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만을 남겨두고 한참을 책장에 꽂아두었던 줄리언 반스의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일부러 남겨둔 건 아니었다. 중반까지도 읽기 힘들어했는데, 아무래도 그게 내려놓은 이유가 된 것 같다. 그러던 중에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을 읽으려고 집어드니, 문득 끝을 내지 않은 이 소설이 떠올랐던 것이다. 또 지금이라도 읽지 않으면 내가 읽은 부분을 왜곡해서 기억한 상태로 이 책을 펼칠 것 같아서였다.
그렇게 다 읽은 소설은 역시나 온전하게 이해하긴 어려웠다. 이 책의 한국판 제목처럼 내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칫(-_-) 그렇지만 애초에 믿는 구석이었던 빨간책방을 두고 읽었던 책이라 완독하자마자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편을 찾아 들었다. 1부에선 결말을 함구하며 떡밥을 날릴 때 함께 웃었고, 2부에선 예고했던대로 결말에 대한 거침없는 이야기를, 완독한 자만이 누리는 당당함을 즐기며 집중할 수 있었다.
이 책을 읽지 않은 사람에게는 흥미로운 제목이겠지만, 다 읽은 사람에게는 의문을 넘어 다소 불편을 느끼게 하는 한국판 제목에 대해서는 나는 반반이다. 확실히 제목 덕분에 끌렸던 것도 있으니까. 의문이 들고 왜 불편한지는 읽으면 안다. 확실히 원제인 'The Sense Of An Ending'가 와닿기는 하지만, 원제로 내가 이 책을 읽으려고 들었을런지는 모르겠다.
인상 깊었던 구절은 세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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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간 속에 산다. 시간은 우리를 붙들어, 우리에게 형태를 부여한다.
그러나 시간을 정말로 잘 안다고 느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p.12)
"모든 역사적 사건에 대해 우리가 진실되게 할 수 있는 말은
'뭔가 일어났다'는 것뿐입니다." (p.15)
"'역사는 부정확한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는 지점에서 빚어지는
확신'입니다."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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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속에서 우리는 기억하며 산다. 다만 그 기억은 정확하지 않은데, 그런 기억이 불충분한 문서와 만나서 확신을 이룰때 그것은 역사가 된다. 국가의 역사이건 개인의 역사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진실된 말은 '뭔가 일어났다'일 뿐이다. 우리를 붙들고 형태를 부여하지만 정말로 잘 안다는 생각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 역시 시간이므로.
세 구절을 정리하자면 이렇게 될까.
인상 깊었던 동진님과 중혁님의 이야기를 덧붙이고 싶다.
이 부족한 기록과 맥락 속에, 말하자면 문헌 속에 인간은 어디에 있는가, 마음은 어디에 있는가를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죠. (김중혁)
결국 줄리언 반스의 필생의 테마는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개인의 삶이든 역사이든 오류를 반복할 수밖에 없다. 그로부터 계속 교훈을 얻어서 앞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은 환상에 불과하고 우리는 인식론적으로 과거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이런 도저한 비관주의적인 생각이 그의 작품 세계 전체를 관통하는 거죠. (이동진)
이래서 다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편이 좋았다고 한 거였구나 하며 뒤늦게 공감했다. 방송 덕분에 즐겁게 책을 복기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