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TV 키드였다. 어릴 때부터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텔레비전을 보는 걸 더 좋아했고, 한 번 보면 빼놓지 않고 봤다. 초등학생(삐~국민학생!)이었던 TV키드로서의 삶은 중학교, 고등학교에까지 이어졌었다. 어린 시절엔 천사들의 합창을 봤고, 5학년 3반 청개구리들을 봤고, 스필버그의 어메이징스토리나 소머즈 같은 프로그램들을 봤었고, 좀 더 머리가 굵어져서는 남자셋, 여자셋, 카이스트,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대학생활을 막연히 그려보기도 했었다.
그러다 P도시에 있는 H대학으로 가면서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됐는데, 나의 가장 큰 걱정은 당시 절찬리 방영중이던 <순풍 산부인과>를 못보게 되는데 이를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난 친구와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기숙사 휴게실에 함께 가서 순풍 산부인과를 꼭꼭 챙겨보자고 약속도 했건만, 바쁜 대학생활은 드라마 같은 건 금방 잊게 만들어줬었다. 그 때 나는 내가 TV를 보지 않고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방학 때 집에 가면 여지 없이 TV를 챙겨 봤었다. 그 때부터는 취향이라는 게 형성되어 김병욱의 시트콤, 인정옥의 드라마는 빼놓지 않고 보게 되었고, 그 외에도 노도철, 김석윤, 노희경, 이경희, 신정구 등의 이름을 신뢰하게 되었던 것 같다.
회사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다시 TV를 줄였다. 줄이려는 의지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룰라와 투투를 구분 못하는 어른들을 보며 쯔쯔거렸던 내가 소녀시대가 몇 명인지도 모르는 사람이 됐고, 예능은 거의 보지 않아 갑자기 유재석이 왜 저렇게 인기야? 라고 물어보기도 했었다. 물론 시즌별로 한두개씩은 꼭 챙겨봤었다. 힘든 하루일과를 마치고 돌아가 매일매일 챙겨보던 하이킥은 일상의 단비였고, 최근 열광한 시크릿가든은 주말을 기다리는 이유였다. 베토벤바이러스 막방은 무려 CGV에서 아이맥스 단관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한번에 두개 이상의 프로그램에 열광한 적은 없었고, 아예 TV 없이 사는 삶이 익숙했었는데,
최근 보는 프로그램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주변에 영향을 끼치는 사람들이 생기는데다가, SNS를 통해 친구들 때문에 보게 되는 프로그램도 생기다보니, 현재 보기 시작한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 ;;
놀러와 / 팀장님이 세시봉으로 추천하시고 C님이 블로그 글로 확인사살 박아주셨다. 게스트 마음에 안드는 날은 안볼거지만, 제작진들의 섭외기획력이 참 뛰어나고, 진행자들의 개념 진행도 마음에 들고 여러모로 재미지다. 지난 주엔 김광민 때문에 기절하는 줄 알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 신뢰리스트에 있는 노도철 PD의 드라마 재기작. 박정수 때문에 울었고 (초기엔 그랬다. 정원이가 자기 딸 아니라는 거 처음 알았을 때. 지금은 좀 얄밉..) 고두심 때문에 울었고, 정원이 때문에 울었고, 금란이 때문에 울었다. 하여튼 눈물 질질 콧물 질질 하며 보고 있다. 발연기 거의 없고, 유일한 발연기인 한서우와 미란이는 발연기가 컨셉인듯 귀엽다. 유일하게 챙겨보는 드라마
나는 7ㅏ수다 / 이소라 때문에 봤다. 현재 방송 쉬고 있지만, 김영희 복귀를 외치는 사람도 많지만, 나는 신정수표 나는 7ㅏ수다가 궁금하다
무한도전 / 이상하게 내가 무한도전을 볼 때마다 사람들은 '오늘은 이상하게 재미없는 날' 이라고 했다. 토요일 저녁엔 거의 약속이 없어 인연이 없었는데 요즘에 몇번 보게 되면서, 볼 때마다 감탄 오브 감탄이다. 김태호 천재론에 동감할 수 밖에 없는 거다.
위대한 탄생 / 이것 역시 C님의 강추, 주변의 들썩임... D님의 노지훈사랑...등...의 영향으로 본지 3주 되었다. 박혜진의 진행은 김성주보다 훨씬 안정적이고 덜 자극적이라 좋다. 슈스케보다 애들 개인 사생활 덜 털어먹어서 좋고. 멘토제도 좋은 도입이다. 다만, 김태원의 희망드립, 이제 그만해주었으면 싶기도 하다. 슈스케에 이어 위탄까지, 왜 사람들은 인생 역전과 기적을 보고 싶어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사회가 그만큼 암울한건가...
위대한 탄생과 나는 가수다를 보면서는 이제 모창의 시대에서 개성의 시대로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엔 모창대회가 인기였는데, 요즘은 익히 알고 있는 노래들을 자기 컬러로 소화해내는 것을 사람들이 더 즐거워한다는 느낌이다. 나 역시 나름 즐겁게 그런 무대들을 보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의 프로그램이 추가되었으니, (아 같은 프로그램이니 하나로 칠까...ㅋ) 우리들의 일밤 - 신입사원이다. 어제 잠깐 회사 과장님 댁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봤는데, 출연자 한 명 때문에 정신을 놓고 봤는데, 우와, 그동안 수많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봤어도, 이렇게 멋지고 마음에 드는 출연자는 처음인거다. D님은 노지훈에게 누나라고 불러도 돼, 라고 했는데, 나는 그 친구에게 가서 친구하자고 말하고 싶다. 물론 나보다 네 살 어리다. 저는 저런 스타일이 좋아요, 라고 말하니, 역시나 시집가기 힘들겠다며, 잘생긴 얼굴에 지적인 이미지까지 있어야 좋아한다며 끌끌, 그러게요, 나는 흑흑.
암튼 이 친구 때문에 신입사원 지난 두개 분을 다운로드 받아서 보기 시작하고, 이번주 방영분도 봤다. 아. 역시 참 괜찮은 친구구나, 싶다. 잘생기고, 진중하고, 생각도 깊고, 목소리도 좋고, 나름의 유머도 있다. 그 코드가 감지되는 사람은 소수이겠지만. 신입사원은 시청자투표가 없어 한표를 줄 수 없는 마음이 안타깝다. 시청자 투표가 있다면 아낌없이 드릴텐데, 백원.. (도입하라는 얘기는 아님)
이렇게 갑자기 보는 TV가 많아졌으니 큰일이다. TV가 없으니 TV를 보는 일에 정성을 들여야 한다. 프로그램들이 공교롭게도 모두 MBC인데 MBC는 TVing에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아 화질 나쁜 온에어로 보거나 방송 시간을 못맞추면 다운받아서 봐야 하니, 이거 TV를 살까 싶기도 한데, 아, 놓을 데가 없구나! 돈도 없구나! 더 이상 보는 프로그램이 늘어나면 안되는데, 나는 시간의 프롤레탈리아인데...ㅜ_ㅜ
ps
이 글을 쓰다 보니 막 다시 보고 싶은 프로그램도 생긴다. 카이스트, 같은 드라마는 정말 역작이었는데... 다운받아놓은 걸 다 지웠으니 이제 구할 데도 없겠지 ㅜㅜ 안녕 프란체스카, 도 갑자기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