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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근 / 책이 좀 많습니다

 

 

 

1월에 출간된 에세이 중 가장 기대되는 에세이는 이 책이었다.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책을 시작으로 윤성근 작가님의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는데, 이 책 역시 사람들 저마다가 가지는 책 이야기가

담긴 책이라 끌렸다. 일단 책 제목부터가 끌리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

 

*

 

젖은 책 다림질하는 노자 덕후_국어 교사 허섭
꿈을 읽는 컨테이너 도서관 _프리랜서 윤성일
코지 미스터리 좋아할 코지_번역가 이경아
너의 책을 읽어라, 누가 뭐라 하든지_대학생 김바름
한 시인의 전부를 담은 시의 집_국어 교사 김주연
책장에서 펼쳐지는 비정상 회담_기자 서찬욱
북 치고 책 읽고 책 싸고_판소리 고수 임영욱
부엉이 소굴에서 반짝거리는 만화책_북디자이너 이종훈
누워서 책 읽다 자고 일어나 책 읽고_인문학 연구자 최성희
너만의 판타지를 만들어봐_대학생 이종민
비움의 미덕 아는 활자 중독자_선교 정보 전문가 김재서
책 읽는 도깨비 책 있는 책꽂이_대안 학교 교사 전희정
오지 방랑자의 한옥 책 거실_회사원 정무송
책무지개 뜨는 붙박이 옷장_자유기고가 전영석
애묘하고 애서하니 야옹야옹_수의사 임희영
장래 희망 문인의 책 커버 뒤집기_대안 학교 교사 김유림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천천히 책 읽기_바리스타 김석봉
독서 교육보다 책 읽는 즐거움을_사서 교사 이영주

 

*

 

'너의 책을 읽어라, 누가 뭐라 하든지'라는 말이 참 와닿는다.

단순히 책이 많은 것보다는 자신의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을 가진다는 것.

나 역시 누가 뭐라 하든지 나의 책을 읽어나가련다.

 

 

 

 

하재욱 / 고마워 하루

 

 

 

우연히도 며칠 전에 하재욱 작가님의 <안녕 하루>를 재밌게 읽었다.

여전히 깊고 따뜻한 시선으로 가족가 생활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책.

<안녕 하루>가 울컥이었다면 <고마워 하루>는 와락이란다.

 

<안녕 하루>를 다 읽고 아쉬워서 두 번을 다시 읽고

결국 작가님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들어가 팔로우했다.

 

새로운 글을 받아본다는 점에서 페이스북 페이지는 반가웠지만,

역시 책을 곁에 두고 읽는 것 만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와락하고 울컥해도 되고, 울컥했다면 와락할 차례다.

 

언제 읽어도, 다시 읽어도 좋을 하재욱 작가님의

'언젠가 그리울 일상의 기록, 하루' 그 두번째 이야기.

 

 

 

 

다이나 프라이드 /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가 영화 속 요리들에 대한 책이었다면

이번엔 문학의 맛, 소설 속 요리들을 즐길 차례다.

 

 

 어떤 식사들은 그것들이 이야기 속에서 갖는 의미 때문에 기억에 남는다.

(본문 중에서)

 

 

정말이지 소설 속 어떤 식사들은 그 식사들로 소설이 기억되곤 한다.

내겐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속 설렁탕이 그렇다.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아내를 향한 김첨지의 말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설렁탕이 떠오르고, 가끔은 설렁탕을 먹다가 김첨지를 생각한다.

 

세계 명작 문학 속에도 설렁탕과 같은 요리들이 있다.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를 읽을 때 그러했던 것처럼,

이 책 역시 실제로 구현해낸 요리들의 사진도 궁금하지만

나는 역시 소설에 대한 작가의 이야기 쪽이 좀 더 궁금하다.

요리가 인상 깊은 요리로 남는 것은 맛도 좋아야겠지만

무엇보다 이야기가 담겨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이애경 /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내 휴대폰이 아니면 친구의 휴대폰에 배경화면으로 설정되어있을 것 같은

감성사진을 표지로 한 이 책은 이애경 작가님의 새로운 에세이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런던으로 훌쩍 떠난 홍인혜 작가님의

책이 떠오르는 제목인데, 이 책이 제목만큼이나 부제가 참 좋다.

'어떤 위로보다 여행이 필요한 순간'.

 

더 지치고, 더 외로워서 떠나고 싶을 때라도

나는 선뜻 떠날 수 없어서, 이렇게 찾아 읽나보다.

직접 떠나는 여행보다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책이 내게 분명한 위로가 될 거라 믿는다.

책장 한 곳에 나란히 꽂혀있는 작가님의 책 두 권이 그랬듯이.

