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의 집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아. 어제 쓰다가 잠들었다고 원성을 좀 들었지요. 오늘 저녁에 만난 후배도 (알라디너인데) 언니, 그렇게 끝내버리시면 어쩝니까. 라는 항의를 ㅎㅎㅎ 그러게요. 제가 간만에 1시반에 잠이 오는 게 너무 기뻐서 바로 굴복해버렸습니다. ㅎㅎㅎ
실은 집 하나가 생각이 안나서 오늘 쓸까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적은 노트가 있는데, 그게 사라졌거든요. 그래서 막 떠올리다가, 조금 전 생각이. ㅎ 그럼 다시 이야기해볼까요? 아. 반말로했었으니, 다시 반말 모드로.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다시 평일. 지난 주에 뿌려둔 전화번호 덕인지 부동산에서 전화가 왔다. 넓은 집 찾는 걸 알고, 좀 넓은 매물이 있어서 연락을 했다는 홍대의 모 부동산. 퇴근시간 땡! 하고 달려가 만난 열 여섯번째 집은, 정말, 굉장히 넓었다. 공간을 나눠서 써도 될 정도. 그런데, 보안이 첫번째 집과 다르지 않다. 문열고 들어가면 바로 집. 건물에 혼자 사는 건 아니지만, 따로 독립되어 있고, 1층이라 뭔가 위험해 보인다. 여기 할거면 첫집했지. 라는 마음으로 눈물을 머금고 패스.
그리고 다음은 상수 쪽에 있는 오피스텔이었는데 복층형이었다. 나름 복층 구조 집은 첫집 제외하고는 처음 본 거였는데, 건물 위치도, 보안도 너무 좋은데 방이 너무 좁다. 게다가 매우 허접한 옵션 옷장을 뺄 수 없냐고 물었더니 못뺀단다. 화장실 물이 잘 안내려가는지 변기가 지저분해 결국 매우 안좋은 인상으로 남은 집. 남향에 한강이 보이는 건 좋았다만.
그리고 신축 원룸에 가서 두개의 방을 봤다. 역시나 너무 좁아서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침대 놓을 공간도 없는 방. 보는둥마는둥 나왔다. 신축이어서 집은 정말 깔끔했지만, 여기 들어가면 짐은 이고 살았어야 했을 거다. 옆방은 200만원 더 싼 방이어서, 그냥 안보겠다고, 쿨하게 나오려는데 부동산 아저씨가, 자기가 좀 봐야 다른 분들을 보여준다며 들어갔다. 첫방과의 차이를 모르겠다. 200만원은 왜 더 싼거지?
이쯤 보고 나니, 나도 안되겠다 싶다. 계속 마음에 남겨두었던 망원동, 아직 덜지은 집으로 그냥 들어가야겠다고 결정. 어제 홍대 가서 신축 원룸은 훨씬 깔끔하다는 거 알았으니까, 나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5층 건물에 5층이어서 도둑이 발코니로 뛰어내리면 어쩌나 싶긴 하지만, 막아달라고 부탁 정도는 할 수 있을 것 같고. 무엇보다 한강 가깝고, 재래시장이 있는 동네라 살기도 괜찮겠다 싶어서... 출근 길에 한강을 건너며, 결심한다. 그래. 그냥 여기로 가자. 무엇보다 나는 한강을 좋아하니까, 매일매일 출근길에 졸다가도 동작역 지날 땐 꼭 한강을 보니까.
사실 집을 찾는다는 건 단점의 싸움이다. 100%의 집이라는 건 없고, 결국 여러 단점들이 서로 싸우는 건데, 어떤 단점이 내가 감수할만한 것인가, 를 잘 재고 따져야 하는 것 같다. 마음에 들고 가격이 맞는 집들은, 반지하, 전입안됨, 위험함, 뭐 이런 단점들이 늘 존재했으니까. 저런 조건에 단점들이 존재하지 않았으면 더 비쌌을 집들. 집값 만큼 정직한 녀석은 없는 것 같다는 게 희미하게나마 깨달아지던 진실... 결국 나는, 1억짜리 집을 찾고 있는 건가보아, 라는 결론을 ㅜㅜ
그래도 이 집은 융자는 좀 있긴 하지만, 한강이 가까우니까, 방은 넓고, 분리형이고, 발코니도 있으니까, 라며 계속 이유를 찾아가며 부동산에 전화를 했는데,
이미 나갔단다. 세상에 짓지도 않은 집을, 바닥도 안깐 집을, 정말 사람들이 계약을 하는구나. 3일만에. 가장 1순위에 있었던 집이 그렇게 눈앞에서 사라졌다. 아. 이렇게 놓치는구나. 그야말로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 다. 다른 집 더 알아봐달라며, 주말에 망원동에 가겠다고 이야기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아. 정말 다시 원점이구나. 뭐 죽도록 아쉽지는 않았다. 미친 듯이 마음에 들던 건 아니었던 거다. 암튼.
