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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1
쓰루타니 가오리 지음, 현승희 옮김 / 북폴리오 / 2019년 2월
평점 :
“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은 소울메이트가 아니야. 덕질메이트지.”
tvN 드라마 ‘그녀의 사생활’에 나오는 대사다. 덕질이 일상인 나로서 격하게 공감했던 대사였다. 취향이 남다른 덕분에 주로 홀로 하는 덕질에 바쁜데, 때때로 취향이 맞으면 덕질메이트와 함께할 때가 있다. 혼자도 즐겁지만 함께하는 덕질은 얼마나 즐거운지!
쓰루타니 가오리의 만화 『툇마루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 1』에서 사야마 우라라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다. 우라라처럼 BL 만화 덕질을 하는 건 아니지만, 내성적인 성격 덕분에 홀로 덕질 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모습도 이럴까 싶었다. 그런 우라라의 앞에 덕질 메이트가 나타나는데, 3년 전 남편을 잃고 혼자가 된 75세 이치노이 유키 할머니다.
동네 서예 교실을 운영하며 느릿느릿 흘러가는 나날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우연히 들른 서점에서 예쁜 그림체에 홀려 <너만 바라보고 싶어>라는 만화책을 구매한다. 집으로 돌아와 여느 날처럼 시간을 보낸 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아, 맞다. 그거 샀었지.”하고 만화책을 꺼내 읽는데... 한 남학생이 또 다른 남학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난 너를 친구라고 생각 안 해. 계속 좋아했었으니까…… 싫어해도 괜찮아.” ……응? 아이고야. 어이쿠? 그렇다. 유키 할머니가 구매해 온 책은 Boys Love 만화였다.
약만 받는데 반나절이 걸리는 병원에서 할머니는 책을 꺼내드는데, 그 사이 구매해서 챙겨 온 <너만 바라보고 싶어> 2권이다. 할머니는 본인 이름을 호명하는 것도 모르고 책에 빠져든다. 뒷이야기가 궁금하니 3권을 사러가지 않을 수 없다. 병원에서 빠져나온 할머니는 그 길로 서점에 간다. 그때, 서점에서 일하고 있는 우라라를 만난다.
서점에는 3권이 없었고, 할머니는 주문표를 작성한 뒤 돌아갔다. 우라라는 집에 돌아와서 박스에 숨겨두었던 BL만화를 꺼내 읽는다. “빌려드릴까요, 라고 할 뻔했다…” 생각하면서.
시간이 흘러 서점에 주문서가 입고되었고 “이 책은 제가 전화해도 돼요?”하고 우라라가 책을 챙긴다. 입고되었다는 전화를 했고, 할머니와 통화를 했을 뿐인데 우라라는 즐거웠다. 3권을 찾으러 온 유키 할머니와 우라라는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할머니는 우라라에게 “차 한 잔 할래요?” 하고 제안한다.
“나는요, 집에서 서예 교실을 하는데 아이랑 노인밖에 안 와요. 줄곧 누군가와 만화 얘기를 나누고 싶었다우.”
그건 우라라의 로망이기도 해서,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인다. 내가 그리던 친구 모습과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말이다. 차 한 잔 하고 돌아가는 길. 이번에는 우라라가 먼저 입을 뗀다. “저기, 저… 오늘 얘기를 하나도 못해서… 죄송해요. 저는, 누구랑 이런 얘기한 적이 거의… 없어서…” 미안해하는 우라라에게 할머니는 “마음 써 주지 않아도 돼요. 무리도 아니지, 갑자기 이런 할머니가…” 하고 답한다. “저기, 진짜로 전혀… 그보다 오히려 기뻤거든요….” 서툴지만 진심을 전한 우라라의 말에 할머니는 이렇게 받아친다. “그럼… 이거 읽고 문자 보내도 되나?” “아, 네!”
둘은 밝은 표정으로 번호를 교환한다.
쓰다 보니 1권의 반절 분량을 이야기하고 말았다. 여기부터 진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백문이 불여일견. 직접 읽어야 한다. 전자책으로는 1권까지 나왔고, 종이책으로는 2권까지 출간되어있다, 로 마무리하면 영업하는 글에 지나지 않으니 좀 더 이야기 해보자.
우라라와 유키 할머니의 나이 차이만큼은 아니지만, 내게도 덕질메이트가 있다. 블로그로 연이 닿아 5년째 알고 지내는 별언니가 그렇다. 우리가 그해 만날 수 있었던 주제 이상으로, 영화와 뮤지컬, 전시·공연 등등 취향에 있어 비슷한 면이 많다. 종종 만나서 함께 덕질하고 이야기 꽃을 피우고 돌아온다. 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은 소울메이트가 아니라 덕질메이트라는 덕미의 대사에 공감했던 것도 별언니 덕분이었다. 오는 7월에도 별언니와 즐거운 덕질 두 건을 계획하고 있는데, 요즘은 이 힘으로 산다고 해도 무방하다.
책의 말미에 나오는 유키 할머니의 말이 오래 남았다.
다시 덕미의 대사를 떠올린다. 생에서 꼭 필요한 사람은 소울메이트일 수도, 덕질메이트일 수도 있다. 소울메이트와 덕질을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함께여서 더 즐겁고, 좋아하는 것에 한 걸음 더 나아가는 용기를 낼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일, 덕질메이트를 만나는 것 역시 삶에 있어 커다란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