 

 

 

 

 

박진형, 박은진 / 도서관 옆집에서 살기

 

 

옆집까진 아니어도 나 역시 도서관 근처에서 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서관을 자주 이용하지 않았던 건

책을 읽는 내 방식과 속도는 내 책을 읽을 때에 맞춰있기 때문이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읽느라 도중에 하차한 책들도 많지만,

읽는 속도가 워낙 느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읽어야 마음이 편해서

도서관을 이용하기보다는 주로 책을 사서 읽는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지난 해, 독서마라톤 덕분에 도서관 귀신으로 살면서

도서관의 매력을 알았다. 신간 코너를 가까이하고, 책등의 제목만 보고

골랐지만 읽어보니 재밌는 책을 발견하는 일이라던가

누군가 반납해서 북트럭에 놓여있는 책을 구경하는 일 등등

혼자 읽을 땐 결코 몰랐던 재미들이다.

 

이 책은 개인적인 이야기보다는 가족의 이야기에 가깝다.

도서관과 함께한 지음이네 가족의 행복한 독서 성장기, 그 3년의 기록.

 

 

빌게이츠의 말마따나 빌게이츠를 키운 건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고,

이 책을 마주한 부모님의 아이 역시 빌게이츠처럼 훌륭한 사람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려면 작은 도서관일지라도 옆집에서 사는 게 좋고,

그렇게 살면서 많은 책을, 그 속에서 좋은 책을 만날 확률이 좀 더 높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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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9월에 집에 있는 책 중에 노란색을 표지로 한 책들을 모아본 적이 있다. 그때는 9권이었는데 2년 후인 2015년, 6권이 늘어 15권이 되었다. (자리가 모자라 빠진 모모와 밤의 인문학을 합치면 17권) 체계적이진 않아도 나름 분야에 맞게 꽂아 두는 편이라 노란책을 이렇게 따로 모아두진 않지만, 가끔 이렇게 모아보고 싶어진다. 이를 테면 새로운 노란책을 읽을 때. 영국드라마 '마이 매드 팻 다이어리'의 원작 소설을 읽다말고 노란 책을 모으고 싶어진 거다. 노란책에는 신기하게 그런 기운이 있는데, 그건 아마도 내게 노란책들의 인상이 좋읏 인상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노란책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보통의 존재나 경숙님의 어나벨, 중혁님의 에세이와 소설도 좋고 서령님의 소설집들도 좋다. 마술 라디오는 겉표지가 노란색일 뿐만 아니라 속지도 노란색인 재밌는 책이다. 다음엔 초록-민트 계열을 모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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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5-02-04 0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색상별로 정리하는 서재.... 좋은데요♡

아.... 저에게도 노란색 표지 책이 많군요
좋아하는 내 마음의 대통령 때문에....

해밀 2015-02-04 23:45   좋아요 0 | URL
책을 찾기엔 조금 어렵지만,
노란 책을 모아두고 보면 기분 좋더라구요 :)

영결식날 본 노란물결이 아직도 눈에 선하네요.
제게도 오래도록 기억될 대통령이세요.

붉은돼지 2015-02-04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등의 색상별로 정리하는 서재를 어디선가 읽은 것 같은데
도무지 기억이 나질 않아요 ^^;;.

한번씩 서재에 변화를 주는 것도 좋을 듯 싶어요
책 찾기는 어려울 듯 ㅋㅋㅋㅋ

해밀 2015-02-04 23:47   좋아요 0 | URL
어떤 책인지 정말 궁금한데요*.*

저도 가끔씩 기분전환으로 이렇게 모으고
시간이 지나면 언제그랬냐는듯 잽싸게 원위치로 정리해둬요.
찾기는 영 어렵더라구요.ㅎㅎ

붉은돼지 2015-02-09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과 집>이라는 책이었어요
침대 옆 협탁 위에 있었어요. 작년 연말 쯤에 읽다가 그냥 그냥 그렇게 내버려둔.....
 

 

아무도 모른다


엄마가 치마를 마당에 벗어놓고 사라진 날
나는 처음으로 치마를 입고
이상한 나라의 미소를 알아본다

처음으로 엄마가 남의 집 대문을
몰래 따고 있을 때
그 집엔 당신 말고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아요
나는 엄마를 백일째 기다리다가
싱크대 밑으로 들어가
녹아버린 눈 같아요

