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는 게 좀 정신없어 뉴스나 글들을 잘 접하지 못하고 있긴 하지만, 우측보행 캠페인 포스터는 지나가면서 좀 여러번 봤었다. 뭐 뻘한 캠페인 하나 하나보다 하고 넘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게 갑작스레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했던 건.
어느 날 아침, 출근을 위해 서울역에서 내렸는데, 내가 타던 에스컬레이터가 거꾸로 내려오고 있는 거다. 응? 이게 뭥미? 하면서 눈을 의심했다. 내가 잠깐 미쳤나. 이 엘레베이터가 원래 내려오던 거였나? 내가 이렇게 정신 없이 살고 있었나? 하면서 반대편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생각해보니, 아, 우측보행. 우측보행이라는 건 이렇게 하루 아침에 특별한 안내문구 없이 (내가 못봤던 걸수도 있겠지만) 내가 타던 에스컬레이터의 방향을 바꿔놓는 거구나, 싶어 정말 어이가 없었던 거다. 그러고나서 보니 더 잘 보인다. 정말 여기저기 홍보 포스터가 엄청 붙어 있다. 그냥 오른쪽으로만 다니자는 줄 알고 흘려 봤었지, 이렇게 통제적으로 시스템 혹은 기존의 위치까지 변경해사면서 대대적으로 모든 국민의 통행길을 바꾼다는 것인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동영상 광고까지 찍어서 지하철에 틀어주시고, TV는 잘 안봐서 TV에도 하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그 광고비만 해도 도대체 얼마일지. 휴.
우측보행, 이라는 게 일재의 잔재인 좌측보행을 없앤다는 거였는데, 세상에나, 없애야 할 일제의 잔재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런 사소한 것에 과도하게 신경씩이나 써주시면서 우리모두 '안전하게' '오른쪽'으로 다니자, 라고 하는 게 얼마나 정치적이고 유치한 짓인지. 게다가 내가 낸 세금이 고작 이런 일 따위에 쓰이고 있다고 생각하니 정말 화가 나고 어이가 없다. 어떤 이익이 있길래 전국민이 생활 습관을 바꿔가며 혼란스럽게 우측 보행을 감행해야 하는건지. 그래서 모두가 우측통행으로 바꾸고 나면 원하는 정치를 하실 수 있을 것 같으신지. 도대체 이런 어이없는 짓에 왜들 가만히들 있는 건지. (그래, 생각해보면 또 화낼 일은 얼마나 많은지. 원.)
오늘 내가 다니는 역을 지나는데 열심히 환승 통로를 공사중이다. 2호선과 5호선의 환승 통로에 2호선 쪽에는 5호선 보라색 띠를, 5호선 쪽에는 2호선 녹색 띠를 붙이고 있다. 이 역시 우측 통행 기준이겠지. 갑자기 확 짜증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