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산본에 사는 고등학교 동창  H의 집에 느즈막히 놀러가 와인을 마시며 놀았다. 나는 거의 1년 반만의 만남이었는데, 그러니까 H의 결혼식 이후로 애들을 못봤었나보다. 아직까지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는 6명쯤 있는데 그 중 유일하게 결혼한 친구가 H. (라고 말하면 다들 놀란다. 니들 나이가 몇인데? 로 시작해 결국 '끼리끼리 논다'로 끝나게 된다. 그런데, 사실, 나는 그녀들과 거의 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말에는 어폐가 있다. ㅋ) 


오랜만에 만나면 하는 일은 거의 기억의 조각들을 맞춰보는 일. 고등학교 졸업 이후 각자 다른 길을 걸었고, 현재는 삶의 방식이나, 생각하는 방식 등의  좌표가 다르기 때문에, (신앙관부터 정치관까지, 아마도...) 공통된 과거를 이야기하는 쪽이 훨씬 편하게 느껴진다. 거기에 공통된 주제가 어제는 하나 더 생겼는데, 무려 '건강 염려'였다. 오. 마이. 갓. 우리가 늙긴 늙었나봐요. 하지만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과거로 점철됐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하다가, 공부를 참 열심히 했던 H가 중3때 다른 방 불이 다 꺼진 걸 확인하고 잠들면서 공부를 했다,는 이야기로 시작해, (비평준화라 고등학교 입시가 있었다 ;) 컨디션 난조로 수능을 망쳤던 K의 대학 보내기 프로젝트 이야기로 넘어갔는데 나는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너무 수능을 망쳐서 당시 성적만으로는 서울에 있는 어지간한 학교에 들어가기 힘들었던 K를 위해 H가 입시자료집을 뒤져 모학교의 학교장 추천 전형을 찾아내고 (우리 때는 흔치 않았다) 그래도 개중 글쓰는 게 좀 낫던 내가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 같은 걸 써주고, 했던... 그러다 잠자코 듣던 H의 남편이, "근데 그러면 안되는 거 아니에요?"라고 하는데, 아, 이거 생각해보니 정말 큰일날 짓이긴 했다 -_- 자기소개서를 대신 써주다니...! 19세엔 그게 우정인 줄 알았다. 나도 참 바보같았구나. 암튼, K가 대학에 들어간 건 H는 본인이 그 전형을 찾아냈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나는 내가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를 너무 잘썼기 때문이라고 믿었고, 정작 K는 본인이 면접을 잘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ㅋㅋㅋ


누구는 어떻게 공부했고, 누구는 얼마나 놀았고, 뭐 이런 얘기들을 하다가, 문득 내 친구들 중에서는 내가 수능을 제일 잘 봤었다....는 걸 깨달았다. 고등학교 때는 기독교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었는데, 고2에서 고3으로 넘어가는 겨울방학에 후배들과 찬양집회를 준비하던 예비고3과 그렇지 않은 예비고3이 있었다. 나는 전자였고, 우리 학년의 수능 결과가 나오자마자 우리 후배 학년에서는 동아리 선배 중 내가 수능을 제일 잘본 것에 이상한 소문이 돌아서 '찬양 집회에 참여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나보다' 라는 풍조가 만연해서 -_- 집회에 참석하는 게 유행처럼 되어 버렸다. (그러고보니 그들이 내 실력이라고 생각을 안해준 게 참 괘씸하네. 이놈들) 나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집회에 참여했던 것도 아니었고, (그저 좀 더 같이 놀고 싶었을 뿐이고) 그렇다고 그들의 그런 신앙을 바로잡아줄 정도로 내가 엄청나게 깨인 의식을 가지고 있던 것도 아니고, 굳이 참여한다는 애들을 말릴 필요도 없어서, 그냥 그렇게 함께 겨울을 보냈었고, 후배 학년 아이들이 수능 결과는 미안하게도 참 정직했다. 


