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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속의 서울 - 한국문학이 스케치한 서울로의 산책 ㅣ 서울문화예술총서 2
김재관.장두식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그러고보니 나는 한국의 근현대사를 역사책보다는 문학책을 통해 배웠다. 역사책에서 만난 역사는 나열된 사실들을 보며 읽고 암기해야 할 시험의 대상이었지만, 문학 책에서 만난 역사는 보고 울며 웃는 공감의 대상이었다. 태백산맥이나 장마, 엄마의 말뚝 같은 책을 보며 한국 전쟁의 아픔을 읽고, 광장, 손님과 같은 책을 통해 당시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생생하게 느꼈다. 조정래의 한강을 거슬러 읽어 오며 60년대에서 80년대에 걸친 전반적인 시대 상황을 보고, 난쏘공과 같은 책을 통해 특별히 그 시대에 난장이로 살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모습을 아파했다.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과 같은 책은 내게 개발 독재 정권의 폐해를 그대로 배울 수 있게 한 교과서적인 책이었고, 김원일의 푸른 혼은 나로 하여금 인혁당 사건의 부조리함에 다시 한 번 분노하게 했던 책이었다. 이렇듯, 나에게는 문학이, 특히 소설이 곧 역사 교과서였다.
문학 속의 서울이라는 책은 그런 의미에서 참 반가운 책이다. 수많은 문학 작품들 중 대한민국 역사의 많은 부분의 터가 된 '서울'을 생생하게 그려낸 문학 작품만 추려내 한 곳에 모은 책이기 때문이다. 서울 문화 재단에서 서울 문화 예술 총서라는 이름으로 발간된 책임에도 서울의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이 아닌, 어둡고 슬픈 과거들을 재조명했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새삼 시대가 새롭게 느껴졌다. 서울문화재단이라는 기관을 아는 건 아니지만, 괜히 생각하기에 불과 일,이십년 전에 팽배하던 "아아~ 우리의 서울, 아름다운 서울을 사랑하리라"라는 식의 노래와 꽤나 잘 어울릴 것 같은 이름의 재단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더 이상 어두운 현실 속에서 그 현실을 애써 외면한 채 아름다운 핑크빛 환상만을 노래하는 눈가리고 아웅, 시대는 그래도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이 책에 더욱 호감을 가질 수 있었다.
시대별로, 또 주제별로 작품들을 나눠 각 작품 속의 인물, 혹은 사건들에 대해 저자가 설명하고, 그것들이 가진 함의들, 그것들이 나타내고자 했던 서울의 모습에 대해 설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또 다른 많은 문학 작품을 만나게 하는 게이트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 작품 한 작품을 다루는 깊이가 조금은 아쉽다. 잘 몰랐던 작품은 잘 몰랐던 작품대로, 조금 더 소개됐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 잘 알고 좋아하는 작품은 좋아하는 작품대로 아, 이런 부분도 같이 서술됐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서운함. 오랫만에 반가운 작품들을 만나 옛 기억 새록새록 떠올리며 읽고 있는데 너무 빨리 끝나버려 조금 김이 빠졌다고나 할까? 암튼 그런 아쉬운 마음을 느끼며 이를 통해 내가 알지 못했던 다른 작품들이 다뤄진 깊이를 역으로 추론해 냈고, 그 책 역시 많은 부분을 다루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그만큼 아쉬움이 더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조금 덜 소개하더라도 깊이 있게 텍스트를 다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다. 물론 작가들이야 얼마나 아쉬웠을까,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지면이 모자라고, 작품 하나 하나가 나름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어 뺄 수도 없고, 결국 조금씩 조금씩 줄여가며 다 다룰 수 밖에 없던 마음 왜 모르겠는가.
지방에 살던 내 친구는 '서울' 하면 '남산 타워'가 제일 먼저 떠오른단다. 높게 뻗은 남산타워, 그 반짝 반짝 거리는 화려함은 온갖 문화와 예술과 정치와 경제의 중심인 이 곳에 대한 동경을 보여주는 상징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서울' 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 남산타워(와 같은 높은 곳-남산타워는 사실 안가봤답니다, 하하)에서 내려다 본 서울의 빼곡함이다. 화려한 불빛으로 반짝반짝 위장된 모습이 아닌, 빽빽하게 들어선 집들의 적나라한 모습.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풍경. 사람이 먼저 보이지 않고 집이 먼저 보이는 도시, 그런 도시가 내가 알고 있는 서울이다. 거주지를 마련하는 것이 최대의 과제이고, 그걸 위해 때론 개인의 평생이 희생되기도 하는 곳, 서울. 이 책 역시 서울의 그런 모습을 굉장히 큰 비중으로 다뤘다. 최수철의 '소리에 대한 몽상'은 처음 알게 된 작품인데 인간의 정이 점차 사라져가는 서울의 아파트 문화를 단적으로 잘 그려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창동의 '녹천에는 똥이 많다' 역시 맹목적 내집 마련의 꿈 뒤의 씁쓸한 뒷맛을 느끼기에는 그만이었다.
발전했다고 말한다. 또 극복했다고 말한다. 분명 발전한 것처럼 보이고 극복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떻게 발전했고, 무엇을 극복했는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잘 모르겠다.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려워졌고, 빈부 격차는 더욱 심해졌으며 사람들의 머리 속에 팽배한 물질주의는 신자유주의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포장돼 이러한 세태를 더욱 견고히 하고 있는 걸. 뭐가 옳고 그른지를 고민하던 사람들은 적어지고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어떤 불합리라도 서슴없이 자행하고 있는 사람들, 부족할 것 별로 없는 환경 속에서도, 그저 명품 가방을 사기 위해 술집으로 나가는 여학생들의 모습은 그 시대의 영자보다 더욱 슬프다.
2007년의 서울, 정말 발전한 거 맞나요? 정말 극복한 거 맞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