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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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그냥 편하게 술술 읽어넘기려는 심산으로 들었는데, 너무 읽는 데 너무 몰입해버렸나보다. 사실 생각해보니, 그렇게까지 몰입했을 객관적 이유는 없다. 그냥 젊은 애들이 하룻 밤 걸으면서 일어난 일? 우정? 사랑? 출생의 비밀? 사실 뭐 하나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이 책은 오히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기 때문에 특별하게 느껴지는 책이었다. 이건 정말 인정할 수 밖에 없는 온다리쿠의 매력. 흔들리기에 오히려 빛나던 청춘, 그 때이기에 할 수 있던 고민들, 가질 수 있던 마음들, 그리고 여전히 내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이 안에 있었다. 

실은 흔들림을 거부하고, 그저 얼른 앞으로만 나가며 어른이 되려 하는 도오루의 모습을 보며 너무 나 자신과 동일시해버렸는지도 모르겠다. 도오루가 그토록 자신을 붙잡고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토록 굳건하게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던 것은, 흔들리기 시작하면 본인도 본인을 겉잡을 수 없으리라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도오루의 내면은 오히려 더욱 불안정했음을 반증한다. 

'마음의 방비'

실은 나 자신을 지키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로운 문제라고. 그저 조금 흔들리고 무너지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스스로를 이렇게 지키려 애써왔는지 모르겠다. 감정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이 두렵고, 실은 저 바닥에 어떤 마음들이 존재함을 알면서 마주치지 않으려 빙빙 돌아가려 애쓰는 내 안의 모습들을 도오루를 통해서 볼 수 있었다. 허둥대지 않으려 늘 애써 여유롭고, 애써 쿨했으나, 실은 누구보다 허둥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토록 부정하던 다카코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었던 것은, 실은 자신의 모습에 대해 충분히 돌아보고, 고민하고 긍정할 수 있던 작업이 선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둘이 화해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부분에서 나는 내가 마치 그들이 된 양 어찌나 가슴이 두근두근거렸는지 모르겠다.) 의식은 굳이 자각하지 않는 듯 애썼으나, 자신의 무의식은 끊임없이 자각하고 있던 어떤 마음에 대해, 어떤 존재에 대해 긍정할 수 있다는 것은 실은 그 자신의 내면에 굉장한 변화가 있었음을 전제로 한다. 

이 일은 보행제가 있던 날 '하루의 기적'이라고 표현되지만, 실은 기적이 아니다. 걷는다는 일이 가져다 준 성실한 결과일 뿐이다. 걷기는 그만큼 매력적인 일이다. 빡빡하게 짜여진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오로지 두 발을 움직이는 것과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기에. 게다가 '마지막'이 부여해 주는 플러스 알파의 정서는 눈 앞에 마주치는 그 어떤 것도 그저 지나칠 수 없게 만들어 주는 묘함이 있지 않은가. 그냥 머릿 속에 드는 생각, 지나치고 있는 마음들, 이런 것들을 다 안고 거리를 마구 쏘다니고 싶어졌다. 그리고 얼마간은, 평소보다 좀 많이 걸었고, 또 당분간은 좀 걷게 될 것 같다. 무엇보다 매우 적절한 날씨와, 적절히 마음을 이끌어내주는 풍경이 콤보로 도와주고 있으니까. (--> 봄에 쓴 리뷰라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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