암튼, 그런 건 지나고 나면 다 부질없다, 라고 어른들이 말하면 '자기 일 아니라고 너무한다'고 생각했었는데, 곰곰히 따져보니 어제 만난 친구들 중에서 현재 받고 있는 급여는 내가 제일 낮을 듯 ㅋㅋ (까보지는 않았다) H는 몇 번의 파란만장한 이직 끝에 삼성경제연구소의 기획자로 들어갔고, P는 유학을 다녀와 코엑스 해외 전시팀에서 벌써 과장이고, K는 AI CPA 통과 후 전세계여성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화장품 회사라는(H의 말에 의하면 그렇다. 방문 판매 브랜드라 나는 정작 몰랐고 -지금도 기억이 안나고 - 당연히 가고 싶었던 적도 없던 브랜드) 곳의 재무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암튼, 그 때는 그 결과가 정말, 세상의 전부인 것 같았고, 그 서열이 마치 인생의 서열이라도 될 것처럼 여겨졌던, 더할 나위 없이 중대한 문제였으나, 결국은, 그 때는 듣고 나면 거세게 항의라도 하고 싶었던 어른들의 말처럼 '지나고 나니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내가 굳이 지금 그 시기를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게 다 부질없단다'라고 말하지 않는 것은 그 때의 나를 기억하기 때문이고, 결국은 겪어보지 않으면 아무리 부질없다고 말한들, 전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정작 지금의 나도 내 나이를 겪은 어른들이 '나도 너같은 시절이 다 있었다'고 아무리 말해도 여전히 귓등으로도 안듣는 것처럼.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성적의 순서보다 더 절묘하게 인생의 방향을 바꿨던 건 순간의 선택들이고 그 선택지 앞에 놓여졌을 때에는 내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인지, 그에 근거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등이 결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친구 중 연봉서열 4위지만, 내가 4위의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할 정도로 단순하지도, 극단적이지도 않은 사고 구조를 갖게 됐다.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다.


'자주 만나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왔지만, 그래봐야 우리는 아마도 일년에 두 번 정도 만나면 많이 만나는 것일 게다. 추억을 나누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곱씹기엔 한계가 있고, 현재의 삶이나 생각들을 나누기엔 묘하게 달라진 삶의 좌표들이 서로 맞물리지 못해 서걱거리고 있고, (다르다고 대화할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시간의 간극과 함께 그것들을 극복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실은 그 생각의 좌표가 제일 많이 변한 게 나이기 때문에 스스로 더 피곤하게 느끼는 것인지도.) 미래를 논한다는 건, 아, 너무나 아득한 일이니까. 함께 곱씹던 추억이 바래질 때 쯤, 또 만나 추억을 나누고, 늙어가는 모습을 바라보고, 때로는 함께 서러워하고, 함께 웃고 하게 되겠지. 그 또한 나쁜 관계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p/s

 

고등학교 때 친구들 만난 이야기를 굳이 남겨본 건, 하필 어제 H의 집으로 가면서 읽었던 책이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였기 때문. 불충분한 문서(여기서는 아마도 각자의 진술)와 기억이 만났을 때, 그리고 나의 입장이 만났을 때 나는 어떤 글을 쓰게 될지 궁금했기 때문. 역시 나한테 유리한 것들이 더 선명하게 기억나고, 그것 위주로 쓰게 되는군. ㅎㅎㅎㅎㅎ 나중에 알고 보면 후에 K에게 써줬던 자기소개서와 학업계획서가 사실은 정말 엉망이라는 걸 알고, 충격과 회한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오그라들어할지도. ㅎ (열아홉에 어줍잖게 썼던 글이 눈에 찰 리 없지 않은가.) 암튼, 인간이란 참 재밌고, 처량한 존재다. 물론 나를 포함해서....ㅎ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아. 이 책은 무척 재미있다. :)

 

 

 






잠이 안오니, 밑줄 투척.

 

