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준비가 좀 됐나요?"
전화통화를 하던 어느 날 그가 물었다. 피아노 연주를 말하는 것이다.
"글쎄요. 비토씨 앞에서 직접 연주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전화로 연주를 하려니 부담스러운데요. 연주회에 한번 오시는 게 어때요? 제일 좋은 자리를 비워둘게요"
"아니에요. 내게 제일 좋은 자리는 바로 여깁니다. 난 가끔 친구들에게 전화를 해서 내 연주를 들려주기도 한답니다. 정말 친한 친구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나도 그런 특권을 누릴 수 있을까요?"

(중략)

깊이 잠들어 있을 때 그에게 전화가 왔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연주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들을 수 있겠어요?"

나는 잠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친한 친구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라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았다. 멀리서, 정말 먼 곳에서 피아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도대체 집이 얼마나 넓은 것일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들릴 듯 말듯한 소리를 잡아내기 위해 애쓰다보니 어느새 잠은 달아났고, 나는 귀를 전화기에 바싹 붙이고 그의 연주를 듣고 있었다. 그의 악보 곳곳에 '아주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인 것처럼'이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는 것 같았다. 작고 가냘픈 소리들이 전화기를 통해 내게로 넘어왔다. 그것은 음악이라기보다 단절된 소리들의 연속이었다. (중략) 허공에 모인 음표들은 오선지 위에서 제자리를 찾았고, 곧 음표들은 음악으로 바뀌었다.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그 장면을 떠올렸다. 눈을 감았더니 정말 음표들이 보이는 듯했다

 

 

 


오늘 피아노를 치면서, 이 소설이 떠올라 
나는 괜히 막 신났다.

올해는 아무래도 이걸 해봐야겠다. 전화 연주회.

불현듯 친한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연주회를 해줄까,
아니면 시간을 예약받아서 연주해줄까.

한곡 한곡 마스터할 때마다 전화를 해볼까,
아님 연말에 몰아서 (그래봐야 두세곡쯤? ㅋㅋ)
한꺼번에 해볼까. ㅋ

그런데 사람들이 특권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내 친구가 된 어쩔 수 없는 숙명-_-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어쨌든 나는 저만큼의 실력은 갖출 수 없을테니.

하하, 학예회 정도로 생각해 달라고 협박한 다음에 막 들려줘?

암튼, 즐거운 피아노 연습에 윤기를 더하기 ^_^
어쨌든 나름의 목표가 생겼으니... 
고마워요 김중혁님.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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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SHIN 2009-01-18 06: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이 참 이쁘군요.^^
'전화 연주회'라고 해서 요즘 흔히들 하는, 핸드폰 버튼 누르는 소리의 디지털 아카펠라
이야기인줄 알알았습니다.
소설 속 배경은 핸드폰이 나오기 전인가봐요. '도대체 집이 얼마나 넓은가' 라는 표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저도 웬디님 연주를 신청하면 들려주실건가요? (웃음)
전, [로미오와 줄리엣] 그 오리지날 연주곡을 듣고 싶어요 (^O^)/

웽스북스 2009-01-18 13:29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디지털 아카펠라. 역시 엘신님 상상력 ㅋㅋ

그런데 엘신님 놓치고 계신 부분이 있어요
곡 선정은 제가 합니다. 칠줄 아는 게 한개밖에 없어서요 ㅋㅋㅋㅋㅋㅋ
그러니 특권이 아닌 숙명이 될까 겁이 나는 것이지요

L.SHIN 2009-01-19 06:18   좋아요 0 | URL
오잉. 신청이 안되다니..=_= 헤엥~
그렇다면, 이건 될까요?
혹시 저를 재우고 싶다면 느린 곡보다 빠른 곡이 좋구요.
반대로 저를 불면에 시달리게 하고 싶다면 남들이 모두 '평화롭고 잠 오는'
그런 곡을 연주하시면 됩니다.
네? 뭐라구요? 거꾸로라구요? 그러게요, 저는 그래요.ㅋㅋ