엄마가 눈 위에 오줌을 눈다
얘야 날 왜 지붕 위로 데려왔니?
여긴 엄마의 흰 머리칼이
하늘로 다 날아갈 때까지 바람이 부니까요

눈이 내리면 나는 노트 위에 물을 그려요
누구의 일부라도 될 수 있는 물을

그런 말 마라 네 몸엔 분명
내 몸의 일부만 흐르고 있다

오랜만에 한 베개에 나란히 누우니 좋다
그런데 얘야 네 흰 머리칼 냄새 때문에
도무지 잠을 못 자겠구나
슬픔이 조금 모자라도 나는 길게 이어진다

당신의 치마 속으로 들어간
수십만 그루의 촛불들이 술렁인다
흰 구름의 일부처럼 당신은 인파 속에 잠들어 있다
대문을 열어두고
나는 당신을 찾으러 간다

당신이 더 이상 나를 못 알아보는 날부터
아무도 모른다
당신이 알아보는 나는

 

- 김경주 시집, 고래와 수증기 중에서 <아무도 모른다> 전문

 

 

*

지난 번 읽었던 박광수 작가님의 에세이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중 3부가 아른거렸다. 박광수 작가님의 일러스트 속에 징검다리를 건너려고 서 있는 한 소녀가 등장한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사이 소녀는 아이를 등에 업은 엄마가 되었고

마침내 저쪽으로 건넌 엄마의 곁엔 제법 자란 소년이 서 있다.

다음 장에는 아이를 남겨두고 건너온 징검다리를

되돌아 건너 가는 엄마의 모습이 그려진다.

엄마는 뒤돌아보지 않고 건너가며 늙어가고,

뚝방에 서서 그런 엄마를 지켜보던 소년은 성인으로 성장해 이렇게 말한다.

 

"치매란 자신이 젊은 시절 애쓰며 건너온 징검다리를 되돌아 건너 가는 것.

되돌아가면서, 자신이 건너온 징검다리를 하나씩 치우는 일.

그때 옆에 있는 당신은 답답하다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그녀에게는 당연한 일들. 그때 당신이 해야 할 일은,

그저 뚝방에 서서 손을 흔들어주는 일.

밝게 웃어주며 날 천천히 잊어달라고 비는 일.

안단테, 안단테..."

 

이 페이지를 읽고 한참을 먹먹해했는데, 찾아읽은 시집에서 다시 마주하게 될 줄은 몰랐다. 이런 이야기를 쉬이 지나치지 못한다. 엄마의 이야기 앞에서는. 더 이상 글을 잇지 못하는 사이에 노래 한 곡이 떠오른다. 강백수의 타임머신.

 

'어느 날 타임머신이 발명된다면 1999년으로 날아가
아직 건강하던 삼십 대의 우리 엄마를 만나 이 말만은 전할거야
엄마 우리 걱정만 하고 살지 말고 엄마도 몸 좀 챙기면서 살아요
병원도 좀 자주 가고 맛있는 것도 사 먹고 이 말만은 전할거야
2004년도에 엄마를 떠나 보낸 우리들은 엄마가 너무 그리워요
엄마가 좋아하던 오뎅이나 쫄면을 먹을 때마다 내 가슴은 무너져요'

엄마 이야기를 하려고 들면 왜 목부터 메는지. 출간된 당시에 구매해두고

아직도 다 읽지 못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이제라도 다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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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여전히 광수생각이 먼저 떠오르는 작가 박광수의 에세이. 서점에 갔을 때 읽고 싶다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는데, 도서관 북트럭에 올려져 있길래 빌려와 읽었다. 감상을 한 줄로 정리하자면 이렇다. 앞으로 작가 박광수하면 이 책이 떠오를 것이라는 확신. 물론 최근 책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광수생각은 워낙 어릴때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하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가장 인상 깊은 구절은 <참 서툰 사람들>에서 였다. '세상의 그 어떤 꽃도 흔들림 없이 피는 꽃은 없다. 지금 흔들리는 것, 다 괜찮다.'라는 구절. 도종환 시인의 시보다 이 구절을 먼저 접했기 때문에 참 와닿았던 것 같다. 후에 수필론 발표 수업 당시 내가 쓴 수필에 '지금 흔들리는 것, 다 괜찮다.'라는 제목을 붙일 정도였으니까. 지금 흔들리고 있는 거에 비하면 그땐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싶지만. 몇년 후, 나이를 좀 더 먹고 만난 박광수 작가의 에세이는 밑줄칠 구절이 넘쳤다. 내 책이 아니어서 밑줄은 못쳤고, 대신 독서기록장에 메모해 둔 구절들을 소개해본다.

