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결국 지구를 맡게됐다. (앗, 이런 캡틴플래닛같은 발언? ㅋ)

지구는 학교를 휴학하고 2002년 처음 아동부 교사를 맡았을 때 담임을 맡았던 아이라 나에게는 좀 각별한데 우여곡절 끝에 올 해, 중3이 된 지구를 다시 맡게 됐다. 작년 지구를 맡으셨던 S선생님이 의외로 너무 힘들어서, 나 역시 살짝 걱정이 되긴 하지만, 어쩐지 지구에게 나만이 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을 것 같다는 마음에 선뜻 그러겠다 했다. 사실 바랐던 일이기도 하고.

2

예배에 있어서의 올해의 키워드는 마이크를 내려놓다,가 아닌가 싶다. 아동부에서 잡았던 마이크, 찬양단으로 잡았던 마이크 다 내려놓고 뒤에서 파워포인트를 만들고, 넘기고, 묵묵히 한 아이의 선생님이 되는 것. (우리 교회는 작아서 내가 맡은 아이가 한명 뿐이다) 부족하기 그지없는 자가 마이크를 들었다는 게 그간 나의 가장 큰 부담이었나보다. 전혀 줄지 않은 사역량에도 (-_-) 마음이 편안한 걸 보니. 부디 내년 한해, 사람들 앞에서 들었던 마이크를 나에게로, 하나님께로 기울일 수 있길. 그러기 위해서는 또 몇가지 결심들이 필요하지만 말이다.

3

작년에 이은 송년회. M언니가 빠진 걸 제외하면 멤버는 그대로이나, 우리는 좀 더 서로에게 할 말이 많아진 것 같다. 그래서 참 다행스럽기도 하고. 지난 번에도 잠깐 얘기했지만, 나는 그나마 올 한해 스스로 기특하게 여기는 게 있다면, 고맙다는 말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건데, 오늘도 서로 카드를 쓰는 과정에서, 고맙다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 함께해줘서 고맙다고, 계속해서 내 삶 속에 존재해줬으면 좋겠다고. 표현은 모두에게 달랐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이 말이었던 것 같다. 아, 이 말이 이렇게 진심으로 툭툭툭 튀어나올 줄이야. 내년에는 좀 더 적은 사람들을 깊게 만나고 싶다. 난 진심으로, 내가 그랬으면 좋겠다. 누구 말처럼, 만인의 연인(만인도 나도 인정할 수는 없지만 -_-)이 아닌, 소수의 사람들과 더욱 깊고 친밀한 누군가이길.

4

내일(30일)이면, 진짜 '내일모레'가 서른인 날이다. 고백하자면, 좀 난감하다. 정말. 하하하. 그렇다, 오늘의 우리는 사실 총체적 난국 상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하. 좀 살아보겠다고 그렇게 발악을 하던 우리의 내년 한 해가 어떨지, 참 궁금하다. 과연 우리는, 오늘 이야기한 내년의 가정을 현실로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사실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한가지 사실은, 내년에도 그렇게 여전히 서로의 삶에 존재해줄 것이라는 것.

5

올해의 문장으로 나는 김수영의 어느날 고궁을 나오며를 꼽았다. 이 시 앞에 서면 나는 또 난감해진다. (난감하다,라는 표현이 이렇게 유용한 삶이라니 -_-) 올해는 나 자신이 참 작은 존재라는 걸 끊임없이 확인하고 또 확인한 한 해였다고, 사소한 일에만 분개하며, 정작 큰 일 앞에서는 속수무책해지는 나 자신의 작음 앞에, 나는 어찌해야할 바를 잘 몰랐고, 또 여전히 잘 모르겠고 그렇다.


* 지금 듣고있는 게 오, 사랑! 이라 제목이 이모양이다. 하하. (제목달기 너무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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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8-12-29 0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 이름이 지구예요? ^^

웽스북스 2008-12-29 12:06   좋아요 0 | URL
넹넹 김지구 ㅋㅋ
돌림자가 '구'라서 부모님이 고심좀 한 이름 ㅋㅋ

무스탕 2008-12-29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히와타리 사키라는 일본 작가가 그린 '나의 지구를 지켜줘' 라는 만화책 보셨어요?
끝내주는 책이에요!! ^^b

웽스북스 2008-12-29 12:10   좋아요 0 | URL
오홋! 그렇군요~ ㅎㅎ 어쩐지 우리 지구를 위해서 봐야할 것 같은데 말이죠. ㅋㅋ

깐따삐야 2008-12-29 14: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하핫! 드디어 웬디 요정이 지구를 맡기로 했군요.
2 묵묵히 한 아이의 선생님이 되는 것. 좋아요.^^
3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근데 결혼하면 인간관계의 폭이 더욱 좁아진다는. ㅠ
4 헉! 내년의 가정을 내년에 가정을 일군다는 말로 보았다는. 연애하셔용.
5 그걸 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다행인 것 같아요. 사소한 것이나 큰 것이나 그저 무대뽀로 나오는 뻔뻔함이 더 큰일이죠. 나이 먹을수록 그러지 말아야 할텐데 말여요.

웽스북스 2008-12-31 00:59   좋아요 0 | URL
1. 헤헷 웬디 요정이 지구를 지켜야 되는데, 나는 웬디 사람이어서 큰일이에요.
2. 깐따삐야님도 내년에는 선생님 모드로 돌아가겠지요?
3. 어욱 그렇구나 ㅜㅜ
4. 으하하하. 내년에 가정을 일구려면 얼른 만나야할텐데.
5. 그러게말이에요. 그래도 조금씩 자신을 키워나갈 수 있어야할텐데 으흑.

순오기 2008-12-29 14: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지구~~ 넌 복있는 녀석이 분명해!!

웽스북스 2008-12-31 00:59   좋아요 0 | URL
앗 감사드려요 순오기님 (__)

L.SHIN 2008-12-30 06: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지구를 맡게 되었다' 에서 화들짝 놀란 지구 담당 외계인...-_-
(결국 다른 댓글 보고서야 '중3 된 지구'가 무슨 뜻인지 알은..으하하하핫..;;)

4. 제 주변에도 웬디님처럼 '내일모레가 서른이야~'를 입에 다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랬죠. 생일날 계란 30개를 삶아주겠다고.
웬디님도 같이..?

웽스북스 2008-12-31 01:00   좋아요 0 | URL
아아아아 너무해요 너무해요
전 삶은 계란은 두개 이상 못먹어요. ㅋㅋ

지구 담당 엘신님, 우리 지구좀 맡아주세요. 흐흐흐.

L.SHIN 2008-12-31 07:26   좋아요 0 | URL
케챱도..같이 줄게요.
그럼, 목이 메이지는 않을 것...으하하핫..;; ( -_-)

니나 2008-12-30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삼십대도 이십대와 똑같을 까봐 난감하다 (김훈 난감 따라하기)

웽스북스 2008-12-31 01:00   좋아요 0 | URL
아주 우리 그냥 난감해 꽂힌거지.
계속 난감함에 꽂혀 있을까봐 난감하다.
(난감 넌사과)

니나 2009-01-02 22:05   좋아요 0 | URL
감사드려~ 주께 감사드려~ (이 찬양부를때마다 난감ㅋ,)

웽스북스 2009-01-03 01:45   좋아요 0 | URL
이 찬양 부를 때 니가 감이면,
나는 주님께 널 사드리면 되는 거지? ㅋㅋ