웽스북스 2009-01-19 20:23   좋아요 0 | URL
아 엘신님은 역시 외계의 법칙을 그대로. ㅎㅎ
하지만 저는 그 두가지 다 칠줄 모른답니다. ㅋㅋ
그냥 오로지 한곡만
(그것도 아직 완벽하게는 못치는, 아 슬프다 ㅋ)

가시장미 2009-01-18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네요. 피아노!
나도 어릴적에 제대로 못 배워본 것 중 하나가 피아노인데..
이제는 용기가 없어서 못 할 것 같아요. 초등학생들의 현란의 손가락 움직임을 부러워하는..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레슨을 받을 생각을 하면 막... 얼굴이 빨개져요. 크크
어른만 다니는 학원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혹시 그런 곳도 있나요? ^^

웽스북스 2009-01-19 20:24   좋아요 0 | URL
가시장미님. 희망이 좀 크면 손붙잡고 같이 다니는 건 어때요?
그리고 요즘에는 성인들 가르쳐주는 데도 있을 거에요.

음악을 연주한다는 게 정말 삶의 기쁨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장미님, 도전해보세요!

메르헨 2009-01-1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피아노............
전 근데 말이죠. 이 글 보면서 말이죠...
내 남자친구가 피아노 치면서 노래해 주면 좋겠다...그런 생각이 드네요.하핫하핫...
(신랑이 남자친구일 때 말입니다요.ㅋㅋㅋ)
피아노...다시 배우고 싶어요!!!

웽스북스 2009-01-19 20:25   좋아요 0 | URL
메르헨님은 정말 일편단심 민들레인가봐요. 남자친구 상상도 신랑으로 하시고. 으흐흐. 신랑이 피아노 칠 줄 아시면 한번 부탁해보세요. ㅋㅋㅋ 안되면 일단 가르치기부터? ㅋㅋ

깐따삐야 2009-01-18 2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화연주회라니. 웬디양님, 별밤 뽐내기 대회 다시 나가는 기분이겠다! 넘 멋져요. 저도 한곡 부탁드려도 되겠어요? ^^

웽스북스 2009-01-19 20:26   좋아요 0 | URL
크크 깐따삐야님. 저는 뽐내기 아니구 퀴즈퀴즈 나갔었는데 ㅋㅋ
그러고보니 전화로 하는 연주의 원조는 뽐내기였군요 ㅋㅋㅋ

깐따삐야님 접수요! 근데 그 언제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어요. 음. 하반기? ㅋㅋㅋㅋㅋㅋ

바람돌이 2009-01-19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웬디양님 전화번호 알려주세요. 우리 해아 연주 들려드릴게요. 이제 피아노 배운지 일주일 돼서 도레도레~~~ 하고 있는데 그 소리가 얼마나 황홀한지 몰라요. ㅋㅋ 3=3=3===

웽스북스 2009-01-19 20:27   좋아요 0 | URL
오홋. 바람돌이님. 그 유명한 바이엘 상권의 1번 도레도레도레도레도 를 치는군요. ㅋㅋㅋ 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해서

배꼽 앞에 열쇠구멍 맞추고, 자. 도레도레도레도레도, 둘셋넷 띄고! 라고 외치던 에벤에셀 피아노학원 선생님이 아직도 생각나요. 선생님 얼굴은 생각 안나지만요. ㅎㅎ

전화번호는, 일단 학교종이라도 좀 치게되면 그때 ㅋㅋㅋ

세실 2009-01-19 2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어머 웬디양님 제 전화번호 알려드릴께요. 와 상상만으로도 멋져요~~

웽스북스 2009-01-21 01:25   좋아요 0 | URL
세실님 좀만 더 기다려주세요. 오늘도 연습하는데 버벅 버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