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롯 - 2007년 제3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신경진 지음 / 문이당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작가는 이 책을 ‘여자와 도박에 관한 이야기’라 정의하며 다소 도발적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 저자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자에 관한 이야기도 도박에 관한 이야기도 아니다. 사람과 세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저자는 카지노에 빗대어 실은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던 것이다.  슬롯은 한마디로 이길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된 세상, 우리의 감정이 어떻든 여전히 돌아가고 있으며, 심지어 세팅한 사람마저도 이길 수 없도록 프로그래밍 된 그 거대한 시스템을 살아가고 있는 여러 종류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예전에 한창 로또 광풍이 전국을 강타하던 시절, 헛된 꿈에 매달리는 사람을 보며 혀를 끌끌 차던 사람들에게 누군가가 얘기했다. 그들이 로또에서 수십억원에 당첨될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희박하나마 존재하는 그 확률이 그가 평생 일해서 그 돈을 벌 수 있을 확률보다는 높다고. 

삶의 유일한 희망이 불확실성으로부터 기인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매우 슬픈 현실이다. 현실은 현실에 아무런 희망을 주지 못하고, 우연에 기댄 환상만이 나의 현실의 유일한 희망이 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카지노. 아무 희망 없는 세상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느니 그보다 좀 더 높아 보이는 확률에 기대어 열정을 보이는 쪽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곧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이미 환상에 사로잡혔던 이들은 세상으로 돌아가기가 힘들다. 카지노가 죽음과 맞닿아 있는 이유다. 모든 것은 합법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들은 ‘운이 그들을 비껴갔을 뿐 룰은 공정했다’라고 믿고 만다. 

승자는 늘 불확실성 따위에 기대지 않는 이들이다. 시스템화된 구조 위에 선 자들. 세계에 발을 담그고 아웅다웅 사는 자들이 아니라, 정작 자신의 한 발은 살짝 그 세계에서 빼버린 채 교묘하게 그들의 불확실성을 이용하는 자들이 이 세계의 승자이다. 그들은 승리를 위해 조바심을 내지도 않고, 전전긍긍하지도 않는다. 이미 시작이 달랐으며, 이기도록 디자인돼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를 바탕으로 카지노를 통해 세상을 본다는 저자의 접근은 나름 참신했고 나 역시 그 시각에 일부 동의한다. 하지만  모든 것을 그 구조 내에서 설명하려 하는 작가의 시도는 세상을 지극히 단순한 곳으로 일반화시켜버리고 만다. 분명 세상에는 불확실성에 기대어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고, 그 불확실성을 교묘히 이용하며 자신의 확실성으로 치환하며 살고 있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리고 그 세계에 속하지 않은 사람도 존재한다. (책 속 주인공 같은) 

하지만 그와 상관 없이 살고 있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그와 같이 미지근하게 세상을 관망하며 살아가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제나름의 긍정적인 열정으로 자신이 속한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불확실성에 기대는 것이 차라리 이길 확률이 높은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당한 방법으로 자신의 삶을 견뎌내고 있다. 

따라서 카지노 속 세상은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해 줄 수 없으며 작가의 그 무기력한 시선(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지는 알겠으나)만으로 정의할 수 있는 곳도 아니다. 따라서 그 곳은 세계가 될 수 없다. 세상에 양극화나 무기력함 자체가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부정은 아니다. 다만 전체를 아우를 수 없는 범주의 어떤 이야기에 빗대어 크고 넓은 것을 정의하려 했던 작가의 욕심이 지나쳤다. 그렇게 얘기하고 싶었으면 쫌 잘하던가. -_- 

허공에 떠 있는 듯 끝까지 정곡을 찌르지는 못했던 내용도 문제지만, 실은 나는 작가의 문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빠르고 흥미진진하지 않음에도 술술 읽히는 문체, 그런데 문제는 꼭 술술 읽히다가 한번쯤 턱 걸린다는 거다. 그건 주로 작가가 무엇에 빗대어 어떤 현상을 설명한 부분인데, 그건 뭐랄까, 너무 노력한 티가 났다고 해야 하나? 적절한 표현을 생각해 내느라 고민좀 한 흔적이 보여서,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꼭 마음에서 나온 것 같지는 않은 표현이어서, 그리고 그게 너무 자주여서 '뭐냐, 이표현~' 하면서 한 번씩 탁탁 맥이 끊겼었다.