 

 

 

 

*


아무에게도 조언하지 마라. 하지만 타인에게 조언하듯이 내 삶을 살아라. (p.50)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지점을 목표로 삼고 뛰지 마라. 그럼 쉽게 지치는 법이다. 그저 다음 한 발만 생각하며 성실히 내딛어라. 그렇게 성실히 가다 보면, 내 앞에 네가 처음 바라보았던 그곳이 있을 것이다. (p.54)

아픈 것은 아프다고 말하자. 무서운 것은 무섭다고 말하자. 힘든 것은 힘들다고 말하자. 세상 사람들은 속일지라도 내 자신에게만은 솔직하자. (p.56)

세상이 불이고 내가 칼이라면, 내가 지면 나는 녹아서 없어질 것이고 내가 이겨낸다면 나는 더 강한 칼이 될 거야. (p.58)

수중에 돈이 있어서 좋은 이유는, 돈이 있음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서 좋다기보다는, 돈이 있음으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들을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서 돈은 자유를 의미한다. (p.64)

자신보다 나은 사람으로 살려고 하지 말 것. 오직 자신으로만 살 것.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알 것. (p.74)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불친절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친절할 필요도 없다. 세상 모든 사람과 친구인 사람은 그 누구의 친구도 아닌 법이다. (p.98)

너무 안달복달 할 필요없어. 어차피 만나게 되는 사람은 꼭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 (p.192)

고백하고 또 고백하라.
인생의 가장 큰 영광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이라고 넬슨 만델라가 말했다. 사랑도 비슷하다. 고백하고 또 고백하라. 거절이 두려워서 고백을 못하는 사람은 달리다 넘어질 것이 두려워서 출발선에도 서지 않은 육상선수나 다름없다. 육상선수의 가장 큰 영광은 메달이 아니다. 가장 큰 영광은 자신만이 아는 자신의 노력이다. (p.203)

한계란, 종교의 믿음 같은 것이다. 한계가 있다고 스스로 믿는 순간, 한계가 생기는 법이다. (p.237)

나는 희망을 좇고 있고, 절망은 나를 좇고 있다. 나는 더 열심히 세상을 헤쳐나가야 한다. (p.259)

문학가.
만화를 그리고 책을 내며 내 책 속에 되도 않는 글로 간신히 백지의 면을 채운다. 글을 잘 썼으면 좋겠다는 간절함 속에서 우연히 존경하는 문학가를 만나 질문한다. 좋은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글은 머리나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니야. 엉덩이로 쓰는 거지. 엉덩이가 짓물러질 때까지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쓰고 또 쓰는 거야. 그렇게 오랜 시간 하다 보면 언젠가는 네가 원하는 좋은 글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야. 
역시 시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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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만을 남겨두고 한참을 책장에 꽂아두었던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일부러 남겨둔 건 아니었다. 중반까지도 읽기 힘들어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내려놓은 이유가 된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을 읽으려고 집어드니, 문득 끝을 내지 않은 이 소설이 떠올랐던 것이다. 또 지금이라도 읽지 않으면 내가 읽은 부분을 왜곡해서 기억한 상태로 이 책을 펼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다 읽은 소설은 역시나 온전하게 이해하긴 어려웠다. 이 책의 한국판 제목처럼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칫(-_-) 그렇지만 애초에 믿는 구석이었던 빨간책방을 두고 읽었던 책이라 완독하자마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편을 찾아 들었다. 1부에선 결말을 함구하며 떡밥을 날릴 때 함께 웃었고, 2부에선 예고했던대로 결말에 대한 거침없는 이야기를, 완독한 자만이 누리는 당당함을 즐기며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제목이겠지만, 다 읽은 사람에게는 의문을 넘어 다소 불편을 느끼게 하는 한국판 제목에 대해서는 나는 반반이다. 확실히 제목 덕분에 끌렸던 것도 있으니까. 의문이 들고 왜 불편한지는 읽으면 안다. 확실히 원제인 'The Sense Of An Ending'가 와닿기는 하지만, 원제로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들었을런지는 모르겠다.

인상 깊었던 구절은 세 구절.

 

*

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p.12)

 

"모든 역사적 사건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입니다." (p.15)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p.34)

 

*

시간 속에서 우리는 기억하며 산다. 다만 그 기억은 정확하지 않은데, 그런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서 확신을 이룰때 그것은 역사가 된다. 국가의 역사이건 개인의 역사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실된 말은 '뭔가 일어났다'일 뿐이다. 우리를 붙들고 형태를 부여하지만 정말로 잘 안다는 생각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 역시 시간이므로.

세 구절을 정리하자면 이렇게 될까.
인상 깊었던 동진님과 중혁님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이 부족한 기록과 맥락 속에, 말하자면 문헌 속에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죠. (김중혁)

결국 줄리언 반스의 필생의 테마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개인의 삶이든 역사이든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계속 교훈을 얻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고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과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이런 도저한 비관주의적인 생각이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거죠. (이동진)

이래서 다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편이 좋았다고 한 거였구나 하며 뒤늦게 공감했다. 방송 덕분에 즐겁게 책을 복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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