 채 시름시름 앓던 엠마를 걱정하며 집으로 돌아온 샤를르는 모든 재산에 대한 가압류와 엠마의 음독을 연타석으로 맞이하게 된다. 결국 엠마는 죽고 엄청난 슬픔에 휩쓸려 있던 샤를르는 우연히 다락방에서 상자를 발견하고 거기에서 엠마와 불륜남들의 편지를 발견한다…그리고 그는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2014년에 영화로도 개봉한 마담 보바리, 왼쪽은 불륜남1로 추정>


그 착하고 아무 문제없이 살았던 샤를르는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나. 그냥 바람 가는 대로 넉넉하게 살다가 나이 들어 푸근한 인상을 가진 의사 할아버지가 될 것 같았던 그의 삶은 꼬여도 너무나 꼬여버렸다. 더군다나 문제는 그에게서 기인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라고 한다면 부인이 불륜을 하게 된 낮은 매력도라고 해야 할까. 결국 사람을 잘못 만났기 때문에 인자한 의사 할아버지가 아닌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불운의 젊은 의사만 남았다. 그들이 결혼하기 전에 조금만 더 서로의 성향을 알았다면, 조금 더 연애를 했더라면 결혼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평생동안 연애 초기의 불 같은 열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니 오래 만나보아야 한다. 이런 진리는 결혼에 한정할 필요도, 이성 간 관계에서만 따질 필요도 없다. 사람을 잘 만나야 한다. 자기 자신의 완성도 물론 중요하지만 우리는 결국 같이 사는 사람들 아닌가. 내 친구들, 직장 동료, 동호회 사람, 선생님을 어떻게 만나냐 가 한 사람의 인생 절반을 만든다. 불륜을 다룬 소설에서 이런 좋은 관념을 다시금 느끼다니…저자인 플로베르는 명작가가 분명하다.




2.

스타일에 대하여


이 책의 진정한 백미의 스타일이라고 한다. 글의 리듬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스타일의 완성을 위한 그의 투쟁과 고난의 흔적이 책에 그대로 드러난다. 그가 책을 완성하기까지 4년 반, 주요 장면은 7번이나 다시 썼다. 자신이 원하는 소재가 아닌 동료에게 받은 실재하는 소재를 가지고 이렇게 오래 붙잡았다는 것에서 그의 고난과 투지를 엿볼 수 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이야기를 재미있고 문체에 맞게 딱 딱 쓴다는 것이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리듬, 높낮이를 느낄 수 있게 하는, 단어 하나 하나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고통스런 작업의 연속이란 걸 보여준다. 우리가 읽는 좋은 책들은 최종 결과물이기에 작가가 앉은 자리에서 주르륵 쓴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 산책하다가 영감이 떠올라 오래된 타자기에서 단번에 명문을 뽑아내는 작가여…하지만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4년동안 끈덕지게 글을 다듬을 자신이 없다면 책 쓸 생각을 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처절하게 외치는 듯 하다. 다만, 우리는 번역본을 읽기에 그것을 온전히 읽을 수 없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아있다. 관계대명사인 que를 써야 하는지, 아니면 qui를 써야하는지 소리내어 읽어보고 소리의 조화가 더 좋은 것을 사용했다고 하는 그 리듬감을 번역본에서는 느끼기 힘들 것이다. 이래서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배워야 한다. AI번역이 떠오른다고 해도 AI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 리듬감을 번역하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언어를 배워 그 스타일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건 인간만이 할 수 있다. 


<글에도 리듬을 넣어야 한다>


사실 나는 리듬감은 제쳐 두고 논리적 글쓰기에만 치중한 스타일이다. 논리 정연하고 반듯한 글을 쓰고 싶어서 신문사 교육센터에서 글쓰기 교육도 받았다. 그곳에서 쓸데없는 단어, 형용사, 부사는 모두 빼 버리고 정확한 의미전달만 되도록 글을 쓰는 연습을 했었다. 글이 단순해지면서 명확해지는 효과는 있다. 하지만 글에 생명력, 맛은 없다. 전체적인 글의 맛보다는 글의 구조를 따졌다. 예를 들어 서론, 본론, 결론을 딱 정해 놓고 어떤 소재, 어떤 사례를 넣을까 까지만 고민한다. 진정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한 단계 더 나아가야 한다. 단어들 간의 조화. 가만보면 이글을 쓰면서도 형용사나 여타 미사여구는 잘 쓰지 않았는데 조금 더 의도적으로 시도 해 봐야겠다. 



출처

1.마담보바리 영화 포스터

https://www.youtube.com/watch?v=17lo3AR8eSY

2.악보

http://www.musiclearningsite.co.uk/history-of-music-compos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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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04 10: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반듯하게 글을 쓰는 스타일입니다. 군인들 모포에 각을 잡는 것처럼요. ㅎㅎㅎ

윙헤드 2017-04-05 00:18   좋아요 0 | URL
저랑 비슷한 스타일이시네요ㅋㅋ그래서 저도 이제 시집같은 운율이 있는 글을 찾아 읽어 조금은 느낌있는 글을 쓰려고 마음은 먹었으나 시집에 선뜻 손이 가지를 않네요ㅜㅜㅋㅋ
 
파우스트 1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 이인웅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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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참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공부도 열심히 하고 알바도 해보고 여기저기 활동도 해보고 그런대로 노력해왔다.  노력하면서 힘든 점도 많았고, 노력해도 인턴 떨어지는 것처럼 안되는 것들도 몇몇 있었지만 노력을 했다는 것 자체에 만족했다. 열심히 살았고, 이력서에  몇 줄 휘갈겨 쓸 수 있을 정도의 경험들을 모았다. 대학교도 무탈하게 다녔고, 무탈하게 졸업할 예정이다. 남들보다 책 읽은 양도 많고, 신문도 매일 읽고, 게임도 안하니까 열심히 산다고 생각했다.