세계문학상은 이번 작품에 시상함으로 조금 그 성격이 명확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지는 모르겠지만 자극적인 소재를 삶과 인생으로 일반화시키는 작품, 조금은 톡톡 튀는 시도를 한 작품에 심사위원들이 후한 점수를 주는 것 같다. 대학 1학년 때 교수님이 아이들이 레포트를 내면 사실 너희들 수준은 내 보기에 다 비슷비슷하다며, 좀 더 참신하거나, 좀 더 노력한 흔적이 보이는 과제에 결국은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다고 하셨었는데, 이와 비슷한 맥락은 아니었을까 싶다. 

하지만 이쯤 되면 사실 내년 세계 문학상 심사대에는 온갖 자극적인 소재들이 다들 인생을 말하겠다고 시도하는 건 아닌지, 살짝 우려가 들기도 한다. 받을 만한 작품이 없다면 주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자존심과 공신력은 다른데서 세워지는 게 아니니까. 특히나 금액 따위가 세워줄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니까. 

실은 오지랖이 하늘을 찌르듯 넓고 걱정 둘째가라면 서럽다는 이 웬디 아가씨는 이 책을 읽으며 또 한가지 걱정을 했다. 세계 문학상에 작품을 낸 수많은, 어쩌면 미래에 좋아하게 될지도 모를 수많은 작가 지망생 분들. 절대적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그래, 내 작품이 상을 타기에 부족했겠지' 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 분명 누군가는 상대적 기준으로 이 작품과 자신의 작품을 비교하며, 내 작품이 이 작품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았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으리라. 

작품을 보는 눈과 기준은 누구나 다른 거니까, 부디 구체적 대상을 앞에 두지 말고, 자신이 지향하는 문학의 절대적 경지를 향해 끊임없이 정진해 주세요! 라는 당신의 예비독자의 바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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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쪼매 웃기다 2009-06-08 1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첫번째 작품이라는데, 노련하다고 말한다면,...웃기지 않나요? 글을 좀 못 읽는 편이시네요. 다소 거칠다고 봐야죠.
장편은 긴호흡으로 가는 건데, 술술 읽혔다면서 재미없다고 말하고, 웬디님은 자신이 무슨말을 하는 지 잘 모르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웬디님도 나름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인가 본데,...할 수 있으면 차라리 도전해 보시는 게 좋으실듯.. 셈부리는 것 같은 모습이 쬐매 안타깝네염.
" 내 작품이 이 작품보다도 낮은 평가를 받았구나,라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으리라." 자신의 상황은 아니겠죠?...ㅎㅎ

웽스북스 2009-06-29 13:26   좋아요 0 | URL
제가 요즘 알라딘에 잘 안들어와서, 이 댓글을 이제야 읽었습니다. 글을 좀 못읽는 편이시네요- 라는 말은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습니다. 겸허히 새기겠습니다.

사실 제가 글을 잘 못읽어서 그런지 쪼매웃기다님이 진짜 하시고 싶은 이야기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첫번째 작품이니까 노련하지 않다고 말하는 건 웃기지 않냐. 술술 읽히는 거면 잘쓴 거지, 술술 읽었다면서 왜 재미없다고 말하냐, 이런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장편은 긴호흡으로 가는 것이지만 술술 읽히는 것만이 꼭 미덕은 아니지요. 재미있다,가 역시 전부도 아니지만 술술 읽히면서도 그 재미조차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책도 허다하지요. 그런 의미에서 제 이야기가 왜 모순이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첫번째 작품이라고 해도, 평가는 객관적으로 받아야지요. 아울러 첫번째 작품이라 노련하지 않다,라고 평가한다면 제가 글을 잘 읽는 사람이 되는 건가요? 둘간의 연관성도 전혀 성립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참고로 저는 글쓰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소설을 써본 적은 없습니다. 그럴 깜냥도 안되고요- 그냥 평범한 독자일 뿐이지요. 다만, 이런 책이 대상을 받았다면 거기에 낸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정도는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