다음날은 성신여대 입구쪽까지 가봤다. 포기할 수 있는 조건이 거리 정도라면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 이제 정말 헛걸음하지 않으려고 올려놓은 평수가 실평수가 맞느냐고 미리 확인까지 했는데, 막상 가보니 실평수라니. 어림도 없었다. 멀리까지 갔건만, 제일 허탈하게 돌아온 케이스. 이제 불안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나 구할 수 있겠지?
그리고 다음날, 점심시간에 회사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그냥 회사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위치는 어떨까 하여 바로 회사 근처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서대문과 충정로 사이에 있는 집을 택시를 타고 날아가서 봤으나... 일단 그 집에 살던 사람이 너무 오래 살아서 집이 지저분하고, 심지어 샤워기 줄에 껍질까지 벗겨져 있었다. 패스. ㅎㅎ 가까운 거 하나는 좋더라.
그날 저녁에는 피터팬에서 직거래 물량을 올려놓은 사람 집으로 찾아갔는데, 홍대 산울림소극장 근처였다. 일단 동네가 마음에 들었다. 문자로 주고받을 땐 몰랐는데, 찾느라 근처에서 전화를 해보니 집주인이 남자였다. 나쁜 사람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함께.... 들어가지 말까...잠시 고민했으나, 인상이 나쁘지 않아 한번 들어가 본다.
와. 방이 넓다.
이가격에 이 크기 방 잘 없는 걸로 아는데, 라며 난 또 신나서, 계약하겠다며 설레발을. 보안도 괜찮고 2층이고, 방도넓고, 다 좋은데.... 불편한 점이... 세탁실이 외부 공동 세탁기이다. 사전에 알았다면 보러도 안갔을텐데, 방이 마음에 들고 나니 감수할 수 있을 것 같다. 게다가 나는 100%의 집이 없다는 것도 아는 여자니까. 감수해야 할 단점이 세탁기 정도라면 괜찮을 것도 같다. 그리고 기숙사에서 공용세탁기 써봤으니까. 일단 이 집은 내가 계약할테니 다른 사람 보여주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나왔다. 이 날이 금요일. 주말에 집을 보러 다니지 않고 쉬어도 된다는 기쁨에 마음이 홀가분하고 너무 좋다. 바로 모임 장소로 가 사람들에게 이 소식을 전했더니, 다들
- 세탁실 밖에 있는 집은 안돼, 안돼, 모드다
함께모인 자취의 달인들은 그게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 나에게 알려주기 시작했는데, 귀얇은 나는 또 팔랑팔랑. 그러고보니 나도 학교 때 은근 빨래 스트레스를 좀 받았던 것 같기도 하다. 안그래도 집안일 중에 빨래가 제일 싫은데 -_- 우울하게 고민을 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죄송하다고. 집값을 잘못 말했다고, 1천만원 더 올려주셔야 하겠다고. 전화를 끊는데, 됐어 됐어 안가안가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결국 이집도 킬. 스물 두번째 집이었다. 아. 이번 주말도 집을 보러 다녀야 하나.
그리하여 주말 아침. 원래는 망원동 부동산에 다시 가보고, 연희동에 피터팬 매물을 보러 가는 게 계획이었는데 삼각지 부동산에서 또 전화가 왔다. 정말 괜찮은 매물이 나왔다고. 그리하여 일단 삼각지부터 갔는데. 이 집, 전입이 안되는 집에 근저당까지 설정되어 있다. 실은 그러면 볼 필요도 없겠지만, 그래도 궁금해서 보러 갔다. 오피스텔 치고 굉장히 넓었다. 신축 1년이라 깨끗. 아마도 전입만 가능했으면 들어갔을텐데. 아마 그랬다면 더 비쌌겠지. 아쉽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미련을 빨리 버려야했다. 망원이나다시 가야지. 망원 아저씨에게 전화를 드리고 6호선을 타고 망원역까지 가는데 효창 공원 역을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웠다. 그래도 처음에 살고 싶었던 동네였는데. 숙대 2층집 틀어진 후에 다시 고려도 안한 동네라, 일단 먼저 내렸다.
(무슨 연재소설은 아니지만, 너무 졸려서 오늘은 또 여기까지... 이제 거의 다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