 

서곡 317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 법이니라

 

아이러니하다. 노력하는데 왜 방황을 하는 것인지? 노력하고 결과가 잘 나오면 방황하지 않고 올바른 길로 가는 거 아닌지? 라는  반감이 들었다. 더구나 이건 극 중 신의 말씀이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파우스트의 여정을 함께하고 보니 진정한 노력과 진정한 방황과 거짓된 나의 노력을 깨닫는다. 파우스트는  노력한다. 진리에 다다르기 위해 모든 학문을 섭렵했지만 진리는 찾을 수 없었고, 포기하고 죽음을 맞이하려 했다. 이때 메피스토텔레스가 나타나 그에게  최고의 향락을 보여주겠다고 약속하고 파우스트는 그의 손에 이끌려 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기도, 헬레나의  절대적 아름다움에 취하기도, 왕의 책사로 활약하기도, 영주가  되어 보기도 했다. 그동안 학자로서 살아왔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지만 파우스트는  결국 마지막에 가서야 노력을 포기하였고, 메피스토텔레스와의 계약과는 달리 구원을 받는다. 지금 이 순간을 멈추어 달라고 파우스트가 말하면 메시스토텔레스가 그의 영혼을 가져가는 것이 계약의 내용이었지만, 파우스트가 순간을 멈추어 달라고 한 이유가 진리를 깨닫기 때문이다. 파우스트가  말년에 깨달은 진리는 인간에 대한 사랑이지 않을까. 마지막 영주 시절 눈을 잃은 상태에서 자신이 사회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는 인간적 만족에서 노력을 포기하고 현재에 머물겠다고 한 점에서 그렇게 느껴진다. 그는 이상향, 진리를 찾기 위해  끝없이 노력했고, 그래서 방황했고, 결국에는 구원을 받았다.



 

진리에 대한 노력. 파우스트와 달리 우리는 진리에 대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 진리는 너무 추상적이고 형태가 없기 때문일까. 우리는  진리 대신 서로를 이기기 위해 노력한다. 공부, 인턴, 학교, 신문, 독서. 이런 것들은 진리를 향해 행한 것들이 아니다. 다만 다른 이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좋은 기회를 위해 거짓된 노력을 해온 것이다.  노력이라기보다는 경쟁이라는 말이 더 낫겠다. 그러니 방황도 없었다. 진리라는 추상적 목표가 아니기 때문에 해야할 것이 명확했다; 남들보다  더 열심히만 하면 된다는 것. 결국 방황 없는 노력만 지속해왔고, 신이  말하고자 한 인간이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다. 진리는 우리에게 당장 밥을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각자가  생각하는 각자의 진리만이 있을 뿐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 절대자에 대한 이해, 완벽에 대한 추구. 진리는 한가지로 규정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해야 할 것이 각자가 생각하는 진리에 대해 노력해야 하고 거기에 따르는 방황을 감내해야 한다라는 점은 명확하다. 그러려면 우선 각자의 진리를 생각해봐야 하는데 도통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돈을 많이 벌어 다른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다. 지금 돈이  없어서 이렇게 착한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지만 이전부터 다른 이들을 도우면 좀 더 좋은 사회가 될 것만 같았다.  미국의 척 피니, 빌 게이츠, 우리나라의 유일한, 션 처럼 나도 돈을 벌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꿈이라면 꿈인데 이게 나만의 진리는 아닌 것 같다. 201717일 신문에 나온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국내 최초로 어린이재활병원을 열었는데 자신의 돈 없이 기부금으로 시작해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결국엔 병원을  세운 인물이다. 이런 것 또한 하고 싶으니 돈과 좋은 사회의 연결은 사실 맞지 않는 거다. 사실 벌써 나의 진리를 알면 노력도 안하고 방황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계속 노력해야 할 것이다.

 

 

511495인간들은 일생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지내니, 파우스트여, 당신도 이제 장님이 되세요

 


근심의 여신은 파우스트가 영주 시절일 때 그의 거만함에 대한 대가로 눈을 멀게 한다. 이전까지는 자신의 영토를 늘리기 위해 바다를 메꾸고 사람들을 몰아낸 파우스트는 눈이 멀고 난 이후로 간척된 땅에 곡물이 잘 자라 많은 백성들이 잘 살게 된다는 행복감을 느끼고 구원을 받게 된다. 어떻게 보면  눈이 멀었기 때문에 그가 생각을 바꾼 것이라 볼 수 있다.


어쩌면 보지 못하는 것이 더 진리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인지하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은 대부분 이런 잘못된 인지를 자주 행한다. 제멋대로인 왜곡이  쌓이면 편향은 심해지고 진리에서 멀어질 뿐이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눈은 가장 쉽게 현혹된다. 중간이 끊어진 선을 보면 우리의 눈은 중간을 메꿔서 인식하고, 색도  주변 환경에 따라 다르게 인식한다. 사실과는 달리 제멋대로 인식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근심의 여신이 파우스트의 시각을 잃게 만들었고 시각을 잃은 파우스트가 백성에 대한 사랑을 깨달은 것은 아닌가 싶다. 우리도 때때로 너무 보이는 것에만 집착하는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엄청난 전자기기의 홍수 속에 잠자는 시간 외에는 눈이 피로한 현시대에는 더더욱 필요하다.

 


출처:

1.독서실사진

http://m.segye.com/view/20131013002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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