그런데, 왜 우리는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유순해진다고 생각하는 걸까. 잘 살았다고 상을 주는 게 인생이란 것의 소관이 아니라고 한다면 생이 저물어갈 때 우리에게 따뜻하고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할 의무도 없는 것 아닌가. 생의 진화론적 목적 중에 향수라는 감정이 종사할 만한 부분이 과연 있기나 한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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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우리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얼마나 자주 할까. 그러면서 얼마나 가감하고, 윤색하고, 교묘히 가지를 쳐내는 걸까. 그러나 살아온 날이 길어질수록 우리의 이야기에 제동을 걸고, 우리의 삶이 실제 우리가 산 삶과는 다르며, 다만 이제까지 우리 스스로에게 들려준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우리에게 반기를 드는 사람도 적어진다. 타인에게 얘기했다 해도, 결국은 주로 우리 자신에게 얘기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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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깊이와 세월의 흐름은 비례하는 걸까? 소설에선 물론 그렇다. 그렇지 않다면 스토리라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실제 인생에선 어떨지 가끔 궁금해질 때가 있다. 우리의 태도와 견해가 바뀌고, 새로운 습성과 기벽이 생기긴 하지만, 그건 뭔가 다른 것, 이를테면 장식에 가까운 것이다. 어쩌면 인성이란 다소 시간이 지나서, 즉 이십대에서 삼십대 사이에 정점에 이른다는 점만 빼면, 지성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그 시기가 지나면 우리는 그때까지 쌓은 소양에 여지없이 고착되고 만다. 우리에겐 우리 자신뿐이다. 그렇다면 그걸 통해 여러 인생을 설명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 폼 잡고 말하려는 건 아니지만 - 우리의 비극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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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2-04-09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25 끝에 첫 댓글의 영광을! :)

웬디양님, 글 정말 잘 읽었어요. 연봉 서열 4위를 시인하면서도 'ㅋ'을 쿨하게 칠줄 아는 웬디양님은 역시 멋져요! 저는 고교동창을 만나면 꼭 이상하게 꼬임에 빠지게 되더라구요. 어디 교회에 끌려가거나 무슨 잠적설에 대한 해명을 듣거나. 가끔 추억을 이야기하고 만나서 회포를 푸는 관계는 퍽 좋은 것 같아요. 그걸로 과거가 일시적으로나마 살아나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일기를 들춰보는 것도 재밌겠지만요. 10년 뒤의 나와 내 친구들은 어떤 모습일지 실로 궁금해지는 따뜻한 오후네요~

웽스북스 2012-04-09 20:41   좋아요 0 | URL
우힝. 감사요 수다쟁이님. 까딱하면 무플 될뻔했어요. ㅋㅋㅋ

나이가 들면서 관계도 변하고, 관계에 대한 기대도 변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과거를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역시나 한계가 있다는 느낌도 받고요. 암튼, 옛 친구들과 정말 오랜만에 만나고 나니, 오만가지 생각이. ㅎㅎ

하지만, 따뜻한 오후를 선사했다니 기쁩니다 :)

개인주의 2012-04-10 11: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건강염려가 추가되는 거 심하게 공감되네요.ㅋㅋ
얼굴이 마비되니까 얼마나 애매한지.
- -

웽스북스 2012-04-13 01:28   좋아요 0 | URL
앗 스누피님. 갑자기 이 무슨 일입니까 ㅠㅠ 지금은 좀 어떠신지...

굿바이 2012-04-10 1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재까지 연락이 되거나 혹은 끝까지 가끔이라도 연락을 하는 친구들 중에서 나는 연봉 꼴찌를 달리고 있는데, 그 사실에 나보다 그들이 더 놀라는 것을 보면, 타인을 안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언제나 그러하듯 그저 밥벌이라도 할 수 있는 내가 참으로 대견한데 말이야^^

오늘은 목련이 핀 걸 보았는데 생전 처음으로 목련을 보는 사람처럼 나는 놀라고 또 탄식하고 꽃나무 아래 한참을 서있었어. 그러면서 생각했는데 앞으로 나는 지금 살아왔던 것 이상으로는 절대 살아갈 수 없겠구나 싶더라. 잘 지내지?^^

웽스북스 2012-04-13 01:30   좋아요 0 | URL
언니, 그러니까, 저도 지지난 토요일에 버스를 타고 가다가 합정에서 목련을 보고 한 정거장 먼저 내려 다시 되돌아갔어요. 목련은 그런 꽃인가봐요.

그리고 언니의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근사할 거라 믿어요. 물론 근사하다, 의 기준이 남들과 다를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언니와 저는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테니까.

그러니까, 언니는 무조건 짱. 저는 목련보다 언니가 훨씬 훨씬 좋아요! 훨씬 훨씬 예뻐요!!

카스피 2012-04-10 2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봉과 상관없이 만날수 있는 학창 시절의 친구들이 많다는 것이 넘 부럽네용^^

웽스북스 2012-04-13 01:30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이제 많지는 않아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