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어떻게 되야지, 라는 투철한 목표를 가지고 매진한다는데, 왠걸, 내 삶을 되돌아보면, 내 삶은 팔할이 디마케팅이었다. '곱게 늙기'를 인생의 과업으로 설정하고 나니, 몸서리쳐지게 싫은, 곱지 못한 모습들이 너무 많이 눈에 들어와,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이렇게 되지 말아야지, 가 하나 둘 쌓이다보니 오늘의 내모습이 된 것 같다. 명확한 목표 없이 계속 이렇게 디마케팅만 하다가, 이도저도 아닌 사람이 되는 건 아닐까 고민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러다보면 또 어떤 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세상에, 명확한 목표같은 게 어디 있담.  


- 작은 물에서 대장되고 싶어서 완장 차지 말 것
- 싫어도 원만한 관계를 위해 좋은 척 하지 말 것
- 완벽히 이해하지 못한 것을 내 중심으로 생각하고 결론내리지 말 것
- 까칠함, 시니컬함을 멋있음과 혼동하지 말 것
- 비판이 무조건 정의롭다고 생각하지는 말 것
-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삶을 살지 말 것
- 작은 이익을 위해 품위를 저버리지 말 것


그 외에도 더 많은데, 잘 기억이 안난다. 삶으로는 기억하고 있을 게다. 아마도.

정한아의 <나를 위한 웃다>에 수록된 '댄스 댄스' 라는 단편에는 가난한 아버지가 딸에게 모든 것을 다 잃어도 품위를 잃어서는 안된다며, 그것만이 나의 유산, 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도 있을지 없을지 모를 내 자식에게 단 하나를 물려준다면, 품위, 를 물려주고 싶다....고나 할까.

라고 말하다보니, 꽤나 품위있게 사는 것 같은데, 여기서의 품위, 란 뭐 고상하고, 우아하고, 그런 것은 아니다. 눈에 빤히 보이는 행동으로 다른 사람 눈살 찌뿌리게 하지 말기, 정도로 이해해주시면 좋겠다.


실은, 요즘 나의 모토 중 하나는 '유치하지만 천박하지 않게' 이다. (목표 없다며!)
난 매우 품위 있게, 유치한 사람이 될 작정인데 날이갈수록 유치뽕짝해지는 건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일주일에 두번씩은 '이런 유치한 것!!' 소리를 들으니 말이다. 이제 천박해지지만 않으면 성공인데, 그래서, 스스로, 천박하게 보인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자꾸만 디마케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미안하게도, 삶에서 그런 사람들을 조금씩 배제해 나가고 있다.

좋은 것, 좋은 사람과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짧다. 적어도 내게는 그렇다.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1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1-08-08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싫어도 좋은척 하지 말것, 에 대해서는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것 같아요. 저는 그걸 안해서 어떤 경우, 비난의 대상이 되구요.
예전에 사귄 애인이 제게 많은것을 가르쳤고 저는 그의 대부분을 수용했지만, 너무 솔직하지는 마, 라고 했던 조언에 대해서는 아직도 듣지를 못하겠어요.

웽스북스 2011-08-08 23:48   좋아요 0 | URL
어쩔 수 없이 좋은 척을 하는 게 최소한의 예의인 경우에는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자발적으로 달려가서 와락 안기지는 않으려고요. ㅎㅎ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야겠죠 -_- 결국에는 적정선의 문제인데, 그걸 잘 감지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

다락방님의 그런 모습이 누구에게는 비난의 대상이 되지만, 또 저는 그런 이유로 다락방님을 좋아하잖아요! 천하를 버리고 절 얻으세요. (뭐래! ㅎㅎㅎ)

다락방 2011-08-08 23:49   좋아요 0 | URL
싫어도 좋은척을 하는 사람이란걸 안다면요 웬디양님. 부작용이 생겨요. 저 사람은 싫어도 좋은척 하는 사람이잖아, 나한테도 그러는거 아냐? 하는 거요. 모두를 지키려다가 모두를 잃는 양치기소년이 되겠죠, 그런 경우.
너무 솔직한건 잔인한 거라고 저도 생각해요. 그치만 솔직하지 못해서 상처를 주게 되는 경우보단 그나마 낫지 않나 싶어요.
윽. 제가 너무 제 생각대로만 말해서 정리가 잘 안되는데, 웬디양님이 이 댓글을 이해하실까 몰라요;;

웽스북스 2011-08-08 23:54   좋아요 0 | URL
아니, 저의 이해력을 뭘로 보시는겁니까. 흑흑.
꼭꼭 씹어 이해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누구엄마 2011-08-0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목록만 해도 대단한 목표처럼 보여요. 생각보다 은근 쉽지 않다니까요.

싫어도 좋은척. 이건 어렵기도 하고 사람들마다 원하는 '좋은척'의 수준이 달라서
사회생활에 가장 영향을 많이 주는데 그냥 제멋대로 하고 있어요. ㅡ_ㅡ+
완벽히 이해못한 것... 요건 특히 좀 신경써서 지켜나가려는 것 중 하나에요.
이게 생각보다 별 생각없이 쉽게 제 머리속에서 막 결론내게하더라고요.

유치해야 유쾌하다는 게 제 모토기도 한데,
대체 어떻게하면 일주일에 두번 유치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나요? *_*

웽스북스 2011-08-10 00:50   좋아요 0 | URL
앗!! 어른 아이다. 오랜만이야.

내가 보기에 당신은 그냥 살던대로 살아도 일말의 문제가 없어보입니다. 당신처럼 딱부러진 삶도 쉽지 않지요. 유치하다는 말 듣고 싶으면, 어이없는 유머를 막 날리면 돼. 그치만, 시우가 보고 배울라 ;;; ㅎㅎㅎ

pjy 2011-08-09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인간성을 돌아보게 하시는군요^^;
전 요즘 싫어도 다 티내지말고 제발~~~~~ 표정과 말투를 조심하자! 입니다ㅋ

평소 안하무인 생활이 짐작되는 목표인거죠~

웽스북스 2011-08-10 00:51   좋아요 0 | URL
아. 표정관리가 안되시는.... pjy님이시군요!! ㅎㅎㅎㅎ
실은 저도 표정에서 다 티가 납니다 ;;; 문제적 안면근육이죠 ㅜㅜ

비로그인 2011-08-09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간 머릿 속이 하얘졌어요. 나도 뭔가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웬디양님 목록 중에서 '척하지 않기'는 제게 가장 필요한 덕목인 것 같아요.
솔직해져야겠다는 생각은 매번 하는데 진짜 솔직한 게 뭔지 아직 헷갈린달까요?
남의 기준과 내 기준을 뚜렷하게 구분하는 것에 서투른 듯한 ㅡ,ㅡ;;

저도 저만의 목록을 하나 만들어봐야겠어요.
8할이 디마켓팅인 삶도 저는 멋있다고 생각해요 웬디양님!

웽스북스 2011-08-10 00:59   좋아요 0 | URL
목록 만들고 따박따박 지키는 스타일은 저도 아니에요. ㅎㅎㅎ 다만 나이들수록 싫은 것들만 늘어나서, 어떤 경우엔 저렇게 보이기도 하는구나, 싶어 조심하자는 차원 정도이지요. 물불 안가리고 목표를 향해서만 매진하다보면 놓치게 되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서요.

뭐 암튼, 전 별로 멋있다고 생각 안해요. 수다쟁이님이 쓴 웃음, 에 대한 글이 훨씬 멋있던데요. :)

2011-08-10 1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11-08-10 22:39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어차피 그분도 디마케팅 대상 :)
뭔가가 그분을 건드렸나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뭐, 그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